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02)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02화(201/300)
제 202화
당연한 얘기지만, 2020년의 현시점에서 무강 대륙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단 한 명.
바로 나밖에 없다.
지구와 무강 대륙이 연결되려면 2030년은 되어야만 하고, 그 전까지는 둘 사이에 연결점이 전혀 없었다.
문제는 나스 대륙의 오크족이었던 아가우트의 몸에 무강 대륙어가 적혀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건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적은 글귀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단 갑주의 가슴 부위를 조심스럽게 떼어 내어 앞에 펼쳤다.
아가우트의 땀과 핏물 같은 것으로 얼룩져 있어, 글귀가 잘 안 보였기 때문이다.
이윽고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죽인 레체로는 진짜 레체로가 아니었다. 진짜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 소리야? 부활의 꽃 때문에 세 번이나 죽인 놈이 가짜였다고?”
믿을 수 없단 생각이 들었지만, 진지하게 적혀 있는 문구를 결국 나는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문구를 제외한 다른 어떤 내용도 적혀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죽은 아가우트가 부끄러울 정도로 온몸을 샅샅이 뒤졌지만, 남겨진 말은 이게 전부였다.
황당했다.
도대체 이런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 존재는 누구일까.
바로 그때.
나는 남겨진 메시지 위로 유독 눈에 띄는 단어를 곱씹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였다.
“설마, 니콜라스?”
생각의 폭이 확장됐다.
레체로를 죽인 것은 나인 로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나인 로드를 지칭한 것일 터.
이 정도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나인 로드의 일원은 단 한 사람밖에 없다. 바로 니콜라스다.
“……XX, 이게 뭔 일이야.”
절로 욕이 나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점차 해결되고 풀려 가기를 고대하고 있는데.
마치 스무고개를 하듯, 오히려 갈수록 물음표만 우수수 늘어나는 꼴이었다.
니콜라스는 아직 회귀할 기색조차 없는데, 이 메시지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미래에서 보낸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잡생각은 옆으로 미뤄 놓고, 이 메시지가 100%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우리가 죽인 레체로가 진짜 레체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훗날의 일일 터였다.
2052년에 대재앙을 막고 은퇴를 준비할 때까지 나나 니콜라스나 레체로를 진짜 죽였다고 믿었기에.
즉, 내가 과거로 회귀한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머리카락 빠질 것 같네…….”
사고의 폭을 살짝 넓힌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잡아서 뜯었더니 수십 가닥의 머리카락이 단숨에 뜯겨 나왔다.
“우리가 몰랐던 일들이 많았다고 하지 말아 줘. 제발 니콜라스, 진심으로 부탁한다. 나 은퇴하고 싶단 말이야.”
니콜라스가 어딘가에서 듣고 있으리라고 믿으며,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 채로 중얼거렸다.
울먹이듯 한 말은 진심이었다.
열심히 돈 벌고, 힘 키우고.
전생에 내가 지켜 주지 못해 아쉬웠던 사람들 몇몇을 구해, 충분히 인재로서 육성해 놓고!
이 정도만 해 두면 나의 은퇴 계획은 마치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스포츠카처럼 마냥 탄탄대로일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갈수록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마구 꼬인 단서들이 내 머릿속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사실들이 너무 친절하게 내 앞에 다가와 주고 있는 것이다. XX 맞게!
“…….”
일단 아가우트의 의지와 갑주를 챙겼다.
100%는 아니지만, 99.9% 니콜라스가 남긴 메시지가 확실한 듯 보였다.
아마 무강 대륙어로 남긴 것은.
2020년, 현시점에서 해석될 가능성이 있는 나스 대륙어나 지구의 언어를 피하기 위해서일 터였다.
내게 메시지를 보내려는 걸까.
어쨌든 지금까지는 나 혼자서만 새로운 사실을 알아 온 느낌이라면.
오늘은 달랐다.
지금의 나와 교감하려는 니콜라스의 의지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미쉘을 더 경계해야겠어.’
지금의 일은 확실하게 묻어야 한다. 아주 작은 단서도 남지 않도록 완벽한 위장이 필수적이다.
아가우트의 의지 때문에라도 이 던전에서 반드시 보스 몬스터에게 닿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시크릿 던전.
별칭에 걸맞게 많은 비밀이 이곳에 숨겨져 있을 듯했다.
[5분 후 차원의 급격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강제로 원래의 공간으로 복귀시킵니다.] [카운트를 시작합니다.]“5분. 그러면 남은 300초 동안은 나스 대륙의 어디든지 가 볼 수 있다는 소리인가.”
알림창을 보기가 무섭게 마음이 이끄는 대로 북쪽으로 전력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기에 무작정 달려 본 것이다.
이왕 밟은 나스 대륙의 땅덩어리라면, 어느 지점이든 눈에 담아 두기 위해서였다.
애초에 아가우트와 전투를 벌였음에도 주변이 조용했던 것을 보면, 도심은 확실히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시속 200km 이상의 고속으로 1분 넘게 달렸음에도 인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 동상을 여기까지 와서 버리고 갔구먼. 하기야 레체로의 암흑 교단에게는 철천지원수이니 그럴 수도.”
부서지고 짓밟히고 이끼가 잔뜩 낀 채로 버려져 있는 동상 하나가 숲속에 있었다.
자레드 폰 유칼레스.
1000년 전에 나스 대륙 전역을 통일하고, 크리비아 제국의 황제가 된 것으로 알려진 영웅이다.
전생에 나스 대륙의 사료를 살폈던 내용에 따르면, 영웅을 넘어 거의 신적인 추앙을 받았다고 했다.
어쨌든 오랜 시간 대륙의 영웅으로 기려졌지만.
레체로의 암흑 교단인 ‘레크나트 교단’이 대륙 전역을 장악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과거의 영광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특히 교단 태동의 근원이기도 한 ‘마왕 레크나트’를 처단한 자레드를 철저하게 욕보였다.
사료를 불태우고, 유적과 옛 황궁은 부숴 버렸으며, 동상은 철거하고 분해하여 오지에 버렸다.
그중 하나가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 버려진 모양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내가 누비는 이 땅이 나스 대륙의 지면이라는 사실은 확실해졌네.”
실감이 났다.
2020년에 나스 대륙의 땅을 밟을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현실이 됐다.
“니콜라스, 힘들게 고생하지 말고 직접 회귀해서 해결하면 안 되냐?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거야?”
다시금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왜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을 녀석은 선택하지 못한 걸까?
“그냥 모른 척하고 살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꼭 개입하지 않더라도 당분간은 별일 없이 시간은 흘러갈 텐데.
“차근차근 생각하자.”
미리 생각해 봤자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알기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복잡한 생각을 털어 냈다.
당장 돌아가서 미쉘부터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가 더 큰 문제였다.
끝까지 모른 척 간만 볼 건지, 아니면 대놓고 지를 건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5분의 시간이 흘러 복귀를 진행합니다.]이윽고 원래 내가 있었던 공간, 시크릿 던전의 전장으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에 익숙해진 나스 대륙의 경관이 빠르게 사라지고.
어두워졌던 공간을 시크릿 던전의 배경이 대신 메웠다.
나만 아는 비밀을 간직한 채, 다시 돌아온 전장이었다.
* * *
“괜찮습니까? 어디 다치지는 않으셨고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복귀한 신화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걱정하며 달려온 것은 예상과 달리 미쉘이었다.
신화가 주변을 살피자, 이미 블랙 오크 다수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가우트가 사라지면서 토시오의 화력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광활한 전장에 휘몰아치는 거센 한기의 폭풍을 평범한 블랙 오크들은 견뎌 낼 수가 없었다.
덕분에 여기저기 얼어붙은 채로 숨을 거둔 블랙 오크의 시체들이 즐비하게 ‘우뚝 서’ 있었다.
“아가우트가 격리 능력이 있더군요. 아무것도 안 보이는 어두운 공간에 끌려갔습니다.”
신화가 웃으며 태연한 표정으로 미쉘에게 거짓말을 했다.
미쉘은 아가우트가 나스 대륙어를 했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기에 어떤 연결점이 있었는지 매우 궁금해하는 모양이었다.
“아가우트는 어떻게 되었나요?”
“죽었습니다. 완전 난투에 개싸움이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전리품이 좀 약소하네요.”
신화가 어깨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 내며, 아공간에서 켈디아 단검과 차원석 몇 개를 꺼냈다.
켈디아 단검은 예전에 북대전 블랙 존에서 얻었던 것.
하지만 나스 대륙 태생의 무기이기 때문에 보란 듯이 꺼낸 것이다. 위장용으로.
차원석은 원래 아공간에다 보관 중이던 최상급 차원석 몇 개를 꺼내어서 보인 것뿐이었다.
“혹시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에 대한 단서 같은 것은 전혀 없었던 겁니까?”
“저도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미쉘의 물음에 신화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너무 능숙한 연기라 스스로 감탄할 정도였다.
“어쨌든 무사히 귀환하셔서 다행입니다. 그것보다 너무 당연하게 넘어갔는데, 생각해 보니 SSS+랭크의 보스 몬스터를 제거한 것이 아닙니까?”
“운이 좋았네요. 겸손이 아니라,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신화가 손사래를 쳤다.
이번 전투는 의외의 노림수가 적중하는 바람에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마무리됐다.
꼭 상대의 랭크가 높다고 해서 전투가 길어질 이유는 없는 것이니까. 기분 좋게 생각했다.
“다시 전진하죠. 잘 해결되어서 다행입니다.”
“괜찮으시면 아가우트에게 얻은 단검을 좀 살펴봐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신화가 곧바로 미쉘에게 켈디아 단검을 내밀었다. 앞뒤가 맞는 물건이라 의심할 여지는 없을 터였다.
어쨌든 그렇게 다시 전진하기 시작됐다.
그리고 아가우트와 있었던 일은 신화만이 아는 비밀로 묻혔다.
* * *
30분 후.
“이번 갈림길 탐색은 양쪽으로 나눠 했으면 좋겠습니다. 앞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결국에는 갈림길이 합쳐지는 구조예요.”
“구성은요?”
“저와 신화 씨가 좌측을 맡고, 두 분이 우측을 맡아 주시겠어요?”
계속 시야에 들어왔던 갈림길이 나타나자, 미쉘이 먼저 제안을 했다.
갈림길의 좌측은 나와 미쉘, 우측은 토시오와 마리나가 조를 이루어 이동하자는 제안이었다.
‘오호라.’
미쉘이 아무 생각 없이 조를 나눈 것 같지는 않았다.
마침 ‘시기적절’하게 나타난 갈림길을 이용해 보는 눈을 없앤다는 점도 그럴듯했고.
토시오가 물었다.
“신화 씨는 어떻습니까?”
“저야 정탐의 귀재인 미쉘 님과 동행하면 오히려 편하죠. 사실상 업혀 가는 것 아닙니까? 하하.”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속으로는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아마 미쉘도 같은 생각이겠지.
이것저것 눈치 보면서 재는 것도 이제는 신물이 나려 했다.
설령 오늘 아무 일 없이 지나가더라도, 언제고 다시 악연으로 엮일 듯했다.
그렇다면!
푸닥거리는 빠를수록 좋았다.
그로부터 10분 후.
토시오와 마리나로부터 거리가 충분히 떨어져 갈림길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을 무렵.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이동하던 미쉘에게 넌지시 말을 꺼냈다.
“VVIP, 왜 이런 자리까지 와서 나를 지켜보려고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