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56)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56화(255/300)
제 256화
크리비아 아일랜드로 가기에 앞서 우리는 먼저 율리아네스 아일랜드에 들렀다.
들렀다기보다 주변 해안을 따라 움직이면서 공사 현장을 지켜보는 수준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섬 전체에서 정말 쉴 새 없이 공사가 바쁘게 진행되고 있었다.
다들 최고급 장비와 안전장치를 하고는 열심히 공사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진보미에게 비용을 아끼지 말고, 특히 인부들의 안전 장비와 자재들에 아낌없이 돈을 쓰라고 말해 뒀었는데!
확실히 말한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들 노동이 주는 충실함과 최고급 대우가 주는 뿌듯함을 느끼며 공사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손이 어지간히 크지 않고선 이렇게 섬을 통째로 개발할 생각을 하기가 쉽진 않은데요.”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 개발하는 거라면 생각을 많이 했겠죠. 하지만 저는 여기서 평생을 살 생각이라…… 통 크게 해 놔야 합니다.”
“이제 스물넷인데 섬에 틀어박혀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깝고 왠지 아쉽지 않나요?”
“전혀요. 바쁘게 일하면서 사는 시간이 오히려 더 아깝게 느껴집니다.”
마리나의 물음에 나는 단호하게 답해 주었다. 하루 이틀 된 생각이 아니기도 했다.
물론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전생에 내가 마리나의 나이였을 때 은퇴니 뭐니 하는 말이 전혀 와 닿지 않았으니까.
매일 열심히 ‘개같이’ 일해서 돈을 모으는 데에만 잔뜩 정신이 팔려 있을 때였다.
그리고 사람들과 부대껴서 사는 게 좋았고, 오히려 밤의 외로움을 싫어했었다.
그때는 나도 이렇게 바뀔 줄 몰랐는데……. 역시 세월이 무섭다.
내 시간은 분명 쉰여섯의 어딘가를 흘러가고 있으니까. 몸만 젊을 뿐이다.
이윽고 속도를 높인 쾌속선은 빠르게 크리비아 아일랜드를 향해 접근했다.
역시 이곳도 공사가 이뤄지고 있어서인지 멀리서부터 많은 사람들의 기척과 기운이 느껴졌다.
벌써 섬 여기저기서 빼꼼 고개를 내민 건물이 제법 보였다.
온갖 레저, 휴양, 건강관리 시설 등을 분산해서 배치했기에 올라가는 건물이 한둘이 아니었다.
“신화 씨가 참 부럽네요. 은퇴하고 싶어도 저는 일이 많아서 도저히 할 수가 없는데.”
“너무 그렇게까지 생각할 것 없어요. 일을 즐겁고 열정적으로 할 수 있을 때가 좋은 겁니다. 모든 걸 하얗게 불태우고 나면…….”
“그러고 나면?”
“정말 아무 일도 하기 싫어지거든요. 숨 쉬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귀찮아질 때가 와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지만 옆에 앉아서 듣던 마리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신화 씨, 되게 나이 많이 드신 분의 말을 듣고 있는 거 같은 느낌인 거 알아요?”
숨기려 해도 종종 이렇게 본색이 드러난다. 뭐, 어쩔 수 없지.
“뭐, 어때요. 나잇값 못 하는 사람도 있으니 나잇값을 훌쩍 뛰어넘는 사람도 있는 거죠.”
“은퇴를 그 누구보다 간절히 꿈꾸는 신화 씨가 일을 열정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참 와 닿지가 않네요! 호호호.”
“그러게요. 말해 놓고도 가끔 뭔 개소리인가 싶을 때가 있어요. 하하하.”
부우우웅!
더욱 속력을 높여 가는 쾌속선.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나도, 마리나도 잠시 시간을 잊은 채 두 눈을 감고 이 순간을 즐겼다.
정말 아름답다.
딱히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려고 하지 않아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모두 멋진 그림이나 영화 속 배경 같았다.
사실 이곳은 전생에는 누릴 수 없었던 바다이기도 했다.
롤라나 왕국이 리벤저스의 손아귀에 들어가면서 주변이 온통 해적선들 천지가 됐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죽어서 시체가 된 경우 말고는 없었다.
그렇게 몇 분을 더 달린 쾌속선은 어느덧 크리비아 아일랜드 인근의 소형 선착장에 멈춰 섰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하선했고, 쾌속선을 운항한 선장은 내일 올 것을 약속하며 떠났다.
“백사장 좀 밟으면서 걸어 볼래요? 마침 옷도 가볍게 입고 와서 신발만 벗으면 될 듯한데.”
“좋아요! 진짜 뭐 하나 꾸민 거 없는 곳인데 가는 곳, 보는 곳이 다 장관이네요.”
“그렇죠? 은퇴지로 정말 신중하게 고른 곳입니다.”
혀를 내두르는 마리나의 반응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원래 내 집이나 차, 별장 같은 것을 보며 부러워하는 시선을 즐기는 것은 가진 자의 특권이니까.
한데 바로 그때.
‘씨X, 저거 뭐야.’
나는 수평선 위로 보이는 심상치 않은 광경에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마가 낀 것도 아니고.
지난번 방문에 이어서 이번 섬 방문에서도 절대 보고 싶지 않았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리벤저스.’
이미 내 섬에 방화를 저지른 전적이 있는 인간 말종‘들’의 등장이었다.
* * *
그 시각.
다수의 쾌속선단이 검은 깃발을 나부끼며 크리비아 아일랜드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갑판 위로는 세상에서 가장 오만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주변을 오시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카스티요 아파리크.
SS+랭크의 각성자로 수십 명의 부하들을 대동하고 다니며 해안가 주변의 던전이나 섬을 노리는 해적이었다.
그들이 주로 노리는 것은 외지에 있는 섬을 공략하고 나오는 각성자를 공격해서 아티팩트를 탈취하거나.
납치해서 소속 길드, 가족 혹은 관계자들로부터 몸값을 두둑하게 뜯어내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중요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의 경우에는 직접 덮쳐서 자재를 약탈했다.
보통 이런 곳에 짓는 건물의 경우에는 외부 침입에 대비해 최고급 강화 시공이 들어감은 물론이고.
섬 주변에 방비 및 경계 활성화를 위해서 품질이 매우 우수한 차원석 장치가 쓰이기 때문이다.
이것들만 슬쩍 탈취해도 손쉽게 수십, 수백억에 달하는 불로소득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대장, 이제 후퇴하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너무 접근하면 롤라나 왕국의 해안 경비대가 출동할 수도 있습니다.”
“머저리 같은 XX, 우리가 롤라나 왕국의 해안 경비대를 두려워할 실력이냐? 내가 그것밖에 안 된다고 무시하는 거야, 뭐야?”
“아앗! 그게 아니라, 사실 이쪽은 상부에서 저희에게 허가한 구역이 아니잖습니까? 일전에 한 번 아군이 당한 적도 있고…….”
카스티요의 심복인 페드로가 난색을 표했다.
애초에 쓴소리를 맡은 포지션이다 보니, 카스티요의 악담을 듣는 것이 딱히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인마! 오늘 우리가 약탈과 몸값으로만 챙긴 돈이 얼마인지 알아? 자그마치 1억 달러야. 알아?”
“예, 맞습니다. 그렇지요.”
“시키고 하라는 대로만 하면 이 돈 벌었을 것 같아? 그럼 완전 허탕 치고 바다에 기름 뿌리고 쪽박 차는 거였다고, 인마!”
“그래도 상부의 지침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상부는 얼어 죽을 상부! 리베인부터 시작해서 그 열 명의 딸랑이들까지 전부 실종됐는데, 상부가 어딨어?”
“비상 대책 위원회…….”
“족보도 나보다 구린 놈들이 만든 비상 대책 위원회가 뭐? 그 말을 따르라고? X이나 까라 그래!”
“죄송합니다.”
“닥치고 내 말에 따르기나 하라고. 어차피 크리비아 아일랜드에 죄다 인부들뿐인데, 뭐가 문제야?”
“그래도 혹시 모르잖습니까.”
“그때 우리 조직원들 박살 냈다는 놈? 강신화인가 뭔가 하는 놈 말이냐?”
“예, 대장. 롤라나 왕국에서 포상도 내린 각성자 아닙니까.”
“까짓것 오라고 해. 내가 SS+랭크야, 이 XX야. 그깟 코흘리개 하나 못 잡겠냐?”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오늘 마지막 코스다! 크리비아 아일랜드에 잔뜩 쌓인 건축 자재들 약탈하고! 인부들도 봐서 납치한다! 놈들의 몸값은 왕국에 받아 내면 되겠지!”
“와아아아!”
페드로를 제외한 모두의 사기가 크게 올라 있었다.
앞서의 약탈과 인질극으로 각자 두둑하게들 한몫을 챙겼기 때문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페드로는 왠지 불안했다.
10년을 넘게 해적질로 바닷바람을 맞고 지내면서 생긴 일종의 육감이었다.
유독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 있는데, 그런 날은 영락없이 폭풍우가 불어닥치거나 난데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의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는데,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하지만 감만 믿고서 카스티요를 말리기에는 이미 동료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가자! 필요 없는 건 불태우고, 필요한 건 모두 취한다!”
카스티요가 소리쳤다.
이윽고 조직원들을 태운 쾌속선이 다시금 속력을 높이며 크리비아 아일랜드로 향하려던 그때.
“……뭐야, 저건?”
카스티요와 페드로가 거의 동시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마주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은 분명 물 위를 걷는, 아니 물 위를 순식간에 워프하듯 이동하고 있는 한 남자의 정체였다.
“저게 뭡니까?”
“아니, 공간 이동이야? 어떻게 물 위를 저렇게 가르면서 이동할 수가 있는 거야?”
카스티요는 눈을 의심했다.
남자가 발걸음 한 번을 내디딜 때마다 몸의 위치가 100m씩 앞으로 움직였다.
그 덕분에 출발할 때만 해도 점처럼 보였던 것이 어느 순간 바로 코앞까지 와 있었다.
그리고.
처억!
이내 남자의 모습이 갑판 위에 나타났다.
그의 정체는 바로.
“……강신화?”
섬의 주인이었다.
* * *
“진짜 이 개XX들이…….”
블링크 링을 최대치로 활용하여 거리를 좁힌 뒤에 갑판 위까지 접근한 나는 먼저 욕부터 내뱉었다.
화가 났다.
뭐 노략질…… 할 수 있다고 치자. 놈들도 먹고살려면 여기저기 삥을 뜯고 살아야 하겠지.
근데 왜 하필이면 애꿎은 내 섬을 자꾸 건드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신 그러지 말라고 앞서 방문했던 놈들을 아예 ‘개박살’을 내 줬는데 말이다. 학습 효과가 없나?
“뭣들 하고 있어! 죽으러 들어온 놈이다! 잡아 족쳐! 오늘 아주 대박이구먼!”
대장으로 보이는 놈이 호기롭게 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래, 당연한 반응이다.
수적 우세는 물론이거니와 홈그라운드니까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하늘을 뚫을 만하지.
“잠깐!”
손을 뻗으며 외쳤다.
아직은 아무런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고, 내일의 던전 공략을 앞둔 마당에 체력 비축도 하고 싶었다.
놈들이 어디서 무슨 약탈을 했는지는 아무 관심이 없다. 나에게 영향만 미치지 않으면 된다.
“뭐지? 항복이냐?”
“처음이자 마지막 경고야. 여기서 더 선 넘지 말고 조용히 물러가. 그럼 아무도 안 죽을 거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선을 넘으면?”
“그럼 나 빼고 너희들 모두 다 끝이다.”
“푸하하하! 이 XX가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뭐, 공간 이동 아티팩트라도 있으니 살판났어?”
“하하하! 꼬라지 좀 봐라!”
“여차하면 아티팩트로 냅다 도망치면 되니까 뚫린 입으로 열심히 지껄여 보는 거냐?”
대장의 입이 가장 시끄럽다.
저런 대장 놈 밑에 있으니 부하들이 잔뜩 들떠 있는 것도 당연하다 싶었다.
유일하게 한 놈만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놈은 뭐 상관을 잘못 둔 탓에 운이 꼬인 거다.
나는 대장을 노려보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럼 전부 다 뒈져도 상관없다는 거지?”
일종의 사형 선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