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07)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07화(206/300)
제 207화
“네? 미쉘 님이 갑자기 이탈해서 던전 입구 쪽으로 빠져나가셨다고요?”
“그런 어이없는 일이…….”
갈림길의 끝에서 조금 늦게 합류한 신화를 맞이한 마리나와 토시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화가 늦은 것은 둘째 치고, 함께 와야 할 미쉘이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후 사정을 사실대로 얘기하기에는 두 사람에게 소명해야 할 사실들이 너무 많았기에.
신화는 적당히 이유를 만들어서 둘러댔다.
어차피 사실 여부를 대답할 당사자는 불귀의 객이 되어 아공간에 들어가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던전의 끝자락이 얼마 남지 않았기도 하고, 자기는 임무를 다 수행했다며 떠나겠다고 하더군요.”
“진짜 어이가 없네요. 쯧.”
마리나가 혀를 찼다.
갑자기 미쉘이 떠났다는 사실이 의아하긴 했지만, 신화의 말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으면 진즉에 어떤 소리라도 들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쉘, 아니 ‘러셀’의 방음 관련 재능을 전혀 알지 못하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기도 했다.
게다가 프로필에 적혀 있던 미쉘의 경지를 생각하면, 신화에게 해코지를 당했을 가능성도 전혀 없었다.
제대로 된 연줄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신화의 말에 힘이 더 실리는 상황이었다.
“이번 공략이 끝나고 던전 밖으로 나가면 VVIP에게 항의해야겠어요. 기본이 안 된 여자네요.”
“그래 주시면 감사하고요.”
신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젠 VVIP에게 전화를 해도 영원히 연결될 일은 없을 것이다. 저승에 전화하지 않는 이상에는.
‘아마 어느 시점이 되면 VVIP의 공석이 현실화되겠지. 최종 결정권자가 사라졌으니까.’
신화는 곰곰이 생각했다.
VVIP의 자리가 부재가 되면 자연스럽게 그 직무를 승계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본부장이다.
지금까지 WSA는 다른 각성자 협회와 달리 본부장 위에 VVIP라는 존재가 군림해 왔다.
‘세계 각성자 협회’라는 이름을 건 만큼, 최상위 직급인 본부장 위에 자리를 하나 더 만든 것이다.
한데 VVIP가 자신의 손에 죽었으니, 자연스럽게 본부장이 뒤를 이을 가능성이 컸다.
‘조나스가 자연스럽게 승계한다면, WSA의 미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름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전생에서도 조나스는 현명하고 슬기롭게 판단하기로 유명했던 인물이었다.
WSA가 나인 로드와 사사건건 충돌하고 대립했을 때도 중간에서 중재하려 애쓰던 인물이었다.
심지어 VVIP의 눈 밖에 날 수 있다는 사실도 감수하고.
그리고 나인 로드를 찾아와서 개인적인 협력을 약속한 적도 있었다.
그 정도 인물이라면 앞으로 WSA가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적다고 봤다.
무엇보다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가 이미 죽어 없어졌기 때문에. 결론은 간단했다.
“자, 가죠. 어차피 던전 탐색은 이쯤이면 됐습니다. 아직 멀긴 하지만, 보스 방 결계도 보이고.”
신화가 손끝으로 가리킨 곳에는 과연 보스 방의 징표로 보이는 결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갈 길이 좀 남아 있기는 했지만, 신화의 말대로 전문 정탐꾼이 필요한 정도까진 아니었다.
“신화 씨, 제가 대신해서 사과드릴게요. 외부에서 조력자를 구한다는 게 오히려 민폐만 끼쳤네요.”
“괜찮습니다. 떠난 사람 얘기는 그만하죠. 미쉘 씨 문제는 알아서 WSA에서 잘 처리해 주시고요.”
“알겠어요. 다시 출발하죠!”
그렇게 공략이 다시 시작됐다.
* * *
나는 이동하는 내내 생각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이 던전을 설계한 설계자는 침입자를 괴롭히는 일에 극한으로 심취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고.
푸욱! 푸슉! 퍼서석!
액체화 재능을 정말 원 없이 썼다.
“하, 정말.”
그 탓에 마력 소모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입고 있던 옷도 한순간에 넝마가 됐다.
“액체화 재능은 정말 볼 때마다 신기하네요. 사람이 이렇게 흐물거릴 수 있다는 게…….”
“저도 오빠와 생각이 똑같아요. 이런 희귀 재능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재능일 거예요.”
내가 액체화 재능을 선보일 때마다 마리나와 토시오는 옆에서 어린아이처럼 신기해했다.
확실히 특이한 재능이긴 하다.
다만 신체의 형태가 많이 무너질수록 복구 과정에 마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어쨌든 보스 방 결계까지 이동하는 구간의 8할 이상을 액체화 능력 하나로 커버했다.
내가 이 던전에 오지 않았다면.
초반부의 집중 포화 구간을 운 좋게 넘겼다고 해도, 여기에서 전부 무너졌을 것이다.
그렇게 장담할 수 있을 정도로 초반 구간보다 더 극악한 난이도의 구간을 만들어 뒀다.
“진정한 의미의 버스네요.”
“그러게요. 처음에 진입할 때도 그랬는데, 이번 포화 구간에서도 참…… 무기력하네요.”
마리나와 토시오가 미안한 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남매가 매번 의견이 같은 것이 생각하는 심성이나 품행이 비슷해서 그런 듯했다.
이 두 사람도 꽤 괜찮은 파트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런 생각에 문제가 없는 것이 전생에 마리나는 나인 로드의 동료로서 함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토시오는 대외적으로도 잘 알려진, 예의 바르고 상대를 존중하기로 유명한 각성자였다.
‘아서라, 됐다. 좋은 파트너 이런 게 뭐가 중요해. 어차피 은퇴하면 다 끝인데.’
살짝 감상에 젖듯, 다른 방향으로 향하던 생각을 접었다.
나인 로드의 향수가 확실히 남아 있긴 남아 있는 걸까.
유능한 인재를 보면 곁에 동료로 두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야, 강신화. 너도 회귀하면 내가 왜 이렇게 인재에 목말라하고 질척거리는지 알게 될 거다.’
갑자기 니콜라스의 말이 떠올랐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를 못 했는데…….
조금씩 녀석이 했을 법한 생각이나 고민이 이해가 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니콜라스 녀석이 고생했던 삶까지 이해하면서 닮고 싶진 않지만 말이다.
푸슝! 파칭!
“후우, 이젠 수월하네.”
그 와중에도 나는 또다시 날아든 마력탄을 버텨 내며.
후아아앙! 퍼서석!
가까이서 열심히 나에게 공격을 퍼붓던 마력탄 방출 장치를 완벽하게 박살 냈다.
확실히 S-랭크로 도약한 몸 상태가 실감이 난다.
랭크의 알파벳이 F에서 E가 되는 것과 A에서 S가 되는 것은 천지 차이다.
확실한 수치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A랭크에서 S랭크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마력 총량이 최소 2배 증가한다.
애초에 A랭크 자체가 어마어마한 마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대폭 증가하는 셈이다.
그러니 A랭크로 던전 입구에서 버텼던 나와 S-랭크로 버티는 지금의 내가 다를 수밖에.
‘게다가 노림수를 쓰긴 했지만, 어찌 됐건 SSS랭크급 각성자인 VVIP도 잡았잖아?’
이제는 충분히 내 실력에 확신을 가져도 될 듯하다.
상대가 완전체라고 불리는 EX랭크만 아니면, 어떻게든 ‘비벼 볼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선다.
해 볼 만하다는 뜻이다.
오버 파워는 항상 해 왔다.
매번 한 단계는 기본 옵션이고, 두 단계를 넘보는 힘까지 극단적으로 냈던 나였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만큼.
지금의 랭크면 일라이저나 아일라 같은 사도들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게 내 계산이다.
“다 끝나 가네요.”
나는 몇 개 남지 않은 듯한 방출 장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확실히 화력도 약해졌고, 탄착점도 맞지 않아서 애먼 곳으로 마력탄이 날아가고 있었다.
“다들 준비합시다. 시크릿 던전의 알려지지 않은 보스 몬스터를 만날 시간이 됐네요.”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보스 방의 결계 내부로 최종 입장하기 전까지 우리 셋은 두둑하게 전리품을 얻었다.
가장 큰 소득은 중간에 잡아 낸 몬스터들로부터 극상급 차원석을 12개나 얻었다는 것이었다.
분배는 공평하게 이루어졌다.
다만 극상급 차원석을 보고 나서의 반응은 나와 마리나 남매가 극명하게 갈렸다.
나야 대수로울 것 없는 전리품이지만, 두 사람에게는 처음 보는 차원석의 등장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회귀의 변곡점이 다른 형태로 또 한 번 찍혔다.
전생보다 훨씬 더 이른 시점에 내가 아닌 다른 각성자에게 극상급 차원석이 발견됐으니까.
앞으로 이에 대한 연구도 더욱 빨라질 것이다.
내가 예전에 더미 던전에서 극상급 차원석을 얻은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신화 씨! 오늘 얻은 극상급 차원석에 대해서는 모두 비밀을 유지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세상에 존재가 알려지기 전까지 개인적으로 연구를 좀 해 보면 어떨까 싶은데요?”
“각자 편한 대로 하죠. 아마 앞으로도 극상급 차원석이 여기저기서 발견되지 않을까요?”
적당히 화제를 돌렸다.
극상급 차원석으로 스페셜 슈트까지 제작하고 있는 터라, 그들의 요청대로 비밀을 오래 유지할 순 없기 때문이다.
토시오가 말했다.
“하……. 정말 시크릿 던전이라고 이름 붙여진 대로 많은 비밀을 갖고 있는 던전이네요.”
내 말이.
둘은 모르지만 나만이 알고 있는 니콜라스와의 연결점도 여기에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이제 숨겨진 판도라의 상자를 열 때가 다가왔다.
* * *
얼마 후.
결계를 넘어서 보스 방에 진입한 신화는 두 눈으로 마주하게 된 보스 몬스터를 보고 크게 놀랐다.
‘진짜 뭔가 있구나?’
시크릿 던전.
익숙한 얼굴이 있을 이유가 전혀 없는 던전에 낯익은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스난드 5세.
나스 대륙에 있던 지하 던전에서 본 적이 있는 망자(亡者)의 왕이었다.
레체로를 죽인 뒤, 나스 대륙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해서 공략했던 던전의 주인이었다.
나스 대륙에서 했던 경험은 특별했던 경험이라 하나도 잊지 않고 다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때 마주한 적이 있는 보스 몬스터가 여기에 나타난 것이다.
[카스난드 5세 : SSS+]‘업그레이드 버전인가 보네.’
신화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당시에 만났던 카스난드 5세는 S랭크 수준으로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크릿 던전에서 다시금 만나게 된 그의 수준은 예전과 달랐다.
“…….”
기억을 꼼꼼하게 되짚어 보았다.
SSS+랭크로 상향 조정된 상태라면 공격 한 번, 패턴 플레이 한 번이 매우 위력적일 것이다.
특히 카스난드 5세는 무기로 ‘장창’을 즐겨 쓰는 타입이라 상대하기 까다로운 부분도 많았다.
“일단 모두 도핑부터 꼼꼼하게 하죠. 탐색전은 제가 전담할 테니, 연계 지원만 부탁합니다.”
신화가 앞장섰다.
그리고 카스난드 5세가 그릴 수 있을 법한 공격의 경로와 패턴을 부지런히 떠올렸다.
전투가 시작되면, 다시 전략을 가다듬을 시간적 여유는 없기 때문이다.
‘무조건 이겨야 해! 그래야 아가우트의 의지로 연결점도 찾을 수 있으니까.’
의지가 불타올랐다.
동기부여는 확실했다.
니콜라스가 시크릿 던전에 숨겨 놓은 비밀을 빨리 풀어야!
자신의 은퇴에 대한 견적도 확실히 뽑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 어떤 이유로도.
카스난드 5세는 반드시 ‘죽여야 할 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