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74)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74화(273/300)
제 274화
“이게 바로 기적이구나.”
순간, 눈물을 글썽인 것은 비단 샤미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만감이 교차해 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물론 감정에 휩쓸려서 샤미에게 입혀 줘야 할 롱코트를 홀랑 까먹지는 않았다!
급하게 손에 잡히는 대로 챙겨 온 탓에 그럴듯한 차림새는 되지 못했다.
남자인 내가 집에 원피스를 둘 일도 없었고, 샤워 가운이나 배스 타월도 없었기 때문이다.
환절기에 입으려고 예전에 사 뒀던 트렌치코트가 전부였는데, 다행히 샤미와 기장이 얼추 맞았다.
“일단 단추를 잘 여며 놓고 임시로 입고 있어. 아직 마트 열려 있으니까 내가 금방 속옷이랑 옷 대충 사 올게.”
“옷……. 정말 오랜만에 입어 보는 느낌이야.”
“그렇지? 하기야 매일 배나 까뒤집고 다녔으니…….”
“신화!”
“하하. 정말 잘됐다. 드디어 저주가 풀렸어. 망할 레체로 자식의 저주가.”
나는 샤미를 한 번 더 꼭 끌어안아 주었다.
내 키가 189cm로 절대 작지가 않은데, 샤미와 제법 눈높이가 맞는다.
어림짐작으로 측정해 보니 최소 174cm는 되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거의 모델 수준이다!
어쩐지 내 사이즈에 맞춘 트렌치코트가 제법 잘 어울리더라니……. 샤미는 장신이었다.
내 곁에 함께 있으면 앙증맞을 정도로 작아 보였던 진보미나 윤별이, 마리나를 자주 본 탓인지.
샤미가 곁에 서 있는 그림이 무척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녀 역시 자신의 몸 하나하나가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장동식, 괜찮아?”
“괜찮아. 아까 토한 피는 크게 신경 쓸 것 없다.”
“그래도 푹 쉬는 게 좋을 듯한데…….”
“당연히 쉬기는 쉬어야지. 며칠 쉬면 낫는다는 뜻이다. 크게 마음 쓸 것 없어.”
장동식이 땀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었다.
나는 마지막에 숟가락을 얹었을 뿐, 이번 일은 장동식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고생해 주었다.
고마웠다.
물론 그의 출신이 ‘사도’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감정을 가져도 되나 싶을 때도 있긴 하다.
어쨌든 그는 사도니까.
앞서 저승으로 줄줄이 보내 버린 다른 사도처럼 대해야 하지 않나 싶을 때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니콜라스의 부탁도 있었고, 나 역시도 장동식의 필요성을 크게 느꼈기에.
이내 생각을 고쳤다.
게다가 장동식은 자신의 신념을 따르다 리베인에게 죽을 뻔한 적도 있었던 만큼.
그의 진심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 마음은 진짜일 것이다.
“정말…… 정말 감사해요, 카스론 님. 신화만큼이나 카스론 님께 신세를 많이 졌어요.”
“아닙니다, 공주님. 여전히 고개를 들 자격이 없는 더러운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아니에요. 그렇게 자책하지 마세요. 그러기엔 우리가 서로를 이해한 시간이 길잖아요.”
고개 숙인 장동식을 꼭 안아 주는 샤미의 모습에서 적의는 전혀 묻어나지 않았다.
장동식 역시도 그녀를 공주라는 호칭으로 부르면서 깍듯하게 예를 갖췄다.
“앞으로도 저주에 걸린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제 힘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카스론 님의 곁에서 저도 전력으로 돕겠어요. 정말 감사해요.”
“그럼…… 다시 뵙죠.”
“나가게?”
“잠시 바람도 쐴 겸. 둘만의 공간에 불청객이 오래 있을 수는 없잖아.”
“있어도 되는데.”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지 그래. 공주님과 나눌 이야기도 많을 테니, 난 신경 쓰지 마.”
“정말 괜찮은 거지?”
“드라이브나 하면서 소희와 맛있는 야식도 먹고 원기나 보충할 생각이다.”
“그럼 내일 보자고. 레체로에 대한 건으로 얘기할 게 있으니까.”
“자료는 거의 정리가 끝났으니 타이밍은 나쁘지 않군. 일단 알겠어. 내일 연락 줘.”
장동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작은 방에 들러 다른 동물들과 한 번씩 인사를 나눈 뒤 빠르게 집을 나섰다.
“…….”
“…….”
이윽고 집에는 나와 샤미만 남았다.
이렇게 단둘이 마주 보고 있었던 적은 예전에도 많았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 보는 지금은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금발에 벽안.
붉게 물든 입술에 코끝의 점.
그리고 서양인의 특징이라고도 볼 수 있는 깊은 눈매와 갸름한 턱선까지.
지금 곧바로 패션쇼에서 워킹을 해도 영락없는 모델로 볼 것 같은 그런 외모였다.
“제대로 된 사람의 눈으로 보니까 정말 잘생겼네, 신화.”
“이제 알았어?”
“아니, 원래 알고 있었어.”
샤미가 신기한 듯 손가락 끝으로 내 눈가부터 볼, 턱을 지나 목선까지 쓸어내렸다.
성인 남녀의 이런 모습은 충분히 섹슈얼하게 보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샤미는 몰라도 나는 완벽하리만치 평온했다.
뭐랄까. 샤미는 내게 어떤 성적인 자극을 주기보다 마치 친동생을 보는 듯한 아련한 느낌이었다.
샤미도 그런 내 눈빛을 읽었는지 그러다가 피식 웃고는 나를 한 번 더 포옹해 주었다.
나 역시 그녀를 꼭 껴안아 주며, 다시 한번 격려했다.
“이제 원래의 몸을 되찾았으니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해 보자. 그리고 훗날 나스 대륙과 연결되면 너를 꼭 그곳에 데려갈게.”
“갈 수 있을까?”
“응. 5년만 기다리면.”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전생에 니콜라스가 했던 말에 따르면, 2025년 나스 대륙, 2030년 무강 대륙과의 연결은 피할 수 없는 필연(必然)이라고 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가 사는 세계에 내정되어 있던 대사건 중 하나라는 것이다.
레체로 같은 악인이 죽고 안 죽고는 전혀 관계없는 굵직한 사건의 대맥(大脈)인 셈이다.
“신화.”
“응?”
“여전히 저 방에서 소곤거리는 동물들의 말이 들리는 것으로 봐서는 능력이 사라지진 않았나 봐.”
“아, 대화가 가능하겠어?”
“응. 지금처럼.”
무언가 웅얼대는 목소리가 샤미의 입에서 들려왔다. 분명 인간의 언어는 아니었다.
“신기한데?”
“예전부터 꾸준히 생각해 왔어. 내가 신화에게 받은 만큼 보답하려면…….”
“응. 편하게 말해 줘.”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더 찾아야 될 것 같아. 그러고 싶어. 아무 죄도 없이 나스 대륙에서 추방되어 지구에서 떠도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겠어?”
“참담하겠지.”
“꼭 도와주고 싶어. 부족한 내 힘으로라도 보듬어 주고 싶고 길을 찾아주고 싶어. 카스론 님도 물심양면으로 돕겠다고 하셨어.”
장동식과 꽤 많이 속 깊은 얘기를 나눴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좋았다.
그리고 샤미가 하고자 하는 일들이 내가 막연하게나마 하고 싶었던 일과 같았다.
물론 은퇴라는 명분 아래 귀찮음으로 미뤄 둔 일이기도 했지만.
샤미가 대신해 준다면 내가 아쉬울 것은 없었다. 게다가 장동식도 알아서 돕는다고 하잖은가?
“일단…… 신화, 나 목욕부터 좀 해도 될까? 너무…… 너무나 하고 싶었어.”
“왕국의 공주님 같은 목욕은 힘들 텐데?”
“괜찮아. 그냥 따뜻한 물속에서 조용히 생각을 다듬을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그래. 네가 입을 옷도 좀 사 와야 하고 시간이 필요하니까. 천천히 씻고 있어. 쓰는 법은 알지?”
“알지. 신화 몰래 이것저것 다 만져 보고 사고도 쳐 봐서 알아.”
“사…… 고?”
“헷.”
샤미가 머리를 배배 꼬며, 이상한 의미를 담은 듯한 윙크와 함께 욕실로 향했다.
뭐지, 아무리 봐도 집 안은 멀쩡한데……. 뭔가 사고를 쳐 놓고 완전 범죄로 바꿔 놓은 모양이다.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이제 샤미는 자신의 삶을 빠르게 되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나는 옆에서 그녀를 도울 것이다.
또 은퇴를 해도 종종 그녀의 안부를 챙기고, 나스 대륙과 연결되면 그녀를 돌려보낼 것이다.
어차피 그때가 되면 지구와 나스 대륙을 오가는 일은 해외여행만큼이나 손쉬운 일이 될 테니까.
초반에 질서가 잡히기 전까지의 약간의 단절만 제외하면, 교류에 크게 문제될 일도 없었다.
* * *
안전 자택을 나오자마자, 쏜살같이 집 근처의 대형 마트로 달려간 나는 닥치는 대로 옷을 샀다.
샤미에게는 민망한 얘기지만, 그녀의 알몸을 살짝 봤을 때…… 이미 사이즈 계산은 다 됐다.
그래서 그녀의 치수에 맞게 속옷과 티셔츠를 넉넉하게 샀고.
함께 소파에 누워 홈쇼핑 채널을 가끔 볼 때마다 샤미가 꼭 갖고 싶다고 했었던!
스키니진도 몇 벌 샀다.
마침 마트 옆에 유명 브랜드 L매장이 있어 종류별로 구매하는 것은 손쉬웠다.
마지막으로 젊은 남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캐릭터인 ‘라이안’의 잠옷까지!
준비는 완벽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를 몰고 나갔었던 나는 잠시의 교통 체증이 주는 여유 속에서 생각에 잠겼다.
“지금 이대로라면 시크릿 던전의 리셋보다 러시아 대격변이 더 빨리 일어날 수도 있겠어.”
최근 내 생각은 2020년 6월로 예정된 대사건인 러시아 대격변에 집중되어 있었다.
내심 유럽-미국 각성자 협회의 일처럼 러시아 대격변도 ‘없던’ 일이 되지 않을까 살짝 기대했었다.
아무리 피해를 최소화할 복안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일은 반드시 희생자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해외 각성자 뉴스입니다. 최근 러시아의 시베리아 일대에서는 야생동물들이 때 아닌 남하를 거듭하고 있어 소란을 빚고 있습니다.
러시아 각성자 협회는 세간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지진설’, ‘대폭발설’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민간 연구소에서 과도한 차원 에너지 폭주를 경고하고 있는 만큼.
향후의 추이에 그 어느 때보다도 이목이 쏠려 있습니다.”
라디오나 언론 매체를 통해 간간이 들려오는 러시아 쪽의 소식은 내 기대를 접게 만들고 있었다.
이미 대격변의 전조 증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전생에도 이 전조를 러시아 각성자 협회는 부정했고, 결국 아무런 대비 없이 재앙을 맞이했다.
사실 러시아 대격변은 죽은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크나큰 재앙이 된 것이 맞지만…….
모두 다 피해를 본 것은 아니었다.
대격변과 동시에 등장한 수많은 몬스터들이 남긴 차원석과 아티팩트의 양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괜히 러시아 대격변이 각성자의 역사에서 ‘제2의 번영기’이라고 불렸던 게 아닌 셈이다.
부활의 꽃과 같은 희귀한 꽃들이 대거 등장한 것도 이때다.
신의 축복이라고 불리는 수준급의 아티팩트 25개가 등장한 것도 바로 이때였고.
물론 훗날 이 아티팩트들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각성자들의 손에 줄줄이 들어가게 된다.
‘달리 꼭 욕심이 나는 아티팩트는 없어. 어차피 필요한 건 대부분 가졌고.’
꼭 갖고 싶은 아티팩트는 따로 없었다. 대신 꽃은 있었다.
바로 부활의 꽃이다.
전생에 레체로가 우리 나인 로드를 상대할 때 몇 번이고 되살아나 끔찍한 악몽을 안겨 줬던 꽃.
현생에서는 내게 회심의 일격을 가할 묘수를 만들어 주었던 감사한 변수이기도 하다.
레체로는 악독하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부모도 제물로 삼아서 얼마든지 나와 함께 자폭시킬 수도 있는 놈이다.
수많은 인명을 거리낌 없이 희생시킬 수 있는, 상상을 초월한 악랄함을 지녔기에.
보험이 될 수 있는 부활의 꽃은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러시아 대격변 현장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부활의 꽃은 꼭 챙겨야겠어. 원래 인해전술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니까.”
끝까지 만반의 준비를 다할 생각이었다.
레체로에게 목숨을 잃을 것 같아서 부활의 꽃을 챙겨 두려는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사소한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미래와 연결될 수 있음을 알기에.
일말의 여지조차 남겨 두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피와 땀을 흘려 가며 고생하고 있을 니콜라스를 위해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