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1)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1화(20/300)
제 21화
진보미였다.
아침에 했던 통화에서 이따 보자고 했던 말이 진짜 던전 앞에서 보자는 얘기였단 말인가?
심지어 던전 앞에는 진보미뿐만이 아니라, 그녀가 데리고 온 길드 소속의 짐꾼도 여럿 있었다.
“제 담당 각성자님의 첫 던전 공략이잖아요? 축하도 할 겸, 서포트도 하려고 나왔죠!”
“분명 솔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요?”
“알아요. 그저 생명의 은인에게 보답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라고 이해해 주세요. 수행원이든 무엇이든 좋으니까 부려만 주세요!”
기분이 되게 낯설다.
대기업의 회장과 그 회장의 딸이 내게 이렇듯 깍듯하게 굴고, 공손하게 대우하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아마도 전생에 이 나이였을 때의 내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랩이 된 탓일 것이다.
그때의 내게 진보미나 진성태는 그들이 사는 세상이 따로 존재하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괜찮아요. 어떻게 공략할지 이미 계획은 다 세워 놨으니까. 안전이라면 걱정할 필요 없어요.”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내부에서 얻을 전리품이야 아공간 아티팩트를 얻으면 해결될 문제다.
출구 차원문이 아니라, 왔던 길을 되돌아오면서 전리품들을 챙기면 되기 때문이다.
내게 무리한 던전 공략이면 그녀의 호의를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겠지만.
C랭크 던전은 자신 있었다.
마고스를 사냥할 때의 신체 상태보다 지금이 그때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훨씬 좋다.
그사이 개변도 했고, 고가의 장비 구입까지 착실하게 모두 마친 상태니까.
“정말 필요 없으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D랭크 각성자가 C랭크 던전을 솔플 한다는 게…….”
진보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유별난 것이 아니다.
상식적인 데이터에 입각해서 생각하는, 너무도 당연한 걱정이었다.
‘별난 건 나지. 나도 놀랍긴 해. 회귀 3일 차에 C랭크 던전을 혼자 돌 생각을 하게 될 줄은.’
예전의 내가 C랭크 던전을 홀로 돌기까지 걸렸던 시간은 니콜라스를 만나고 5년 후.
그러니까 2030년이다.
단순 계산으로도 10년을 훌쩍 앞서 나가고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누군가에게 실컷 자랑하고 싶었다.
나, 회귀했다고.
그래서 너희들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초고속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이다!
“걱정해 주시는 마음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배려해 주신 마음은 잊지 않겠습니다.”
나는 정중히 거절의 의사를 표현했다.
“혹시 제가 부담스러우신가요?”
“아뇨, 그런 것 아닙니다. 같은 길드의 동료를 무슨 이유로 부담스러워하겠어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용병 계약을 맺었기는 해도 어쨌든 나는 양화 길드 소속의 구성원이다. 그녀와 동료라는 얘기다.
“에잇! 신화 씨를 핑계 삼아서 아버지 몰래 던전 구경이라도 좀 할까 했는데, 안 되겠네요.”
“회장님에게 혼쭐나기 전에 빨리 복귀하시죠. 여긴 걱정하지 마시고요.”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짐꾼들에게도 목례로 인사를 건넸다.
드러내 말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듯했다.
‘이렇게 예쁘신 분, 그것도 회장님의 따님의 호의를 단칼에 거절한다고?’
‘없는 이유라도 만들어서 같이 가고 싶어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딱 이런 눈빛이었다.
물론 진보미는 어지간한 아이돌이나 여신이라 불리는 배우에 필적할 만한 인형 같은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끌리는 사람인 것도 확실히 맞았다. 그녀의 눈빛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니까.
하지만 그뿐이었다.
뭐랄까.
육체는 스물네 살의 것이지만, 정신은 전생의 중년의 상태 그대로인 느낌이랄까.
그러니 연애나 그 이상의 것에 대한 욕심이 쉬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대기하고 있을게요.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 요소가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기다리시는 것까지 말리진 않겠습니다.”
“얼마나 걸리실 것 같아요?”
“2시간쯤?”
“네에?”
진보미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려던 그때.
“다녀오죠!”
쑤우욱.
나는 이미 던전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함께하고 싶어 하는 그녀와의 얘기가 더 길어지기 전에 내린 과감한 결정이었다.
* * *
“아가씨의 호의를 거절한 남자는 길드에 들어온 이후로 처음 보는 듯하네요.”
“정말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일 것 같은데.”
신화가 던전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짐꾼들이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들은 짐꾼이지만, 양화 길드에서 한솥밥을 먹은 지 최소 5년이 넘어가는 베테랑들이었다.
진보미를 보조하는 짐꾼들로 던전에서 잔뼈가 굵어, 척하면 착 호흡이 딱딱 맞는 전문가이기도 했다.
진보미가 짐꾼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무리 자신감과 용기가 넘친다고 해도 죽으러 던전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겠죠.”
“뭘까요?”
“길드에도 숨기고 있는 신화 씨만의 특별한 재능이 더 있는 게 틀림없어요. 분명히 그럴 거예요. 지금 랭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특별한 무언가가…….”
“아가씨의 말씀은 우리 길드에도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네. 진짜 실력은 따로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도 치료하지 못한 저를 단숨에 치료한 것도 어쨌든 신화 씨였고.”
진보미의 아련한 두 눈이 사라진 신화의 빈자리, 흔적을 훑었다.
“공략에 2시간이 걸린다는 말도 사실일까요?”
“일단 모두 기다려 보죠. 궁금해요. 만약 신화 씨의 말대로 2시간 만에 공략을 끝낸다면.”
“끝낸다면?”
짐꾼의 질문에 진보미가 전보다 훨씬 무거워진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
“마스터는 물론, 회장님께도 큰 충격이 되겠죠. 물론 제게도요. C랭크의 던전을, 그것도 단기간에 공략할 수 있는 각성자는 흔치 않으니까요.”
삑. 삑삑.
진보미가 레트로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전자시계의 스톱워치 버튼을 눌렀다.
흥미롭고 즐거울.
카운트다운의 시작이었다.
* * *
시잉!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가장 먼저 몸에 일으킨 변화는 오른팔을 길쭉한 칼날로 바꾸는 것이었다.
마력을 머금은 오른팔은 기존의 모습이 아닌 장인이 만든 명검을 보듯,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상태 유지에 들어가게 되는 마력이 1분에 약 1%. 하지만 마력의 폐가 회복하는 양으로 충분히 커버가 되니 사실상 영구적 유지가 가능해.’
계산은 확실하게 섰다.
각성자들이 자신의 재능을 한껏 펼치려 할 때 항상 발목을 잡는 것은 늘 마력이다.
기계가 동력 없이 돌아갈 수 없듯이, 각성자의 재능도 마력이라는 동력이 늘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재능 발휘에는 늘 다량의 마력이 소모되고, 회복량은 현저히 낮다는 점이었다.
이것이 각성자 산업의 한 축을 이루는 포션 사업이 융성하게 된 배경이었다.
사악. 사악.
입구 근처에 보이는 바위 하나를 손끝, 그러니까 검날의 끝으로 살살 그어 보았다.
그러자 그은 위치에 실금이 생겨나며, 이내 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이 정도 절삭력이면 일반 C랭크 몬스터들은 충분히 상대하겠군.’
쿠웅!
무거운 야영 장비는 입구에 내려 뒀다.
수련을 위해 차고 있던 모래주머니를 벗어 던지는 느낌? 몸이 가벼워져 기분이 좋았다.
‘그러고 보니 짧게 공략할 거면서 야영 장비를 챙겨오는 사치를 부렸군. 너무 내가 들떠 있었나. 뭐, 인간적인 실수, 괜찮아. 괜찮아!’
나는 바로 전방을 응시했다.
“그오오오.”
“캬오오오.”
이윽고 침입자의 존재를 감지한 몬스터들이 저 멀리서,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유쾌한 녀석들은 아니네.”
정면에서 나를 반기는 녀석들의 정식 명칭은 ‘이족 보행 거미.’
걷고 뛰는 모습이 사람과 유사하다고 해서 ‘사람 거미’라고도 부른다.
생김새는 거미가 맞는데, 맨 뒤에 위치한 두 다리로 이족 보행을 하는 녀석들이다.
나머지 여섯 다리는 장미 가시처럼 날카로운 가시가 박혀 있어, 매우 위협적인 흉기가 되었다.
사람 거미의 신장은 2m 정도.
그래서 189cm인 나보다 좀 더 고점에서 나를 노릴 수 있었다. 공략에 유의해야 할 점이다.
‘다리만 없으면 뭐 푸짐한 영양식일 뿐이지.’
생김새는 거미의 모습이라 징그럽긴 해도, 녀석의 고기는 소고기 저리 가라고 할 정도의 풍미다.
전투 식량이나 3분 요리 등을 던전 안에서 데워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다.
나중에 장기간의 공략이 필요하게 되면, 직접 몬스터 요리도 해 먹을 생각이다.
몬스터 요리 중에는 장기간 꾸준히 먹어 주면, 신체에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 상승 공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파아앗!
나는 지면을 박차고 달리며, 내게 쇄도하기 시작하는 사람 거미의 동선을 빠르게 훑었다.
총 일곱.
위협이 될 수 있는 마흔두 개의 다리가 마치 동시에 조준을 하듯이 내 눈에 알알이 새겨진다.
개변으로 강화된 두 눈은 움직임이 자연스럽지 못하거나, 잔부상이 있는 듯한 사람 거미의 다리를 확실하게 찾아냈다.
나와 녀석들 사이에 꽤 거리가 있지만, 향상된 시력이 물리적 거리감의 문제를 말끔히 해결했다.
“쿠와아아!”
수적 우세에 한껏 고무된 사람 거미들은 저마다 현란하게 다리를 휘저으며 나를 위협했다.
‘볏짚으로 만든 인형이 아무리 발악한다고 해도, 낫 앞에서는 결국 베이는 신세일 뿐이야.’
나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미소를 머금은 채, 그대로 선두에 있는 사람 거미에게 달려들었다.
“와악!”
정체불명의 고함과 함께 사람 거미가 가시가 잔뜩 박힌 여섯 다리를 동시에 내게 뻗었다.
제법 위협적이기는 했다.
물론 우악스러운 녀석의 외관도 그런 위협에 한 몫을 톡톡히 했지만 말이다.
“어림없지.”
쇄애애액!
“꾸어……?”
상황은 순식간에 종결됐다.
나는 정확히 여섯 개의 다리를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경로로 오른손을 쭉 그었다.
그러자.
투둑. 툭. 투둑.
날카로운 검날에 베인 사람 거미의 다리가 힘없이 주인을 잃고, 속절없이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마치 가을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처럼 힘이 하나도 없는 손실이었다.
푸욱!
“꿰엑!”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사라진 자신의 다리를 살피고 있는 사람 거미의 심장부를 그대로 찔렀다.
두꺼운 외피가 가슴 안팎을 감싸고 있었으나, 개변된 팔로 만든 검날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현재 검날의 파괴력은 약 B+랭크 정도.’
자연스럽게 힘의 측정도 이뤄진다. 테스트를 해 볼 겸해서 찔러 본 건데, 적의 목숨까지 빼앗아 버렸다.
이러면 전투가 한결 수월해진다.
흉부의 외피를 단숨에 뚫을 수만 있다면, 굳이 다리까지 자를 필요도 없으니까.
“어서 와라! 이런 각성자는 처음이지?”
사람 거미가 말을 알아들을 줄 알았더라면, 반드시 고개를 끄덕였을 질문을 던지며.
쇄애애액! 사아악! 솨아악!
나는 쇄도하는 사람 거미의 다리를 경쾌하게 베어 내고, 비틀거리는 녀석들의 가슴에 힘껏 죽음의 낙인을 찍었다.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잃을 각오까지 하면서 이를 악물고 싸워야 쓰러뜨릴 녀석들이.
내 앞에서는 그저 개변 능력을 테스트하는 스카우터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압도와 압살의 쾌감.
그것이 내게 주는 의미는 명확했다.
“힘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각성자의 세계에서 힘은 만능이자 돈벌이의 원천이며, 명예의 근원이라는 것을.
입구에서부터 일이 쉽게 풀릴 듯한 느낌이 들자, 덩달아 내 움직임도 가벼워졌다.
“어디 한번 놀아 볼까!”
쇼타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