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68)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68화(267/300)
제 268화
‘이번 전투만큼은 내가 가진 모든 버프와 기사회생의 기술들을 모조리 써야겠지.’
처음부터 내 생각은 확고했다.
그 어떤 것도 일라이저와의 전투에서 아껴서는 안 된다.
아끼다가 똥 되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이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 나중을 위해 안배를 할 때가 아니었다.
파앗!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라이저를 향해 초월 가속을 전개하며 쇄도하기 시작했다.
녀석과 거리를 벌릴수록 내게 불리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근접전에 특화되어 있으니까.
한데 바로 그때.
파칭!
일라이저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허공에 손을 움켜쥐는 시늉을 해 보였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다 하는 손짓이었지만, 그 제스처가 갖는 의미는 확실했다.
‘즉시 발화인가?’
생각을 길게 할 겨를이 없었다.
이미 그 시점에서 일라이저가 일으킨 ‘발화’가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발화가 일어나는 최초의 발화점이…….
‘시X, 내 몸이잖아?’
바로 내 몸속이라는 점이었다.
일반 각성자라면, 즉시 몸 안에서 불길이 치솟으며 그 자리에서 산 채로 불태워지게 될 것이다.
화형을 경험하기 위해 멀리 갈 필요가 없게 되는 셈이다. 이대로가 바로 화형 그 자체니까.
내가 기를 쓰고 속성의 꽃을 얻으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지금 때문이었다.
꾸드드드득.
빠르게 정신을 집중하면서 마력을 활용하기 시작하자, 몸 전체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서늘한 한밤중의 사막이 남극의 빙하 앞인 듯 느껴질 정도로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파츳. 파츳. 피시싯.
결빙 대응은 매우 적절했다.
체내에서 발화점을 찾으며 타오르려던 불길은 극도로 냉각된 몸에서 빠르게 소멸해 버렸다.
“호오?”
“후우.”
전신을 특정한 속성 형태로 유지하는 것은 몸에 엄청난 부담감을 안겨 준다.
내 몸이 다양한 재능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변화할 수 있는 개변형의 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천년만년 그 능력을 유지하고 있을 수는 없다. 나도 결국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건 사전 조사에서는 확인이 안 된 재능인데 말이야. 그새 또 업그레이드를 하셨군?”
“원래 소프트웨어는 주기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해 주는 게 좋지.”
“내 발화 재능을 보고도 살아남은 사람이 한 손에 꼽을 정도인데, 벌써 IN 5는 했는데?”
“칭찬 고맙게 듣지.”
일라이저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여전히 녀석은 자신만만해했고, 또한 여유가 넘쳤다. 그 오만함이 일라이저의 무기지만, 글쎄…….
난 반드시 녀석의 웃는 얼굴에 주먹을 시원하게 박아 넣을 작정이다.
그리고 영원히 웃지 못하게 입을 아래로 찢어 버리든 뭐든 하고 싶었다.
레체로에 앞서 저놈이야말로 나와 니콜라스의 미래를 망친 장본인이니까.
파앗!
다시금 쇄도했다.
무리를 해서라도 일라이저와 거리를 계속 좁혀야만 내가 그의 빈틈을 노릴 가능성이 많아지니까.
피싯. 피시싯.
이번에도 발화 시도가 있었지만, 내가 동선에 변주를 둔 덕분에 예측 발화가 무위로 돌아갔다.
역시 일라이저는 EX랭크의 각성자답게 모든 공격에 대한 대응 속도가 빨랐다.
‘좋아!’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다.
나는 바로 첫 번째 카드를 꺼내 들었다.
[태초의 힘을 활성화합니다.] [활성화 기간 : 1초] [남은 기간 : 4초]태초의 힘이었다.
그동안 충전된 것이 총 5초였고, 여기서 나는 1초의 시간을 끌어다 썼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짧아서 공격 한 번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시간이겠지만.
내게는 아니었다.
‘폭권 9장, 파붕권.’
동시에 폭권 9장도 전개했다.
전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력 전량을 소모하는 파격적인 공격 카드를 꺼낸 셈이다.
어차피 내게는 마력 회복의 수단이 여럿 있으니 이 정도 노림수는 충분히 쓸 만했다.
태초의 힘과 연계된 파붕권.
이 정도면 일라이저는 아니더라도 입고 있는 슈트를 순식간에 넝마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아아압!”
거친 기합과 함께 주먹을 내질렀다. 순간, 일라이저의 두 눈이 동그래지며 살짝 당황한 기색도 보였다.
허를 찔린 걸까?
나는 확신을 갖고 주먹을 내질렀다.
다음 순간.
뻐엉!
뭔가 터져도 시원하게 터져 나간 듯한 타격음이 사막 전체로 울려 퍼졌다.
개변과 강화를 거쳐 단단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주먹 전체가 얼얼하게 느껴질 일격이었다.
그런데.
“…….”
쿠구구구구.
내 주먹이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더불어 파붕권과 함께 쏟아 낸 기운이 벽을 따라 옆으로 흩어지면서 애꿎은 모래바람만 사방으로 만들어 내는 중이었다.
“방어는 공격보다 더 우선해야 할 마법사의 최우선 덕목이지. 내가 그렇게 허술할 것 같아?”
“제법이네.”
“그럼, 제법이지. 일라이저 그룹과 이 일라이저 로우가 그냥 만들어졌을 리 없잖아?”
나와 일라이저는 서로를 마주 본 채 멈춰 있는 듯했지만, 사실은 계속해서 서로에게 폭발적으로 마력을 쏟아 내는 중이었다.
이유인즉.
거대한 화염의 장벽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라이저도 끊임없이 마력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녀석이 만들어 낸 화염 장벽에 역으로 휘말려 불태워지지 않으려면 폭권의 기운으로 버텨 낼 필요가 있었다.
두 사람의 힘겨루기가 시작된 셈이다.
여기서 밀리는 쪽은 장벽이 깨지면서 아직 남아 있는 폭권의 기운을 그대로 뒤집어쓰거나.
반대로 폭권의 힘이 무너지면서 온몸이 불길에 휩싸이게 된다.
나는 대치 상황에서 주어진 약간의 시간 동안 여러 가지 노림수를 떠올리면서 반격의 수를 찾으려 애썼다.
생각에 부여한 절대 시간만큼 늘 그럴듯한 묘수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네 운을 테스트해 볼까?”
하지만 일라이저는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길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콰쾅! 쾅! 쾅!
다중 발화.
사방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일라이저의 주특기 중 하나로, 작은 불씨들을 원료로 삼아 다시금 폭발을 일으키는 것이다.
불씨들이 가까이 있을수록 서로 이어지면서 더 큰 화염을 불러일으키기에 위협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반경 20m 정도의 공간이 순식간에 발 디딜 틈도 없는 불지옥으로 변해 버렸다.
이 과정에 걸린 시간은 0.5초, 아니 그것보다도 훨씬 짧은 시간이 걸렸다.
순간, 거리를 다시 좁히기 위해서 블링크 링을 쓸까 싶었던 나는 바로 마음을 접었다.
‘마력 왜곡을 펼쳐 놨어. 레퍼토리 예측을 한다는 거겠지.’
일라이저의 노림수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역시 녀석은 신중했다. 그리고 예리했다.
잠깐이지만,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치면서 떨리는 마음을 깊이 새겨 두고 갔다.
그것은 지금껏 내 앞에서 속절없이 쓰러져 간 수준 미달의 사도들에게서 느낀 감정이 아니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났다는 생각.
바짝 긴장하지 않으면 회귀자로서의 삶이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끝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자극하는 특별한 감정이었다.
화르륵! 화륵!
달리 기름을 뿌린다거나 바람을 일으킨 것도 아닌데, 주변으로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마치 모래 자체가 불길의 원료가 된 듯 느껴질 정도였다.
“…….”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
나는 전투의 흐름을 끌어올리려던 생각을 접고, 일라이저처럼 ‘신중’하게 녀석의 움직임을 훑었다.
회귀자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꿰뚫고 있는 것은 아니다.
눈앞의 일라이저나 머지않아 마주하게 될 레체로처럼 대부분의 지식이 ‘공백’인 경우도 존재한다.
그때는 회귀자의 여유가 아니라 도전자의 신중함으로 싸워야 한다. 모르는 것이 존재하니까.
“나는 화염 그 자체다. 불은 나를 더 강하고 난폭하게 만들어 주지. 그리고 불길은 영원히 사그라들지 않고 내 곁을 호위한다.”
“인정하지 않을 순 없겠네.”
나는 불 위를 마치 스케이트를 타듯 쭉쭉 미끄러져 움직이는 일라이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불길은 일라이저가 부여하는 마력을 머금은 채 끊임없이 타올랐고, 그 불은 일라이저에게 계속해서 강한 힘을 제공했다.
‘이런 치트키를 쓰는 놈을 봤나. 하긴…… 내가 불평불만을 말할 자격은 없군.’
나는 마력을 아낌없이 펑펑 쓰는 녀석을 보며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려다가 그런 마음을 접었다.
나도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한 동력에 가까운 마력의 회복을 만든 상태니까.
‘놈의 노림수를 좀 더 봐야겠어. 내 쪽에서 패를 순식간에 너무 많이 노출했다.’
수비 자세를 취했다.
근접 공격이 필수인 내게는 반드시 피해야 할 포지션이지만, 지금은 접근전이 능사가 아니다.
일라이저에 대해서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았다. 이래서는 노림수가 안 나온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녀석은 기습적인 발화를 제외하면 일격에 죽일 필살기가 없어.’
이것은 확실했다.
내가 일라이저를 상대로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의 손에 죽지는 않을 것 같다고 확신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인내하자. 내가 먼저 녀석을 찾아왔다고 해서 전투까지 서둘러 끝내려고 할 필요는 없어.’
나는 복수심 혹은 원망이나 분노로 얼룩졌던 마음을 다잡고 평정심을 이끌어 냈다.
다만 한 가지 신경이 쓰이는 것은.
‘진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티팩트를 쓸어 담았나 보군. 미친놈은 확실하네.’
내 눈에 또렷하게 보이는 건 일라이저의 열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들이었다.
반지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그의 열 손가락은 모두 반지가 끼어져 있었다.
어떤 아티팩트인지 옵션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마력의 회복과 저장에 연관된 아티팩트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쉽지 않겠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세상은 넓고, 실력자는 많다.
일라이저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생각은 이랬다.
‘오늘이야말로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났다.’
길고 고단한 전투가 될 듯했다.
* * *
이후, 공방전이 계속됐다.
일라이저는 초반의 당당했던 기세가 무색하게 수비적으로 변한 신화의 대응에 처음에는 의구심을 가졌다.
신화의 호전성에 대해서는 이미 알려진 바가 많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의도된 전략인가 싶어 신중했던 일라이저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화가 자신의 ‘발화 재능’을 껄끄러워하는 것이 한눈에 보여서다.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발화는 투사체가 날아가는 형태가 아니라, 지정한 위치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현상이기에.
일라이저 스스로도 발화의 정확한 타이밍을 놓칠 때가 있을 정도로 제법 변수가 많은 공격이었다.
처음에는 몸 자체를 결빙하면서 대응하던 신화도 더 이상은 그 방법을 쓰지 않았다.
결빙 자체가 몸에 무리를 상당히 많이 주는 데다 기동성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기 때문이었다.
결빙을 한번 전개하고 나면, 일라이저가 작정하고 발화를 노릴 때마다 수비만 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후우.”
신화가 뜨거운 숨을 토해 냈다.
그리고 이번에는 결빙이 아닌 ‘액체화’ 재능을 이용해서 자신의 발화에 대응하려는 것이 보였다.
나름대로의 변주를 꾀하는 신화의 모습이 일라이저의 눈에는 이제 안쓰럽게 보일 정도였다.
그 순간.
‘네가 무적(無敵)의 재능이라고 생각할 수단에 대해 내가 연구를 안 했을 것 같으냐?’
일라이저의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가 걸렸다. 시작부터 치밀하게 설계한 노림수에 그가 걸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