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87)
만렙 회귀자입니다만-187화(186/300)
제 187화
“단장! 세종 블랙 존 후방에 꾸려 둔 방어선이 속속 무너지고 있습니다!”
“보고는 들었다. 현장 영상은?”
“여기 있습니다!”
주천호에게 부하가 현장 영상이 담긴 화면을 보였다.
그의 말대로 후방에 꾸려 둔 다수의 방어 거점이 한 사람에 의해 그야말로 박살이 나고 있었다.
당연히 그 주인공은 신화였다.
수많은 트랩과 방어 시설이 일제히 신화를 노리고 작동했지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단원들이 당황하는 사이에 거리를 좁힌 신화는 근접 타격으로 단원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게다가 제법 비용을 들여서 구축한 시설들은 신화의 공격에 줄줄이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가 되어 갔다.
“미친놈…….”
주천호가 혀를 내둘렀다.
흑사비약이 제공하는 광기에 잔뜩 취해 있음에도 주천호의 감정은 잘 통제되고 있었다.
보통은 약 기운에 취해 욱하는 마음에 움직이기 마련이지만, 주천호는 그렇게 무모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일반 각성자가 블랙 존을 제 집 드나들 듯이 이렇게 들쑤시고 다니는 걸까요?”
“그건 나도 의문이군.”
부하의 의문은 주천호도 똑같이 갖고 있었다.
세종 블랙 존은 이곳의 모든 지형이 익숙한 경우가 아니라면, 원근감 왜곡이 매우 심한 곳이다.
심지어 내부 지도를 입수한 것으로 보이는 KSA의 정예도 북쪽 입구 진입부터 고전 중이었다.
그만큼 주천호가 공을 들여 주요 포인트마다 방어 시설을 구축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KSA는 진입 작전에서 상당수의 인원을 부상으로 잃고, 한 차례 물러선 상태였다.
이게 정상이었다.
블랙 존이 괜히 블랙 존이라는 악명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데 신화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는 듯했다.
“중요한 수비 포인트만 무너뜨리고 있군. 내게 오는 가장 빠른 지름길을 열고 있다.”
주천호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세종 블랙 존 북단의 전투에서는 많은 재미를 봤다.
그의 공격에 당한 KSA의 사상자만 해도 무려 50명에 달할 정도였다.
설령 죽지 않았더라도, 전투 불능 상태가 되어 부상으로 이탈한 인원도 상당할 것이다.
게다가 이하성과 나미나에게도 은밀히 매설해 두었던 트랩을 발동시켜 경상(輕傷)이지만 확실한 타격을 입혔다.
애초에 세종 블랙 존의 북부를 포함한 북서, 북동부 자체가 거대한 함정이었다.
차원석을 이용한 집중 공격 시설까지 갖춰져 있어, 이하성과 나미나도 꽤나 고전 중이었다.
랭크가 높다고 해서, 함정과 집중 공격이 난무하는 전장을 마음껏 휘저을 수는 없어서다.
그런데, 문제는 신화였다.
주천호가 보기에 신화는 랭크도 높지 않은 ‘주제’에 엄청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그의 이동 경로는 처음부터 어디가 위험하고 안전할지를 모조리 아는 사람의 움직임 같았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느낌!
거기서 유발된 불쾌한 감정은 오롯이 신화에 대한 분노와 관심으로 치환됐다.
“KSA의 정예를 엿 먹이고 있는 마당에 강신화 한 놈에게 후방이 털려서야 쓰겠나?”
“면목 없습니다.”
“북부 전선은 현 상태를 유지한다. 이하성은 신중한 지휘관이야. 무리해서 들이대지는 않을 거다.”
“예, 단장.”
“경록이에게 전해라. 현재 전선을 유지하라고. 조금만 더 버티면 지원군이 온다.”
“예, 전달하겠습니다!”
주천호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충주, 안성, 괴산 블랙 존에서 암약하고 있는 형제 조직의 지원이 있을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다수는 중국에서 넘어온 조선족으로 흑사회, 삼합회, 오성회에 뿌리가 두고 있었다.
다들 손에 피깨나 묻혀 본 자들이니 든든한 지원군이 될 터였다.
“강신화, 너는 내가 죽인다.”
끼리리릭.
주천호는 아무것도 매기지 않은 활시위를 당기며, 가상의 신화를 저격하는 상상을 했다.
정확히 가슴을 관통한 화살!
상상 속에서 신화는 심장을 부여잡고, 검붉은 피를 토해 내며 죽음을 노래하고 있었다.
소문은 듣고 있었다.
신화가 중국의 세 길드는 물론이거니와 리벤저스 쪽에도 제법 악연이 생겼다는 것을.
여기서 신화를 제거하거나 혹은 붙잡아서 중국 쪽에 넘긴다면?
생각 이상의 쏠쏠한 보상을 챙기게 될지도 모른다. 그쪽의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어지럽힌 놈이니까.
“강신화만 죽이면 최소한 퇴로는 마련할 수 있다.”
그것이 주천호의 계산이었다.
처음에는 KSA의 대규모 포위 공격에 긴장했지만, 생각보다 그들은 블랙 존의 생리를 몰랐다.
물론 KSA를 상대로 승리할 자신은 없었지만, 전략적 패배와 함께 도주할 경로는 그릴 법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 꼭 없애야 할 장애물은…… 역시 신화였다.
팟! 파팟!
이윽고 주천호의 모습이 남쪽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한 마리의 미꾸라지.
놈이 물을 흐리게 놔둘 수는 없었다.
* * *
나는 그저 손에 닿는 대로 붙잡아 양옆으로 날렸을 뿐인데.
“끄아아아!”
“으아아아!”
맥없이 당한 흑십자단 단원 둘이 빌딩 아래로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했다.
이러한 자신감을 도대체 어디서 얻었나 싶을 정도로 놈들의 대응은 허술했다.
전략적으로 유리한 포인트를 선점했다고 생각해서일까?
놈들은 정확하게 위치를 특정하고 이동하면서 공격하는 나를 한 번도 저지하지 못했다.
마치 세종 블랙 존을 구성하고 있는 ‘원근감 왜곡’을 자신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즉, 자신들만 아는 전략적 이점이기에 절대로 파훼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 것이다.
‘잘못된 확신은 무섭지.’
수많은 변수가 난무하는 전장에서 확신은 금물이지만, 놈들은 방심해도 너무 방심했다.
덕분에 나는 벌써 열 개 이상의 주요 거점을 해체하고 계속 북진 중이었다.
애초에 블랙 존에 들어선 순간부터 목표는 첫째도, 둘째도 단장 주천호였기 때문이다.
주천호의 성격상 후방에서 내가 이 정도로 휘젓고 있는데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을 터였다.
나름 블랙 존을 자신들만의 철옹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더더욱.
바로 그때.
“호오.”
나는 저 멀리서 빌딩과 빌딩 사이를 열심히 이동하며 빠르게 접근하는 인영(人影)을 보았다.
녀석은 아직 나를 보지 못한 것 같지만, 압도적으로 우수한 내 시력에는 명확하게 보였다.
주천호였다.
녀석이 죽으면 적어도 국내에서 내 앞길을 가로막을 ‘악당’은 모조리 사라지게 된다.
물론 국외로 시선을 돌리면 가깝게는 중국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긴 하지만, 어쨌든.
“회귀해서 큰 사건도 막고, 악당도 때려잡고. 이러다가 진짜 니콜라스가 그리 좋아하던 슈퍼 히어로 되겠네, 쯧.”
딱히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참 어쩌다 보니 정의의 사도처럼 되어 버렸다.
언론에서 나를 두고 띄워 주는 주요 키워드도 정의 구현, 히어로, 심판자 같은 단어들이었다.
“…….”
기다렸다.
SS랭크의 각성자 주천호.
거기에다 흑사비약까지 마신 주천호는 아무리 낮게 잡아도 SSS랭크의 실력을 갖춘 각성자였다.
초반부터 무리할 생각은 없었다.
확실한 탐색전이 필요하니까.
“강신화……!”
빠르게 거리를 좁혀 온 주천호는 나를 확인하고는 악에 받친 목소리로 내 이름을 힘껏 불렀다.
단지 이름 세 글자를 불렀을 뿐인데, 그의 분노와 혐오가 여실히 느껴졌다.
그렇겠지.
내 손에 자신의 아래 서열로 있는 2위, 3위, 4위의 간부가 모조리 죽었으니 그럴 수밖에.
확신했다. 오늘의 전투는 둘 중에 하나가 죽지 않는 한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녀석이 날 죽이고 싶어 하듯, 나 역시 주천호를 죽여야만 하는 이유는 차고 넘쳤다.
단지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전리품과 버프가 아니더라도…….
주천호는 무고한 인명을 수없이 앗아 간 희대의 범죄자였다.
아무리 사연이 있어 범죄자가 되었다고 한들, 그것이 살인을 정당화시킬 순 없는 것이다.
시잉! 파앙!
바로 주천호에게서 화살이 날아왔다.
그것은 평범하게 날아오는 화살이 절대 아니었다.
각각의 화살이 상당량의 마력을 머금고 있어, 관통력이 어마어마하게 높았다.
그래서 주천호를 상대한 각성자들은 저 화살을 ‘방패’로 막으려다가 낭패를 많이 본다.
차원석을 덕지덕지 발라서 만든 방패가 아니라면 바로 뚫려 버리기 때문이다.
푹! 푹푹! 푹!
나는 변수가 있는 강철 강화 대신, 액체화 재능을 이용해 주천호의 화살을 받아 냈다.
몸 여기저기를 파고드는 주천호의 화살이 가하는 충격이 여실히 느껴졌다.
육신에 피해를 입지 않을 뿐이지, 고통을 느끼는 것은 같았다.
그래도 내가 신음을 토해 내지 않는 것은 아픔을 몰라서가 아니라, 정신력으로 버텨 내기 때문이다.
이런 고통을 하루 이틀 경험한 것이 아니기에 가능한 인내심인 셈이다.
바로 그때.
우웅! 우웅! 우웅!
주변에서 대량의 차원석이 일제히 활성화되면서 고유의 에너지를 분출하는 것이 느껴졌다.
핑! 피핑!
그 순간.
천막이나 스티로폼 따위에 모습이 가려져 있던 특수한 시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젠장, 미리 준비를 해 뒀나?’
전장이 된 빌딩을 중심으로 주변에 위치한 건물에서 일제히 굵은 화살이 날아왔다.
그것은 사람이 날리는 것이 아니라, 기계에 의해 자동으로 날아가도록 활성화된 것이었다.
이 역시 일종의 트랩인 셈인데, 주천호가 미리 구축해 두었던 장치가 틀림없어 보였다.
전생에는 없었던 시설들.
어쩌면 주천호는 이쪽으로 내가 오기 전부터 여기를 전장으로 삼으리라고 생각했던 듯했다.
‘괜찮아. 이 정도의 공격 경로는 쉽게 쫓을 수 있다.’
바로 평정심을 되찾았다.
불규칙적인 형태로 화살을 발사하지만, 다중 추적을 이용해 충분히 쫓을 수 있어 보였다.
역시 신중하고 준비성이 철저하기로 유명한 주천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에 이런 공격 장치들 때문에 주천호를 노리던 수많은 각성자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었다.
‘주천호를 쉽게 처리할 수 있어야 내 은퇴 계획에도 힘이 실리게 된다.’
세상은 넓고, SSS랭크와 EX랭크의 각성자 역시 많다.
주천호에게 쩔쩔 맨다면 이후에 더 강력한 존재를 만났을 때는 고전할 가능성이 컸다.
그건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내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는 문제다. 은퇴 욕심과 별개로 내 프라이드와 직결되는 문제인 것이다.
핑! 피핑!
엇박자로 내게 발사된 일곱 대의 화살들.
스윽! 스으윽!
나는 초월 가속을 이용해, 앞뒤로 유려하게 움직이면서 손쉽게 공격을 피해 냈다.
그러는 동안.
주천호는 나와 충분히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거리까지 접근했다.
약 30m.
서로 노림수를 가져가면.
단숨에 쇄도하거나 혹은 위력적인 일격을 가할 수가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물론 대다수 각성자에게 이 정도의 거리는 한참 멀기 그지없는 ‘원거리’이겠지만 말이다.
“…….”
적막감이 감돌았다.
당장 서로를 덮칠 수 있는 거리에 서서 우리는 말없이 상대방을 응시하고 있었다.
새삼 회귀가 만들어 낸 나비효과를 실감하게 됐다.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앞으로 십 년은 더 살아 있어야 할 주천호를 이렇게 죽이러 왔으니까.
이런 식으로 수많은 변곡점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미래는 걷잡을 수 없이 크게 바뀐다는…….
니콜라스의 말도 생각이 났다.
물론 그뿐이다.
바뀌면 바뀌는 거지, 뭐.
그것까지 다 계산하고 행동하기에는 내가 너무 귀찮다. 난 지금도 최고 용량 이상으로 열심히 머리를 쓰고 있으니까.
그때.
주천호가 침묵을 깨고 진지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강신화.”
그리고 나는.
그의 부름에 반갑게 응했다.
“왜, 고자 XX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