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65)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65화(264/300)
제 265화
-일라이저 님, 이번에 던전에서 매우 흥미로운 존재와 마주하게 됐습니다.
“흥미로운 존재?”
-아케로 님을 아십니까? 아케로 플랑크스 님.
“어찌 모를 수 있나. 존경해 마지않는 레체로 님의 심복이자 교단의 자랑스러운 일원 아닌가.”
점잖게 얘기를 하고는 있지만, 일라이저는 아케로를 전혀 좋게 보고 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레체로의 ‘총애’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부하의 입장에서 볼 때.
일라이저와 아케로는 끊임없는 경쟁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레체로도 이런 점을 이용해서 아케로와 일라이저에게 번갈아 힘을 실어 주는 것으로 서로 견제를 하도록 만들었다.
즉, 레크나트 교단에 명실상부한 2인자를 만들지 않고, 애매한 3인자만 둘 만든 셈이다.
어쨌든 신화의 입에서 아케로의 얘기가 나오자, 일라이저의 눈빛도 더욱 깊어졌다.
-아케로 님을 추적했습니다.
“뭐라고? 어떻게 추적했다는 말인가? 그럼 나스 대륙에서 지구로 넘어왔다는 얘기인가?”
-그렇습니다.
“허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레체로 님께서 말씀을 하셨거늘.”
일라이저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구에서의 일은 앞서서 파견한 사도 다섯에게 전부 맡긴다고 말했던 레체로의 말씀은 거짓이었던 건가?
돌아가는 정황으로만 봐서는 레체로가 ‘항상’ 그랬듯 또 뒤통수를 친 것 같았다.
신화의 말이 맞는다면, 아케로는 전적으로 사도의 견제를 위해 보내졌을 것이다.
한데 그런 아케로를 신화는 어떻게 만난 것일까?
-던전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아케로 님이 던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신화가 슬슬 운을 뗐다.
추종자의 포지션에 맞춰 아케로에 대해 ‘님’이라는 호칭을 꼬박꼬박 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던전을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렇습니다. 마치 어떤 제약이 걸려 있는 듯했습니다. 다만 몸에서 방출되는 강대한 힘을 느낄 때마다 정신이 아찔해지더군요.
“정신이 아찔했다……. 설마 현혹술이나 섭혼술 따위를 전개했던 것인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함부로 흉내 낼 수 없었던 고위급의 흑마법이었습니다.
신화는 거짓으로 점철된 얘기만을 술술 늘어놨다.
실상은 진즉에 죽어 싸늘한 시체로 아공간에 던져져 있지만.
신화는 장동식에게서 들은 이야기에 자신의 전생 지식을 합쳐 그럴듯한 얘기를 만들어 냈다.
이 정도의 정보를 알 수 있는 것은 펜타나즈 같은 사도들밖에 없었기 때문에.
신화가 하는 말은 일라이저에게 의심 없이, 순도 100%의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신화는 일라이저와 통화 하는 내내, 구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적당히 화두만 던져 주고 일라이저가 알아서 상상하도록 유도했다.
이 화법은 상대가 자신을 신뢰하고 있을 때 사용하는 화법으로, 전생에 니콜라스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자신은 핵심을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은 채, 상대가 넘겨짚고 술술 비밀을 토해 내게 만드는 방법.
“레체로 님은 아케로 님이 이번 원정에 참여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었다. 그래서 내게 흑암의 목걸이까지 주셨거늘…….”
-높으신 분의 뜻을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저는 보고 들은 대로만 말씀드릴 뿐입니다.”
“그럼 지금 아케로 님이 던전 안에 갇혀 있고, 네가 아닌 사도를 직접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다만 초반 대화의 과정에서 사소한 충돌이 있었고, 이것을 손에 넣었습니다.
신화가 영상통화로 연결된 화면을 통해 보란 듯이 아케로의 의안을 보여 주었다.
사실상 확인 사살인 셈이었다.
지금까지 신화가 했던 말을 모두 거짓이라고 의심했더라도 이제는 사실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증거.
“그건…… 아케로 님이 늘 끼고 다니던 의안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저를 적으로 오인하신 탓에 대응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얻었습니다.
“큰 부상이신 것은 아니겠지?”
은근하게 묻는 일라이저의 목소리에서는 말과 전혀 다른 속내가 느껴졌다.
눈치 백단인 신화가 이것을 모를 리 없었고, 그래서 대화 도중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자신의 입술에 온통 일라이저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 ‘죄송합니다. 사실 큰 부상을 입으셨습니다.’라고 말해 주길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가벼운 부상 정도입니다.
“휴, 다행이군.”
다행이라 말하지만, 전혀 다행스럽지 않은 눈빛이 느껴졌다.
이 정도면 자신의 말을 충분히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화가 바로 운을 뗐다.
-아케로 님은 저와 같은 하급 추종자가 아닌 사도와 직접 대화를 하고 싶어 합니다.
게다가 부상을 입으셨다고 해서 제가 함부로 제압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고귀한 분이시죠.
그래서 주변의 눈을 피해서 일라이저 님께서 직접 접촉해 보심이 어떨까 싶습니다.
“그렇게 하지. 즉시 서둘러야겠군. 어느 던전인가?”
-하와이에 있는…….
신화가 마지막 미끼를 던졌다.
* * *
그 이후, 12시간이 흘렀다.
보통 던전의 라이선스를 요청하고 승인받기까지는 뭔가 특혜를 받는 관계자가 아니라면 최소 2일은 걸린다. 특혜를 받아도 1일 이상.
하지만 일라이저는 자신의 그룹이 가진 힘과 인맥을 최대한 적극적으로 활용했는지.
불과 6시간 만에 하와이에 있는 WSA 소유의 던전의 라이선스 발급을 끝마쳤다.
모든 것이 내가 생각한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내 계획에는 두 가지 대전제가 확실하게 깔려 있었다.
첫째, 일라이저는 내가 자신을 노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둘째, 일라이저는 내가 사도와 레체로에 대한 모든 것을 알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것이었다.
만약 이 두 가지 전제 중 하나라도 일라이저가 물음표를 갖고 있었다면?
그는 내 말을 단 한 마디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내가 이 전제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 내 말의 신뢰도가 대폭 높아진 것이다.
-일을 마무리 짓는 대로 부르도록 하지. 이후의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
용의주도한 일라이저는 아케로가 있다고 내가 ‘거짓’으로 말한 던전의 입장에 나를 배제시켰다.
그다운 선택이었다.
아케로에게서 어떤 정보를 추가로 얻어 내건 간에 나와는 확실하게 단절시키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나는 일찌감치 확보해 둔 CCTV 화면을 통해 – 약간의 불법이 있었지만, 악의는 없었다. – 일라이저 일행의 동향을 살폈다.
내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일라이저는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움직였고.
통화를 끝낸 지 12시간이 흐른 시점에는 이미 벨릭과 함께 그 던전 앞에 도착해 있었다.
화면 속에서.
던전에 들어간 사람은 단둘이었다.
던전 밖에 일라이저 그룹 소속의 각성자들 수십 명이 넘게 포진해 있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그만큼 누가 봐도 고위급 인물이 던전에 들어갔음을 확실히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출발해야겠군.”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르가스를 죽인 이후, 다시 쿨타임이 줄어든 공간 이동 버프의 재사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상황은 확실했다.
일라이저와 벨릭이 아케로가 있다고 거짓말을 한 던전에 단둘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부하들이 던전 외부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내게는 그 부하들의 시선을 따돌리고 기척을 느낄 수 없게 할 투명화와 블링크가 있다.
던전에 들어갈 때, 차원문의 색이 변한다거나 달리 반응하는 이펙트는 없기 때문에.
내가 몰래 들어간다고 해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원래 완벽하게 대비를 했다고 믿을수록 그만큼 경계는 허술해지는 법이다.
확실하다고 믿기에 그 이상으로 경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점을 노렸다.
우웅. 우웅. 우웅.
스페셜 슈트를 갖춰 입고.
황석철과 장동식의 손을 두 번이나 거쳐 흠집 없는 새 몸(?)으로 태어난 윌슨까지 챙긴 뒤.
나는 바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
목표는 단 하나.
일라이저뿐이다.
벨릭은 그의 옆에 있는 잔챙이일 뿐, 마음만 먹으면 녀석의 목숨은 마치 벌레처럼 거둬 가는 게 쉬웠다.
“후우.”
짧게 심호흡을 한 뒤.
나는 차원문 안으로 몸을 힘껏 들이밀었다. 이제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들 차례다.
* * *
그로부터 얼마 후.
대외적으로 알려진 대로라면 절대 들려서는 안 될 일라이저의 방에서 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분명 던전 공략에 들어갔다고 알려진 일라이저와 벨릭의 행보와 달리.
보란 듯이 던전이 아닌 집무실, 정확히는 일라이저 빌딩의 최상층 시크릿 에어리어에 있는 일라이저와 벨릭이었다.
“슬슬 보고가 올 때가 됐는데.”
“항상 느끼지만 마스터는 참으로 신중하시군요. 강신화 정도면 충분히 믿으실 줄 알았습니다.”
“매사에 조심할 것. 그 습관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 안 그러면 진즉에 죽었을 거다.”
“그렇긴 합니다만…….”
“그리고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던전을 아무 생각 없이 공략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일라이저가 힘주어 말했다.
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신과 벨릭으로 ‘위장’해서 보낸 간부의 보고였다.
적당히 얼굴의 느낌을 바꾸고.
평소에 즐겨 입는 복색을 입혀 보냈더니 영락없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바로 그때.
드르르륵.
연락이 왔다.
“일라이저다.”
-마스터. 우선 내부 확인을 어느 정도 마쳤습니다. 다만 한계가 있어 공략 진행 도중에 나왔습니다.
“많이 어려웠나?”
-아무래도 설계 자체가 SSS랭크급으로 된 던전이라 저희 실력으로는 무리였습니다.
“확보된 데이터는?”
-던전의 7할 이상 구간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몬스터 외에 불청객이 있거나 침입자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전 침입의 흔적이나 트랩은 없었나?”
-전혀 없었습니다. 탐지기를 두 번이나 돌려 가면서 이동했으니 확실합니다.
“알았다. 일단 대기하도록.”
-예.
핵심 내용만 담은 통화는 그렇게 순식간에 끝이 났다.
옆에서 대화를 들은 벨릭은 일라이저에게 살짝 푸념하듯이 말을 이어 갔다.
“마스터, 너무 조심하시는 것은 아닌지요? 강신화 정도면 믿어도 되는 아군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마스터에게 바짝 고개를 조아리지 않았습니까?”
“음……. 내가 너무 예민했나 보군. 그럼 본격적인 채비를 마치고 아케로를 만나러 가야겠다.”
일라이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신화의 말에 따르면, 아케로는 던전의 후반부 구간쯤에 있다고 했다.
간부의 실력으로는 닿을 수 없었지만, 자신의 실력으로는 아무 문제 없이 도착할 수 있는 구간이다.
어쨌든 ‘클린’한 것이 확인됐다.
신화가 혹시나, 천만 분에 하나라도 수작질을 해 둔 것은 아닐까 의심했던 것이 괜한 걱정이 됐다.
“아케로……. 네놈이 아는 모든 것을 알아내어 반드시 내 것으로 만들겠다.”
일라이저는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솔직히 말하면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케로만 잘 처리한다면.
레체로의 차기 후계자는 자신이 될 것이다. 그만큼 강한 확신이 일라이저에게 있었다.
* * *
한편 그 시각.
“정말……. 성별 전환은 볼 때마다 끔찍하군.”
짙은 스모키 화장을 한 ‘여자’가 엘리베이터의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엘리베이터는 일라이저 빌딩의 시크릿 에어리어로 갈 수 있게 설계된 특수 엘리베이터였다.
말투나 행동은 부정할 수 없는 신화의 것이지만, 외형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왼쪽 가슴에 달고 있는 명찰에는 전혀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키이나 로비>
키이나 로비.
바로 일라이저 그룹의 간부 중 한 명인 여자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