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76)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76화(275/300)
제 276화
러시아 대격변은 현실이 됐다.
전생에서 그 소식 하나만으로도 모든 사람이 패닉에 가까운 혼란에 빠졌었다.
재난이란 그런 것이다.
닥치기 전까지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다가 그것이 현실이 되면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져 버린다.
실제로 전생에서 일어났던 러시아 대격변은 각성자도 각성자이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낳았다.
이는 전조 현상이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무시하고 안일하게 대응했던 러시아 각성자 협회, RSA의 무능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까 RSA가 안일했다기보다 다분히 의도적이었다는 느낌이다.
이 사건 이후에 러시아 각성자 세계는 프라우다의 질서 아래 통합되었기 때문이다.
프라우다는 반(反)프라우다 연합의 길드를 모조리 쓸어버린 후 광폭적인 행보를 걷게 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후 프라우다가 정부의 요직에 친 프라우다 세력을 배치하고, 완벽하게 장악을 했다는 뜻이다. 어쩌면…… 이런 움직임은 미리 다 준비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후우, 6월 맞아? 여긴 왜 이렇게 추운 거지?”
한편 나는 모스크바에 일찌감치 와 있었다.
이하성을 통해서 러시아 대격변에 대한 경고를 했고, 이것이 현실이 되자 RSA가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물론 나는 RSA의 지휘를 받는 일개 대원이 아닌, 작전권을 자체적으로 부여받은 ‘개인’이었다.
큰 틀에서는 그들의 지시를 따를 수도 있지만 꼭 따라야 할 의무는 없는 상태였다.
일종의 1인 용병이랄까. 그 비유가 딱 맞는 포지션이었다.
“평년 기온보다 10도나 낮은 이상 한파로 고생한다고 하더니 진짜로 춥네.”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나왔다. 평년 6월 기온은 10도라는데, 지금은 영하가 되기 직전이었다.
물론 이 한파 역시 대격변의 전조 현상이었던 셈이다.
“오셨군요? 어떤 분이신지는 너무 잘 알지만 그래도 절차를 위해 확인차 여쭙습니다. 강신화 씨?”
“음……?”
현장에서 나를 반긴 것은 RSA에서 파견을 나온 요원이었다.
그럴 필요 없이 단독으로 활동하겠다고 말했는데, RSA에서는 사람을 꼭 붙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한데 반가운 얼굴이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얼굴. 나의 옛 동료였다.
‘이오시프 카라치.’
전생에 나인 로드의 동료였고, 러시아 국적을 가졌던 동료. 러시아인 특유의 딱딱했던 영어도 기억난다.
이오시프 카라치는 원래 RSA의 유능한 요원이었지만, 프라우다가 러시아의 패권을 장악한 이후.
변절과 타락의 유혹을 끊임없이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내부 고발자가 되었으며, 결국 암살 대상 1호가 됐다. 매사 능청스럽게 위기를 넘기는 녀석도 인간 쓰레기들 앞에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던 모양.
어쨌든 그때, 동아줄을 내려 준 것이 전생의 나와 니콜라스였다. 나인 로드의 동료로 영입한 것이다.
‘멸살의 철편’이라는 채찍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이오시프는 철저하게 완력을 극단적으로 활용하는 각성자였다.
그가 가진 재능은 암흑 기 또는 악 성향을 지닌 적을 탐지하여 내면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악 성향을 가진 적에게 그가 가진 멸살의 철편은 무조건 100%의 대미지를 추가했다.
그것만으로도 악의 화신이나 다름없는 나스 대륙의 레체로와 그 일파가 얼마나 고전했을지 능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실제로 레체로와의 전쟁 당시, 레크나트 교단의 흑마법사들은 이오시프를 무척이나 두려워했다.
멸살의 철편에 맞거나 죽는다면 영혼이 소멸해 영원히 지옥에 갇힌다는 소문까지 더해지면서였다.
“안녕하십니까? RSA 모스크바 지부에서 나온 이오시프 카라치라고 합니다. 강신화 씨를 수행하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반갑지는 않으시겠지만요.”
“정확히 말씀을 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수행입니까, 감시입니까?”
동갑내기 이오시프의 자글자글한 중년의 얼굴이 아닌, 파릇파릇한 얼굴을 보니 내심 반가웠다.
하지만 그뿐이다.
내가 녀석에게 느끼는 반가움을 안타깝게도 녀석은 경험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나는 반가움보다는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인 마인드로 그를 대할 수밖에 없었다.
“수행입니다. 저는 보조를 위해 나왔습니다. 러시아 지리가 익숙지 않으실 신화 님을 위해서죠.”
“계속 말씀해 주세요.”
“조력자로서 함께할 겁니다. 전리품에 대한 권리를 일절 요구하지 않으며, 또한 상부의 명령을 일방적으로 전달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냥 돕겠다는 얘긴가요?”
“맞습니다. 제가 신화 님의 수행을 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상부에 떼를 썼거든요.”
“……RSA의 배려가 아니군요.”
“지금 RSA 내부는 정신없습니다. 그렇게 몇 번이고 KSA 쪽에서 대비를 하라고 알려 줬건만, 알면서도 준비를 안 한 거죠.”
내 앞에서 RSA의 문제를 성토하는 이오시프의 모습이 무척 반갑게 느껴졌다.
자신이 현재 소속되어 있는 조직보다 처음 보는 외인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더 편하게 터놓으려 하는 모습에서 말이다.
어쨌든 아무래도 좋았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현재 이오시프의 랭크는 SS랭크쯤 된다.
그 실력이라면 내 곁에서 짐이 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 대격변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철저하게 악 성향이다. 녀석이 활약하기 딱 좋다.
“그럼 바로 움직이죠. 혼자보다야 둘이 있으면 입이 심심할 일은 없겠네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전부터 강신화 씨를 꼭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 우상입니다.”
“이오시프 씨, 너무 저를 띄워 주시는 것 아닌가요?”
“빈말은 할 줄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실력과 힘을 믿을 뿐이죠.”
이오시프는 덤덤하게 말했다.
늘 느끼는 거지만, 녀석은 내 몸의 두 배쯤 되는 거구임에도 불구하고 목소리가 참 감미로웠다.
눈을 감고 있으면 남자 발라드 가수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처럼 목소리가 좋았다.
하지만 눈을 뜨면, 오우거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거구와 근육질의 남자가 내 눈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나도 개변으로 제법 몸을 키우고 다져 왔지만, 이오시프 앞에서는 어린애 같은 수준이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의 크기는 내가 더 압도적이지만 말이다.
* * *
도심을 순식간에 벗어난 신화와 이오시프는 계속해서 북진했다.
모스크바 북쪽에서는 이미 산발적인 교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굵직한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가까운 곳에서 갑자기 등장한 고블린 군단 때문이었다.
시베리아 전역이 어딘가에서 소환된 몬스터들로 온통 가득 차 버린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이쯤에서 고블린 무리들을 목격하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2052년이 된 훗날에도 러시아 대격변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연구가 되지 않았다.
레체로의 수작질은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 놈이 이 정도 대규모의 재앙을 만들 수준은 못 되었다.
니콜라스는 레체로가 섬기는 신이나 다름없었던 ‘마왕 레크나트’의 배후설을 제기했지만…….
그 연구에 답을 얻기 전에 대재앙을 막았고, 나는 축하 파티가 끝난 날, 잠을 자다가 그만 2020년으로 회귀를 해 버렸다.
XX, 미래를 곱씹다 보면 지금도 어이가 없는 잠자리에서의 회귀가 떠올라 욱하는 마음이 된다.
니콜라스 놈.
진짜 며칠이라도 재미 볼 시간을 준 다음에 회귀를 시키지, 술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회귀를 시키는 건 뭐야?
다시 생각해도 열이 뻗쳤다.
어쨌든 신화와 이오시프는 고블린 군단이 있는 권역은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지나쳤다.
고블린은 다른 각성자들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으니까.
러시아 대격변이 재앙이 돼 버린 결정적인 이유는 시베리아에 나타난 보스급 몬스터들이 남하했기 때문이다.
문명의 외곽에서 중심부로 들어오게 되면서 그야말로 대학살극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신화는 핀셋으로 골라 집어내듯이 몬스터들의 ‘리더’ 격이 되는 놈들만 죽일 생각이었다.
물론 이보다 더 우선순위는 바로 ‘부활의 꽃’을 가진 몬스터를 제거하는 일이다.
부활의 꽃은 이번 러시아 대격변 방어에 그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레체로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조우가 될 행보에 앞서 최후의 보험을 들어 두는 셈이다.
“속도를 좀 더 내죠.”
“이게 최대 속도입니다만…… 제가 뒤를 따라갈까요?”
신화의 말에 이오시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이오시프의 몸집이 크기는 하지만 그에게는 기동력을 향상시키는 버프가 꽤 있었다.
신발부터가 시속 50km 이상의 속도를 담보해 주는 특수한 아티팩트였다.
게다가 몇 가지 버프의 힘을 더하니, 순간 속도가 시속 80km 이상에 육박할 정도.
하지만 신화의 최대 속도는 공기의 엄청난 마찰을 감내하면서까지 달릴 수 있는 200km 이상.
그렇기에 작정하고 신화가 초월 가속을 붙여 달리면, 이오시프가 따라갈 재간이 없었다.
“길을 제가 잡죠. 꽉 잡아요.”
신화는 이오시프를 자연스럽게 자신의 등 뒤에 붙게 했다. 그리고 그의 손을 붙잡았다.
공기 마찰을 온몸으로 받아 내면서 전력으로 질주하는 한편, 뒤에 있는 이오시프에게는 공기저항을 덜 받게 하려는 것이다.
일종의 바람길을 만든 셈.
“와…….”
이오시프가 탄성을 터뜨렸다.
신화의 손에 이끌린 것만으로도 자신이 갱신할 수 있는 최대 속도를 훌쩍 뛰어넘었다.
파공음이 격렬하게 들릴 정도로 신화는 공기저항을 받고 있었지만, 흔들림은 전혀 없었다.
“못 버티겠으면 얘기해요.”
“아닙니다. 그것보다…….”
“그렇다면 조용.”
신화가 주의를 주었다.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고 있기에 사소한 집중력의 부재도 큰 위험이 될 수 있었다.
‘정말 명불허전이다.’
이내 침묵한 이오시프는 신화를 보며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한국에 있는 각성자 친구들이 입이 닳도록 신화를 칭찬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이레귤러였다. 예측되는 능력이 하나도 없었다.
그간 자신의 기동력을 두고 스스로 세계 제일이라고 자부했던 것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우물 안 개구리였군, 나는.’
이오시프는 확신할 수 있었다.
단순히 ‘기동력’ 하나만 놓고 봐도 신화가 압도적으로 앞서는 것으로 보아.
실제 전투에서도 두말할 나위가 없으리란 것을.
‘보고 싶다.’
이오시프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상부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으면서까지 신화를 꼭 수행하고 싶다고 주장했던 자신의 고집이.
왠지 후회 없는 시간을 만들어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주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 * *
“……슬슬 시작인가.”
모스크바의 북단을 향해 얼마나 이동했을까?
문명과의 거리가 멀어지고 자연과의 거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 주변 환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바뀐 건 하늘.
날이 춥기는 했지만 푸른빛을 머금고 있던 하늘이 어느덧 붉게 물들어 있었다.
노을이 붉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마치 수많은 피를 뒤섞어서 덧칠을 해 놓은 것 같은 새빨간 하늘이었다.
역겨운 냄새가 났다.
독기와 악으로 얼룩져 버린 비릿한 몬스터의 냄새가 나는 것이다.
‘곧 만나겠군.’
나는 부활의 꽃을 갖고 있는, 조만간 나와 마주치게 될 보스 몬스터의 존재를 떠올렸다.
파이올라, 아이슬라.
불과 얼음의 힘을 각각 나눠 가진 쌍둥이 형제 몬스터다.
내가 가진 속성의 주먹을 쏙 빼닮은 녀석들이라고 볼 수 있다.
‘실패도, 실수도 없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레체로와의 결전을 앞둔 지금.
단 한 순간의 방심이나 부상도 절대 허용할 수 없었다.
완전무결한 나를 위해서.
이 악물고 노력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