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72)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72화(271/300)
제 272화
그 외에도 내가 전리품으로 손에 넣은 것은 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흑암의 목걸이와 금빛 테두리가 둘러진 가죽 수첩이었다.
수첩의 존재는 의외였다.
전생에도 이런 수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표지부터 영어가 아니라 나스 대륙어로 적혀 있는 것이 특징이었고.
내용 역시 지구의 사람은 절대 알아볼 수 없을 나스 대륙어로 적혀 있었다.
물론 나에게는 하나부터 열까지 해석이 가능한 내용의 연속이었다.
“……자기 나름의 한 방으로 들고 있었던 건가? 그러기에는 너무 자세한데?”
수첩에 상세히 적힌 내용은 레체로의 수호대로 불리는 ‘레크나트 나이츠’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들의 치명적인 약점이나 조직의 문제에 대해서 장문으로 적은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왜 이런 내용을 적어 두었는가 싶었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기억은 늘 그렇지만 휘발성이기 때문이다. 분명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어느 순간이 되면 흔적 없이 사라지곤 한다.
일라이저의 입장에선 만약을 위한 대비 수단 하나 정도는 갖고 있고 싶었을 것이다.
나중에 레체로가 자신을 버리는 그런 그림도 상정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그게 일라이저의 안배였든 무엇이었든 간에 당사자는 죽어 없어졌다.
덕분에 내 입장에선 생각지도 않은 추가 정보를 얻게 된 셈.
나스 대륙으로 넘어가게 된다면, 요긴하게 쓸 수 있을 듯했다. 교단의 주요 시설에 대해서도 제법 많은 정보가 담겨 있었기에.
“이제 돌아가 볼까.”
사막에서의 볼일은 끝났다.
나는 바로 흑암의 목걸이를 움켜쥐고,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이동에 앞서, 내가 이동할 공간의 주변 환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직 이동하지 않았지만, 이동할 곳의 현재를 미리 볼 수 있게 해 주는 기능이 있는 듯했다.
이런 기능이 있다면, 흑암의 목걸이는 공간 이동을 할 때 매우 유용하게 쓸 수 있을 터다.
물론 공간 이동 버프와는 달리, 지정한 한 곳에 대해서만 이번처럼 왕복할 수 있는 듯하지만.
샤아아.
이윽고 한 줄기 검은 광채가 나를 감싸더니 이내 주변 공간이 전부 시크릿 에어리어로 바뀌었다.
조용했다.
이 공간의 주인이었던 일라이저는 죽었고, 시체의 일부가 아공간에 담긴 상태.
그리고 항상 일라이저의 곁에서 실과 바늘처럼 따랐던 벨릭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아직 위장은 그대로네.’
나는 꿋꿋하게 잘 유지되고 있는 전략적 위장의 상태를 살피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다만 격전의 영향 때문인지 옷은 거의 넝마가 되다시피 했다.
이대로 되돌아 나간다면, 다름 아닌 엄청난 노출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아공간에 일찌감치 챙겨 왔던 키이나 로비의 다른 옷으로 바꿔 입었다.
하얀 블라우스에 검은 스커트, 그리고 구두까지. 전형적인 오피스 룩. 여기에 뿔테 안경까지 더해 주면 그럴듯하다.
“…….”
나는 마지막으로 시크릿 에어리어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다시 이곳에 올 일은 없을 것이다. 일라이저를 잃은 일라이저 그룹은 혼란을 겪겠지만, 나름의 방법으로 다시 균형을 잡을 것이다.
일라이저 로우가 ‘사도’라는 사실만 제외하면, 그는 꽤 괜찮은 수완가였기 때문이다.
제법 많은 인재들이 여전히 길드 내에 있는 만큼 대안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또각. 또각.
나는 을씨년스러운 찬바람이 부는 공간을 뒤로한 채,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꽤 난장판이 되어 있었지만, 상황의 심각성을 알릴 법한 그 어떤 경보도 없었다.
일라이저는 모든 대화를 비밀로 하기 위해 ‘침묵의 공간’으로 만든 것이 자신에게 독이 될 줄 알았을까?
몰랐을 것이다.
위이이잉!
얼마 후, VIP 전용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나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당하게 요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일라이저 빌딩을 나왔다.
그리고 유유히 공간 이동 버프를 활용했던 장소로 돌아갔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는 열차를 잘 활용했으니 이제는 거꾸로 되돌아갈 차례다.
그로부터 2시간 후.
인적이 매우 드문 슬럼가에 도착한 나는 한국에 돌아가기에 앞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각성자 관련 뉴스 속보를 확인했다.
지역은 미국으로 설정했다.
워낙 각성자와 관련된 사건 사고와 소식이 많다 보니 보통 검색자의 출신 국가 뉴스만 보여 주기 때문이다.
“방금 전, 일라이저 그룹의 수장인 일라이저 로우와 벨릭 올렌스 씨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현장에 출동한 각성자 협회의 초동 수사 결과에 따르면, 간부 전용 공간인 시크릿 에어리어에서 뭔가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라이저 로우 씨와 벨릭 올렌스 씨의 것으로 보이는 유품이 이미 확인된 상태입니다. 단, 추가적인 정밀 감식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내가 너무 악취미인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현장에 일라이저가 죽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려 주기 위해, 녀석의 얼굴 반을 남겨 뒀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반으로 자른 것은 아니고, 죽고 난 이후에 누적된 충격 탓인지 저절로 쪼개진 상태였다.
뭐…… 죄책감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설령 이게 업보가 되어 벌을 받게 된다면, 얼마든지 받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놈을 살려 두어서 죄 없는 사람들이 죽고 미래가 끝도 없는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꼬라지를 보느니!
차라리 내가 모든 업보를 다 뒤집어쓰고 지옥 불에 타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일라이저한테서는 한 조각의 연민조차 느끼지 못했다.
“이번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는 일라이저 그룹의 간부 중 하나인 키이나 로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키이나 로비는 ‘더러운 청소부’라는 별칭으로 악명이 높았으며, 몇 가지 살인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아 당국의 수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미국 각성자 협회, USA는 지금 이 순간부터 총력을 기울여 그녀를 긴급 수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현재 USA의 최우선 지명 수배 대상은 키이나 로비입니다.”
“차도살인까지…… 완벽하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키이나 로비도 그간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미국 각성자 특별법상 사형은 불가피했다.
언젠가 지옥에 갈 그녀에게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서 급행열차를 타는 티켓을 건네줬을 뿐이다.
“이젠 사도 문제는 다 끝났네. 장동식에게 얽힌 대전이 문제만 해결하면, 더 이상 사도로 머리 아플 일은 없겠어.”
후우-!
절로 한숨이 나왔다.
후련함이 섞인 한숨이다.
넘을 수 없는 장벽처럼 느꼈던 일라이저를 훌쩍 뛰어넘은 이 느낌, 누가 알 수 있을까?
뿌듯했다.
내 옆에 니콜라스 녀석이 있다면, 정말 잘했다면서 그 귀한 ‘엄지 척’이라도 해 줬을 텐데.
아쉽지만 우리 둘은 전혀 다른 시간대에서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니콜라스, 곧 보자.”
시크릿 던전이 다시 열리면, 나는 그곳에서 니콜라스가 남긴 흔적들과 다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빨리 녀석을 보고 싶다.
이 지긋지긋한 악연을 빨리 끝내야 나도 모든 것을 잊고 홀가분하게 은퇴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서 시크릿 던전이 리셋됐으면 좋겠는데, 왜 이리 소식이 더딘 거냐, 니콜라스.”
시크릿 던전에 관한 마리나와의 메시지 대화가 마음에 걸렸다.
왠지…… 그냥 직감일 뿐이지만, 기다림이 생각보다 길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정말 말 그대로의 직감이었다.
* * *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5월의 끝자락에 다다라 6월의 시작을 바라보게 될 즈음.
한국에서는 때 이른 장마가 시작됐다. 대개 6월 중순쯤 시작되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빨리 찾아온 장마였다.
서울은 며칠 계속된 장대비 때문에 곳곳에서 침수 사고가 속출하는 중이었다.
각성자 시대의 도래와 함께 새로운 문명의 시대가 열린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건만.
대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은 여전히 무력했다.
“답답하네.”
신화는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길어진 기다림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꿉꿉한 날씨도 한몫했다.
괜한 걱정에 직접 오사카에 다녀와 보기도 했지만, 시크릿 던전은 여전히 ‘리셋 중’이었다.
EX랭크급 던전도 리셋에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물론 시크릿 던전 자체가 평범한 던전이 아니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다림이 너무 길었다.
“별일 아니면 좋겠는데……. 니콜라스, 다 된 밥에 코 빠뜨리지 마라, 진짜. 그러면 가만 안 둬!”
신화가 마음에도 없는 신경질을 냈다. 언성을 높였지만, 사실은 걱정이 한가득했다.
별일 없었으면 싶었다.
단지 준비할 것이 많아 재회가 길어지고 있는 것뿐이라고…… 꿈에서라도 말해 줬으면 했다.
‘그래도 그동안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어.’
신화가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우선 지난 한 달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훈련과 수련을 거듭하며 재능 계발을 해 왔다.
빈틈은 악착같이 메우고 장점은 극대화하기 위해 백방으로 연구하고 노력했다.
아울러 더미 던전 몇 곳을 더 찾아냈고, 거기서 얻은 극상급 차원석은 전부 스페셜 슈트 제작에 썼다.
원래의 계획은 스페셜 슈트를 시중에 고가에 파는 것이었지만, 신화는 이 계획을 백지화했다.
레체로와의 전투에서 얼마나 많은 슈트가 필요할지 모르는 만큼, 전부 예비로 보관해 두기로 한 것이다.
대마법사의 마법은 어떤 마법을 선택하건 간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다.
신화가 전생에 경험한 마법 중 ‘메테오’ 같은 경우는 정말 운석구가 현실에 강림하는 식이었다.
이런 운석구는 제아무리 온몸이 강철보다도 더 단단한 신화라고 한들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이럴 때, 조금이나마 안전하게 몸을 지켜 낼 가능성을 높여 주는 것이 바로 슈트다.
그래서 슈트를 허투루 팔지 않을 생각이었다. 게다가 돈이 궁하지도 않았고.
매일 꾸준히 제작하는 마력 포션을 위시한 각종 제작품 – 식별 안경, 강화 포션 등등 – 덕분에.
신화의 잔고는 많지 않은 씀씀이에 반비례해서 폭발적으로 늘어만 가고 있는 중이었다.
‘몸 상태는 최고다.’
자신 있게 자평했다.
그간 디엔트 농장에서 얻은 다양한 식물 혼합 주스도 꾸준히 먹어 온 덕분이었다.
덩달아 매일 ‘건강 주스’를 챙겨 먹은 팀 미스틱의 동료들 역시 최고의 컨디션인 것은 마찬가지.
특히 최지혁, 한소준, 윤별이는 최근 양화 길드, KSA와 협력을 할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와 있었다.
세 사람의 뛰어난 실력을 알아본 양화 길드, KSA에서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당연히 팀의 리더인 신화에게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있었고, 신화는 흔쾌히 동의했다.
시크릿 던전의 문제만 제외하면 모든 것이 탄탄대로였다.
한데 바로 그때.
드르르륵. 드르륵.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장동식이었다.
“여보세요?”
-준비가 다 끝났어. 오늘이면 어떤 형태로든 판가름이 날 것 같다. 끝이 보여.
“정말이야?”
-네 도움이 좀 필요해. 와 줄 수 있나?
“바로 가야지. 금방 갈게!”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드디어 디데이다.
샤미에게 걸린 레체로의 저주를 풀고, 그녀에게 원래의 몸을 되찾을 수 있게 만들어 줄……!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날이 되기 직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