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5)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5화(24/300)
제 25화
그로부터 1시간 30분 후.
승차감이 좋은 정훈의 드라이브 실력에 잠시 숙면을 취하는 사이, 어느새 병점역 원룸에 도착했다.
“다 왔네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수행하시죠.”
“한눈에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곳인데, 혼자 괜찮겠습니까?”
“무법지대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넋 놓고 당할 정도로 실력이 부족한 건 아니니까요.”
나는 정훈의 걱정에 여유로운 웃음으로 화답했다.
과거의 강신화였다면, 여기서부터 두 다리를 벌벌 떨면서 집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아니, 이미 이쯤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박도원을 만나, 또 하루의 일당 7할을 뜯기고 있었겠지.
“오는 길에도 몇 군데서 공공연하게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만.”
“뭐, 그게 레드 존의 일상이니.”
잔뜩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정훈의 말에 나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정훈의 말하는 모양새가 대격변 이후 레드 존에는 한번도 방문해 본 적이 없는 듯했다.
그러니 마치 영화 속의 무법지대를 본 것처럼 표정이 저렇게 어둡지.
“정말 괜찮습니까?”
“이 동네에서 그런 차 몰고 다니면 어디서 나쁜 놈들이 튀어나올지 모릅니다. 어서 돌아가세요.”
“하지만.”
“흑십자단도 병점역에 자주 나타나고요.”
나는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정훈에게 살짝 겁을 줬다.
흑십자단.
태생부터 사연이 많은 조직이다. 물론 악의 제국이라 불리는 테러 조직인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어쨌든 흑십자단은 각성자특별법의 테두리 밖에서 치안을 유린하고, KSA를 골탕 먹이는 조직이었다.
그리고 레드 존은 그런 흑십자단의 젖과 꿀이 흐르는 거점이자 기반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알았어요. 전화할 테니까 무슨 남자친구처럼 굴지 말고 얼른 돌아가십쇼.”
퉁퉁!
나는 정훈의 차 트렁크를 열심히 치며, 그의 출발을 재촉했다.
그러자 찔끔찔끔 그가 액셀을 밟더니, 이내 결심한 듯 빠르게 원룸촌에서 멀어져 갔다.
“후아.”
낡아빠진 원룸 건물의 외형을 보니, 한숨이 터져 나왔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중화역의 아파트를 생각하면, 정말 극과 극의 인생 그 자체였다.
주변에는 쓰러지기 직전의 가로등 불빛만 몇 개 있었고, 담벼락에 늘어선 길고양이들이 차가운 눈빛을 밝혔다.
24시간 불을 밝혀야 할 편의점은 오래전에 대격변과 함께 사라진 지 오래였다.
밤에 뭔가 필요한 것이 있다면, 택시도 안 다니는 곳이라 걸어서 30분 거리의 상점을 가야 한다.
그나마 그 상점도 폭력 조직이 운영하는 곳이라서 가격이 엉망이었다.
화이트 존에서는 1,000원에 팔리는 생수가 이곳에서는 10,000원에 팔렸다.
그야말로 폭리.
애초에 팔 생각이 있는지 의문이 들 만큼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에오오옹-.
“오늘도 왔냐?”
나는 담벼락에서 나를 바라보며 정겨운 울음소리를 내는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이름은 까미.
새까만 털과 푸른 두 눈이 인상적인 녀석이기도 했다.
“보수도 안 했네.”
나는 원룸 외벽에 남아 있는 박도원의 흔적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쓰러지기 직전의 이 원룸을 가지고 월세 75만 원이나 받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
화이트 존에서 월세로 방을 구하려면 기본 보증금이 억 단위 이상.
사실 이런 이유로 예전의 나 같은 돈 없는 짐꾼들이 자꾸 옐로 존, 레드 존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고액의 보증금을 낼 여력이 없으니, 무보증금의 원룸을 구해서 살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 보니 월세가 폭등한다.
‘여긴 2052년에도 똑같았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여긴 늘 한결같았어.’
2052년의 이곳을 떠올렸다.
내가 고림화학 주식과 다음 투자지로 생각하고 있는 1호선 지제역 일대와 달리.
2052년에도 이곳은 여전히 슬럼가였고, 동시에 수많은 폭력과 범죄의 온상이었다.
심지어 아웃브레이크도 열다섯 차례나 발생해서 각성자들 사이에서는 아예 죽음의 땅이라고 불렸다.
‘오늘로서 이곳과의 인연은 끝이다.’
짐을 정리하고 나면, 다시 이곳에 올 일은 없을 듯했다.
좋은 기억,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이 아니니까. 미련도 당연히 남지 않는다.
따각. 따각.
그렇게 나는 엘리베이터 하나 없는 낡은 계단을 따라, 5층에 있는 옛집으로 향했다.
* * *
[20200123] [대한은행 / 잔고 25원]“짠하네, 진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던 짐을 정리하던 나는 예전의 통장 하나를 보았다.
1월 23일에 마지막으로 통장 정리를 끝낸 종이 통장에는 잔고가 25원이 찍혀 있었다.
25만 원도 아닌, 25원.
흙수저보다 못했던 시절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숫자였다.
“챙길 게 하나도 없네.”
이것이 내 결론이었다.
옷장의 옷들은 죄다 넝마가 되어서, 걸레로 쓰면 딱 좋을 수준의 늘어진 옷만 가득했고.
신발장의 신발들은 하나같이 구멍이 뻥뻥 뚫려 있어 서툰 바느질로 땜질을 한 것이 태반이었다.
냉장고 안에 있는 것도 먹다 남은 생수 몇 병이 전부였고, 보관했던 음식들은 전부 상했다.
화장실에는 수도세를 아끼겠다고 볼일을 보고도 물을 내리지 않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보내 줘야겠다, 이제.”
차라리 마음은 후련했다.
뭐라도 챙겨 가고 싶은 것이 있다면 미련이라도 조금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은 지금 당장 갖다 버려도 전혀 아깝지 않은 것들뿐이었다. 그리고 부모님에 관련된 유품이나 흔적은 찾아보니 전혀 없었다.
예전에 따로 챙겨둔 유품은 개인 금고에 보관하고 있으니, 그것은 나중에 찾으면 될 문제다.
딸깍. 치이이익.
“크, 그나마 이 맥주가 유일한 추억인 건가.”
목 넘김이 좋은 맥주를 들이켜며, 나는 이곳에서의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퇴근 후 맥주 한 캔.
그것은 짐꾼의 고단한 삶을 살던 내 하루를 마무리했던 일종의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하루가 미친 듯이 힘들었고, 내일이 먹먹하게 느껴지는 오늘이라도.
해 보자! 하는 결심을 늘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던 나만의 파이팅이기도 했다.
“과거는 여기에 묻고, 이제 즐거운 현실과 기대만이 가득한 미래를 살겠어.”
나는 다짐했다.
회귀했을 때부터 생각했던 것이지만, 다시 스스로에게 되뇌는 목표이기도 했다.
각성자로서 아무도 날 귀찮게 건드릴 수 없을 정점을 찍고.
단위를 감히 세어 볼 수도 없을 엄청난 금액의 돈을 모은 뒤, 화려하게 은퇴한다!
나는 지난 이틀간,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며 빠른 은퇴의 가능성을 봤다.
머릿속 망상이 아니라, 얼마든지 가능한 현실적인 목표임을 깨달은 것이다.
“…….”
한데 바로 그때.
나는 주변에서 느껴진 적지 않은 인원의 기척에 가늘게 눈을 떴다.
내가 가진 재능에 인기척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지 능력이 있지는 않지만.
마력 방출을 바탕으로 주변에 마력을 뿌려 두고, 흐름을 간접적으로 감지하는 능력은 있었다.
흐름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없다면, 절대 흐트러지지 않을 마력의 흐름이 뒤엉키는 중이었다.
그것은 즉, 기척을 숨긴 누군가가 원룸 근처에 있다는 뜻이다.
‘박도원이 보냈나?’
합리적 의심이 가는 후보는 당연히 있었다.
박도원이 이끌던 조직은 물론이고, 형제 조직이랍시고 연대를 맺고 있는 조직이 제법 있었으니까.
‘푸닥거리를 할 때가 되긴 했지. 녀석들 곱게는 안 넘어가네.’
나는 피식 웃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당연히 기척도 못 느꼈겠지만, 혹 느꼈다고 해도 36계 줄행랑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자신감은 충분했다.
이제 누가 먹잇감이 될지 알아야 할 차례다.
딸깍.
나는 흐린 불빛을 힘겹게 뿜어내고 있던 형광등을 껐다.
‘들어와라.’
그리고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먹이를 노리던 하이에나들이 냄새나는 누런 이를 드러낼 시간을.
* * *
그 시각, 병점역 인근.
“커헉! 어억!”
“내가 조용히 갈 길 가자고 했니, 안 했니?”
“팔! 내 팔!”
“내 말에 대답을 해야지, 팔이 뭐? 부러뜨려 달라고?”
와드드득!
“끄아아아!”
지나가던 여자 둘을 건드린 남자 각성자 하나가 비명을 토해 내며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남산에 있는 협회 조사실에 가서 혼쭐이 안 나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거야.”
“크아아아! 죄송, 죄송합니다!”
“괘씸하니까 손가락까지.”
우득!
“크억!”
남자의 오른쪽 어깨와 손가락은 그렇게 순식간에 골절됐다.
E랭크 각성자로 나름 실력에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하필이면 상대를 잘못 건드린 탓이었다.
“크흐으으!”
겁에 질린 남자가 도망치자, 그녀가 불쾌한 표정으로 손을 털어 내며 말을 이었다.
“역시 레드 존은 어쩔 수 없네. 별이야, 그러니까 여기에 강신화 씨가 살고 있다고?”
“네, 지부장님.”
“이제 F랭크도 아니고 D랭크가 된 마당에 굳이 왜?”
“최근에 확인된 거주지는 여기가 맞아요. 그동안의 이사 경력이 많기는 하지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은 KSA에서 나온 요원이었다.
하나는 이미 신도림역에서 만난 적이 있어 신화와 일면식이 있는 C랭크의 각성자 윤별이였고.
그녀가 수행하는 여자는 KSA 서울 지부의 지부장을 맡고 있는 나미나였다.
신화가 오늘 얻은 ‘칼레의 혼돈’ 목걸이의 주인이 될 예정이었던 사람이기도 하고.
그녀는 KSA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 지부의 지부장답게 SS랭크 각성자였다.
“양화 길드와 1개월 단위의 계약이라고 했지?”
“네. 좀 특이한 계약이죠.”
“그건 언제든 원하면 다른 곳으로도 이적할 수 있단 얘기잖아?”
“맞아요.”
“확실히 영리하네. 게다가 KSA에서도 손을 쓸 수 없었던 진보미 씨를 치료하고……. 신도림 던전은 혼자 공략까지 하고. 이거 전형적인 슈퍼 루키 특성인데? 호호.”
나미나가 웃었다.
대격변 이후, 로열로드를 밟으며 급성장을 해 온 자신의 예전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녀 역시 하루가 멀다 하고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었다.
지금의 신화처럼 F랭크에서 D랭크로 성장을 한 적도 있었다.
던전에서 칼루스라는 보스 몬스터를 사냥한 이후, 녀석에게서 기운을 흡수하며 벌어진 일이었다.
나미나는 신화에게 상승 모멘텀을 충분히 불러일으킬 특수한 현상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여겼다.
즉, 하루아침에 D랭크로 뛰어넘은 그가 추가 성장을 더 할 수 있다고 봤다.
미래 가치가 오를 주식이 있다면? 미리 가격이 쌀 때 사 두는 것이 정답이다.
그것은 각성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떡잎부터 다른 다재다능한 인재를 영입하는 것. 그것은 KSA의 오랜 전통이기도 했다.
당장에 여기 있는 나미나와 윤별이도 그런 식으로 KSA에 스카우트가 된 인물이었다.
“오래간만에 사람 욕심이 많이 나는걸? 이왕이면 능력까지 좀 꼼꼼하게 살펴보고 싶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나미나의 말에 윤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성장 곡선만으로도 신화에게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지만.
그의 능력을 직접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가치는 더욱 상승하게 될 것이다.
한데 바로 그때.
콰아앙! 쨍그랑!
“으아아아!”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비명을 내지르며, 저 멀리서부터 포물선을 그리며 이쪽으로 날아왔다.
신화가 사는 원룸까지의 거리는 여기서부터 약 200m 정도 멀어져 있다..
그 긴 거리를 날아온 정체불명의 남자는 그대로 볼썽사납게 지면을 나뒹굴었다.
“얘네, 블랙 헌터잖아?”
남자는 어깨에 폭력 조직 ‘블랙 헌터’의 견장을 차고 있었다.
한데 나미나가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이 자식, 대장인데?”
블랙 헌터의 보스, 이철수였다.
C랭크의 각성자로 알려진 남자.
그가 반쯤 넝마가 된 채로 여기에 내다꽂혀 있었던 것이다.
“가, 가, 강신화, 개, 개, XX……. 끄륵.”
신화에 대한 분노를 채 표출할 틈도 없이, 이철수는 거품을 물고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다.
뭔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우아악!”
또 한 명의 각성자가 하늘을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