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16)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16화(215/300)
제 216화
다음 날 새벽.
-크어어어…….
-커허어어…….
꽤 비싼 돈을 들여 만들어 준 캣 룸(Cat Room)에서 곤한 잠에 빠진 샤미와 클로이를 보았다.
클로이는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우리 집에서 격일로 머무는 상황이었다.
녀석이 워낙 깔끔한 데다 샤미랑 사이가 너무 좋아서 반쯤 집사가 된 느낌도 없잖아 있었다.
하얀 배까지 드러내 놓고 잠이 든 두 녀석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고 또 웃었다.
‘신성의 꽃으로 만든 목걸이만으로는 저주가 완벽하게 풀리지는 않는 건가.’
아쉬웠다.
신성의 꽃으로 만든 목걸이로 샤미에게 걸린 레체로의 ‘큰 저주’를 푸는 데는 성공했다.
즉, 나중에 샤미가 폭주하거나 저주의 씨앗이 되어 사람들을 미치광이로 만들 일은 없다는 뜻.
하지만 작은 저주 – 샤미에게는 이게 더 큰 저주이겠지만 – 로 분류되는 ‘고양이화’는 그대로였다.
이 저주가 풀려야 샤미의 원래 모습인 공주님으로 돌아올 수 있을 텐데.
아직 약간의 변화나 샤미 스스로가 느끼는 조짐 같은 것이 전혀 없는 상태다.
삭삭. 슥슥.
나는 잠든 샤미와 클로이의 양미간을 번갈아 가며 손톱 끝으로 긁어 주었다.
-신화……. 으음냐.
“샤미, 클로이, 정말 고맙다. 덕분에 알게 된 던전에서 많은 이득을 보고 있어.”
-음냐……. 난 신화가 좋으면 나도 좋아……. 항상 고마워. 날 거둬 줘서……. 크허.
“잠꼬대냐, 말을 하는 거냐?”
-크허어엉…….
말하는 것으로 봐선 잠꼬대 같은데, 샤미의 말도 오늘따라 꽤 뭉클하게 들렸다.
어쨌든 곤히 잠든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니콜라스와의 만남도 여운이 참 많이 남았고, 녀석도 나와 함께했던 시간을 너무 고마워했다.
내일부터는 강원도 전역을 휘젓고 다니는 3박 4일의 여행 일정이라고 하니 참 재밌을 듯했다.
5분 후.
나는 도심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테라스에서 캔맥주 한잔을 들이켜며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바빠지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진지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이제부터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때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크으……. 일단 한 가지는 확실히 하자. 2052년에 예정된 대재앙은 지금 고민하지 않기로.”
나중의 일은 충분히 시간이 흐른 뒤에 고민하고 싶다.
니콜라스가 회귀하지 않더라도 내 생각엔 한 2032년부터 준비하면 될 것 같았다. 그래도 무려 20년 뒤였다.
어쨌든 회귀 직후, 늘 대재앙에 대한 고민에 사로잡혀 지냈던 니콜라스의 전철은 안 밟을 생각이다.
“올해의 사건 개입은 딱 두 건 말고는 없어. ‘유럽-미국 각성자 협회’ 분쟁 건과 러시아 대격변.”
이 두 사건 이외에는 다수의 유능한 각성자가 죽거나 큰 부상을 입는 일은 없었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는 크고 작은 이슈들이 있긴 하지만, 훗날 중요한 사람들이 죽거나 하진 않는다.
사람의 목숨에 귀천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세계’라는 큰 틀로 봤을 때는 크게 영향을 미칠 만한 죽음은 아니다.
굳이 내가 오지랖 넓게 개입해서 살리고 죽이고를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특히 중남미나 아프리카 쪽 각성자가 연관된 이슈의 경우에는 선악의 구분조차도 모호하다.
누군가를 살리는 것이 훗날 악인(惡人)의 뿌리를 남기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내게 중요한 사건은 이 두 가지밖에 없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나스 대륙이 연결되는 2025년까지는 큰 사고 없는 무난한 나날이 계속된다.
“그러면 남는 건 사도 넷과 레체로네. 가장 명확한 목표지만 그래서 더욱 껄끄러운 상대이기도 하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사도 장동식은 아군이라고 보기에는 뭣하지만, 그렇다고 적군이라고 볼 수도 없으니 제외.
나머지 사도인 일라이저와 아일라, 리베인은 어떤 형태로든 껄끄러운 적수일 수밖에 없었다.
리베인은 세계 범죄 조직 ‘리벤저스’의 수장이기에 놈을 건드린다는 것은 곧 리벤저스 전체와 붙겠다는 선전포고가 될 수밖에 없었고.
일라이저 역시 마찬가지다.
일라이저와 공식적으로 대립한다면, 일라이저 그룹의 공격의 화살이 일제히 내게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사도들을 전부 처리한다고 가정해도, 최종 보스인 레체로를 상대해야 한다.
[우리가 죽인 레체로는 진짜 레체로가 아니었다. 진짜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심지어 전생에 죽였던 레체로가 우리가 아는 레체로가 아니었다는 니콜라스의 메시지를 떠올려 보면.
진짜를 찾는 여정이 새로운 임무로 추가될 수 있었다.
“레체로, 진짜 이 망할 X의 XX. 전생에 면상을 직접 봤을 때부터 구역질이 나는 얼굴이긴 했는데.”
후웅!
분노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이성을 붙잡지 못했더라면 발코니 벽이 통째로 날아갔을 것이다.
어쨌든 정리를 하자면.
두 개의 사건에 개입하고.
사도와 레체로를 죽이고.
이렇게 해야만 니콜라스가 내게 부탁한, 또 내가 마음 푹 놓고 은퇴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을 듯 보이는 계획이다.
물론 니콜라스가 대책 없이 내게 단서를 남겼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지름길이 있을 것이다.
오히려 내 쪽에서 레체로의 허를 찌를 신의 한 수를 반드시 만들리라고 믿는다!
“올해 다 끝났으면 좋겠네.”
진보미에게 연말 완공에 대해 얘기까지 들은 터라 마음이 벌써 설렌다.
새벽에 찾아온 싸늘한 꽃샘추위에 옷깃을 여미고 들어온 나는 습관적으로 TV를 켰다.
그리고 늘 그랬듯, 각성자 뉴스에 채널을 고정시켰다.
한데 바로 그때.
“속보입니다! 30분 전, 미국 각성자 협회와 유럽 각성자 협회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는 사실을 단신으로 전해 드렸었습니다!”
“뭐, 벌써? 아직 아니잖아? 4월 20일은 되어야 할 텐데?”
나는 화들짝 놀랐다.
예정일까지는 열흘 이상이 남은 시점에서 사건이 앞당겨져서 벌어졌다니?
대사건이다.
양쪽의 유능한 각성자 수백 명이 죽어 나간 탓에 향후 국제 문제로도 비화했던 대사건이다.
그런데 손도 못 쓰고 상황이 벌어졌다면 나로선 눈 뜨고 코 베인 셈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속보를 전해 드린 것은 양측이 즉각 무력 대결을 자제하고, 핫라인을 통해 비상 연락을 시도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방금 전!
유럽 각성자 협회와 미국 각성자 협회 측의 대변인은 양측이 모두 ‘통 큰’ 양보를 했음을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뭐라고? 양보를 했어? 그럼 안 싸운다는 얘기야?”
순간 머리가 띵 하는 느낌이 들었다.
예상이 깨졌기 때문이다.
당황스럽냐고? 그렇다.
망한 것 같으냐고?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일이 너무 잘 풀린 최상의 시나리오가 내 앞에 도착한 것이다.
“내가 아직 개입을 하지도 않았는데, 미국-유럽 각성자 협회의 전면전 사건이 없던 일이 됐어!”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할 일이 사라져 그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유의미한 회귀의 변곡점이 생긴 것 같아서다.
숨을 죽이고, 좀 더 보도의 내용을 주의깊게 들었다. 혹시 다른 얘기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양측은 긴급으로 이뤄진 합의에 따라 연합 탐사대의 인원 배분만큼 새로이 발견한 던전을 나누기로 했습니다.
판단이 애매한 세 개의 EX랭크급 던전에 대해서는 연합 공략을 진행한 후, 전리품을 비율 분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양측 대변인은 더 큰 문제로 번지기 전에 대화로 해결한 케네스, 사일러스 본부장의 큰 결단이 매우 주효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던 두 협회의 충돌은 원만하게 해결되었습니다.”
“……손 안 대고 코 풀었네.”
진짜로 그렇게 됐다.
원래는 ‘연합 탐사대’가 발견한 수십 개 던전의 소유권을 한쪽에서 전부 다 갖겠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협력해서 발견한 던전을 독식하겠다고 하니 그 주장이 통할 리 만무했다.
그래서 전생에는.
‘이렇게 된 거 아니꼬운 놈들 그냥 다 죽이고 던전을 독식하자!’
라는 누군가의 말에 휩쓸린 현장에서 전면전이 일어났다. 우발적인 대형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이다.
“설마……. 내가 VVIP를 죽인 게 이런 흐름으로 흘러가게 만든 걸까?”
그럴듯한 추측을 했다.
VVIP라면 미국 각성자 협회나 유럽 각성자 협회 쪽에 인맥이 많았을 것이고.
중간에서 이간질을 획책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을 테니 말이다.
“진짜 기분 좋다!”
굳이 긴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내 골머리를 앓게 만든 2020년의 대사건 네 개 중 세 번째 사건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일전에 해결한 대광충 테러 계획도 혹시나 싶어, 어제 이하성을 통해 확인하니 아무 이상 없다고 했다.
화광 산업이 제작 공정 전체의 보안 등급을 크게 높여 진극명의 입김이 닿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졌다.
“그러면 이제 6월에 있을 러시아 대격변만 막으면! 각성자 시스템 내에서 내가 할 일은 끝나.”
개꿀.
지금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다.
사실 두 협회 사이의 전면전에 대한 건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가장 고민스러웠던 부분이었다.
이유 없이 그들을 따라다닐 수도 없고, 싸우기 전에 싸우지 말라고 말하는 것도 우습기 때문이다.
서로 으르렁거리기는 했어도 싸울 조짐이 없던 두 단체가 갑자기 우발적으로 싸웠던 사건이기에.
내가 특정한 포인트를 잡고 개입하기에는 난감했다.
그래서 접근할 방법을 골몰하던 차에 이렇듯 일이 자연스럽게 해결된 것이다. 마치 성탄절 선물처럼 말이다.
“엄청난 이득이네.”
내게는 이번에 해피콜라스를 얻은 기연보다 훨씬 더 큰 이익처럼 느껴졌다.
미래에 유능한 유망주로 성장할 수 있는 인재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수월하게 해결됐기 때문이다.
혹시 모르니 뉴스를 계속 주시해야겠지만, 양측 공식 입장이 발표된 만큼 별문제는 없을 듯했다.
향후 충돌이 있더라도 산발적인 소규모 충돌에 그칠 것이다. 이미 공론화가 된 문제이기도 하고.
“그럼 더 미룰 필요가 없겠네. 바로 미국으로 달려야겠는데?”
초월의 꽃을 바로 떠올렸다.
일라이저 그룹이 관리하고 있는 U-1224 던전에 내가 꼭 구하고 싶은 초월의 꽃이 있다.
뇌 개변의 마지막 남은 퍼즐이기도 하고, 현재는 오직 나만이 공략할 수 있는 던전이기도 하다.
U-1224 던전도 일본의 시크릿 던전처럼 집중포화 구간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많은 수의 각성자들을 탐색 과정에서 잃은 탓에 일라이저가 공략 중지를 명령한 던전이다.
언제까지 사도들 앞에서 추종자 노릇을 할 수도 없고, 그들과 갈라설 날도 머지않았다.
앞으로 일라이저와 아일라가 자신들의 악행에 참여할 것을 권할 텐데, 난 그럴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하지만 쉽게 손을 놓아 줄 리는 없으니, 끊는 방법은 한쪽이 죽는 것뿐.
“이번에 일라이저에게서 초월의 꽃을 포함, 내가 성장할 모든 수를 확보하고 돌아온다.”
마지막 동행.
웃는 얼굴로는 마지막이 될.
일라이저와의 확실한 작별을 준비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