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01)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01화(200/300)
제 201화
‘여긴…… 나스 대륙이잖아.’
자신과 아가우트를 둘러싼 주변의 환경이 바뀐 것을 인지했을 때.
신화는 이곳이 어디인지 먼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구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압도적으로 풍부한 마력의 양.
그리고 공기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향취와 청명함.
그것은 전생의 경험으로 신화가 기억하는 ‘나스 대륙’이 확실했다.
-우리가 왜 이곳에……?
문제는 자신을 지정해서 이곳으로 오게 만든 이로 보이는 아가우트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는 점?
신화야 당하는 입장에서 의아해하는 것이 맞지만, 아가우트의 반응은 의외였다.
“네가 날 여기로 끌고 온 거잖아, 아가우트.”
-나스 대륙어를 할 줄 안단 말인가?
거기에 한술 더 떠 신화가 지구인의 말이 아닌 나스 대륙어를 하자, 아가우트의 표정이 변했다.
“무슨 상황이야, 이게.”
-나는 너를 죽이기 위해서 분노의 낙인을 찍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여기에…….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자꾸.”
-환상이나 환각인가? 그럴 수 있겠군. 인간은 교활하고 갖은 술수를 부리는 존재지.
“혼자 말하고 혼자 판단하고 있네.”
-레체로였나! 그래, 레체로라면 가능한 일이다. 나를 이토록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레체로를 알아?”
신화가 물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아가우트에게서 유의미한 단서를 얻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사도 미쉘까지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판국에 레체로와 연결된 블랙 오크의 왕까지 나타나다니!
갑자기 상황이 몹시 복잡해지는 듯하면서도 또 다른 방향으로 새로운 활로가 열리는가 싶었다.
-역시 네놈이 레체로의 사도였나. 그렇다면 경고하겠다. 나를 포함한 우리 블랙 오크 부족을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복귀시켜라.
“어이, 아가우트! 난 레체로를 알지만……. 에휴, 이거를 또 언제 설명을 하고 앉아 있냐.”
레체로와 관련된 ‘오해’를 해명하려던 신화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절대로 레체로의 사도가 아니며, 오히려 레체로에 깊은 반감을 갖고 있다!
이런 사실을 이해시키기에는 아가우트에게 설명해야 할 내용이 너무 많았다.
회귀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있었던 히스토리를 나열해야 하는데, 그가 조용히 듣고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우리 블랙 오크를 어떻게 이동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로 인해 나는 지옥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어련하시겠어.”
-널 죽일 것이다.
“그래, 얼마든지 덤벼라. 조사는 그다음에 해야겠네.”
신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 좋게 해결할 방법은 없을 듯했다. 차라리 아가우트를 어느 정도 제압해 둬야 그런대로 얘기가 풀릴 듯했다.
-크오오오!
아가우트는 괴성을 힘껏 내지르며 신화에게 맹렬히 돌진하기 시작했다.
육중한 거구의 몸이 지축을 뒤흔들며 달려드는 광경은 무척이나 위압적이었다.
‘오히려 하단 쪽의 방어가 견실하고 상단이 약해. 하단 공격은 포기해야겠어.’
신화는 아까 전 아가우트와의 교전을 통해 자신이 점할 수 있는 우세와 열세를 차분히 분석했다.
앞선 전투에서 아가우트의 공격 동작을 보면서, 분석을 끝낸 결괏값이었다.
“…….”
아가우트가 충분히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하기를 기다린 뒤.
성난 아가우트의 주먹이 신화의 얼굴을 타깃으로 삼아 거칠게 날아드는 것을 확인한 순간!
후웅!
가볍게 몸을 날려, 아가우트의 어깨 위로 올라탔다.
깔끔한 회피이자 동시에 아가우트의 빈틈을 노리는 연계의 노림수였다.
우적!
-크아아아!
신화는 망설임 없이 아가우트의 뒷덜미를 물어뜯으며, 그 안에 독성의 침을 밀어 넣었다.
단단한 외피를 가지고 있는 아가우트였지만, 개변으로 극대화된 신화의 치악력을 견딜 순 없었다.
후웅! 후우웅!
귀찮은 벌레를 쫓아내려는 듯이 아가우트는 양팔을 위로 휘저으며, 신화를 떼어 내려 했다.
팟!
하지만 이미 예상했던 반응이었기에 신화는 아가우트의 어깨를 디딤대 삼아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왜애앵!
체내의 마력 전부를 단숨에 활용하여 윌슨을 아가우트의 정수리를 향해 날렸다.
과아아!
파공음을 내며 날아가는 윌슨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애초에 윌슨을 날린 지점이 아가우트의 정수리에서 몇 m도 안 되는 곳이었다.
퍼어어억!
-크억!
미처 손을 쓸 새도 없이 윌슨이라는 단단한 쇠공과 충돌한 아가우트의 머리에서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순간 아가우트의 콧구멍을 따라 붉은 피가 쫙 쏟아졌다.
방금 전의 일격으로 머리 부분에 상처를 입은 것이 틀림없었다.
-커허어억!
쿠웅!
아가우트는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그만 무릎을 꿇어 버렸다.
블랙 오크의 왕으로서 항상 강건한 육체와 전투 기술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던 아가우트였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단단한 외피를 갖고, 강인한 정신력을 갖추게 된 것은 전부 그 같은 훈련의 일환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공할 파괴력으로 다른 부위도 아닌, 정수리를 타격당할 가능성은 지금껏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머리 위는 훈련 따위로 강화할 수 있는 부위가 아니었다. 투구라도 쓰는 것이 아니라면.
신화의 입장에서는 공격에 활용할 수 있는 수많은 ‘경우의 수’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지만.
아가우트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일격이 됐다. SSS+랭크의 몬스터라고 한들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벌써 끝이야? 일어나야지?”
신화는 두 눈의 초점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아가우트에게 다가섰다.
처음에는 위장인가 싶어서 살폈지만, 뇌진탕을 일으켰을 때 나타나는 증세와 비슷해 보였다.
문제는 그 정도가 매우 심해 보인다는 것이다.
신화가 무심코 반격의 수로 던진 일격이 아가우트에게는 제법 큰 타격이 된 셈이다.
-크허어억!
아가우트가 검붉은 피를 연달아 토해 냈다.
방금의 일격이 시신경을 망가뜨렸는지, 왼쪽 눈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적은 강하다.
아가우트가 떠올린 생각이었다.
처음 흡공에 능수능란하게 대응했을 때부터 느꼈던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주요 공격 수단인 흡공을 너무 쉽게 파훼해 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약점을 핀셋처럼 노린 정확한 일격으로 자신에게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혔다.
-죽여라…….
아가우트가 고개를 휘저으며 말했다. 사실 죽지 못해 살아왔던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완벽히 갇힌 세계에 떨어져 시간을 보내 왔다.
드넓은 나스 대륙의 평원이 아니라, 척박하고 먹을 것이 부족한 세계에 갇혀 있었다.
자체적으로 생산되는 식량으로는 부족해서, 매일 제비뽑기로 희생할 오크를 정해 동족을 잡아먹었다.
그렇게 힘들게 버텨 온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더욱 답답한 것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영문조차 모른다는 사실이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는 없었지만, 남의 손을 빌려 죽는다 해도 나쁘지 않겠지 싶었다.
그만큼 아가우트는 지쳐 있었다.
“아가우트, 나는 레체로를 경멸하고 죽이고 싶은 사람이야. 너와 생각이 같다고.”
-그렇게 말한다고 한들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조금이라도 떠오르는 것이 없는 거야? 이 공간으로 데려온 것은 너잖아. 여긴 나스 대륙이야.”
-모른다. 알았으면 내 동족들을 먼저 이곳에 데려왔겠지.
“그럼 이게 누구 짓인데?”
-그걸 왜 내게 묻는가?
“피차 답을 모른다는 건가.”
신화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레체로가 만든 판이라고 보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지구와 나스 대륙의 ‘연결점’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말이 되지 않는다.
굳이 레체로가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레체로를 경멸하고 있다면, 훗날 반드시 놈을 죽여 주었으면 한다. 그놈은 나스 대륙에 지옥을 현신시켰다.
“알고 있어. 바로 너처럼 영문도 모른 채 차원을 떠도는 존재가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도.”
-강자의 손에 죽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지. 마음대로 해라…….
아가우트가 고개를 떨구었다.
신화는 ‘약점’의 중요성과 상징성을 새삼 다시 한번 느꼈다.
처음에는 전신이 거대한 방패와도 같은 단단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아가우트였다.
하지만 약점은 존재했고, 그곳을 노린 일격에 모든 상황이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나도 분명히 약점이 있어.’
신화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자신의 약점은 바로 후방 공격이었다.
그래서 항상 적을 상대하게 될 때, 절대로 ‘뒤를 잡힐’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
그것은 전생에 부단히 노력했지만 완벽하게 해결하지는 못한 자신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했다.
“네가 찾지 못한 답은 내가 찾을게. 블랙 오크가 왜 전혀 다른 세계로 추방되었는지도.”
-무엇이든…….
신화가 검형으로 개변시킨 오른팔을 힘껏 들어올린 뒤.
솨아아악!
단숨에 아가우트의 목을 내리쳤다. 전투 의지를 완전히 내려놓은 아가우트였기에 절단은 어렵지 않았다.
바로 그때.
투우욱.
숨이 끊어진 아가우트의 머리 쪽에서 엄지만 한 크기의 원석처럼 생긴 것이 툭 떨어졌다.
[아가우트의 의지] [판정 등급 : A] [해당 던전(지도 참고)의 보스 몬스터 구역에서만 활성화시킬 수 있는 의지입니다.아가우트의 의지를 이용하여 해당 원석의 사용자 1인은 나스 대륙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단, 체류 시간은 의지에 불어넣은 마력의 양에 정비례하며 최대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뭐야, 이거. 나스 대륙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장치라고? 아가우트의 의지가?”
아직 현실은 2020년이다.
나스 대륙과의 공식적인 연결 고리가 생기는 것은 2025년의 일이니 아직 5년이나 더 남았다.
현재 양쪽 차원 간의 통로는 레체로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보내는 일방통행의 경로만 있을 뿐.
전생에도 그랬다.
심지어 회귀자인 니콜라스도 지구에서 나스 대륙으로 향하는 장치를 만들거나 발견하진 못했다.
그렇다면 이건 뭘까?
“…….”
갑자기 불현듯 든 생각은.
아가우트에게 혹시나 이것 이외에도 숨겨진 단서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가우트의 존재부터 시작해서, 그의 죽음으로 얻은 전리품의 연계까지.
마치 누군가 자신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메시지의 발신자가 누구인지, 왜 그러는 것인지는 전혀 알 방법이 없었지만…….
뇌리를 스치는 직감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뭔가에 홀린 것처럼 쓰러진 아가우트의 몸을 훑기 시작했다.
싸늘하게 식어 가는 시체의 몸을 뒤진다는 것이 썩 기분 좋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꼼꼼히 살폈다.
아가우트가 입고 있었던 갑주를 벗겼고, 신발과 속옷까지 모든 것을 벗겼다.
혹시나 그 안에서 특수한 아티팩트나 증표가 나올 수도 있었기에.
“쓸모없는 촉이었나?”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달리 얻을 아티팩트도 없었다.
한데 바로 그때.
벗겨 낸 갑주의 가슴 부위 쪽.
그 안쪽에 신화에게도 낯선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이건?”
그것도 무려 무강 대륙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