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67)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67화(266/300)
제 267화
다채로운 상황이 1초,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짧은 시간에 순식간에 벌어졌다.
신화는 키이나 로비의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두 사람의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노리고.
거칠게 일격을 날렸다.
선수필승이라는 생각에 시작부터 마력의 절반 이상을 활용하는 폭권의 일격이었다.
벨릭은 처음부터 목표물이 아니었다. 신화의 실력으로 벨릭 ‘따위’는 언제든지 죽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일라이저의 왼쪽, 즉 심장을 노렸다. 꽤 고급스러운 슈트를 입고 있을 것이라는 점도 계산했다.
그것까지 모두 고려해서 확실하게 일격을 먹일 수 있는 파괴력을 담아 공격을 가한 것이다.
‘아니……?’
하지만 시작부터 신화의 노림수는 빗나갔다.
매우 정확하고 예리한 노림수였지만, 일라이저의 대응 역시 무척 빨랐던 것이다.
뻐엉!
일라이저는 그 즉시 벨릭의 몸을 붙잡아 그의 몸을 방패로 사용했다.
신화의 공격 경로를 완벽히 차단하는 ‘인간 방패’로 쓴 것이다.
그 결과.
뻐어엉……!
벨릭의 몸이 풍선처럼 터졌다.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죽음의 징조나 이유 따위를 눈치챌 틈조차 없었던 완벽한 즉사였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후드드득!
사방으로 흩날리는 벨릭의 ‘살점’을 향해 일라이저가 현란하게 손끝을 움직였다.
‘어지간히 독한 놈일 것이라고 생각은 했다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신화가 재빠르게 뒤로 물러나면서 상황을 살폈다.
발화 재능을 가진 일라이저의 노림수를 즉시 간파했기 때문이다.
화르륵! 화륵! 화르르르륵!
흩뿌려진 벨릭의 살점들이 전부 거대한 불덩이가 되어 여기저기서 폭발했다.
만약 신화가 아무 생각 없이 벨릭의 피와 살점을 뒤집어쓰고 있었다면 큰 화상을 입었을 공격이었다.
그렇게 방금까지 일라이저의 영원한 심복으로서 충성을 바친 벨릭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
신화와 일라이저 사이에는 침묵과 고요, 그리고 서로를 마주 보는 살기가 동시에 감돌았다.
‘정말 순식간이다. 발화 재능이 어마무시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예상한 것 이상으로 반응이 빠르군. 게다가 나름의 강화 능력을 가진 벨릭의 육체가 이렇게 터질 줄은.’
둘은 서로의 실력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다.
사실 신화의 입장에서야 EX랭크가 틀림없는 일라이저의 실력을 재차 확인한 쪽에 가까웠지만.
문제는 일라이저가 신화에게 느낀 이질감이었다.
신화의 실력이 날로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 그의 실력은 예상을 한참 뛰어넘었다.
벨릭이 단번에 이 지경이 되려면 신화의 실력을 아무리 낮게 잡아도 SSS랭크는 되어야 했다.
그것도 아주 낮게 잡아서다.
느슨하게 기준을 적용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EX랭크일 가능성도 있다는 소리였다.
‘사도인 나도 뼈를 깎는 수련과 아티팩트, 전리품의 독식으로 여기까지 올라왔다. 심지어 나는 각성자로서의 삶도 A랭크부터 시작했지. 그런데 F랭크부터 시작한 추종자 강신화가 단 세 달 만에 EX랭크 각성자가 됐다고?’
일라이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대가 강신화라는 것은 방금 벨릭을 강타한 일격으로 알아차렸다. 어떻게 위장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완벽한 위장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비상식과 비현실적 상황을 경험해 온 일라이저였지만, 이번만큼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웠다.
도대체 강신화는 어떤 존재이기에 자신보다 더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것일까?
사전에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강신화가 F랭크 짐꾼이었다는 사실은 절대 거짓이 아니었다.
일부러 그런 행세를 하고 다닌 것이 아니라 수차례의 공적 검증에서 F 판정을 받았다는 얘기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일라이저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말이 된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으니 계속 부인하기도 어려웠다.
“강신화, 잔재주가 있군. 어떻게 키이나의 얼굴과 외형, 심지어 성별까지 위장하고 날 노리려고 했던 거지?”
“잔재주라고 하기엔 너무 완벽하지 않아? 사실상 키이나 그 자체인데 말이야.”
“역겹군.”
“그건 나랑 생각이 같네. 나도 남장여자, 여장남자 둘 다 싫어해. 여우 짓은 내 취향이 아냐.”
“원래대로 돌아오지 그러나?”
“뭐, 딱히 불편하진 않아서.”
신화가 어깨를 으쓱였다.
언뜻 보이는 속살과 외형 속에는 스페셜 슈트가 숨어 있다.
즉, 다시 말해서 겉으로 보이는 이 모습도 또 하나의 껍데기라는 뜻이다.
한편, 일라이저가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지금까지의 상황을 반추(反芻)하고 있는 듯하자.
신화가 말을 이었다.
“나를 신뢰하는 듯하면서 속으로는 의심하고 있었다니 속상하네. 우리의 믿음이 이 정도밖에 안 됐나?”
“신중함은 나의 오래된 무기다.”
“맞아. 넌 매우 신중하지. 그래서 늘 한 번은 꼬아서 생각을 하는 타입이고.”
“그런 내 성향을 읽고 또 한 번 생각을 비틀어 버릴 줄은 상상도 못 했군. 이래서야 어디 도망치기도 어렵고, 지원을 요청하기도 어렵겠어.”
일라이저가 이마를 툭 쳤다.
확실히 신화에게 한 방 먹은 느낌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있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장소에 있다.
그래서 더욱 역설적으로 지금은 안전하지 않았다.
빌딩 아래층으로부터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데다 이곳은 별도의 감시 시설도 없었기 때문이다.
시크릿 에어리어.
비밀 보안이 필요한 곳이기에 그 어떤 대화와 모습도 녹화, 녹음되지 않는 이곳은 암실(暗室) 그 자체였다.
“너도, 나도 물러설 곳은 없어. 일라이저.”
“이 정도로 과감하게 들어올 정도면 날 죽일 생각으로 온 것이겠지. 그렇지?”
“네 목숨이 필요해서 왔지. 그동안 마음에도 없는 네 뒤만 열심히 빠느라 정말 역겨웠고 더러웠을 뿐이다.”
“허허……. 얘기나 좀 들어 보자. 일개 추종자 따위가 감히 사도의 권위를 넘보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 아케로의 의안은 도대체 어떻게 얻은 것이고?”
“궁금하면 직접 알아내 보시든가. 뭘 이렇게 공짜로 얻어먹으려 하시나?”
“강신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안하지. 너와 내가 확실한 전략적인 파트너가 된다면 말이다.”
“무서울 게 없다?”
“맞아. 벨릭? 어차피 내게는 발톱의 때만도 못한 존재였을 뿐이다. 녀석의 이용 가치는 아까처럼 방패로 쓴 것이 그나마 가장 최고로 잘 이용한 것이다.”
“나는 좀 쓸 만한가 보지?”
“너는 나를 상대로 오늘과 같은 기회를 만들지 않았나? 게다가 두려워하지도 않지.”
“그래서?”
“뭐, 그 정도로 내가 너를 마음에 들어 할 조건은 충분히 갖췄다는 얘기다.”
“야, 이 개XX야. 내가 네 아랫것이냐? 뭘 마음에 들어 하고 말고를 네가 결정해? 내가 네 강아지야?”
“…….”
“보자 보자 하니까 별 미친X을 다 보겠네. 입 그만 X 놀리고 덤벼라. 이거 완전 또라X네.”
신화는 욕지거리와 함께 자신의 속마음을 거침없이 털어 냈다.
신화는 이 자리에 자신의 승리만을 생각하고 왔는데, 일라이저 역시 자신의 패배를 염두에 두지 않는 듯했다.
도대체 저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 어디서 솟아나는 걸까? 신화는 구역감이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나?”
“응. 앞서 이놈들도 비슷한 말을 지껄였지만, 끝이 다 이렇게 됐거든.”
신화가 손을 휘저어 아공간에 있는 세 사람의 시신을 내보였다.
그러자 사도이자 각성자였던 세 사람의 싸늘한 시신이 일라이저의 눈앞에 펼쳐졌다.
“……이건 좀 의외군.”
일라이저의 눈빛이 흔들렸다.
죽었기에 역설적으로 진하게 느껴지는 암흑 기가 그들이 사도였음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살아 있을 때는 암흑 기를 적절히 통제하면서 외부에서 감지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지만.
죽으면 억제 작용이 불가능해 고스란히 체내의 마나 서클이 암흑 기를 풀풀 뿜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사람에게 느껴지는 암흑 기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도와 똑같은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아일라 같은 경우에는 서로 존재를 확실히 알고 있는 사도였으니 따로 검증할 필요도 없었다.
“일라이저, 길게 구시렁댈 것 없다. 궁금한 게 있으면 죽이기 전에 물어보면 되지, 안 그래?”
“심플 이즈 베스트, 이 말인가?”
“혀 놀리는 시간도 아깝단 얘기다.”
신화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도발은 진심이었다.
다음 순간.
일라이저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목 안쪽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흑암의 목걸이!’
그것은 바로 말로만 듣던 레체로의 총애의 상징이었다.
동시에 니콜라스가 전달했던 중요 메시지의 증거이기도 했다.
흑암의 목걸이가 있어야만 ‘진짜 레체로’를 판별해 낼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 목걸이야말로 레체로 사냥에 필요한 1순위 재료인 셈이었다.
판독기 역할을 한다는 것 외에는 별도의 지식이 없었던 목걸이.
그래서인지 신화가 살짝 멈칫하는 찰나, 일라이저가 목걸이의 힘을 활성화시켰다.
샤아아.
이윽고 흑마법사가 건넨 목걸이라고 하기에는 아이러니할 정도의 밝은 섬광이 신화와 일라이저를 감쌌다.
그리고 다시 주변의 환경이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
“무대를 바꿨군.”
“맞아.”
신화와 일라이저는 일라이저 빌딩의 시크릿 에어리어가 아닌, 칠흑 같은 어두운 사막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사막으로 잘 알려진 중동의 어느 국가에 있을 법한, 그런 사막의 밤 정경이었다.
사막은 신화가 전생에 수도 없이 경험한 전장이었다.
대재앙의 도래 당시, 전 세계 각지에서 싸웠으며 악조건은 일상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2045년부터 차원 에너지의 폭주로 지구 전체의 평균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사막화도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슬픈 일이었지만, 사막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노림수는 확실히 알겠군. 발화 재능과 건조한 공기는 최고의 시너지를 내니까.’
신화는 비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눅눅한 느낌이 제법 있었던 LA 대신 이곳 사막을 선택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게다가 발화 및 화염 재능 활용과 통제에 방해가 될 만한 장애물이 이 사막에는 없었다.
불길을 가로막거나, 혹은 시계 확보에 애를 먹을 만한 요소가 전혀 없는 셈이다.
“강신화, 여기가 어딘지 아나?”
일라이저의 목소리가 커졌다.
지켜보는 눈이 없다 보니 해방감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커진 목소리이기도 했다.
“딱 봐도 알겠네. 처형장인 거 같은데?”
신화가 주변을 둘러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멀지 않은 곳에 이미 백골이 된 시신이 꽤 보였다.
그중 일부는 해골만 따로 을씨년스럽게 굴러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발자국이 없는 것을 보면 대부분 오자마자 죽은 모양이었다. 혹은 모래바람이 많이 불었거나.
“맞아. 그리고 오늘의 사형수는 바로 너다.”
“하여간 겉으로만 점잖은 척하는 XX들이 속으로는 더럽다니까. 역시 사도는 사도야. 더러운 사도는 본질에서 벗어날 수 없어.”
“너는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강신화?”
“회귀자랑 사도가 같으냐?”
신화가 심드렁하게 답했다.
욱한 감정으로 내뱉은 비밀은 아니었다. 확실한 인과관계를 전달하기 위해 한 말이었다.
“회귀자라……. 네 능력은 미래시가 아니라 원래부터 미래를 다 알고 있는 회귀자였다?”
“그래. 너와 레체로가 어떤 개짓거리를 할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있는 회귀자지.”
“천기누설을 제대로 하는군.”
“어차피 죽을 놈 앞에서 내뱉는 말인데, 천기누설은 무슨 얼어 죽을. 지옥에 가서 누설하게?”
다음 순간.
신화의 말을 들은 일라이저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정말 네가 회귀자라면 힘을 더 키우지 않고 이 몸에게 도전한 것을 진심으로 후회하게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