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03)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03화(202/300)
제 203화
“무슨 말인가요?”
미쉘은 정말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반문하기에 순간 내가 오해했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을 정도였다.
“우리가 악연으로 엮일 만한 이유가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난 당신을 자극한 적이 없는데.”
“강신화 씨, 제가 아니라 VVIP께 하시고 싶은 말씀을 전하시는 건가요?”
“적당히 해. 내 눈은 절대 못 속여. 그것도 남자가 여자로 위장하고 있다는 거 알아.”
“…….”
일순간 아무 말도 없이 눈빛이 돌변하는 미쉘의 모습이 모든 것을 말해 줬다.
굳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지금까지의 모습이 전부 위장이었다는 게 선명히 보였다.
다 들통난 마당에 끝까지 아니라고 잡아떼는 것도 질색이다.
어차피 나는 물론이거니와, 녀석도 이런 자리가 만들어지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말한 것이다.
적절하게 판이 짜였으니 이제 본색을 드러내라고 말이다.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당황스럽네요.”
“하, 정말 구질구질하게 안 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네.”
타탁! 탁!
전광석화와 같은 움직임으로 미쉘과 거리를 좁힌 나는 미쉘의 목 뒤쪽의 혈 몇 군데를 단숨에 눌렀다.
미쉘은 움찔하며 피하기는 했지만, 이미 소기의 목적은 완벽하게 달성한 후였다.
다음 순간.
꾸득. 꾸드득. 꾸득.
미쉘의 얼굴이 마치 젤리처럼 흐물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외형이 바뀌기 시작했다.
동시에 보이지 않았던 목젖이 생겨나고, 없던 수염과 체모가 순식간에 자라났다.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거다. 역용술을 펼치는 적이 있으면, 내가 말한 방법으로 점혈하도록 해. 그럼 곧바로 풀릴 거다.’
‘매번 녀석의 덕을 보네.’
나는 아직 만나지 못한, 그리고 앞으로 만나고 싶어도 근 10년은 기다려야 하는 묵철을 떠올리며 웃었다.
“아아…….”
탄성을 터뜨리는 미쉘의 모습을 보니 자신의 역용술이 파훼되었다는 사실에 당황한 듯했다.
그렇겠지.
역용술도 나름의 재능일 텐데 이렇게 무력화됐으니 예상 밖일 수밖에.
“남자인 것은 처음부터 알았지만, 이런 외모는 좀 의외인데. 무슨 병 있어?”
여성의 모습에서 벗어나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온 그의 얼굴을 보며 내가 말했다.
핏기라고는 한 톨도 없어 보이는 창백한 얼굴에 붉게 충혈이 된 두 눈.
그것은 마치 흡혈로 폭주 상태에 돌입할 당시 신부님이 보였던 모습과 흡사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마치 시체를 일으켜 세워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심지어 체온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에게서는 얼음처럼 차가운 한기가 뿜어져 나왔던 것이다.
“내 위장을 파훼하다니…….”
“네가 VVIP야?”
“나를 아나?”
“당연히 모르지. 근데 뜬금없이 끼어든 것을 보니까 VVIP가 아니면 어렵겠더라고.”
“강신화……. 예전부터 참 흥미롭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호기심이 동하는 녀석이로군.”
“어쨌든 VVIP가 맞다는 거지? 괜히 이것저것 재지 말고 우리 쿨하게 인정하자. 숨길 거 없잖아?”
“뭐, 상관없다. 지금껏 내 본래의 얼굴을 본 사람 중에 살아남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캬! 그럼 내가 VVIP의 용안을 뵙고도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생존자인 건가?”
“특이한 반응이군, 강신화.”
“참 너도 겁이 많긴 한가 보네. 내가 궁금하면 직접 찾아와서 물을 것이지, 위장은 왜 해?”
“이왕이면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 주려고 했는데, 이러면 네가 갈 저승길만 고통스러워질 뿐이다.”
“아하! 그러니까 고통 없이 한 방에 보내 주려고 위장을 했는데, 나 때문에 그게 잘 안 됐다?”
“고통 없는 죽음만큼 행복한 죽음도 없지 않나?”
“개소리도 진지하게 하니까 되게 명언처럼 들린다, 야. 어쨌든 정말 반가워, 우리 VVIP 씨.”
“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네게 내가 뭘 원하는지가 중요하지.”
탁!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쉘, 아니 VVIP가 엄지와 검지를 튕겼다.
그러자 무형의 파장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더니, 이내 거대한 반원이 생겨나며 역장이 생겼다.
순간 외부의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 것으로 봐선 대규모 방음 역장이 확실해 보였다.
게다가 공간 간섭 현상까지 관찰되는 것으로 봐서는 일종의 결계로도 보였다.
“와, 미쳤네. 이런 형태의 재능은 쉽게 얻기 힘들 텐데?”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리고 살짝 긴장도 하게 됐다.
이미 VVIP가 보여 준 능력만 해도 방음 역장, 공간 결계, 역용술, 신속 정탐 및 암살 능력까지…….
벌써 네 가지가 넘기 때문이다.
듀얼이나 트리플 정도의 각성자가 아닌, 그 이상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VVIP의 능력에 대해서는 전생에도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었던 만큼.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0의 상태에서 녀석을 상대해야 한다는 뜻도 됐다.
“아! 각성자의 재능 흡수를 할 수 있는 분이셨구먼? 딱 보니 그래 보이는데, 그렇지?”
은근슬쩍 떠보았다.
머리는 차갑게, 눈빛은 뜨겁게 VVIP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말은 최대한 여유롭게 했다.
아주 비열하고 저질스러운 악수를 준비하고 나를 노린 녀석에게 주눅 든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눈치가 빠르군. 네가 가진 재능이 많아 탐이 나더군. 엔간히 매력적이어야지?”
혀끝으로 입술을 핥는 VVIP의 모습에서는 탐욕스러움이 가감 없이 묻어났다.
갖고 싶은 것은 꼭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악인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재능 포식자라니. 그런 재능은 내가 가졌어야 하는데. 빼앗을 수 없는 재능이라 아쉽네.”
나도 진심으로 답했다.
버프면 빼앗을 수 있는데, 재능이라서 내 것으로 만들 방법이 없다는 게 참 아쉬웠다.
한편으론 VVIP의 실체를 알게 된 이상 전생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2010년부터 2052년까지 수많은 각성자의 재능을 흡수해 왔다면?
모르긴 몰라도 그 이후에 마각을 드러냈을 때.
그가 활용할 수 있는 재능은 수백 가지가 넘었을지도 모른다.
‘XX, 정작 진정한 대재앙은 다른 곳에 있었네.’
쌍욕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이런 흑막을 아무것도 모른 채 방치해 뒀던 전생의 시간들이 그저 경악스러울 따름이었다.
물론!
불행인지 다행인지 바로잡을 기회가 생겼다. 먼저 VVIP가 선수를 쳐 온 것이다.
‘니콜라스, 이 자식 때문에 목숨 걸고 열일 해야 되는 거냐. 진짜 나 좀 살려 주라, 제발.’
듣는 사람도 없는 괜한 푸념을 속으로 하면서 나는 조심스럽게 몸을 풀었다.
앞서 미쉘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각성자에 대한 보고서 정보는 하나도 믿을 게 없었다.
그리고 전생의 기억으로 미루어 볼 때, 지금의 VVIP는 아무리 낮게 잡아도 SSS+랭크의 각성자일 것이다.
‘더 까다로운 것은 사전 정보는 전혀 없는 반면에 흡수한 재능은 한두 가지가 아닐 거라는 거지.’
그래서.
[부활의 꽃] [섭취자가 죽을 경우, 섭취자를 약간의 상처나 질병도 없는 무결점 몸 상태로 완벽하게 복구시킵니다.] [능력명 : 완전 부활]나름 꺼낼 수 있는 비장의 무기에 대한 생각을 명확하게 떠올려 뒀다.
회귀 이후.
전투를 앞둔 상태에서, 처음으로 최악의 경우를 산정하게 된 것이다.
세상의 모든 ‘나쁜 놈’이 멍청하게 당해 주기만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악랄하고 나쁜 놈들은 보통 머리도 비상해서 상대하기 껄끄러운 경우가 많다.
VVIP는 WSA라는 거대한 조직의 수장이다.
내 힘에 압도되어 얼렁뚱땅(?) 목숨을 잃기엔 제법 몸집이 큰 악당인 셈이다.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부활의 꽃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작정하고 찾으면 당장 두 개는 더 구할 수 있으니까.’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이미 서로의 정체를 알게 된 마당에 내가 살려면 VVIP가 죽어야 한다.
같이 손 붙잡고 살아서 나갈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주사위는 진즉에 던져졌으니까.
화아악!
VVIP가 양손에 검붉은 기운을 만들고는 이글거리는 살기를 뿜어내며 내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내가 너 같은 놈들이 자신감에 가득 차 뛰어노는 게 꼴 보기 싫어서라도 사도들은 꼭 족쳐야겠어.”
“뭐라고?”
“사도. 레체로의 사도, 인마! 지구에서 너무 오래 살아서 네 본분도 잊었어?”
“내가 사도라는 것을…….”
“어떻게 아냐고? 다 방법이 있지. 아무튼 내 계획은 하나야.”
“……?”
“널 죽이면! 내가 기필코 다른 사도들도 끝장을 내 주겠어. 아주 흑막 행세를 하는 꼴이 역겹고 같잖아서 줘패고 싶네, 진짜.”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있군, 강신화. 꽤 흥미로운걸?”
“그래. 더 궁금한 게 있으면 죽이고 직접 머리를 뒤져서라도 알아내든가.”
“내 밑거름이 되기 위하여 영광스럽게 죽어라, 강신화.”
“좀 죽이고 나서 얘기를 하든지 해라. 자꾸 폼 잡지 말고. 아까부터 진짜 XX 같아서 못 들어 주겠네.”
“하아압!”
콧구멍을 후비적거리며 던진 저급한 도발이 먹혔는지 VVIP가 먼저 달려들었다.
파팟! 팟!
‘젠장, 공간 이동에 잔상인가?’
정직하게 직선 경로로 들어온다 싶었던 VVIP의 위치가 바뀌었다.
갑자기 왼쪽으로 움직임이 튀기에 시선을 돌렸는데, 그 자리에는 허상만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실상은?
퍼억!
“크헉!”
내 오른쪽이었다.
순간적으로 변주를 두 번씩이나 주는 바람에 흐름을 놓쳐 버렸고, 그 결과는 뼈아팠다.
복부를 강타한 일격에 신음을 토하며, 한참을 후방으로 쭉 밀리듯 날아갔다.
힘주어 버텨 보려고 해도 절대로 그럴 수 없는 엄청난 충격 에너지로 인한 밀림이었다.
“우욱!”
오장육부가 진탕을 하면서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아내지 못하고 그만 피를 토했다.
그만큼 강력했다.
그간 다양한 신체 개변으로 재능만큼이나 육체도 단단하게 개조해 온 나였지만.
SSS+랭크급 각성자가 작정하고 빈틈을 노린 일격에 멀쩡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면 진즉 전 세계를 씹어 먹고 다녔겠지.
이제 고작 회귀 2개월 차다.
아무리 지름길을 탔어도 지금의 수준까지 쭉 끌어올린 것을 오히려 대단하다고 칭찬해야 맞을 터.
“제법이네. 그래도 내 움직임을 쫓아가기는 했군. 대응을 못 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말이야?”
“카악, 퉤!”
피와 침이 뒤섞여 비릿한 맛이 나기에 시원하게 가래를 뱉었다.
이번 일격은 수업료인 셈 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다음에 또 일격을 당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
‘놈을 어떤 형태든 살려 두면 문제가 복잡해져. 처음부터 각오했지만, 더 목표가 명확해졌네.’
내가 죽지 않으려면.
반드시 VVIP는 죽여야 한다.
다만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
그 생각이 나로 하여금 평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정신을 맑게 각성시켰다.
회귀 이후 처음으로 돌입해 보는 극도의 집중 상태였다.
‘레체로, 오늘 네놈의 다섯 손가락 중 하나를 꼭 잘라내 주겠어. 기필코.’
결전의 순간이 밝았다.
A vs SSS.
누가 봐도 미친놈의 정신 나간 광기라고 할 수 있을,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