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60)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60화(259/300)
제 260화
“신화 씨가 필요하다고 하면 은사를 태우는 식으로 화염 쪽은 커버할 수 있……. 아앗!”
“속성형 아닌 녀석들만 맡아 줘요. 나머지는 내가 잡을 테니까!”
마리나가 말을 채 매듭짓기도 전에 신화가 전방으로 돌진하며, 홀연히 부탁을 남겼다.
신화의 말대로 속성을 달고 나오지 않는 평범한 몬스터도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려는 거지?’
마리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이 부분의 공략법을 사전 브리핑에서도 신화가 이런 형태로 얼버무리고 대강 넘겼기 때문이다.
‘이 구간은 그냥 저한테 맡겨요. 다 방법이 있으니까.’
그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신화는 속성이 부여된 공격이 없는 각성자였다.
실제로 많은 각성자 팀이 어쩔 수 없이 인원을 늘려서 이 던전에 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 속성형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함이었다.
화염, 빙결, 뇌전.
이렇게 3속성을 맞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당 속성에 특화된 각성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니 최소 인원이 무조건 3명이 넘을 수밖에 없었다.
보통 속성 공격이 가능한 각성자는 원거리 딜러들이니, 근거리에서 지켜 줄 사람까지 합치면.
아무리 적다고 해도 네 명은 있어야 하는 그림. 하지만 2인 1조로 구성된 이 팀에 다른 이는 없었다.
바로 그때.
“좋아! 잡았다!”
신화의 외침이 들렸다.
뭘 잡았나 싶어 마리나가 은사를 풀어내면서 전방을 살펴보자.
“뭐야, 저거……?”
파앙! 파아아앙!
신화는 당당하게 쇄도해 오던 몬스터의 두 다리를 꽉 움켜쥔 채, 마치 빨래처럼 마구 패대기치고 있었다.
조류형 몬스터이자 동시에 몸 전체가 붉게 물들어 있어 별칭이 ‘불닭’인 녀석이었는데.
“끼엑! 끼에엑!”
신화에게 양쪽 다리를 잡힌 탓에 기동력을 상실한 불닭은 애꿎은 날개만 푸드덕거렸다.
물론 날갯짓에서 불길이 만들어져 신화를 감쌌지만, ‘질긴 피부’로 강화한 신화의 피부를 녹이진 못했다.
녀석의 강점은 입을 통해서 브레스처럼 내뿜는 불길.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한 가지 있었는데, 불길을 내뿜기 위해서는 준비 동작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제자리에 멈춰 서서 두 다리를 굽혀 몸을 지탱한 뒤, 대포알을 쏘아 내듯 불길을 내뿜는 것이다.
하지만 신화에게 다리를 잡혀서 허공을 회전하고 있으니, 필요한 준비 동작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미쳤어…….”
말이 좋아서 불닭이지 사실 크기나 덩치만 놓고 보면 타조에 버금가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저 녀석을 들어서 휘둘러 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는데…… 신화가 또 한 번 상식을 무참히 깨 버렸다.
‘근데 저게 무슨 노림수인 거지?’
사각! 사가가각!
꾸웩!
신화에게 시선을 두고 있는 와중에도 마리나가 차근차근 비속성형 몬스터들을 처치했다.
속성형이 아닌 몬스터는 B 또는 C랭크의 수준이라 마리나가 제압하기에 문제가 전혀 없었다.
다음 순간.
“이거나 먹어라, 이 양념치킨 자식들아!”
신화가 불닭들 사이로 뛰어들더니, 이어서 움켜쥔 녀석을 대차게 휘두르며 열심히 패기 시작했다.
끼아아악! 꾸에에엑!
여기저기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리면서 불닭의 비명이 구슬프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 저거였어?’
마리나는 감탄했다.
신화의 노림수는 속성형 몬스터의 몸을 통째로 활용해서 같은 계열의 몬스터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꼭 브레스를 활용하지 않더라도 전신이 한 가지 속성에 특화되어 있는 만큼.
양손으로 움켜쥐고 있는 불닭의 몸을 일종의 ‘속성 무기’로 활용한 것이다.
비유하면 ‘화염 속성 몽둥이’처럼 사용한 셈이었다. 그리고 그 노림수는 정확히 통했다.
케헤에엑!
무지막지한 신화의 일방적인 구타에 불닭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져 갔다.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슈트와 근육, 그리고 살기로 빛나는 신화의 눈빛은 폭주 그 자체였다.
빠악! 빠악! 와드드득!
불닭들은 각자에게 운명처럼 주어진 신화의 선택에 따라 머리가 터져 죽거나.
혹은 목이 부러져 죽거나, 갈비뼈가 박살이 나면서 심장을 관통해 즉사하거나.
척추가 박살 나서 걷지도 못하고 제자리에서 꾸물거리다가 오장육부가 터져 죽었다.
빨리 죽느냐 늦게 죽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험한 꼴을 당하고 죽는다는 사실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너도 죽…… 아니, 이미 뒈졌구나.”
신화가 실컷 무기로 잘 활용한 불닭의 목숨마저 끊고자 녀석을 바닥에 휙 던져 보자.
이미 녀석은 일찌감치 혀를 길게 빼물고는 눈을 까뒤집은 채 요단강을 건너가 있었다.
그리고 저 앞에 보이는 언덕 위에서.
크슈! 크슈! 크슈슈!
이번에는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온통 냉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새로운 몬스터가 나타났다.
“서리 늑대.”
이름부터 서늘함이 느껴지는 녀석들. A랭크의 몬스터로 몸을 수시로 결빙시켜 어지간한 물리 공격을 전부 무력화하는 녀석들이었다.
은사가 거의 통하지 않아 마리나 입장에서는 질색하는 몬스터이기도 했다.
“빙구에는 빙구지!”
하지만 신화는 씨익 웃으며, 방금 그랬듯이 서리 늑대 무리의 한복판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겁을 상실하고 달려드는 인간을 본 서리 늑대들은 저마다 침을 질질 흘렸다.
간만에 맛 좋은 인육을 먹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가득 찬 맹수의 본능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우우우!
까우우우울!
채 1분도 안 된 시간에 들려오기 시작한 소리는 다름 아닌 서리 늑대의 구슬픈 울음소리였다.
“저게…… 사람이야, 괴물이야?”
‘잡몹’이라 불리는 자잘한 몬스터를 처리하면서 신화를 예의 주시하고 있던 마리나는 그만 혀를 내둘렀다.
이제는 결빙으로 스스로를 얼린 서리 늑대를 몽둥이 삼아서, 여기저기서 늑대 동족을 패고 있었다.
보통 결빙 상태에 들어가면 신화가 강철 강화를 했을 때와 유사하게 공격이 튕겨져 나오기 마련.
하지만.
카치이이잉!
모든 힘을 담아 내리치는 신화의 공격 앞에서 펼쳐지는 현실의 양상은 달라도 많이 달랐다.
서리 늑대가 죽는 게 아니라 깨져 나가고 있었다.
언 채로 박살이 난 서리 늑대들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할 새도 없이 산산조각이 났다.
신화의 위용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자유자재로 몸을 얼리며 침입자를 농락하는 것이 일상인 서리 늑대들이!
자신들의 본질이자 특기이기도 한 ‘결빙’을 사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얼면 어는 대로 우악스럽게 몸을 내려쳐 아예 박살을 내 버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결빙을 사용하지 않으면…….
꺄우우우울!
아우우울!
대놓고 들어오는 공격을 곧이곧대로 맞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녀석들은 크게 당황했다.
매번 침입자들이 속성 공격 때문에 고전하는 것을 너무 많이 봐 왔던 터라.
신화처럼 동족의 몸을 무기 삼아 공격하는 방식에는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사실 너무 ‘무식한 방법’이라 그 누구도 쉽게 떠올릴 수 없었던 방법이기도 했다.
애초에 이런 행동이 가능하려면 어마어마한 근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도 크게 한몫했고.
“이제 슬슬 제 뒤로 붙죠? 속성 달고 나올 잡몹들은 아무런 위협이 안 돼요. 빠르게 갑시다!”
환하다 못해 해맑게 웃는 신화의 모습에 마리나는 긴장했던 마음이 쫙 풀렸다.
매번 신화와 함께할 때마다 좋은 의미로 놀람의 연속이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더했다.
좋은 의미로 신화가 미친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위기가 닥쳐와도 당황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모습.
그것은 마리나가 신화를 처음 본 순간부터 느꼈던 것이었다.
‘대단하다, 대단해.’
세상의 그 어떤 각성자가 EX랭크급에 준하는 던전에 와서 이런 ‘여포 짓’을 할 수 있을까.
아마 신화가 유일할 것이다.
마리나는 장담할 수 있었다.
* * *
불닭과 서리 늑대 이후로도 속성형 몬스터들은 계속 등장했다.
이것은 속성의 꽃 던전의 악명이 높은 이유이자 던전 자체의 특성이기도 한 셈.
워낙에 속성 공격으로 괴롭히다 보니 전생에도 이 던전은 대규모 레이드 던전으로 인식이 됐었다.
각각의 속성에 특화된 각성자 팀을 꾸려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생의 경험 덕에 최적화된 공략법을 아는 우리에겐 2인이면 충분했다.
칼바람의 전갈.
열화의 암살자.
전격의 독수리.
다양한 형태의 속성 특화 몬스터가 나타났지만, 내가 대응하는 방식은 한결같았다.
‘딱 한 놈만 확실하게 붙잡아서 다른 놈을 팬다.’
이 대전제 하나면 충분했고, 그렇게 우리 일행의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들은 빠르게 죽어 나갔다.
확실히 공략이 오랫동안 제대로 되지 않은 던전답게 차원 에너지가 충만했다.
그래서인지 쓰러지는 녀석들마다 줄줄이 상급 차원석, 그러니까 1억 원 가치의 돌을 뱉어 댔다.
무아지경에 빠져서 열심히 패는 데만 집중하며, 전진하고 또 전진했더니.
속성형 몬스터들이 나타나는 구간인 A포인트를 전부 클리어했을 때.
나와 마리나에게 각각 500억 원어치에 가까운 차원석이 전리품으로 가득 쌓여 있었다.
“도대체 이게 얼마야……! 신화 씨, 차원석 획득만으로도 잭팟이 터졌는데 기쁘지 않아요?”
B포인트로 향하기에 앞서, 획득한 차원석 상태를 점검하는 마리나의 표정은 행복 그 자체였다.
마치 돈다발 속에 묻힌 사람을 보는 것처럼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차원석을 끌어안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이미 은퇴 자금은 충분히 챙겼으니까요. 이 돈으로는 장기 국채 같은 거나 사 놔야겠네요. 묻어 놓고 잊어버리게.”
“헐……. 돈에 초탈했나 보군요?”
“마음만 먹으면 돈 버는 게 숨 쉬는 것보다도 더 쉬우니까요. 하하, 너무 재수 없는 발언인가?”
“재수 없긴 한데, 맞는 말이라서 부정은 못 하겠네요. 크큭.”
마리나가 웃었다.
회귀 초창기만 해도 억 단위의 돈만 모여도 정말 쾌재를 부를 정도로 행복해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필요한 돈을 확보하고 채워서인지 돈 자체에는 크게 미련이 없었다.
문제는 ‘힘’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앞으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돈이 조가 아니라 경 단위로 있어도 하등 도움이 안 되었다. 어차피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니까.
“솔직히 공략법에 놀랐어요. 이렇게 아무런 피해 없이 A포인트를 지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거든요.”
“애초에 인원수로 밀어붙이는 던전이 아니게 설계됐다면 그 안에서 방법을 고민해 봐야죠.”
“맞는…… 말이에요.”
“각성자의 고질병이에요. 스펙으로 부족한 것 같으면 그저 머릿수로 무식하게 밀어붙이는 거. 그 멍청함에 휘말린 각성자들이 의미 없이 개죽음을 당하곤 하죠.”
“……할 말이 없네요.”
이것이 각성자들 세계에서 팽배한 ‘화력 만능주의’의 폐단이다.
전략과 전술의 문제를 점검하기보다는 인원으로 눌러 대미지로 찍어 누르는 공격을 선호한다.
2010년의 대격변 이후로 10년이 지났지만, 솔직히 각성자들의 수준은 여전히 낮았다.
이들이 좀 더 똘똘하고 날카롭게 전략 전술을 면밀히 세워 가며 던전을 공략하는 시기는.
앞으로 10년은 족히 지나야 올 것이다.
또한 니콜라스가 회귀하지 않으면…….
녀석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각성자 세계의 ‘르네상스’도 시작되지 않을지 모르고.
“자, 속도를 좀 더 내죠. 이 던전은 구간 자체는 짧으니 바르가스까지 금방 갈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