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93)
만렙 회귀자입니다만-193화(192/300)
제 193화
미쉘에 대해서 좀 더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바로 마리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토시오보다는 WSA에서 직접 활동하고 있는 마리나가 그녀에 대해서 좀 더 잘 알 테니까.
-신화 씨, 무슨 일이에요?
“토시오 님께 들었습니다. 미쉘이라는 분이 공략대에 합류한다면서요?”
-맞아요! VVIP께서 직접 보내신 분이죠. 실력은 그 자체로 검증되었다고 봐도 될 거예요.
“전달받은 정보 그대로의 재능을 갖고 있는 건가요?”
-저도 처음 뵙는 분이라서요. 내부 정탐이 무엇보다 중요한 던전이라 지원을 보내 주신 듯해요.
“VVIP도 이번 시크릿 던전 공략 건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모양이네요.”
-네. 사실 저희 쪽에서 도움을 요청한 부분도 있죠. 신화 씨께 모든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기도 했고…….
“일단 알겠습니다. 그러면 미쉘 님에 대해서는 직접 만나 봐야 자세한 걸 알 수 있겠네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실력은 VVIP가 보증하는 거니까요. 이미 검증됐다고 보시면 돼요.
“알겠어요.”
마리나와의 짧은 통화를 끝내고 나서도 한참을 생각했다.
내 기억에 혹시 오류가 있는 건 아닌가 하고. 하지만 절대 아니었다.
기억은 확실했다.
전생에 미쉘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나인 로드의 동료였던 번우신에게 ‘야, 너랑 비슷한 콘셉트의 여자 각성자가 있다는데, 천생연분 아니야?’라고 농담까지 했었으니까.
번우신은 내 농담을 진지하게 듣고 길길이 날뛰면서 아니라고 했었던 터라 더욱 기억에 생생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VVIP가 토시오와 마리나를 도우려고 하다 보니 나와 연결점이 닿은 걸까.
아니면 나와 연결점이 있었기에 자신의 사람을 보내려는 것일까.
어떤 형태로 생각을 해도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조심해야 할 듯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미쉘이 의심스럽다고 공략대에서 빠지기에는 시크릿 던전에 대한 호기심이 너무 컸다.
‘별일 아니었으면 좋겠군.’
나는 기우이길 바랐다.
이미 여기저기 꼬인 실타래처럼 엮인 악연들이 많았다.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고 해서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지금의 타이밍에서는 사절하고 싶었다.
물론 내 뜻대로 될지는 의문이지만.
* * *
이후 며칠은 푹 쉬었다.
신화는 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침대 위를 뒹굴고, 소파에 엎드려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눈을 뜨면 밥을 먹고 TV를 보며 낄낄대다가, 졸리면 다시 샤미를 끌어안고 자는 식이었다.
세상 편하게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보낸 꿀맛 같은 휴식 시간.
확실히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니, 역설적으로 힐링이 잘되는 느낌이었다.
날이 갈수록 살이 오르고 활기를 머금어 가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신화는 나름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새삼스럽지만, 자신은 역시 혼자 놀고먹는 생활이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아마 은퇴해서 섬에서 혼자 살게 되더라도 외로움을 타거나, 우울해할 일은 전혀 없을 듯했다.
여차하면 샤미도 곁에 있다.
게다가 섬에서도 TV와 인터넷은 즐길 수 있으니, 굳이 사람이 그리울 일도 없겠지 싶었다.
“오늘은 외출이구먼.”
신화는 눈에 잔뜩 낀 눈곱을 떼어 내며, 스마트폰에 적혀 있는 오늘의 날짜를 살폈다.
3월 30일.
4월 1일에 중국으로 가기로 한 일정에 앞서, 한 차례 잡은 던전 공략 일이었다.
공략할 던전은 신화 개인의 소유 던전인 K-2027 던전.
팀 미스틱 차원에서 공략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A랭크의 던전이었다.
“다들 이 팩을 선물로 주면 좋아하겠어. 클클.”
신화는 현관 앞에 한가득 쌓여 있는 비닐 팩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일전에 디엔트의 ‘농장’에서 캐 온 근력초를 비롯한 마력 증진 식물들을 한데 모아서 만든.
그야말로 종합 식물 주스였다.
맛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이 아주 ‘최악’이었다.
한소준의 표현을 빌린다면, 태운 고무를 꼭꼭 씹어 그 즙을 들이켜는 느낌이라고 했다.
어떻게 그 맛을 아는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맛은 최악이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꾸준히 복용한다면 랭크가 바뀌진 않더라도 내부 단계는 바뀔 것이다.
이를테면 B-에서 B, 또는 B에서 B+가 되는 식으로 말이다.
“간만에 부담 없이 몸 좀 풀어 볼까? 이제 A랭크 던전이면 달리 긴장할 것도 없으니 말이야.”
떠날 채비는 진즉에 마쳤다.
한 달 전 같았으면 A랭크 던전이라고 하면 조금은 긴장하면서 공략에 임했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이미 A랭크의 경지에 오른 신화에게 동일 랭크의 던전은 그야말로 놀러 가는 기분일 뿐.
다만 여전히 팀원들을 어려워하는 진보미에게 판을 깔아 줄 요량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 * *
“자! 모두 입장하기 전에 주스를 한 팩씩 먹고 들어갑시다. 넉넉하게 챙겨 왔으니, 공략이 끝나면 한 달 치씩 받아 가요.”
“형님, 전에 주신 그 레시피 주스도 아직 다 못 먹었는데……. 새로 업그레이드된 겁니까?”
“그것보다 농축 효율이 훨씬 더 좋은 마력 주스야. 그건 심심할 때 먹고, 이건 끼니때마다 챙겨 먹어라.”
“우욱……. 색깔부터가 벌써 속이 안 좋은데요.”
“몸에 좋은 녹색 아냐? 세상 맛있어 보이는 색인데?”
“누가 걸쭉한 초록색 주스를 보고 맛있다는 생각을 떠올리겠습니까?”
“그래서…… 안 먹겠다?”
“윽, 그건 아니고요. 맛은 좀 그렇지만, 솔직히 마력 증진을 체감하고 있긴 합니다.”
“그래. 우리 막내 소준이가 먼저 먹어 보자.”
“하아…….”
한소준은 자신을 구해 달라는 눈빛으로 최지혁과 윤별이, 진보미를 번갈아 보았다.
“오빠, 이 던전은 참 볼 때마다 차원문이 예쁜 것 같아요.”
“그러게. 색깔이 마음에 든다.”
“저도 언니 생각과 같아요!”
하지만 다들 K-2027 던전의 차원문을 보며, 딴청을 피우는 모습이었다.
“나쁜 사람들……. 좋아요! 남자답게 한 번에 시음 들어갑니다!”
꿀꺽- 꿀꺽- 꿀꺽.
파르르 떨리는 한소준의 목젖에서 맛의 고통을 인내하는 안간힘이 느껴졌다.
신화는 팔짱을 낀 채로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한소준의 시음 평가가 이어지길 기다렸다.
“어때?”
“형님…….”
“몸에 마력이 뿜뿜 솟아나는 느낌이지?”
“밭에 뿌린 퇴비를 한 움큼 입에다가 쑤셔 넣고 꼭꼭 씹는 느낌이에요…….”
한소준이 고개를 떨군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지간히 맛이 없긴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뒷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맛만 빼면 솔직히 농도는 전보다 더 진한 것 같아요. 꾸준히 먹어 주면 효과가 있겠어요.”
“그렇지?”
“네. 그런 의미에서 전부 다 한 팩씩은 마시고 들어가죠?”
혼자 죽을 수는 없다는 걸까?
한소준이 물귀신 작전을 썼다.
그리고 얼마 후.
여기저기서 깊은 ‘분노’가 묻어나는 신음이 터져 나오며, 팀원들이 마력 증진 주스를 들이켰다.
언제부터인가 팀 미스틱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버린 고행(苦行)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다들 공감하고 있었다.
신화가 자신들에게 이렇게 챙겨 주고 있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실제로 마력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던 동료들이었기에.
맛에 괴로워할지언정 주스 복용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었다.
매번 신화가 소소하게 챙겨 주는 이런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는 큰 변화의 시발점이 되곤 했으니까.
* * *
그로부터 얼마 후.
‘신화 씨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평범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괴물이 된 것 같아…….’
K-2027 던전을 공략하는 내내 진보미는 신화의 압도적인 재능에 감탄하고 있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신화는 진보미가 생각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욱 강해져 있었다.
신화와 처음 갔었던 ‘마딜로 던전’의 기억만 해도 그랬다.
당시에도 강했던 것은 맞지만, 그래도 A랭크 몬스터인 마딜로를 잡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하아아압!”
힘찬 외침과 함께, 단숨에 몬스터에게로 거리를 좁힌 신화는 시원스레 주먹부터 날렸다.
진보미는 어느 정도의 공방전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지만…….
파앙!
현실은 한 방이었다.
폭권으로 대표되는 신화의 주먹이 작렬하는 순간, 몬스터의 머리가 마치 풍선처럼 펑펑 터져 나갔다.
“신화야, 너 오늘 평소보다 컨디션이 정말 좋다?”
최지혁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확실히 푹 쉬고 나왔더니 컨디션이 좋긴 좋네요. 이래서 휴식이 중요하다니까요.”
“평소보다 두세 배는 더 강해진 느낌이랄까?”
“후딱 공략하죠!”
신화가 경쾌한 발걸음으로 앞장섰다.
유쾌하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던전을 공략하는 신화와 팀 미스틱의 팀원들을 보며.
진보미는 그들이 참 부러웠다.
양화 길드의 던전 공략은 항상 실패나 실수를 쉽게 용납하지 않는 빡빡한 던전 공략이었다.
그래서 각자의 부담감이나 책임감도 컸고, 늘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하지만 팀 미스틱은 달랐다.
실수를 하더라도 유쾌하게 웃어넘기며, 서로를 격려했고 애정 어린 피드백을 꾸준히 주고받았다.
마치 형, 누나, 언니, 동생이 살갑게 뛰어노는 현장을 보는 듯했다.
편한 분위기 속에서 공략을 하니, 실수도 훨씬 적고 시너지도 더 나는 느낌이었다.
‘모두 즐기면서 공략에 임할 수 있도록 신화 씨가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어. 다들 행복해 보여.’
진보미는 해맑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공략에 임하는 최지혁과 윤별이, 한소준이 정말 부러웠다.
물론 양화 길드의 사람들이 싫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다들 좋은 언니, 오빠였다.
하지만 대외적인 이미지부터 시작해서 고려해야 할 것이 많은 양화 길드의 간부로서.
스무 살의 그녀가 짊어져야 책임과 짐의 무게는 생각보다 컸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바로 그때.
“보미 씨!”
신화가 멀리서 손을 흔들며, 환한 미소와 함께 그녀를 불렀다.
“네에……?”
그녀가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자, 신화가 한달음에 달려와 그녀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주눅 들어 있어요?”
“아……. 혹시 실수할까 봐요.”
“실수하면 어때서요?”
“팀에 민폐가 되잖아요.”
“노력하지 않는 건 민폐일지 몰라도, 노력하다가 실수하는 건 민폐가 아니죠.”
진보미가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자,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윤별이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줬다.
“부담 갖지 마, 보미야. 아무도 네가 잘했다, 못했다를 평가하지 않아. 왜 이리 기가 죽었어?”
“언니…….”
신화가 말을 보탰다.
“보미 씨가 뭔가 착각하는 듯한데,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실수를 절대 해서는 안 된다? 그거 되게 오만한 생각이에요.”
정곡을 찌르는 신화의 한마디에는 그만한 확신이 있었다.
신화가 자신의 가슴을 툭툭 치는 시늉을 하며, 힘주어 진보미에게 말했다.
“오늘은 보미 씨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봐요. 서포트와 탱킹은 우리가 다 할 테니까.”
“네.”
“마치 ‘이 구역의 미친X은 바로 나야!’ 하면서 뛰놀아 보라고요!”
신화의 마지막 말이 진보미의 가슴 깊숙한 곳에 거센 파도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매번 억누르고 억제해 왔던 진보미의 신중함과 부담감을 단숨에 무장해제 시켜 버리는.
신화의 노련한 한 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