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86)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86화(285/300)
제 286화
생각보다 작업은 더뎠다.
장동식 때문은 아니었다.
그만큼 레체로가 장동식에게 걸어 놓은 저주가 한두 개가 아니었던 것이다.
구조와 발현 기전은 몰라도, 어떤 흑마법과 저주가 있는지 정도는 나도 알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장동식의 몸속에는 그야말로 화약고라고 해도 될 정도로 온갖 저주 마법이 가득했던 것이다.
그래서 난 짐작할 수 있었다.
회귀하기 전의 전생.
그러니까 지금 니콜라스가 고군분투하고 있을 그 세계는 이미 사도들이 레체로의 꼭두각시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다섯 사도들은 자신이 레체로의 다음을 대표할 후계자라고 믿었겠지만, 엿 바꿔 먹을 소리였던 셈이다.
“신화, 괜찮아?”
“응, 고마워. 나 말고 장동식을 좀 더 신경 써 줘. 땀을 엄청 흘리고 있어.”
“응, 알았어.”
연락을 받고 장동식의 안전 자택으로 온 샤미는 나와 그를 번갈아 돌봐주고 있었다.
샤미의 현대 문명 적응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빨랐다.
벌써 스마트폰을 열심히 사용하는 중이었고, 한국어도 빠르게 배워 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끝없는 적막 속에서 그저 거친 숨소리만 교차되며 서로가 끝없는 기다림에 지쳐 갈 즈음.
“……됐다. 크윽.”
식은땀을 연신 흘리면서 안색이 잔뜩 창백해져 있던 장동식이 신음과 함께 드러누웠다.
지금까지 봤던 모습 중에서 가장 힘들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문제가 해결된 상황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된 거야?”
“……됐다. 모든 저주의 술식들을 해제했어. 망할 레체로, 이 내용을 정리하면 책 한 권은 거뜬히 나오겠군.”
장동식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과정과 결과가 어찌 됐든, 이제 레체로가 사도의 몸을 제물로 삼는 ‘대전이’는 할 수 없게 됐다.
다섯 사도 중에서 넷은 죽었고, 장동식은 대전이의 술식을 완벽하게 해제했으니 말이다.
만약의 보험과도 같았던 아케로도 내가 저승으로 일찌감치 보내 놨으니 문제가 없었다.
“다행이다. 골치가 아팠던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됐어.”
“레체로를…… 만나나?”
“응. 그래야지.”
“강신화, 역시 스펙터클한 인생을 사는군. 차원을 뛰어넘는 각성자라니…….”
“그러게 말이다. 이 짓거리도 빨리 끝내고 싶다.”
장동식의 말에 웃으며 답했다.
진심이었다.
나중에 나스 대륙과 직접 연결이 되면 몰라도, 이렇게 피 말리는 차원 이동은 딱 질색이다.
“부디 모든 것을 바로잡아 주길 바란다. 시작부터 틀렸어. 레체로가 꾸는 꿈은 재앙이자 악몽일 뿐이야…….”
“네가 말 안 해도 그렇게 할 생각이야. 걱정 마.”
드르르륵.
바로 그때.
마리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내용을 확인하니 시크릿 던전의 리셋이 바로 끝났다는 얘기였다. 니콜라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가야겠다.”
“강신화.”
“응?”
“이것을 가져가라. 내가 그동안 열심히 세공한 보호석이야. 쓸모가 있을 거다.”
“보호석이라고 하면, 실드 마법을 펼쳐 주는 그런 형태의 돌을 말하는 건가?”
“달라. 놈은 9클래스의 흑마법사지. 가공할 만한 위력의 마법이 날아들 거야. 이건 어떤 마법이든지 한 번은 무력화시킬 수 있어.”
“드래곤이 주로 애용한다는 용언 마법 중의 하나인 디스펠 같은 개념인가 보네.”
“잘 아는군. 역시…… 회귀자는 다르다, 이건가?”
“모르는 거 빼곤 다 알지.”
장동식이 건네준 보호석을 받아 챙겼다. 매우 유용한 돌이기에 변수 창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신화, 나스 대륙을 가는 거야?”
샤미가 물었다.
지금껏 자세한 얘기는 한 적이 없는데, 장동식과 얘기를 하다 보니 그녀도 옆에서 듣게 된 상황이다.
“설명은 장동식에게 들어. 걱정 마. 다녀오면 맛있는 거 많이 사 줄게. 장동식에게 한국어도 좀 가르쳐 달라고 하고, 알았지?”
“신화!”
“간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괜한 미련이 남을 것 같아서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달려 나왔다.
이미 문 앞에는 아까 공간 이동 버프를 사용하면서 만들어진 왕복 차원문이 그대로 있었다.
여기로 들어간다면 바로 시크릿 던전 앞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공간 이동 버프의 장점이다. 전 세계의 어디든지 단 1초 만에 왕복할 수 있는 것.
물론 일주일이라는 재사용 제한이 있지만, 그 점만 제외하면 최고의 이동 능력인 셈이었다.
“훗, 하루에 두 번 보니까 느낌이 묘하네. 재방송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다시 시크릿 던전의 입구를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후우.”
짧은 심호흡.
그리고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던전에 입장했다.
이제부터는 진짜 속도전이다.
* * *
얼마 후.
늘 그랬듯 보스 몬스터 공략을 마치고 나스 대륙으로 넘어온 신화는 평소와 다른 상태창을 봤다.
“전과 달라졌네.”
그것은 바로 앞서와 달리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유지 가능 시간의 내용 때문이었다.
[지구와 나스 대륙과의 연결 상태가 끊어졌습니다.] [새로운 연결 고리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주제단’을 붕괴시켜 암흑 기의 근원을 제거하십시오.]“주제단은 당연히 레체로가 지키고 있을 테니 결국 레체로를 죽이라는 얘기구나.”
예상했던 대로이기에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계십니까?”
신화가 자이르를 찾았다.
이제부터는 일분일초가 매우 귀한 시간이다. 니콜라스가 남겼을 마지막 ‘계시’가 필요하다.
하지만 늘 자신을 마중 나오듯이 모습을 드러냈던 자이르가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신화가 제법 눈에 익은 신전 이곳저곳을 빠르게 돌아다니며 열심히 그를 찾았다.
그리고.
“아…….”
볼 수 있었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양피지 위에 무언가를 적어 놓고는 피를 토한 채 쓰러져 있는 자이르를.
급하게 심폐소생술을 하려고 했지만, 이미 자이르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
치유 포션으로도 어쩔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병이었던 걸까.
마음이 아팠지만, 그의 죽음을 마냥 슬퍼하고만 있기에는 시간의 여유가 많지 않았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정말 고맙습니다.”
신화가 제대로 감기지 못했던 자이르의 눈을 감겨 주고는 그에게 이불을 덮어씌워 주었다.
그리고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다시 여기로 돌아와서 자이르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리라고 마음먹었다. 반드시 그러고 싶었다.
신화가 조심스럽게 자이르의 품에서 꺼낸 양피지를 들었다.
마지막에는 힘겹게 내용을 적어 나갔는지, 글씨체가 심하게 흔들려 있었다.
책상 여기저기에도 각혈로 인한 핏자국이 가득했지만, 양피지만큼은 깨끗했다.
끝까지 신화에게 온전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느껴졌다.
<마지막이야. 고생했다.>
“빌어먹을 놈아, 계시 첫 마디가 잡담이냐.”
신화는 첫 줄을 장식한 무강 대륙어의 내용을 해석하고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흑암의 목걸이는 잘 챙겼어? 못 챙겼다면, 레체로를 직접 찾을 수밖에 없을 거야. 다만 목걸이가 있다면, 지름길이 있어.
암흑 교단의 수많은 제단 중에는 주제단과 부제단이 있어.
부제단의 수가 매우 많은데, 대부분은 가짜야. 무슨 말인가 하면 가짜 의식을 치른다는 거야.
너는 딱 다섯 곳의 부제단을 공략하면 돼. 제단의 기둥을 파괴하면 암흑 원석을 하나씩 얻을 수 있을 거야.
다섯 개의 암흑 원석을 흑암의 목걸이와 결합하면 레체로의 앞으로 이동할 수 있어.
그리고 부제단의 위치는 카이슬, 마트난, 마요르카, 이피아, 줄렌 시에 있어. 여기가 진짜야.>
“흑암의 목걸이 더하기 원석 다섯 개가 레체로에게 향하는 하이패스다, 이거지?”
신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물은 확실히 있었다.
“일라이저 놈을 죽이지 못했으면 고달파질 뻔했네. 내 추진력이 이럴 때 도움이 되네.”
처업!
신화는 아공간에서 꺼낸 흑암의 목걸이를 다시 확인했다. 멀쩡한 상태로 잘 있었다.
<지금의 레체로는 우리가 상대했던 그때와 달리, 현재 가장 불안정한 상태야.
주제단의 구성 작업이 끝물인 탓에 암흑 기를 불어넣으려면 본인이 상주할 수밖에 없어.
즉,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야. 내가 널 이 시기로 불러낸 이유는 하나뿐이야.
레체로뿐만이 아니라 녀석의 의식에 따라서 강림의 준비를 마칠 ‘마왕’까지 제거하기 위해서야.
그래야 완벽하게 뿌리를 뽑을 수 있어. 회귀의 변곡점을 굵고 선명하게 찍는 거지. 다른 미래가 개입할 가능성조차 없도록.>
“이해했다. 이해했어.”
지금이 레체로의 입장에서는 가장 공을 들일 시기이자, 동시에 가장 약해질 타이밍이라는 얘기였다.
마왕 강림이라…….
생각해 본 적 없는 미래다.
하지만 니콜라스의 언급이 있는 것을 보면, 그가 있는 세계는 이미 안 좋은 의미로 ‘끝장’을 본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분명 자이르의 필체를 빌려 적힌 내용이지만, 니콜라스의 절절하고도 간절한 감정이 느껴졌다.
<말이 많았네. 부제단 다섯 개를 끝장내고, 레체로 앞으로 워프해서 놈을 죽이면 돼. 어때, 간단하지? 하하하!>
“…….”
왜 그랬을까?
이제 양피지에 얼마 남지 않은 니콜라스의 ‘전언’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전생에서 이미 닳고 닳아 감정이 마모된 자신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슴이 아릿했다.
“씨X, 나는 0점짜리 회귀자야.”
신화가 툴툴거리듯 말했다.
미래를 바꾸는 것의 개념부터가 다르지 않았던가.
니콜라스는 정말 모든 타임 라인을 뒤엎을 수 있는 신의 한 수를 노리고 있었고.
자신은 조기 은퇴를 열심히 부르짖어 왔으니 말이다.
“니콜라스, 그래도 말이야. 난 너처럼은 안 살 거야. 너무 피곤해. 나라면 미쳐 죽었을 거야!”
양피지를 든 신화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시공을 넘나드는 자신과 니콜라스의 이야기. 그래서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니콜라스이기에.
신화가 눈물을 글썽였다.
“그 망할 회귀가 뭐라고!”
회귀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개고생을 하고 있단 말인가?
심지어 친구까지 과거로 되돌려 보내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에 다다른 니콜라스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신화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강신화, 회귀한 이후 건조하고 마른 장작과도 같았던 나를 네가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 줬어.
미쳐 버릴 수도 있던 나를 옆에서 다독이고, 인정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나를 숨 쉬게 해 주었지.
고맙다. 그리고 영광이다.
회귀자, 그것을 핑계 삼아서 네 친구가 될 수 있어서 진심으로 행복했던 시간이었어.
이젠…… 편하게 눈을 감아도 되지 않을까? 아, 낮잠 좀 자 보려고. 하하하. 또 보자!>
그렇게 메시지는 끝났다.
“뭘 또 보자는 거야, X신 XX가……. 보고 싶지 않아. 꺼져. 징그러운 XX아.”
후아아.
만감이 담긴 한숨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절로 터져 나왔다.
하여간 끝까지 허세는.
“……궁상은 됐다.”
신화는 빠르게 눈물을 훔쳤다.
이어 남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일단 오블란과 마카디를 다시 만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