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34)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34화(233/300)
제 234화
얼마 후.
“후우.”
내용을 다 읽고 난 내가 가장 먼저 보인 반응은 한숨이었다.
뭐랄까,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내심 현실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을 직접 눈으로 본 느낌이었다.
즉, 판도라의 상자를 연 느낌.
<사도 리카넬라에게는 진짜 레체로를 확인할 수 있는 ‘흑암의 목걸이’가 있어.
레체로를 죽이기 전에 사도를 먼저 죽여야 해. 레체로가 먼저 죽으면 ‘대전이’가 가능해져.
대전이는 레체로가 사도들의 몸에 몰래 심어 놓은 징표지.
유사시에 차원을 넘어 빙의하는 금지된 술법을 사용할 수 있어.
다만 대전이로 빙의한 이후에는 원래대로 되돌릴 수가 없어.
장동식을 꼭 지켜. 사도 ‘카스론’은 암흑 기에 관해 모든 이론을 통달한 유능한 흑마법사야. 반드시 살려야 해!
장동식에게 걸려 있는 대전이의 낙인을 해제할 방법은 지금 한창 연구 중이야.>
‘씨X 새X, 대전이는 또 뭐 하는 건데……. 레체로 놈, 도대체 몇 개의 장치를 마련해 둔 거지?’
까득, 이가 갈렸다.
그러니까 전생의 레체로가 안배해 둔 속임수는 하나가 아니었다.
일단 나스 대륙에 자신과 똑같은 가짜를 만들어 우리로 하여금 죽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니콜라스의 말은 그놈의 안배가 그것 하나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는 소리다.
대전이.
나스 대륙에서 지구에 있는 사도들에게 빙의할 수 있는 장치를 하나 더 만든 것이다.
아마 사도들은 모를 것이다.
레체로의 치밀하고 잔혹한 성격으로 미루어 볼 때, 사도 역시 그에게는 장기판의 졸(卒)일 뿐이니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레체로를 죽이기 전에 사전 작업으로 사도들을 죽여야 한다.
그리고 장동식은 살려 둔 다음.
니콜라스가 대전이의 낙인을 해제할 방법을 찾을 때까지 기다린다.
‘XX, 진짜 X 같네.’
욕을 즐겨 하는 편은 아니지만, 상황이 워낙 거지 같다 보니 절로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일단…… 일단, 사도 세 놈.’
첫 번째 목표는 확실해졌다.
아일라, 일라이저, 리베인.
세 놈을 끝장내야 한다.
그리고 특히 일라이저에게서 흑암의 목걸이를 빼앗아야 한다.
사도 리카넬라는 일라이저의 또 다른 이름이니까.
녀석의 목걸이가 있다면, 설령 레체로가 가짜를 내세운다고 하더라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사도라는 이유만으로도 죽일 이유는 충분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판을 짜냐는 거겠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것은 지구로 돌아가서 생각할 문제였다.
고민에 빠진 나를 지켜보고 있는 오블란에게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오블란 님.”
“음?”
“혹시 이 지도에서 레체로의 암흑 제단이 있는 곳을 특정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암흑 제단에 모여드는 암흑 기는 레체로의 힘과 근원이 되며, 또한 악행의 근거가 된다.
아울러 암흑 제단을 파괴하면서 과감하게 움직여야 레체로를 이끌어낼 수 있다.
전생에도 그랬기 때문이다.
놈에게 암흑 제단은 녀석이 섬기는 ‘초월적인 존재’에 닿게 만드는 핵심 수단이었기에.
이것이 파괴될수록 자신의 힘과 영향력이 약해지기 때문에 결코 좌시하지 않을 터다.
“가까운 곳은 이곳이지. 생각보다 가깝게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다녀올 수도 있는 곳이야.”
“암흑 제단을 좀 봐 두고 싶습니다. 레체로가 아끼는 제단들이 아닙니까?”
“그만큼 경계도 삼엄하지. 쉽게 접근할 수 없을 텐데?”
“아마 저를 볼 순 없을 겁니다.”
나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인비저블 링을 이용해서 몸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나스 대륙의 마법 중 유사한 기능을 하는 마법인 ‘인비저빌리티’와는 또 다르다.
인비저빌리티는 마나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기척을 간파 당한다.
보이지는 않지만, 마법 자체가 마나를 사용하기에 마나의 미세한 소모가 들통나는 것이다.
“……투명화 마법이 아닌 건가?”
“구현되는 형태는 같지만, 과정은 전혀 다르죠.”
나스 대륙의 마나와 지구의 마력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동시에 존재한다.
서로 호환하여 사용할 수 있지만, 기척을 감지할 때는 개념이 달라진다.
“여기인가?”
후웅!
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뻗은 오블란의 팔이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소드 마스터로 이미 기감 인지에 통달한 오블란이지만, 내 위치를 전혀 잡아내지 못했다.
“여기서 좀 더 기교를 부린다면 이런 것도 가능하지요. 잠시 양해를.”
내가 마카디의 어깨에 살짝 손을 얹자, 이내 그녀의 모습도 나와 함께 투명해졌다.
“마카디!”
“할아버지! 여기에요!”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전혀 모르겠구나. 정말 대단하군! 이것이 자네가 사는 세계의 힘인가?”
“아주 사소한 차이일 뿐입니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예상치도 못한 일이 되겠지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가진 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나스 대륙과 지구과 연결된 이후는 당연히 인비저블 링의 투명화에 대한 파훼법이 나온다.
하지만 지금은 연결점이 없으니 파훼법이 나올 일도 없는 것이다.
회귀자의 이점이란!
상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허점을 찌를 수 있다는 데 있다.
“엄청난 능력이군.”
“이 투명화 능력이 있으면 손쉽게 제단 주변을 탐색할 수 있을 겁니다.”
“제단 중심부는 접근을 해도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어. 뭔가 봤어도 그걸 전해 주지는 못했지.”
“고요한 연못에 돌멩이 하나를 던질 때가 됐습니다. 저를 안내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남은 시간을 알뜰하고 착실하게 활용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이번 방문에서 레체로를 죽인다거나 하는 극적인 일을 이뤄 낼 수는 없었다.
그 대신에 다음을 대비해 안배할 수는 있다.
각 암흑 제단의 특징과 약점을 파악하고 나면 핵심을 붕괴시키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괜히 많은 수의 호위 인원을 배치하여 제단 주변을 물 샐 틈 없이 지키는 것이 아닐 테니까.
“마카디, 따라가거라.”
“할아버지, 혼자 계셔도 괜찮겠어요?”
“녀석도 참, 네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퍼질러 자는 동안은 뭐 혼자 있는 게 아닌 줄 아느냐?”
“할아버지……. 그거랑 이건 다르잖아요. 지금은 야밤에 이동을 하는 건데요.”
“걱정할 것 없다. 여차하면 한 번은 확실하게 도망칠 수 있는 텔레포트 스크롤도 있고 말이다.”
“……알겠어요, 할아버지.”
“우리에게 중요한 손님이다. 아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공유하고 협력하거라.”
“다녀올게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만약 내일 돌아오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시일에 다시 찾아올 겁니다.”
“다음에도 반갑게 전할 계시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야겠군.”
“잘 부탁드립니다, 오블란 님.”
“강신화, 또 보지. 다음에도 대련을 해 주면 좋겠는데, 어떤가?”
“저야 언제나 환영입니다.”
* * *
자정을 넘긴 시간.
지구의 밤거리는 불야성의 시작점이 열리는 시간대지만.
이 주변은 달빛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전생에 나스 대륙 도심에서 종종 보았던 ‘마정석 조명등’도 이쪽에는 없었다.
대륙 북부 외곽에다 문명의 영향이 적은 오지에 가깝다 보니,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듯했다.
“아까 제대로 얘기하지 못했지만……. 많이 놀랐어요. 제 주술을 그렇게 쉽게 파훼할 줄이야.”
“작은 빈틈을 우연히 운이 좋게 찾아낸 겁니다. 완성도는 정말 높은 주술이었어요.”
신기한 듯 신화를 바라보며, 칭찬을 건네는 마카디의 말에 신화도 같은 칭찬으로 돌려주었다.
진심이었다.
애초에 파훼법을 알았으니까 빈틈을 찾았지 처음이었다면 한참 동안 고생했을 것이다.
그러면 주술을 운 좋게 풀고 나왔다고 해도 그다음에 또 어떤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른다.
“진짜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에요? 그게 가능한 건가요?”
“말하자면 길어요. 이방인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생김새가 좀 다른 동료 정도로 해 두죠.”
신화가 에둘러 말을 돌렸다.
차원이 어떻고 세계관이 어떻고 하는 설명을 하기엔 그 개념이 어렵기 때문이다.
“평화로웠던 나스 대륙을 이 지경까지 만든 레체로를 꼭 죽이고 싶어요. 반드시 제 손으로요.”
꾸드득.
꽉 움켜쥔 마카디의 손바닥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움켜쥔 손바닥을 찌른 손톱 때문인 듯했다.
“가능한 밝은 미래를 만들어 가야죠.”
“두려워요. 할아버지가 레체로에게 돌아가실까 봐……. 그건 제가 죽는 것보다도 더 끔찍해요.”
할아버지 오블란에 대한 마카디의 진한 애정이 느껴졌다.
전생에 만났을 때도 그랬다.
마카디는 간혹 돌아가신 할아버지 오블란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부모를 일찍 여읜 마카디를 어렸을 때부터 직접 업어서 키워 준 유일한 혈육인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의 목숨을 빼앗아 간 레체로에 대한 분노는 태산보다 높고, 심해보다도 깊었다.
“죽지 않으려면 죽이면 될 뿐.”
신화가 덤덤하게 말했다.
어쨌든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신화와 마카디는 투명화를 유지한 채 계속 이동 중이었다.
마카디는 가속 마법인 ‘헤이스트’와 유사한 주술을 활용하여 신화와 속도를 맞추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두 사람은 인적 하나 없는 숲길을 가르고 또 가르며 서쪽으로 향했다. 차가운 칼바람이 불었다.
제단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정말 사람은 고사하고 그 흔적조차 안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슬슬 지면 위를 뒤덮은 설원 위에 얼어붙은 시신과 핏자국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절규하듯이 손을 뻗은 채로 죽은 남자의 시신도 있었다.
“이런 일이 일상…….”
“쉿, 이젠 목소리를 없애죠. 가는 길만 잡아 줘요.”
마카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나스 대륙의 각지에서 죄 없는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됐다.
앞으로 이런 일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리고 지구와 연결될 5년 후가 되면, 사실상 대부분의 정리가 끝나 있을 터다.
목숨을 부지한 사람들은 이곳보다도 더 험하고 외딴 오지에서 겨우 목숨만 부지하며 살아가겠지.
그렇게 얼마나 더 이동했을까?
드디어 ‘레크나트 교단’의 암흑 제단이 한눈에 들어왔다.
과연 암흑 제단이 있는 곳답게 이곳에는 문명의 이기가 제법 갖춰져 있었다.
제단의 핵심으로 보이는 검은빛 육각탑은 여기서 한참을 중앙으로 들어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그리고 높고 두껍게 쳐진 목책을 따라서는 제법 많은 병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안티 인비저블의 결계인가? 꼼꼼하게 머리 잘 썼네.’
신화는 목책의 주변으로 보이는 결계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안티 인비저블.
말 그대로 인비저블 마법을 감지하기 위한 마법진이다.
꼼꼼한 레체로의 성격상 침입자에 대한 대비가 허술했을 리 없고 이것이 그 증거였다.
‘하지만 내 투명화는 엄밀히 말하자면 마법이 아니라 아티팩트를 활용한 재능 중 하나란 말씀.’
신화는 별다른 동요 없이.
사전에 마카디에게 동의를 구하고 꼭 붙잡은 손을 이끌었다.
안티 인비저블?
결계가 하나가 아닌 10개가 있어도 아무 문제도 없이 돌파할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쑤우욱!
신화와 마카디는 수십 명의 병사들이 보초를 서고 있는 정문을 유유히 지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