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69)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69화(268/300)
제 269화
고수들끼리의 싸움은 끊임없는 노림수의 교환과 수 싸움의 연속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단 한 번의 실수, 혹은 단 한 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생에 정말 많은 전투를 경험해 본 내게는 이 말이 매번 적용되지는 않았다.
의외로 많은 ‘고수’들이 단순하고도 우직한 방법에 당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매번 한 번, 두 번을 꼬아서 생각하거나 상대에게 노림수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간단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자꾸 비틀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니콜라스는 ‘실력자의 딜레마’라고 불렀다.
너무나도 아는 것이 많고, 경험한 것이 많기에 단순하게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전에 꼼꼼하게 조사한 일라이저의 성격과 행보는 바로 ‘실력자의 딜레마’에 빠지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지나치게 신중했다.
그리고 신중함에 압도적인 실력이 더해지니, 지금까지 그를 제대로 대적할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일라이저가 날린 ‘화염의 창’을 내가 처음으로 ‘액체화 재능’으로 대응하려는 순간.
일라이저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처음부터 설계한 것이다.
까다로우면서도 빠른 화염의 창을 날리면, 내가 액체화로 간단하게 회피를 시도할 것이라는 사실을.
좋은 노림수였다.
내가 아무 생각이 없었다면, 모든 상황이 일라이저의 손바닥 위에 놓인 듯 그의 뜻대로 흘러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나는 완벽하게 변주를 주었다.
일라이저가 한 수, 아니 두 수를 내다봤어도 전혀 예측할 수 없을 카드를 하나 꺼내 든 것이다.
[불멸의 투지 – 강인한 인내] [본인의 의지로 발동, 5초간의 무적 상태를 얻을 수 있습니다.모든 대미지와 피해에 완전 면역이 되며, 어떠한 방해에도 굴하지 않은 굳건한 상태가 됩니다.
쿨타임 7일]
일전에 주천호를 죽이고 얻은 불멸의 투지 버프였다.
쿨타임이 긴 버프지만, 그만큼 값을 확실하게 하는 녀석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제대로 활용을 해 볼 기회가 없었는데, 드디어 쓸 만한 기회가 왔다.
푸욱!
“윽!”
화염의 창이 박혔다.
불멸의 투지 버프가 발동된 시점은 액체화가 된 내 몸에 화염의 창이 박힌 ‘이후’였다.
즉, 적어도 일라이저에게는 공격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게 판을 짠 것이다.
그리고.
“크하하! 머저리 같은 X!”
득의양양한 일라이저의 목소리와 함께, 녀석이 양손을 하나로 모으며 주문을 외는 것이 보였다.
발화다.
내 복부에 꽂은 화염의 창을 원료로 삼아 대규모의 불길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확신의 함정.’
나는 속으로 니콜라스가 내게 귀에 못이 박히게 말했던 수많은 전략 중 하나를 떠올렸다.
바로 확신의 함정이다.
자신이 완벽하다고 믿고, 또한 전략전술이 완전무결하다고 믿을 때 발생하는 함정이다.
실패할 경우를 전혀 예상하지 않기에 아무런 대비도 못 하는 것이다.
대비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심력과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고, 또 매우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중한 사람일수록 더 심한데, 장고 끝에 내린 확신이기 때문에 더욱 맹신하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일라이저는 확신의 함정에 빠졌다.
화르르륵!
발화로 일으킨 불길이 내 전신을 휘감는 순간, 일라이저는 미소를 지었다.
양손으로는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있었고, 흥미로운 광경을 보듯 내 모습을 살폈다.
아무런 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 나는 절규하면서 녹아 갔을 것이다.
앞서 일라이저의 앞에서 목숨을 잃었을 수많은 희생자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불멸의 투지는 버프가 허용하는 5초의 시간 동안 나로 하여금 모든 것을 초탈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파팟!
블링크 링을 이용해, 순식간에 일라이저의 코앞으로 붙었다.
지금껏 세심하게 잘 유지되고 있었던 마력의 간섭이 순간적으로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승자의 혼미(昏迷)랄까.
일라이저도 결국 인간이었다.
승리에 대한 확신은 기어이 작은 빈틈을 만들어 냈고, 나는 그것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아……?”
“신장개업, 폭권 10장이다.”
예상치 못한 접근에 당황한 일라이저가 멈칫하며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 그 짧은 순간에.
우우우웅!
나는 그동안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었던 폭권 10장, 무의(無意)권을 전개했다.
무의권.
그 어떤 묘리나 뜻, 생각도 담겨서는 안 된다고 묵철이 강조했던 폭권의 끝이다.
총 10장으로 이루어진 폭권의 최종장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단순한 권법이었다.
무의권을 전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예리한 노림수나 복잡한 생각, 치밀한 상황 설계가 아니었다.
그저 주먹 그 자체에 온 정신을 집중하는 것뿐이었다.
무의권을 전개하는 순간만큼은 내가 마치 주먹이 된 듯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생각하고 행동하기는 정말 어려운…… 그래서 폭권의 모든 정수가 담겼다고도 불리는 최종장이기도 했다.
묵철에게 마지막 장인 무의권을 전수받기 위해 몇 년을 고생했는지 모른다.
9장까지 배우는 데 3년 남짓한 시간이 걸렸는데, 10장 하나 전수받는 데 무려 9년이나 걸렸다.
그 정도로 무공의 극의와 묘리는 심오한 것이었고, 노력파인 내게는 많은 시간을 요구했다.
다음 순간!
뻐어엉!
마치 풍선이 터지는 듯한 공간의 폭발음이 들리면서 일라이저의 몸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았다.
순간 전신이 축 늘어지면서 날아가는 일라이저의 모습은 지금껏 본 적 없는 나약한 모습이었다.
탓!
그사이에도 나름의 노림수라고 생각했는지, 내 머릿속과 사타구니 사이에서 발화를 일으켰다.
불멸의 투지가 없었다면 머리가 터져 나가고 소위 ‘고자’가 되었을 쓸 만한 노림수였지만.
[불멸의 투지 – 강인한 인내] [잔여 지속 시간 : 2.69 초]아직 불멸의 투지를 활용할 시간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1초라는 짧은 시간마저도 쪼개어서 쓰는 최상위 각성자의 세계에서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다.
‘마력 소모가 극심하군.’
무의권의 위력은 어마어마했지만, 그만큼 마력의 소모도 엄청났다.
애초에 무의권은 얼마만큼 마력을 소모한다고 정해진 무공이 아니기도 했다.
똑같은 무의권이어도 마력의 사용량이 5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었고, 위력도 마찬가지.
그리고 방금의 무의권은 내가 가진 마력 전체와 심장을 통해 재회복한 마력 전량을 썼다.
비율로 보자면, 총량의 200%를 갖다 쓴 셈이다.
[마력 과충전] [체내에 마력을 저장할 특이 수단을 갖고 있을 경우, 해당 수단의 효율을 3배 증가시킵니다.]물론 믿는 구석은 있었다.
바르가스에게서 얻은 마력 과충전 버프. 이 녀석 덕분에 나는 총량의 400%를 활용할 수 있다.
게다가 윌슨에게도 마력 100%가 추가로 저장되어 있으니, 아직 ‘보조 배터리’는 든든하게 있는 셈이다.
파아앗!
‘한 번 당한 레퍼토리에 두 번 당하지는 않겠지.’
나는 잠시 정신을 잃었는지 미동조차 없는 일라이저를 향해, 초월 가속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며 빠르게 따라붙었다.
방금 온 힘을 다해 내게 노림수를 던짐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은 듯했다.
블랙아웃(Black Out).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는 한 번 놓치면 다시는 오지 않는다. 확신할 수 있다.
처업!
나는 곧바로 일라이저에게 패럴라이즈 네크리스를 붙였다.
혹시나 녀석이 깨어나더라도 바로 대응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다.
“끄으…….”
역시 EX랭크 각성자답게 블랙아웃의 시간이 길진 않았지만 안타깝게도 타이밍은 나빴다.
“끄극.”
짧은 신음과 함께 꼿꼿이 굳어 버린 일라이저의 몸이 느껴졌다.
그리고.
쿠웅! 쿵! 쿵!
지면에 떨어진 일라이저의 몸이 사막의 모래 위를 따라 깊고 굵은 선을 만들어 냈다.
나는 녀석의 배 위에 올라타 있었다.
언뜻 본다면 오해하기 딱 좋은 자세이기는 했지만, 여긴 그 누구의 시선도 없는 곳이다.
퍼억! 퍼억! 퍽퍽퍽퍽퍽!
나는 격투기 경기에서 선수들이 눕힌 상대에게 가감 없이 주먹을 내리꽂듯 주먹을 내리쳤다.
그때마다 일라이저의 얼굴이 으깨지고 녀석의 몸이 들썩이며, 걸쭉한 침과 피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기계적인 분쇄 행위에 가까웠다.
내 머릿속에는 일라이저라는 엄청난 괴물을 어떻게 ‘해체’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만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투웅! 퉁!
무의식 속에서 대응하는 훈련을 했었던 것인지 일라이저의 얼굴을 감싸는 역장이 생겼다.
나처럼 슈트로 얼굴을 보호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마력을 응축시킨 역장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은 특수 훈련을 받은 각성자만 가능한, 고급 기술로 밀어내는 힘, 즉 척력을 가진 역장을 만들어 공격을 밀어내는 식이었다.
그 순간.
팟!
일라이저가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내게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
“쳇.”
아쉬운 추임새와 함께 후방으로 도약하면서 나는 일라이저에게서 잠시 벗어났다.
일라이저로 하여금 불멸의 투지를 활용한 값은 충분히 치르게 했다.
일라이저의 얼굴은 곤죽이 되어 있었고, 슈트가 미처 보호하지 못한 왼손가락도 모두 부러뜨렸다.
손가락은 미세한 발화의 컨트롤을 돕는 핵심 수단이기 때문에 앞으로 공격의 정확도가 많이 떨어질 터다.
“……비참하게 당했군. 쿨럭.”
몸을 부르르 떨며, 마른기침을 토해 내는 일라이저의 모습을 보니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잔뜩 콧대를 세우며 오만방자하게 굴던 녀석에게 한 방 먹여 줬기 때문일까?
흔들리는 눈빛과 두려움이 묻어나는 일라이저의 모습에서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이질감도 느껴졌다.
“지금의 네가 그냥 만들어진 실력이 아니듯이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일 뿐이야.”
“아직 안 끝났다, 강신화.”
“그래. 보여 줄 수 있는 재롱은 다 보여 줘야 죽어도 후회가 없겠지, 안 그래?”
일부러 일라이저를 자극했다.
감정적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는 지금, 일라이저로 하여금 중요한 패를 까 보이게 하는 것이 좋다.
보통 감정적으로 내던지는 패는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이 능력까지는 쓰지 않으려고 했다만…….”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악당의 단골 멘트인데?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일라이저가 자신의 왼쪽 가슴을 어루만지더니 이내 격렬한 변화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바로.
화르르륵!
화마(火魔), 그 자체로 변한 일라이저의 모습이었다.
방금까지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하던 일라이저가 순식간에 거대한 불길로 변해 버렸다.
불길 자체는 일라이저의 형상을 하고는 있었지만, 모든 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불과 몸이 하나가 된 것처럼 전신의 모든 부위에는 확실한 구분도, 뚜렷한 외곽선도 없었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 그 자체로 변할 줄이야.
그렇다면 나도 지금부터는 속성의 꽃으로 얻은 속성의 능력을 극대화해 사용할 수밖에 없다.
“영원히 잠들게 해 주마, 강신화.”
일라이저가 냉랭한 목소리로 내게 경고를 날렸다.
나 역시 전투에 적합한 형태로 몸을 바꾸었다.
일전에 바르가스를 죽이고 나서 한 번 테스트를 해 본 적이 있었던 몸의 속성 변화였다.
“불과 얼음의 찬미.”
다음 순간!
내 왼손에서는 붉은 화염의 불길이 피어올랐고.
오른손에서는 푸른 빙결의 냉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을 대비해 왔던 모든 준비가 끝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