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66)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66화(265/300)
제 266화
애초부터 나는 하와이의 던전에 갈 생각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라이저의 성격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조심성은 전생에 직접 만난 적은 없어도 얘기를 들은 적은 많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오늘처럼 내부 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은 던전에는 ‘선발대’를 보내는 것이었다.
전생에도 이번과 같은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라이저는 늘 부하들을 먼저 던전에 보내곤 했다.
이유가 있기는 했다.
그때도 일라이저는 많은 길드의 견제를 받는 명실상부한 미국 각성자 세계의 최강자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꽤 많은 암살 시도가 있었지만, 일라이저는 특유의 신중함으로 잘 극복해 나갔다.
나와 일라이저가 추종자와 사도로서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우리 ‘팀 미스틱’의 일원처럼 목숨을 건 전우(戰友)라고 생각할 정도의 돈독한 관계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일라이저가 무조건 내 말의 진의를 의심하고 부하들을 먼저 보낼 것이라고 봤다.
단, 여기에는 노림수 하나가 더 들어갔다. 미끼로 쓸 던전의 수준을 높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라이저는 사전 탐색 과정에서 일라이저 그룹의 간부를 둘 보냈다.
전력 일부가 이탈한 셈.
용의주도한 일라이저답게 두 간부는 일라이저와 벨릭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내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면, 정말 깜빡 속았을 정도로 위장은 완벽했다.
나는 일라이저의 부하들이 던전에서 나오기를 기다렸고, 예상대로 그들은 밖으로 나와 어디론가 연락을 했다.
아마 일라이저에게 내부에 침입자나 함정의 흔적이 없으니 얼마든지 들어와도 된다고 한 것이겠지.
여기에 맞춰서 나는 공간 이동 버프를 이용해 미국으로 이동했고, 두 번째 노림수를 가져갔다.
그것은 일라이저 그룹에 소속되어 있는 간부 중 한 명의 모습으로 위장하는 것이었다.
그게 바로 키이나 로비였다.
일라이저 그룹의 간부이면서 동시에 그룹의 ‘더러운 청소부’라고 불리는 여자.
키이나는 그룹에서 손을 더럽히는 일을 주로 맡고 있는 암흑가의 행동 대장이었다. 악명도 높았다.
일라이저가 온갖 고상하고 깨끗한 척할 수 있게 해 주는 인물이기도 했다.
손에 피를 묻히는 모든 일을 키이나가 전담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매우 활동적이다.
간부이지만 행동반경이 넓었고, 그래서 주변 경계나 보안이 허술하기도 했다.
길드 안팎에서 신경을 쓴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매번 밀착 경호를 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키이나를 노렸다.
사전에 파악해 둔 그녀의 숙소에 몰래 잠입하여 은밀히 기습했고…… 확실하게 그녀를 제압했다.
아마 오늘 이후로 이틀 정도는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비명을 지르거나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확실하게 묶어 뒀으니까.
게다가 ‘전략적 위장’으로 그녀의 모습을 흉내 내면서 외부를 지키던 부하들에게 방해하지 말라는 지시까지 해 두었으니.
누군가가 귀찮게 그녀를 찾는 일도 없을 터였다.
어쨌든 그렇게 키이나의 모습으로 위장한 나는 대담하게 일라이저 빌딩으로 찾아왔다.
‘이게 옷을 입은 건지, 찢은 건지, 아니면 벗고 다니는 건지…….’
나는 키이나가 오늘 입을 옷으로 정하고 옷걸이에 걸어 뒀던 스타일 그대로 입고 나온 상태였다.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가리는 탱크톱에 허벅지의 반의반도 못 가릴 것 같은 핫팬츠까지.
거기에다 스타킹인지 그물인지 헷갈릴 정도로 구멍이 뻥뻥 뚫려 있는 검은 스타킹까지.
남자인 내가 입을 일도 없지만, 반대로 연인이나 이성이 입어 주기를 바랄 일도 없는 그런 의상이었다.
오늘의 일은 반드시 나 혼자만의 기억으로 깊이 묻어 버릴 생각이었다.
아무리 ‘위장’을 위해서 입었다고 해도 누군가가 내가 이런 복장을 입었던 것을 알게 된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오셨습니까, 키이나 님.”
“고생 많아. 아차, 마스터 카드를 두고 왔는데……. 자기 귀찮을 일 만들기 싫으니 갔다 올까?”
일라이저 빌딩의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보안 시설이 있었다.
몇 개의 중간 검색대를 지나야 하는데, 그때마다 마스터 카드를 제시하거나 지문 인식을 한다.
이 경우를 대비해서 나는 일부러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왔다. 마치 쇼핑을 하고 온 것처럼.
그리고 능청스럽게 경비 요원에게 운을 뗀 것이다. 카드를 가져올까 하고.
내가 일개 길드원이었다면 가져오라고 했을 것이다. 경비 요원의 임무라는 것이 그런 거니까.
하지만 내가 위장한 모습은 바로 간부 중 한 명인 키이나의 모습이 아니던가?
그러니 경비 요원들의 반응은 달랐다.
“아닙니다. 제가 찍어 드리겠습니다. 다음에는 꼭 잊지 마시고 챙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미안해, 자기. 항상 고생 많아. 내가 매번 지켜보는 것 알지? 정말 고마워.”
“별말씀을요. 다음부터는 잘 부탁드립니다.”
“응, 고마워!”
쪽!
검은 립스틱을 칠한 입술로 볼에 입을 맞추자, 경비 요원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물론 다 계산된 행동이다.
실제로 키이나는 이러한 행동을 즐겨 하니까. 일반적인 여자의 틀로 가둬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
이윽고 VIP 전용 엘리베이터에 도착한 나는 역시나 앞을 지키고 있는 요원과 마주쳤다.
이 엘리베이터는 다른 층계에서는 전혀 멈추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로지 1층에서 시크릿 에어리어라고 부르는 최상층으로 직통으로 연결되는 특수한 엘리베이터다.
당연한 얘기지만, 간부급 인사가 아니면 그 어떤 사람도 감히 탑승할 수 없다.
예전에 들은 소문에 따르면, 실수로 여기에 탔던 그룹의 일원 한 명이 일라이저에게 무참히 죽음을 당했다고 들었다.
감히 주인의 공간에 함부로 들어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실제로 확인된 소문은 아니지만, 사도로서 그의 프라이드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미안해. 내가 마스터 카드를 깜빡하고 차에 두고 왔어.”
“괜찮습니다. 키이나 님을 저희 길드에서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역시나 경비 요원이 프리패스처럼 나를 대신해서 마스터 카드를 찍어 주었다.
애초에 ‘전략적 위장’처럼 누군가의 모습을 완벽하게 베끼는 능력은 매우 희귀하기 때문이다.
즉,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보통 위장이 얼굴만 본떠서 위장을 하거나 왜곡된 시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인데.
이런 형태의 위장은 이미 검색대를 지나는 과정에서 다 걸러지게 되어 있었다.
일라이저 그룹이 동네 뒷골목 패거리도 아니고, 그 정도 보안은 확실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전략적 위장 버프처럼 아예 그 사람의 모든 요소를 통째로 베낄 수 있는 능력은 간파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VVIP가 매우 까다로운 적이 될 수도 있었는데, 멍청하게도 나를 직접 찾아와 목숨을 잃었다.
그놈이 저승에서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면, 몇 번이고 속이 뒤집어졌을 것이다.
‘VVIP 놈은 이런 비위 상하는 위장을 수시로 했다는 얘기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한편으로는 VVIP와 엮이게 되었던 시크릿 던전의 인연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때, 녀석이 내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사도 추적에 꽤나 애를 먹었을 것이다.
니콜라스가 당연히 의도했을 리는 없겠지만, 시크릿 던전의 존재 자체가 엄청난 전환점이 된 셈이었다.
‘일단 나, 즉 강신화의 존재를 인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라이저와 벨릭도 모를 테고.’
상황은 좋았다.
전략적 위장과 공간 이동 버프로 한국에서 미국으로 훌쩍 넘어온 내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다.
세상에 사건이 내 얼굴과 함께 시끌벅적하게 알려질 일은 없다는 뜻이다.
나는 대단히 사적이고 비밀스럽게 일라이저를 처리하고 싶었다.
내 기준으로야 일라이저가 ‘죽일 놈’이 맞지만, 세상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에 일라이저를 강신화의 이름으로 죽이면, 바로 각성자 특별법에 걸리게 된다.
이유 없는 살인은 무조건 사형이다.
그리고 법정에서 회귀자로서 미래의 악이 될 사도 리카넬라 – 일라이저 – 를 처치했다는 식의 변호는…… 결코 통하지 않겠지.
그래서 귀찮은 과정을 생략하고자 이렇게 위장을 한 것이다.
[시크릿 에어리어에 도착했습니다. 그룹 간부가 아닌 일원의 출입을 엄금합니다.]이윽고 안내 멘트가 들렸다.
일반적인 엘리베이터 안내 멘트와 달리 매우 낮게 깔린 차가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장 공포 영화에 삽입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싸늘한 목소리.
“…….”
엘리베이트 안은 정적으로 가득했다.
최상층 전체를 채운 것은 짙은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반짝이고 있는 붉은 선이 전부였다.
붉은 선은 벽과 이동하는 바닥의 구분선을 가르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특히 벽은 입구부터 끝까지 전부 거울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울에 무한대로 반사되는 내부의 전경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키이나 로비>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우측 방 앞에 내가 위장한 그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키이나의 사무실이라는 얘기다.
다만 지금 그녀의 사무실에 내가 들어가서 할 일은 없다. 무엇보다 인식할 수단도 없고.
한데 바로 그때.
따각따각.
시크릿 에어리어에서도 가장 멀리 위치한 깊숙한 곳에서 구두 굽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일라이저와 벨릭이었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이쪽으로 이동해 오면서 계속 몇 번이고 홍채 인식을 거쳤다.
별도의 보안 절차도 있는 듯했지만, 홍채 인식으로 트랩을 비활성화하는 것도 보였다.
‘이 구역 전체가 함정 그 자체군. 과연 치밀해.’
나는 일라이저의 준비성에 다시금 놀랐다.
예상은 했지만, 비밀 공간 내에서도 보안을 이중, 삼중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매번 인증 절차가 귀찮을 텐데 –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 일라이저는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일라이저를 죽이고, 대전이에 대한 해결책만 마련하면……. 그다음은 레체로가 끝이다.’
나는 다시금 목표 대상을 환기했다.
앞으로 두 놈 남았다.
두 놈이 내 삶에서 영원히 사라지면, 동시에 은퇴의 삶이 내게 영원히 찾아오게 된다.
“…….”
나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일라이저와 벨릭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애초에 예의라든가 격식 따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라이저이니까 이 정도의 모습은 이상할 것 없겠지.
꿀꺽-
마른침이 절로 삼켜졌다.
자신 있게 왔다고 해서 긴장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니까.
“아케로 님을 만나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왜 던전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살려 두고 싶지는 않군.”
일라이저와 벨릭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지막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청각이 극대화된 내게는 잘 들리는 것이다.
아케로는 일라이저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반드시 흥미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걸려들었다.
따각. 따각. 따각.
50m, 30m, 15m, 5m…….
어느덧 나와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두 걸음 안팎까지 좁혀졌다.
벨릭은 여전히 해바라기처럼 일라이저를 보고 있었고, 일라이저는 뭔가 생각난 것이 있는지 스마트폰을 꺼냈다.
다음 순간.
“하아압!”
기합을 내지르며 지금까지 숨겨 왔던 독기를 순식간에 뿜어냈다.
선수필승!
오늘 셋 중에 둘은 반드시 죽어 없어질 것이다.
그것이 내 목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