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78)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78화(277/300)
제 278화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강한 것인지, 아니면 적이 약한 것인지……. 헷갈렸다.
아마도 회귀자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전생과 현생의 기억이 공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생의 나는 ‘러시아 대격변’이 일어났을 때, 평범한 짐꾼에 불과했었다.
사실 던전에서 하루하루 일당으로 먹고살기 바빴던 시절이라 외부 소식에는 별 관심도 없었다.
러시아 대격변이 분명 엄청난 재난이기는 했지만, 대한민국에는 딱히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무신경한 사람이 중동에서 벌어진 내전 소식을 듣는 듯한 느낌이랄까? 딱 그 정도의 체감으로 러시아 대격변 소식을 받아들였다.
물론 많은 것을 알았다고 해서 과거의 내가 뭔가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힘 있는 자는 방관자가 되지 않는다. 보통 힘없는 자들이 힘이 없음을 핑계로 비겁하게 방관할 뿐이다.
어쨌든 현생의 나는 손쉽게 S라는 알파벳이 제법 붙은 몬스터들을 박살 내고 있었다.
달리 감흥 없는 표정으로 죽은 몬스터의 시체에서 최상급 차원석을 챙기는 내 모습.
이렇게만 봐도 얼마나 내가 전생과 달라진 삶을 살고 있는지 실감이 난다.
그리고 같은 생각을 한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일상일 수 있다고 해도 개당 10억 원을 호가하는 차원석인데, 안 기쁜가요?”
“음……. 별로 느낌이 없어요. 돈이 딱히 중요한 것도 아니고.”
이오시프의 물음에 나는 무덤덤하게 답했다.
회귀 직후, 은퇴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 무척 부지런했던 나였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자금은 필요하지 않았다. 은퇴지로 삼을 섬은 다 샀다.
어차피 지금 통장에 있는 잔고만 수천억 원에 달하고.
양화그룹에 넘긴 지제역 일대의 사업 이권에서 발생하는 수익만으로도 생활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게다가 은퇴 전에 바짝 제작품을 만들어 두면, 그것대로 수입이 또 발생할 가능성이 컸다.
아무도 없는 휴양지에서 홀로 지내는 데는 생각보다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는다.
또한 어지간한 음식은 자급자족할 생각이었다.
은퇴한다고 해서 기본적인 활동까지 전부 다 쉴 생각은 아니다.
그저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 홀로 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뿐이다.
물론…… 은퇴한 이후 꽤 긴 시간이 흐르고 나면 사람들의 온기가 그리워질 수도 있다.
사무치게 외로움이 찾아와 더 이상 섬에 머물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때는 그때에 맞게 결정을 내리면 된다. 은퇴라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니까.
“신화 씨.”
“네?”
“우리는 분명히 초면이죠. 그렇죠?”
“이오시프 씨가 한국에 온 적이 없다면, 완벽하게 초면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왜 오래전부터 함께한 막역한 동료 같은 느낌이 들까요, 저는?”
“그래요?”
“네. 신화 씨가 제 움직임과 공격 패턴을 너무 잘 알고 있거든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제 호흡에 맞춰 주고 있잖아요?”
너무 티가 났나?
하긴 이오시프의 공격 스타일은 이때도 예전과 똑같았다.
애초에 몸에 익힌 공격, 방어의 스타일은 그 사람의 지문과도 같다. 각자 변하지 않는 ‘결’이 있다.
전생에 이오시프는 자기 나름대로의 전투 방식을 2015년 정도부터 정립했다고 말했다.
그러니 전생에 내가 경험한 이오시프의 스타일이 지금과 일치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 처음 만났어도 호흡이 잘 맞는 경우가 왕왕 있죠. 잘됐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제 전투 호흡에 이렇게 잘 맞춰 주는 동료를 본 적이 없습니다.”
“동선이 많이 꼬였나 보네요.”
“네. 괜히 RSA에서 눈 밖에 난 게 아니죠. 자기 잘난 맛에 산다는 소리를 들으니까요.”
본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저 말도 맞는 말이다.
너무 자기애가 강해서인지 전투를 하다 보면, 녀석은 자신의 공격 스타일에 심취하는 편이다.
하지만 밥값은 확실히 한다.
그걸 아니까 나도 녀석이 전투에서 꾸려 가는 호흡에 적극적으로 맞춰 준 것일 뿐이다.
이를테면 멸살의 철편이 날아가는 흐름에 맞춰 타깃이 된 몬스터를 미리 ‘양념’하는 식이다.
“어쨌든 제 동행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많이 신세지고 있습니다. 민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이오시프는 내 앞에서 힘껏 허리를 숙여 정중하게 예를 갖췄다.
얼굴만 봐서는 고집이 셀 것처럼 보여도, 경우가 밝은 녀석이다. 인정할 것은 빠르게 인정한다.
“저도 간만에 즐거운 팀플레이를 하고 있어서 좋습니다. 물론 상황이 좋은 건 아니지만.”
나 역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이오시프의 예를 받았다.
한데 바로 그때.
찌릿-.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아주 기분 나쁜 불쾌감이 느껴졌다.
이 불쾌감의 정체를 니콜라스는 전생에서 육감이라고 부르곤 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특이한 감각 말이다.
‘왔군.’
그래서 알 수 있었다.
머지않은 곳에 내가 상대해야 할 적이 나타났다는 것을.
“이오시프 씨, 물러서요.”
“네?”
“보스 몬스터급의 녀석이 나타난 듯하군요. 이오시프 씨는 전투에서 빠져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쓸데없는 말이나 행동을 한 적이 있던가요?”
“알겠습니다. 제가 주제넘었군요.”
이오시프는 차가운 내 경고에 빠르게 열 걸음 정도 뒤로 물러섰다.
투지와 만용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지금 이오시프가 전투에 개입하는 건 완벽한 만용(蠻勇)이다.
-겁쟁이의 냄새가 나는군.
-아니다. 맛있는 먹거리 냄새가 나는 듯하다.
“역시.”
북서쪽 방면의 숲속에서 두 존재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불의 검, 파이올라.
얼음의 검, 아이슬라.
3m의 신장을 자랑하는 두 녀석은 완벽하게 똑같이 생긴 쌍둥이였다.
온몸이 근육질이고, 머리카락은 마치 고깔을 씌워 놓은 것처럼 하늘로 솟구쳐 있었다.
젤을 잔뜩 바른 것처럼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고 하늘로 솟아 있는데, 송곳처럼 뾰족하다.
속성형 몬스터.
생김새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자신을 대표하는 속성에 완벽에 가까운 면역을 갖고 있다.
즉, 파이올라에게는 아무리 화염 공격을 퍼부어 봤자 대미지가 1도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불길을 잡아먹고 힘을 키운다. 일전에 상대한 일라이저와 결이 같은 셈이다.
게다가 물리 대미지를 반감하는 역장도 가지고 있어 더욱 까다로운 녀석이기도 했다.
그래서 전생에도 우리는 몬스터 중에 ‘속성형’을 가장 껄끄럽게 여겼다.
공략 가능한 레퍼토리의 개수가 현저히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 현생에는 생각보다 일찍 올라운더로서의 가능성을 장착했다고.’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바로 양손의 형태를 각각의 속성 주먹으로 변형시켰다.
앞서 일라이저와의 전투에서 재미를 봤던 패턴이다.
파이올라에게 냉기 주먹, 아이슬라에게 화기 주먹을 쓸 생각이다.
속성형 몬스터의 최대 약점은 반대 속성에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약하다는 점이니까.
이럴 때면, 전생에 니콜라스 녀석이 사건 사고를 하나씩 읊어 가며 내게 복습을 시켜 줬던 것이 정말 감사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땐 하품 크게 하면서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얘기를 들어야 하느냐고 푸념을 늘어놓았는데.
녀석은 처음부터 다 계획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나도 녀석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외운 것을 보면, 난놈(?)이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와, 저건 또 무슨 주먹인가.”
뒤에서 날 지켜보던 이오시프가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속성 주먹은 처음이지?
녀석에게도 생소할 것이다.
-씹어 먹자.
-아니, 갈기갈기 찢어서 발라먹어야 해.
후웅! 후웅!
두 녀석이 검을 호기롭게 휘두르며 그 끝을 내게 겨눴다.
두 녀석의 검은 매우 위협적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검을 볼 필요가 없다.
여기에 시간을 빼앗길수록 내가 빈틈을 노출하거나 공략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파앗!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몸을 앞으로 날렸다.
놈들과의 전투는 속도전이다.
뭔가를 생각하는 순간, 전투는 내게 불리해진다. 1:2의 수적 열세 때문이다.
게다가 녀석들은 열세를 극단적으로 자신들의 우세로 만들 만큼의 노림수를 가지고 있었다.
-죽어!
눈빛을 부라리며 나에게 살기를 뿜어낸 것은 파이올라였다.
지금은 파이올라를 먼저 처리하는 것이 내게 좀 더 유리하다. 이곳의 기온이 대단히 낮아서다.
이상 한파와 함께 차가운 칼바람이 부는 터라 확실히 파이올라의 열기가 낮게 느껴졌다.
화르르륵!
파이올라가 휘두른 화염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내 머리 위를 스치며 지나갔다.
스페셜 슈트를 입고 있고, 머리카락까지 커버하도록 해 둔 상태였기에 문제는 전혀 없었다.
카드득!
시간차를 두고 아이슬라의 빙결의 검이 날아들었지만, 나는 손쉽게 공격을 피해 냈다.
녀석들의 단점은 이것이다.
적을 상대로는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맞지만, 동선에 ‘아군’이 있으면 굼떠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태생적으로 벗어날 수 없는 과한 ‘형제애’ 같은 것 때문일 것이다.
파이올라와 아이슬라가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그 마음.
당사자들에게는 애틋한 그 마음이 사실 전장에서는 서로의 발목을 잡는 약점이 되는 셈이다.
“하여간 입만 살아 가지고!”
뻐어억!
-으크헉!
냉기의 주먹을 파이올라의 안면 한복판에 시원하게 꽂아 넣어 버렸다.
개전과 동시에 마력을 전부 소모하면서 날린 ‘파붕권’이었다. 시작부터 마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녀석들을 상대할 때는 탐색전도 생략해야 한다. 점점 대응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처음 탐색전에 소진했던 시간과 수 싸움이 나중에 발목을 잡아 패하는 일도 허다하고 말이다.
쿠웅! 쿵! 쿵!
안면을 그대로 강타당한 파이올라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서는 볼썽사납게 지면을 굴렀다.
파앗!
나는 지면을 박차고, 초월 가속을 극대화하여 단숨에 파이올라에게 바로 붙었다.
여기서 날아가는 적의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다면, 그것은 하수 중에서도 한참 하수다.
중수는 날아간 적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하고, 고수는 날아가는 적에게 일단 ‘따라붙으면서’ 생각을 한다.
차이가 있는 셈이다.
-흡!
역시나 날아간 파이올라가 백덤블링으로 몸을 일으키기 위해 나름의 기합을 넣는 소리가 들렸다.
지켜만 봤다면 이 모습을 멀뚱멀뚱 보면서 적에게 수습할 시간을 주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시점에 이미 몸을 일으키려는 파이올라의 허리춤 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니……?
나를 올려다본 파이올라의 표정이 흙빛으로 변했다.
분명 녀석은 다홍색 빛깔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의 존재인데, 내게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좀 맞자.”
콰아아아앙!
나는 파이올라의 이마 위쪽에서 그대로 파붕권을 한 번 더 내리쳤다.
그리고.
우드드득!
제법 굵직한 골절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경추가 으스러지거나 심각하게 비틀릴 때 나는 특유의 뼈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