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52)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52화(251/300)
제 252화
“그래, 그렇다 이거지. 더 말할 것은? 왠지 몇 가지 정도는 더 남아 있을 듯도 한데?”
“없어! 정말 없어! 차라리 그냥 날 죽여라. 더 말할 것도 없으니까. 아니, 아니! 죽이진 말아 줘. 이대로만 두면 쥐 죽은 듯이 지낼게. 제발!”
“바퀴벌레는 확실하게 죽여 두지 않으면 언젠가는 알을 까고 수많은 무리를 만들지. 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아케로.”
“뭐라고……?”
“대충 죽으란 뜻이야.”
푸욱!
“컥!”
나는 무어라고 말을 하기 위해 입을 벌리던 아케로의 입 안 한가운데에 검을 찔러 넣었다.
녀석이 말을 이을 새도 없이 그대로 검을 쭉 위로 밀어 올렸다.
그러자 사람의 머리라는 게 이렇게 잘 잘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단숨에 얼굴이 반 토막 났다.
“흠…….”
아케로에게 이것저것 캐묻기는 했지만, 레체로의 심복치고는 생각보다 아는 것이 적었다.
아무래도 레체로의 지시만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그 이유나 과정을 전혀 묻지 않았기 때문인 듯했다.
우선 전생에 몰랐던 부분들 중 알아낸 사실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레체로는 나스 대륙에 천년 전 준동했던 암흑 교단 움브라 교단과 카코 교단의 후손이다.
그들에게는 숨겨진 비전 술법서가 여럿 있었는데.
은신처의 지하 깊숙한 곳에 백골들과 함께 묻혀 있던 금지된 술법서를 손에 넣은 것이 바로 ‘흑마법사 레체로’가 암약하게 된 계기였다.
둘째, 레체로의 최종 목적은 천년 전에 죽은 것으로 알려진 마왕 레크나트의 원혼을 되살리는 것이다.
마왕 레크나트의 원혼을 되살리면 차원계의 균열을 다시금 야기할 수 있고,
이를 통해서 지구뿐만이 아니라 다른 대륙에도 얼마든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셋째, 현재 준비 중인 레체로의 의식이 꾸준히 잘 진행된다면 35년 후, 즉 2055년에 레크나트가 부활한다.
그리고 레크나트가 부활을 통해서 레체로에게 선물로 주기로 약속한 축복은 바로 ‘불로불사’였다.
신과 마왕의 힘으로는 죽일 수 있어도, 인간은 감히 죽일 수 없는 영원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결국 2055년까지 방해를 받지 않고 무난하게 흘러가면 레체로의 꿈이 이뤄진다는 거잖아.”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대재앙을 막은 시점이 2052년.
이후 3년 동안 니콜라스가 녀석을 막아 내지 못했다면 레체로의 꿈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생각보다 시간이 길지 않았다.
대재앙을 막아 냄과 동시에 모든 사도들이 숨긴 속내를 드러냈을 것이고.
아울러 죽은 줄로만 알았던 ‘진짜 레체로’도 나타났을 테니 얼마나 핀치에 몰려 있을까?
굳이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거꾸로 생각하면 지금은 최고의 적기야. 이제 막 모든 계획이 시작되려는 시점에 내가 회귀했으니까.”
나는 미래가 아닌 지금을 생각하기로 했다.
니콜라스가 나를 과거로 회귀시킨 것은 단지 과거를 바꾸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분명 내가 바꾸게 될 ‘지금’이 미래의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치기에 그렇게 안배를 한 것이리라.
녀석은 뼛속까지 이해득실을 따지는 놈이다! 즉, 전부 다 계산되었다는 얘기다.
“놈들이 가장 약한 시점이 지금이야. 확실히 돌아가는 상황도 그렇고. 니콜라스 녀석, 회귀 시기는 기가 막히게 잡았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 각성자들의 질서가 완전히 잡히기 전인 데다 균형의 추가 어지럽게 흔들리는 시점이다.
그래서 갑자기 튀어나온 ‘나’라는 존재에 대해, 사도들의 대응이 생각보다 늦었다.
그 결과 VVIP, 리베인, 아일라를 손쉽게 처리했으니 확실히 최고의 타이밍을 잡은 셈이었다.
아울러 장동식도 죽지 않았고, 그는 나에게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한 상태다.
“너는 죽어서도 편하게 눈을 감긴 힘들 거다. 장동식에게 조사를 맡길 생각이거든. 흑마법사의 시체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고 했으니까.”
탁!
손가락을 튕겨 아케로의 시체를 아공간에 보관했다.
녀석이 걸치고 있었던 로브부터 해서 남김없이 보관을 했으니, 나중에 분명 쓸 일이 있을 것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
그렇게 아케로와 다시 닿지 않을 뻔했던 악연을 내 스스로 끝냈다. 마음이 후련했다.
* * *
6시간 후.
A포인트를 지나 중간의 크고 작은 전투를 거친 우리는 어렵지 않게 B포인트까지 진출했다.
B포인트는 보스 몬스터 ‘리미트리스’가 있는 결계에서 5km 남쪽에 위치한 안전지대였다.
그곳은 지대가 높고 시야를 확보하기 좋아서 몬스터의 기습이나 은신을 탐지하기에 용이했다.
“크허어어…….”
“피유우우우.”
지난 6시간 동안 내내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탓인지 신부님과 한소준은 간이 침낭을 펴자마자 잠이 들었다.
3초 만에 잠이 든다는 것이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침낭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기절해 버렸다.
나는 달빛을 벗 삼아 던전 전역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걸터앉아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잠도 안 오고, 앞서 아케로에게 들었던 말들을 다시금 되새기며 곱씹기 위함이었다.
“격세지감이네.”
나도 나지만, 동료들이 참으로 많은 성장을 이뤘다.
다들 아직도 약하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그건 비교 대상이 나이기에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느끼고 있을 뿐이다.
불과 2개월 전만 해도 나를 제외한 세 사람에게 ‘S’라는 알파벳은 매우 부담되는 단어였다.
그게 자신의 경지든 던전의 수준이든 선뜻 나서기에 두려운 점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SSS+랭크급의 던전에 와서도 모두 의욕적으로 던전 공략에 나섰다.
물론 내가 빠지면 단계를 제법 낮춰서 공략해야겠지만.
적절한 대체자를 구한다면 다시 수준 높은 던전 공략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완벽히 대체할 수는 없더라도 능력 있는 각성자는 많으니 충분히 잘 해내리라고 믿는다.
“안 자?”
“잠이 안 와서요.”
“아까 서쪽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니다. 안 묻는 게 낫겠지?”
“맞아요. 모르는 게 나아요. 꼭 알아야 할 거면 내가 진작 말해 줬을 테니까 너무 신경 쓸 것 없어요.”
“미안, 주제넘었네.”
“주제넘을 것까지야. 그냥 선택적 비밀로 해 두죠?”
윤별이가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았다.
던전에 오기 전까지는 잘 몰랐는데 옆에서 보니 머리카락이 전보다 더 짧아져 있었다.
예전엔 단발과 장발의 중간 정도였다면 지금은 쇼트커트였다.
쇼트커트는 어지간한 여자는 소화하기 힘든 헤어스타일이라고 들었는데, 윤별이에게는 딱이었다.
“누나는 확실히 짧은 머리가 잘 어울려요. 얼굴이 작아서 그런가?”
“칭찬이지?”
“이 말을 욕으로 들을 수 있다면 엄청난 재주가 될 걸요?”
“호호, 고마워.”
“오늘 몬스터 홀딩은 인상 깊었어요. 소준이 말대로 목숨 걸고 연습했다는 게 느껴져요. 실전에서도 많이 써먹은 것 같고.”
“응. 요즘 조건 안 따지고 막공에도 많이 참여하거든. 그러다 보면 탱커나 메인 딜러가 없을 때도 많잖아?”
“그렇죠.”
“처음에는 좀 껄끄러웠는데, 모의 훈련과 연습을 거듭해 보니까 또 할 만하더라.”
“아슬아슬하지만 재밌죠?”
“재미는 신화 너처럼 여유가 넘치는 강력한 고수나 느끼는 거지! 난 매번 살얼음판이라고.”
“어쨌든 누나, 오늘 정말 멋졌어요. 내가 없어도 팀이 잘 돌아갈 것 같아서 기쁘네요.”
“무슨 말이 그래? 곧 헤어질 사람처럼……. 그런 말 들으면 힘이 빠지잖아.”
“맞아요. 곧 헤어질 것 같아요. 어떤 형태로든.”
“어떤 형태로든……? 그게 무슨 말이야? 뭐 죽는다거나 그런 이상한 소리 하려는 거 아니지?”
나도 모르게 속내를 털어놨나 보다. 당연히 죽는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지만.
상대가 레체로이다 보니, 자꾸 만약에, 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체로를 죽이기로 마음을 먹은 이상, 어정쩡하게 녀석과 매듭을 지어서는 안 된다.
무슨 말인가 하면, 놈을 죽이려고 찾아갔으면 놈이 죽든 내가 죽든 끝장을 봐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레체로를 살려 두고 내가 도망치거나, 혹은 레체로가 살아서 도망가게 된다면.
두고두고 내 발목을 잡을 것이다.
그러면 은퇴는커녕 나스 대륙과 연결될 2025년을 내내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겠지.
“아니, 은퇴한다고 했잖아요. 아무리 늦어도 올해 안으로는 은퇴할 것 같아서. 빠르면 7월?”
7월을 말한 이유는 하나다.
러시아 대격변을 해결한 이후라는 얘기다. 그 이전에 레체로와의 결전이 끝날 수도 있고.
“은퇴하는 섬……. 나도 놀러가도 되지?”
“그럼요. 손님은 언제든 환영해요. 단, 1박 2일의 짧은 코스로만. 눌러앉는 건 사양.”
“팀 동료도 그렇게 매정하게 대하는 거야?”
“음……. 원칙을 하나 정했어요. 나랑 평생을 함께하기로 한 배우자가 아니면 섬에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하겠다고.”
“부인에게만 허락된 공간이네?”
“맞아요. 간단하죠?”
“…….”
윤별이가 무어라고 말을 이으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고는 마른 입술만 적셨다.
“미안해요, 매번 철벽이라서.”
“아냐.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해야 하는데…….”
“지금 확실히 구분하고 있는 거예요. 자책할 것 없어요.”
“내가 너무 치근덕거리는 느낌이지?”
“전혀요. 그냥 내가 마음의 준비가 안 됐을 뿐이에요. 누나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동료로든 연인으로든.”
“……고마워. 서툴러서 미안해.”
“마음이 완전히 비워지기 전까지는 혼자이고 싶어요. 마음이 있어도 드러내고 싶지 않아.”
“그렇구나.”
“주눅 들지 말아요. 내가 문제지, 누나가 문제인 건 아니니까.”
“나도 언젠가 내 마음이 닿을 날을 기대하면서 지금보다 더 열심히 훈련할게. 각성자 동료로서 보란 듯이 자랑할 수 있도록.”
“좋아요. 그런 투지, 정말 마음에 드는데요?”
“…….”
엷은 웃음을 짓고 마는 윤별이의 어깨는 어느새 축 처져 있었다.
그녀는 참 솔직한 사람이다.
속내를 숨기지 못한다.
내숭? 당연히 못 피운다.
밀고 당기기? 가능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매번 내게 정직하게 ‘들이받는’ 식의 호감과 감정 표현을 열심히 하고 있다.
한때는 이런 그녀의 마음을 확 받아 줄까? 하는 생각도 해 봤지만.
그러기엔 아직 전생의 사별(死別)이 남긴 트라우마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애써 무시하고 바쁘게 살아왔던 삶이었기에 미처 치유하지 못하고 회귀를 해 버린 것이다.
“힘내요.”
하지만 가슴속 어딘가에서 살짝 고개를 든 뜨겁고 따스한 마음이 내 심장을 가득 채웠다.
그녀의 순수함, 순진함이 내 마음 속에 만들어 낸 아주 작은 균열이었다.
그래서 꼭 안아 주었다.
내 품에 쏙 안긴 윤별이의 체온이 내 마음에 여실히 느껴졌다.
정말 따뜻했다.
이제 이 던전과 속성의 꽃 던전의 공략이 끝나면, 차갑고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결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
그래서 일분일초가 아쉬운 나는 쉽사리 잠들 수가 없었다.
* * *
다음 날 아침.
“드디어 이 미친놈을 상대하게 되네. 드디어…….”
우리는 전방의 500m 지점에서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보스 몬스터와 시선을 교환하고 있었다.
리미트리스(Limitless).
전투를 개시하면, 무한대로 몸집이 커지면서 덩달아 팔의 개수까지 증식하는!
가장 까다로운 보스 몬스터와의 승부가 이제 막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10분.’
내가 계산한,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의 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넘기면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