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88)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88화(287/300)
제 288화
마요르카 제단이 단 한 사람에 의해 완전히 박살 났다는 소식을 들은 레체로는 경악하고 말았다.
만약 현장에 나타난 것이 오블란이었더라면 그래도 이해를 했을 것이다. 그는 그럴 수 있으니까.
지금껏 레체로가 걱정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그런 오블란이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음을 알아서다.
쉽게 말하자면, 반쪽짜리 영웅이었다.
분명 오블란이 있는 곳을 ‘공격자’의 입장이 되어 밀고 들어가는 일은 껄끄럽지만.
반대로 오블란의 공격을 ‘방어자’의 입장으로 막아 낼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오블란보다 더 까다로운 녀석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 존재는 레체로가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제3의 존재였다.
“이게 무슨…….”
레체로는 수정구를 통해서 현장에서 아슬아슬하게 겨우 담긴 신화의 전투 영상을 봤다.
그나마 영상 장치 대부분은 신화가 만들어 낸 충격파에 휘말려 모조리 박살이 났다.
멀리서 찍은 몇 개만이 멀쩡할 뿐이었고, 그것이 신화에 대한 자료의 전부였다.
“이건 나스 대륙에서 볼 수 있는 격투가의 모습이 아니다.”
수정구 속 화면을 살핀 레체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단언할 수 있었다. 나스 대륙의 무술이 아니었다.
그는 마법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사도 아니었다. 괴물? 그런 것도 아니었다.
만약 오블란이 준비해 왔던 ‘최종 병기’ 같은 것이라면 진즉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리 없었다.
앞서 저항군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던가? 그때 이미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설마…….”
레체로의 생각이 확장되었다.
생각이 닿은 곳은 지구였다.
사도들을 술법을 활용해서 지구로 파견한 전례가 있잖은가?
그렇다면 역으로 유입되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었다.
어떤 방법을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 듯했다.
‘사도 중에 배신자가 있는가.’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차원을 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레체로도 술법을 활용해서 편도(片道)의 형태로 사도를 보낼 수 있었을 뿐 왕복은 할 수 없었다.
그것을 알았다면 진즉에 자신도 지구로 넘어갔을 것이다. 다시 돌아오면 되니까.
“빌어먹을…….”
갑자기 나타난 한 놈, 신화 때문에 레체로의 머릿속이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복잡해졌다.
당장에라도 현장에 달려가 신화를 상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며칠만 지나면 주제단의 완성이 코앞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레크나트의 현신의 토대가 마련된다는 것이다.
주제단의 완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이 제단 근처에 붙어 있어야만 했다.
안정적으로 암흑 기를 공급하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 이 불완전한 제단이 폭주할 가능성이 있었다.
폭주는 곧 폭발이고, 주제단이 폭발하면…… 그때는 거꾸로 레체로의 교단에 재앙이 내리는 셈.
“X발!”
쾅!
레체로가 옆에 놓여 있던 책상을 내리쳤다.
이제 한 주도 안 남은 짧은 시간만 있으면 되는 것을! 그 시간을 앞두고 이런 사달이 벌어진 것이다.
일단 그는 옥좌 옆에 마련된 밀실로 향했다. 사도들의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 * *
레체로는 믿는 구석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바로 대전이다.
만약 나스 대륙에서 자신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대전이를 이용해서 사도 하나의 몸을 탈취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비록 나스 대륙에서는 스러져 없어질지라도 지구에서의 삶을 이어 갈 수 있는 것이다.
“대체 어떤 상황인 거냐…….”
밀실로 들어온 레체로가 검은빛 수정구를 어루만지며 바로 금제를 발동시켰다.
사도들의 머릿속을 통해 정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금제였다.
심력 소모가 큰 금제였기에 그간 따로 발동할 생각을 한 적이 없었지만.
이제는 봐야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겠다.
그런데.
“……왜 보이지 않는 거지?”
레체로의 눈에 보이는 것은 끝없이 펼쳐지는 암흑뿐이었다.
사도 리카넬라부터 시작해서 네 명의 사도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금제 발동이 안 됐다.
연결의 문제가 아니었다.
“……설마 죽었다고?”
이건 대상자가 죽었기에 보이는 암흑이었다. 살아 있었다면 양상이 달라졌을 것이다.
게다가 유일하게 사도 카스론 – 장동식 – 은 아예 금제 자체가 연결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레체로는 말끝을 흐렸다.
불과 1개월 전까지만 해도 금제의 연결에 아무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던 레체로였다.
하지만 지금은.
완벽하게 단절됐다.
넷은 닿고 싶어도 닿을 수 없었고, 나머지 하나는 닿을 수 없도록 저쪽에서 연결 고리를 잘라 냈다.
그 순간.
레체로의 등골을 타고서 오싹한 느낌과 함께 소름이 끼쳤다.
자신이 착실하게 준비해 온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단순한 직감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잘못되어도 뭔가 크게 잘못됐다.
* * *
나는 내친 김에 두 번째 제단의 공략까지 바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카이슬 영지에 위치한 제단을 노렸다.
이동은 어렵지 않았다.
지하에 활성화된 장거리 텔레포트 마법진을 은밀히 활용하여 바로 현장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마카디가 많은 도움을 줬다. 마카디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나스 대륙의 ‘지하 세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았다.
전생에 우리 나인 로드가 나스 대륙에 왔을 시점에는 이미 ‘저항군’의 인프라가 다 박살이 나 있던 상태였다.
피의 학살이 끝난 이후였다.
오블란도 죽은 이후였고, 저항군도 궤멸적인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마카디는 유일한 생존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저항군이 구축한 지하 인프라가 아직 건재했다.
그들은 절망 속에서도 의연하게 나름의 희망을 쌓아 가고 있었던 것이다.
“제가 도울까요?”
“아뇨. 이 제단은 내게 맡겨요. 마카디 님은 오블란 님과 함께 최대한 레크나트 교단의 시선을 끌어 주면 좋겠어요.”
“마트난 제단이라고 하셨죠?”
“맞아요. 무리해서 공격할 것은 없고, 놈들과 게릴라전 위주로 치고 빠지면 됩니다.”
나는 마카디와 오블란으로 하여금 저항군이 레체로의 부제단 중 하나를 공격하게 했다.
지금부터는 속도전이다.
동시에 기만도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은 레체로의 꿈이 이뤄지기 직전의 시점이자 그의 세력이 가장 약해진 시점이다.
최대한 상황을 어지럽게 난전의 형태로 끌고 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미안해요. 강신화 씨에게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우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당신이 강요한 것이 아니에요. 내가 선택한 길인 거죠.”
나는 덤덤히 말했다.
마카디에게 니콜라스와 미래의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꾹 참았다.
아니, 설령 말한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망할 놈의 ‘회귀’는 누군가에게 이성적으로 조목조목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
하여간 니콜라스 녀석은 생각만 하면 아련하게 그리워지다가도 불쑥 열불을 치솟게 한다.
어쨌든 그렇게 마카디와 헤어졌다.
그녀는 걱정이 돼서 내 옆에 남고 싶어 했던 것 같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내게는 짐일 뿐이다.
함께하게 된다면 일단은 그녀를 지켜 줄 방법을 궁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자체가 상당한 심력 소모다.
‘이제는 레크나트 나이츠가 나타나겠군.’
앞으로 닥칠 상황이 어느 정도 짐작은 됐다.
레체로는 눈치가 빠른 놈이다.
자신에게 중요한 부제단 다섯 개 중 하나가 완전히 박살이 났으니, 조기에 진화하려 할 것이다.
물론 부제단이 모두 박살나도, 주제단이 살아 있으면 의식의 거행에는 문제가 없다.
단, 그만큼 의식의 진행 속도가 매우 느려지게 될 것이다.
성공을 목전에 둔 레체로가 절대 반길 상황은 아니었다.
잔불이 큰불이 되기 전에 미리 불길을 잡고 싶은 생각이 그 누구보다 간절할 터였다.
‘이제 투명화로 재미 보긴 그른 듯하고, 아쉽지만 정공법으로 박살을 내 줄 수밖에.’
뚜둑. 뚜두둑.
정면에 훤히 보이는, 늠름하게 위용을 과시하는 제단을 보며 나는 굳은 손을 풀었다.
지금부터가 진검 승부다.
* * *
투명화를 탐지할 수 있는 마도 공학 시설 덕분에 신화의 은신 접근이 불가능해지기는 했지만.
그것이 신화의 발목을 붙잡지는 못했다.
“크아아악!”
“카악!”
개전과 동시에 사방에서 교단의 단원들이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기껏해야 3클래스 미만의 마법 수준에 검을 잡은 지 몇 년밖에 안 되는 수준의 검술로는…….
신화를 상대로 단 1초도 버틸 수 없었다. 신화의 앞에서 그 정도 실력은 전부 추풍낙엽 신세였다.
“파괴신의 재림인가……?”
“도대체 누구지? 누구냐고!”
단원들은 경악했다.
적은 단 한 명뿐이었다.
몇 번이고 눈을 비비고 봐도 분명히 적은 한 명이었다.
한데 수백에 달하는 교단 측의 방어자만이 일방적으로 얻어터지며 무너지고 있었다.
신화가 거침없이 퍼부어 대는 폭권 세례에 단원들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죽어 나갔다.
“폭권 3장 이상으로 써 주는 것도 지나친 사치네,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은. 너무 쉽잖아?”
신화가 어깨를 으쓱였다.
꽤 많은 전투를 치렀음에도 여전히 몸은 예열조차 되지 않았다.
몸을 뜨겁게 덥힐 만한 공방전이 없었다는 뜻이다.
“히이이익!”
“으아아아!”
단원들은 절규했다.
압도적인 수적 우세를 등에 업고 있음에도 도무지 신화에게 달려들 엄두가 나지 않는 탓이었다.
전투가 시작된 지 불과 5분.
겨우 300초밖에 되지 않는 시간에 이미 죽어 나간 단원의 수만 500명에 달했다.
이 정도라면 학살이라는 단어를 붙여도 전혀 문제가 안 될 만큼 일방적인 죽음이었다.
신화가 오시(傲視)하듯 교단의 단원들을 내리깔면서 제단으로 질주하기 시작하자.
“막아! 막으라고!”
“네가 막아, 이 병X아!”
당황한 단원들이 서로를 떠밀었다. 당연히 앞으로 나서는 단원은 하나도 없었다.
“나, 그럼 지나간다?”
“……!”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지는 단원들의 행렬에 신화가 거침없이 초월 가속으로 돌파하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신화는 살상이 목적이 아니었다.
제단의 코어를 파괴하고 원석만 얻으면 됐다.
“에, 에에잇!”
뻐엉!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호기롭게 달려들던 단원 하나가 신화의 폭권에 산산조각 나서 흩어지자.
“이런 말도 안 되는…….”
모두가 다시금 경악했다.
그 순간.
그나마 싸워 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다른 단원들까지도 완벽하게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개죽음을 당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신화에게 다가설 수 없었다.
교단에 대한 신념?
레체로에 대한 충성?
그것을 다 무너뜨리고도 남을 만큼, 신화가 보여 주는 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위이잉. 위이잉.
제단 중심부 인근에 마련된 텔레포트 마법진에서 소환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검게 보였던 실루엣이 빠르게 선명해지는 것으로 봐서는 누군가가 이동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제단으로 들어오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활용할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레크나트 나이츠! 드디어 나타났군.’
기다렸던 적들의 등장에 신화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고오오오!
전속력으로 텔레포트 마법진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텔레포트 마법진은 즉각적으로 발현되는 형태가 아니었다.
즉, 소환이 완벽하게 끝나기까지는 짧지만 분명히 ‘딜레이’가 존재했다.
극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직의 시간’이었다.
신화는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