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84)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84화(283/300)
제 284화
그 이후.
러시아 대격변으로 말미암아 등장한 몬스터들에 대한 토벌은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애초에 혼자 다니는 것도 제법 즐기는 신화였지만, 동료들과 함께하는 것도 나름 즐거웠다.
한소준과 최지혁은 KSA의 부탁으로, 그들의 정예 부대 지원을 나갔다.
수준급 치유 능력과 디버프 능력을 가진 두 사람은 그 존재만으로도 영향력이 엄청났던 것이다.
어지간한 부상은 회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 미미한 공격도 대미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믿음.
그 두 가지가 시너지를 일으키니 KSA의 요원들도 잠재력을 최대치로 이끌어 내며 파괴력을 높였다.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체감을 가장 확실하게 한 사람은 역시 이하성과 나미나였다.
한편, 신화와 윤별이는 2인 1조를 이루며 역시나 몬스터들을 빠르게 제거해 나갔다.
그리고 막간의 쉬는 시간을 이용해 바위 위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누나, 진짜 이 갈고 연습했네요? 불과 2주 전과 비교해도 실력이 너무 향상됐는데요?”
“아까 꽃 먹었잖아. 그 덕분인 것 같아. 몬스터들이 자꾸 내 잔상을 보면서 속아서 그런 것 아닐까?”
“아뇨. 꽃은 부수적인 거죠. 공격의 정확도는 물론이고, 기동력이 매우 높아졌어요. 움직임의 변수 창출 능력도 탁월해졌고.”
“그래?”
“여기서 진짜 조금만 더 발전하면 그때는 내 목숨도 위험하겠는데요? 순식간에 암살당하겠어.”
“호호, 그 정도는 아냐.”
“아니에요. 저, 빈말 못 하는 것 알잖아요? 누나, 진짜 엄청 열심히 훈련한 것이 보여요.”
“……신화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노력 많이 했어. 다행이야. 조금이라도 티가 나는 듯해서.”
윤별이가 부끄러운 표정으로 머리끝을 배배 꼬며 말했다.
진심으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내보이는 습관이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틀리지는 않았어. 전생보다 더 일찍 능력을 개화시킨 보람도 있고. 아마 지금 이대로 잘 성장한다면, 전생처럼 죽는 일도 생기지 않겠지.’
신화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초창기에 ‘새로운 나인 로드’급이 될 수 있도록 키우겠다고 마음먹었던 일이 이제 현실이 됐다.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이 이뤄진다면, 내년쯤이면 세 사람 모두 국내는 가볍게 제패할 실력자가 될 것이다.
전생과 비교도 안 될 만큼 급성장을 했으니, 같은 운명과 마주해도 결코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모두 신화의 말을 잘 따르고, 동시에 신화가 부탁하고 조언하는 것들을 중요하게 여겼다.
즉, 자신이 없더라도 KSA나 양화 길드와 협조해서 지금처럼 원만한 관계를 이어 갈 듯했다.
게다가 자기 잘난 맛에 오만방자하게 구는 인격 미달의 사람도 없으니 더 안심이 되었다.
오히려 셋 다 겉으로 보이는 무뚝뚝한 표정이나 외모와 달리, 속이 너무 착해서 걱정일 따름이다.
“KSA에서 데려와서는 매번 일만 시켜서 미안해요. 진짜 나 때문에 너무 고생 많았네.”
“무슨 고해성사를 하는 거야? 오늘 하루 종일 미안하다는 얘기부터 시작해서 마치 내일 죽을 사람처럼 말하네. 그러지 마, 신화야. 괜히 불안해.”
“하하, 그렇게 들렸어요? 그냥 그간 못 했던 얘기들 좀 속 시원히 하는 것뿐이에요. 어색한 속마음의 표현이랄까?”
“그렇다면야 상관없지만……. 괜히 불안하게 너무 자책하는 말이나 미안하다는 말만 하진 마.”
“알았어요. 어쨌든 정말 고마워요. 누나가 내 손발이 되어 준 덕분에 복잡한 일은 하나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아냐. 나도 너와 함께할 수 있기에 팀 미스틱에 온 거야. 그래서 즐거웠고, 중요한 소임을 맡겨 줘서 너무 영광이지.”
“에이, 영광까지야.”
“진심이야. 그리고 여전히 진행형이기도 하고. 팀 미스틱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껴.”
“정말요?”
“응. 진심으로 고마워.”
자신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힘주어 말하는 윤별이의 모습을 보니, 신화의 기분도 좋아졌다.
이것이 나인 로드를 결성한 후.
온갖 시련을 함께하면서 더욱 끈끈해진 동료들을 볼 때 니콜라스가 느꼈던 감정일까?
윤별이의 말들이 신화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신화야.”
“음?”
“부탁이 하나 있는데. 조금 뜬금없지만…… 왠지 오늘이 아니면 말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뭔데요?”
“그냥 아무 의미 없이, 그저 따뜻하게…… 한 번만 꼭 안아 주면 안 될까?”
신화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계속 레체로와의 최종전을 염두에 두고 의미심장하게 남긴 말들이 그녀에게도 어떤 영향을 미쳤음을.
겉으로 내색하진 않고 있지만.
오늘 이후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윤별이는 왠지 알아챈 듯했다.
찬바람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는 윤별이의 눈망울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래서.
“…….”
말없이 그녀를 꼭 안아 주었다.
내 체온이 남김없이 느껴지도록 힘주어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
지그시 자신을 올려다보는 윤별이의 눈빛이 아련하게 느껴져 신화도 눈을 떼지 못했다.
뭐랄까.
그저 따뜻한 포옹 한 번만 하고 그녀를 조심스럽게 떼어 낼 생각이었는데, 마음이 그렇지 못했다.
결국.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리 생각할 겨를도 없이.
칼바람이 부는 전장 위에서 서로의 체온에만 의지하고 있는 두 남녀의 입술이 포개졌다.
감정에 휩쓸려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 감정이 없는 입맞춤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오래전부터 마음에 담고 있었던 간절한 사랑을 입술을 통해 전달한 것이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진즉 표현할 수도 있었지만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던 속마음을 꺼낸 것이었다.
“누나.”
“아냐.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줘.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정지 화면처럼 기억하고 싶어.”
신화가 이어 붙이려던 말을 윤별이가 막았다.
무슨 말이 나올지 알 것도 같았지만…… 듣고 싶지 않았다. 아니, 신화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싶었다.
“음…….”
“괜찮아. 지금 이대로도.”
윤별이는 다시 신화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박동 소리를 천천히 음미했다.
정말 따뜻했다.
이대로 모든 것이 멈춰 버려도 좋을 것 같다고 느낄 정도로.
짧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 * *
일주일간의 대장정 끝에 러시아 대격변은 빠르게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KSA의 대규모 지원은 물론이고, 이웃 국가에서도 속속들이 지원 병력을 파견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문명의 구역을 넘보기도 했던 몬스터들이었지만, 이내 시베리아의 벌판으로 쫓겨났고.
각성자들의 조직적인 대응 앞에서 확실한 리더가 없었던 몬스터들은 차례차례 각개격파로 당했다.
소득은 꽤 많았다.
신화도 전장을 누비고 다니면서 최소 5천억 원 이상의 가치에 달하는 차원석을 쓸어 담았고.
특히 보스 몬스터급의 몬스터를 열다섯 마리 이상 처치했다.
아쉽게도 추가로 꽃이나 버프를 얻지는 못했지만, 마력 향상은 확실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판정 등급 : EX+]‘인생은 역시 한 방이라니까.’
각성자에게 허락된 등급의 끝.
EX랭크에서도 ‘+’를 달게 되는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물론 혼자만의 비밀로 했지만.
‘회귀 5개월 차의 쾌거인가?’
돌이켜 보니.
1월 말에 2052년에서 32년 전으로 회귀한 이후, 딱 5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처음 회귀했을 때만 해도 A랭크, S랭크는 언제 도달할까 싶었는데……. 기우였다.
이제 더 이상 각성자로서 오를 수 있는 다음의 경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극의에 다다른 것이다.
“RSA의 총책임자인 드미트리 베도르프 본부장은 이번 일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강신화 씨께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습니다.
한편 강신화 씨는 RSA에서 준비한 표창장 수여와 상금 전달을 모두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신 상금을 이번 재난의 복구 비용으로 사용하고, 일선에서 고생하는 복구 일꾼들에게 대신 표창장을 수여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훈훈한 소식은 최근 각박하게만 흘러가던 각성자 세계에 한 줄기 희망과 빛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하여간 언론의 포장은.”
삑.
TV를 보고 있던 신화가 낯간지러운 찬양 일색인 각성자 뉴스를 더 이상 보지 못하고 그만 꺼 버렸다.
“마지막 휴식도 끝났네.”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오늘 하루, 거의 24시간을 침대 속에서 잠만 자면서 보낸 신화였다. 재충전을 위해서다.
“어디 보자…….”
침대 앞에는 미리 늘어놓은 슈트와 약물들로 가득했다.
스페셜 슈트는 총 10벌을 챙겨 놨다.
소모품이기에 적과 격전을 치르다 보면 금방 내구도가 닳아 없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상대는 한두 명이 아니라 레체로가 이끄는 암흑 교단 전체가 아니던가. 슈트 하나로는 턱도 없었다.
그 외에도 다수의 진통제와 각성제를 챙겼다. 금단 현상이 제법 있지만, 효과가 확실한 마약도 일찌감치 챙겨 뒀다.
반드시 승리해야만 하는 전장에서 금단 현상이니 부작용이니 하는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승리해야만 했다.
마리나에게 전달받은 정보에 따르면, 드디어 시크릿 던전의 리셋이 거의 완성의 끝자락에 있다고 했다.
10시간 안팎으로 끝날 것이 확실시된다고 했으니, 예약해 둔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면 된다.
“혹시 모르니 공간 이동 버프는 아껴 두도록 하고…….”
더욱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며 움직일 준비도 마쳤다.
이제부터는 신중해야 한다.
욱하는 마음으로 잘못된 선택을 했다가는 그간의 노력이 전부 허사가 될 수도 있으니까.
“간다, 니콜라스.”
신화가 욕실로 향했다.
마음 편하게 따뜻한 물을 뒤집어쓸 수 있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다.
나스 대륙에서는 일분일초가 치열하게 이동하고 싸워야 할 죽음의 시간이 된다.
여유?
그런 거 부릴 시간이 만약에 있다면, 그건 계획이 실패했다는 뜻이겠지.
* * *
‘X발……. 징그러운 놈들.’
핏물인지 눈물인지 헷갈릴 정도로 뒤섞여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액체들.
니콜라스는 그것들을 제대로 훔쳐 낼 틈도 없이, 어둠 속에서 이를 악물었다.
‘두 번……. 하, 너무 짧군.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니콜라스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었다.
계시라는 이름으로 신화에게 보낼 메시지 두 개.
그것은 바로 대전이에 대한 해결책, 그리고 레체로에게 확실한 카운터펀치가 될 수 있는 흑암의 목걸이에 대한 활용법이었다.
‘다…… 됐다.’
가까스로 마지막으로 전할 메시지를 떠올렸고, 온갖 간섭과 방해를 이겨 내고 날려 보냈다.
다음 순간.
샤아아아.
‘후, 후후, 후후후……. 제길, 내 재능도 이제는 운명을 다했다, 이건가. 하여간 인생 참 드라마틱하다. 한 편의 소설이네, 소설.’
니콜라스를 감싸고 있던 초록빛의 기운이 사라졌다.
그것은 시공간과 차원, 과거와 미래를 뛰어넘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니콜라스만의 능력을 상실했음을 뜻하는 완벽한 증거였다.
이제 그 어떤 메시지나 계시 혹은 작은 암시도 타임 라인을 거슬러 보낼 수 없다.
‘제발, 꼭……. 성공해 줘. 미안하다, 너에게 이런 무겁고도 어려운 일을 맡겨서.’
그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신화가 과거를 바꾸면.
거기서 파생되는 모든 타임 라인이 뒤바뀐다. 가장 중요한 ‘타임 포인트.’
하지만 바꾸지 못한다면?
‘모든 타임 라인이 레체로의 뜻대로 흘러가게 되겠지.’
최악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세상이 펼쳐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