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43)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43화(242/300)
제 243화
호주, 시드니.
도심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는 골든 스카이 길드의 ‘골든 타워’ 최상층.
길드 마스터인 제이콥 우드워드와 핵심급 간부가 아니면 절대 출입할 수 없는 꼭대기 층.
비록 엘리베이터와 가까운 말석(末席)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게감이 있는 자리.
그곳에서 한 사람이 입술을 질끈 깨문 채로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홀로 사용하는 큰 사무실임에도 불구하고 굽 높은 하이힐을 챙겨 신고 있는 그녀는.
의자에 앉아 한쪽 발을 까딱이며 연신 기분 나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거렸다.
“뭔가 전환점이 필요한데…….”
아일라 블란쳇.
지구에서의 그녀의 이름이었다.
원래 이름, 즉 사도명은 라니아 이타나였다. 지금 불리는 이름과는 전혀 다른 이름이었다.
딸깍. 딸깍. 딸깍.
그녀의 시선과 손길이 분주하게 모니터 속 한 사람의 소식을 훑고 또 훑었다.
일라이저 로우.
미국 각성자 세계의 패권을 휘어잡은 일인자이자 자신과 같은 사도인 인물.
아일라에게 일라이저는 동료이지만, 그런 한편으로 가장 큰 라이벌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일라이저에 비하면 아일라 자신은 한참 뒤처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스 대륙에서 넘어와 강제로 각성했을 때, 생각보다 랭크가 낮았던 점도 크게 한몫을 했다.
그래서 홀로 길드 세력을 구축하기에는 문제가 있었기에 골든 스카이 길드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 덕분에 지금의 그녀가 있게 됐지만, 반대로 성장의 한계로도 작용하고 있었다.
“강신화 놈! 놈이 보기에도 일라이저가 더 괜찮은 동아줄처럼 보이겠지. 내게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아일라는 불쾌했다.
물론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감정이었다. 일라이저보다 잘났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테니까.
어쨌든 추종자든 누구든 자신의 호위 세력을 더 늘리고 싶어 하는 그녀에게 든든한 아군이 없다는 사실은 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다.
그러다가 신화와 우연히 인연이 닿아서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신화는 더 영악했다.
뭔가 협조할 듯 말 듯, 밀고 당기기만 하면서 아일라의 애간장을 태웠던 것이다.
나스 대륙에 있을 때, 항상 마음먹은 대로 혹은 내키는 대로 일을 추진해 왔던 그녀의 성격상.
이런 모습으로 끌려가는 형국은 딱 질색이었다. 특히나 그 상대가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추종자’라면 더더욱.
“강신화에게 좀 더 큰 특혜나 다른 이권을 제시하며 베팅했어야 했나? 녀석이 일라이저에게 붙으면 답이 없는데.”
아일라는 신화의 가능성을 매우 높게 보고 있었다.
가진 재능부터 시작해 사회적인 영향력이나 파급력까지. 사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클리자드 전투단에 저런 인재가 있었다는 게 의외이긴 했다.
하지만 나스 대륙에서는 별 볼 일 없다가 지구에서 각성해서 전환점을 마련한 케이스는 많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일라이저의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벨릭이었다.
나스 대륙에 있을 때는 제단 주변의 쓰레기들과 오물을 청소하던 최하급 관리직이었던 것이다.
“강신화, 망할 X! 이놈 때문에 계산이 다 꼬여 버리고 있잖아!”
쾅!
아일라는 화가 나 책상을 내리쳤다.
이대로 무난하게 시간이 흘러가면, 나중에 정말 ‘무난하게’ 일라이저에게 먹힐 판이었다.
이 판을 뒤집거나 뭔가 변수를 만들려면, 신화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야 했다.
그리고.
‘좀 더 흑마술 연성을 빠르게 해야겠어. 무연고로 죽은 노숙자들과 빼돌린 각성자의 시체를 이용하면……. 가속이 가능해.’
현재 몰래 연성 중인 흑마술의 강도를 대폭 늘릴 생각이었다.
그만큼 체내의 암흑 기와 정신적인 광기가 폭주하겠지만 충분히 컨트롤할 자신이 있었다.
나중에 다른 사도들에게 힘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각성자 재능으로는 부족했다.
뭔가 다른 확실한 무기가 꼭 필요했던 것이다.
‘몽마(夢魔)를 이용한 현혹술을 딱 한 번만 성공시킬 수 있다면……. 강신화를 내 뜻대로 부리는 것도 가능할 텐데.’
아일라의 관심은 온통 신화에게 쏠려 있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일라이저도 신화에게 관심이 많았다. 둘 다 그를 게임 체인저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서둘러야겠어.”
아일라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산재해 있는 길드 간부로서의 업무보다 사적인 욕심이 더 중요한 그녀였다.
흑마술 연성.
앞으로의 승부수를 바로 여기에 던져야 할 듯했다.
* * *
같은 시각.
‘리베인 놈, 이 공간 이동 버프를 가지고 그간 무슨 짓거리를 해 왔는지 확실히 알겠네.’
난 아일라를 추적하고 있었다.
공간 이동은 직접 다녀온 곳만 가능한 것이 특징인데, 호주는 전에 다녀온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숨에 시드니로 넘어온 나는 바로 인비저블 링을 이용해서 투명화부터 전개했다.
마력은 넉넉하니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투명화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어차피 아일라만 노릴 생각으로 왔기에 골든 타워에 불나방처럼 뛰어든다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길드의 핵심 간부라고 하더라도 모든 생활을 빌딩 안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차피 개인적인 용무든, 던전 관련 용무든 일을 보려면 밖으로 나와야 했다.
나는 그때를 노릴 생각이었다.
아일라가 문제인 거지, 그 주변을 둘러싼 인물들이 문제인 것은 아니니까.
‘아일라, 일라이저 그리고 레체로까지 죽이면 내가 할 일은 끝이야. 더 할 일도 없지.’
이동하는 동안, 한 가지 생각을 더 확실하고 구체적인 형태로 확정했다.
어차피 대재앙 후의 판을 뒤흔든 요소는 바로 ‘레체로와 그의 유산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원인만 제거한다면, 굳이 다른 일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회귀한 이후로 가진 한결같은 생각이기도 했다.
슈퍼 히어로? 그런 모습은 꿈꾸지 않는다. 결코 원하지도 않고.
‘레체로가 죽는 날이 곧 내가 은퇴하는 날이다.’
그렇게 생각을 다듬어 가다 보니 최종 결론이 아주 단순하고 명확해졌다.
레체로의 죽음이 곧 내 은퇴를 알리는 축포(?)인 셈이다.
레체로가 죽었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사도들이 모두 죽었다는 뜻이 될 테니 말이다.
장동식도 어떤 형태로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뜻이기도 할 테고.
물론 내가 회귀한 이후에 생각 없이 만든 수많은 변곡점들이 앞으로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다.
그러나 그 문제는 그때 가서 고민하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여기에서 변수가 생겨 봤자, 레체로보다 더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음?”
바로 그때.
도심에 진입한 이후, 골든 타워 근처에서 계속 주변을 조용히 살피던 내게 뭔가가 보였다.
일이 잘 풀리려는 징조일까?
때마침 아일라가 빌딩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미리 대기시켜 둔 차의 운전을 운전사에게 맡기고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운전대를 잡고서 어디론가 움직이는…… 지극히 사적인 움직임이 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아일라가 탄 스포츠카가 움직이는 경로를 쫓기 시작했다.
빌딩의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형세였지만, 위치를 특정하는 일은 쉬웠다.
개변된 눈이 괜히 폼은 아니었으니까.
파팟. 팟. 팟.
이윽고 차의 동선에 맞춰 사뿐히 빌딩과 빌딩 사이를 뛰어넘으며 거리를 좁혔다.
모습이 보이지 않는 데다 소음도 거의 발생하지 않아, 누구도 내가 있는 줄 모를 터였다.
아일라는 현재 SS-랭크 정도의 각성자일 것이다.
다만 전생에서 마력 암기를 극대화된 능력으로 사용했을 때, 랭크 한 단계를 대폭 상회하는 힘을 내기도 했으니.
높게 잡으면 SSS-랭크의 파괴력을 낼 수 있는 각성자라고 판단하면 된다. 순간 화력으로.
‘전생에는 너와 싸울 일이 모의 대련 말고는 없었는데, 이제는 네 숨통을 끊으러 가는구나.’
나는 이미 많은 생각을 하고 왔음에도 여전히 입맛이 쓴 현실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배신자에게 베풀 인정 따윈 없었다. 전생에 그녀가 배신자가 아니었던 게 아니라, 나와 니콜라스가 둔해서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니까.
더 큰 죄를 저지르기 전에 죗값을 치르게 할 뿐이다.
‘…….’
아일라의 뒤를 쫓으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내가 부지런히 정말 뭐 빠지게 움직이고 있는데, 지금 니콜라스는 뭘 하고 있을까.
괜찮은 걸까?
나는 녀석이 부디 아무 일 없이 무탈하기만을 빌었다.
* * *
“저 새끼, 잡아!”
“쥐새끼 같은 놈! 언제까지 네놈이 그렇게 도망쳐 다닐 수 있을 것 같으냐?”
“훗, 네놈들이 삽질하는 짓거리를 보니 수십 년은 거뜬하겠네.”
“끝까지 쫓아라! 레체로 님께서 저놈의 모가지에 크리비아령(領)의 공작 자리를 약속하셨다!”
“어휴, 그럼 내가 내 목을 따서 들고 가면 나도 제후가 될 수 있는 거냐?”
한 남자가 쫓기고 있었다.
그는 하염없이 북쪽을 향해 달리고, 또 달리고 있었다.
그를 둘러싼 배경은 땅이 점점 척박해지고 녹지 않은 눈이 잔뜩 쌓여 있는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 북쪽에는 만년설이 뒤덮인 산도 보였다.
혹한으로 소문난 ‘악몽의 숲’과 붙어 있는 죽음의 산악 지대였다.
쫓기는 사람은 하나인데, 쫓는 사람의 수는 어림잡아도 100명을 훌쩍 넘었다.
그들 모두는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쓴 채, 레크나트 교단의 문양을 펄럭이며 달리고 있었다.
“하여간 새X들, 각성자 재능을 무서운 줄 몰라요. 내가 무슨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나?”
남자는 웃으면서 가장 선두에서 달려드는 두 흑마법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저 ‘지정’하듯이 검지로 툭툭 두 번을 찍었을 뿐인데.
“죽어라……!”
“나의 원수, 나의 적!”
흑마법사들은 피아 식별을 전혀 하지 못한 채 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흑마법사들은 눈앞에서 난타전을 벌이다가 폭사했다.
‘제길……. 끝이 없구먼.’
여유로워 보이는 표정과 달리 남자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계속된 추격전으로 인해 바닥난 체력과 여기저기 찔린 상처가 문제였다.
찌익! 부우우욱!
꿀꺽꿀꺽. 꿀꺽꿀꺽.
결국 어쩔 수 없이 금단의 약물에 손을 댔다.
고통을 잊고 어떻게든 초인적인 힘을 내서 도망치려면 ‘마약’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망할, 이러다가 놈들의 손에 죽기 전에 금단 현상으로 먼저 뒈지겠네. 내가 그리 마약은 안 좋다고 얘기했는데, 뭐 하는 짓거린지 원.’
자조 섞인 한숨을 토해 내며 남자는 좀 더 힘을 내 질주했다.
다행히 전방의 흑마법사들을 상대로 ‘정신 교란’을 전개했던 것이 먹혔고, 혼란이 유발됐다.
그사이 가속 아티팩트를 이용해서 어지러운 현장을 빠져나왔고, 아슬아슬하게 몸을 숨겼다.
얼마 후.
그의 주변으로 흑마법사 무리가 대거 들이닥쳤지만 작정하고 은신에 들어간 덕분에 들키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거지?”
“북쪽으로 계속 갔을 겁니다.”
“니콜라스 헤이건. 그놈을 죽이면 모든 것이 끝난다. 이 잡듯이 뒤져서 찾아라. 반드시 죽여야 한다!”
“…….”
어둠 속에서 남자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의 이름은 신화가 틈날 때마다 떠올리며 씹고 뜯고 맛보던 이름! 바로 니콜라스 헤이건이었다.
‘신화야, 부디 제발…….’
니콜라스는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굵은 땀방울과 핏물을 쓸어내리며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실낱같은 희망, 기대, 꿈.
이 모든 것이 2020년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신화의 손에 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