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90)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90화(289/300)
제 290화
레체로가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단을…… 제단을 빨리 완성해야 한다.
그걸 누가 모르나,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레체로는 꾹 참았다.
레크나트에게 불손한 언행을 하는 것은 곧 신성모독이므로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까?”
-시간여행자를 죽여라. 주제단이 완성이 되더라도 그놈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결국 그놈이 문제군요.”
-모든 시간선이 그 시간여행자로 인해 뒤엉키고 있다.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다. 하지만…….
“말씀해 주십시오.”
-절묘하리만치 균형의 정점에 있다. 그 말인즉, 지금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이…….
“예, 레크나트 님.”
-모든 시간선을 대표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는 수많은 시간선의 교차점이다.
꿀꺽-.
레체로는 자신도 모르게 입 안에 고인 침을 꿀꺽 삼켰다.
시공간과 차원에 대한 연구와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해 왔고, 또한 들어 왔다.
지금 레크나트가 한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의 행보가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계를 포함, 모든 평행 우주의 자신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즉! 만약 지금의 레체로가 ‘죽는다면’ 다른 세계에서도 더 이상 그는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미래의 네가, 혹은 내가 놓쳐 버린 수많은 변수들 중 하나겠지.
현재의 레체로와 마왕 레크나트는 ‘니콜라스 헤이건’에 대해 알지 못하기에 그렇게 추론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것만 해도 정답에 거의 도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빠른 이해의 산물인 셈이다.
-피곤하게 됐군…….
스르륵.
“레크나트 님! 레크나트 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영력이 전부 사용되어 더 이상 연결할 동력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빌어먹을!”
레체로는 내벽을 후려쳤다.
불쾌했다.
모든 준비가 문제없이 착착 진행되어 왔고, 완성도는 99%였다. 끝이 바로 코앞이었다.
한데 이 판을 송두리째 뒤엎으려는 불청객이 나타났다. 그것도 지구에서.
“일단 주제단만 완성하면…….”
레체로는 입술을 깨물었다.
주제단만 완성하면 어찌 됐든 간에 레크나트의 현신을 위한 모든 준비는 끝난 셈이었다.
또한 폭발적으로 쌓일 암흑 기를 활용, 레체로도 지금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레체로가 눈독을 들이는 것은 바로 혈법술, 혈마술을 이용한 분신술이었다.
자신을 쏙 빼닮은 것으로도 모자라, 힘과 능력 그리고 지능까지 일치하는 분신을 만드는 것.
그것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암흑 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주제단의 존재는 필수였다.
“시간여행자를 죽이는 것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주제단이 완성되면, 놈은 날 죽일 수도 없어. 죽이는 게 불가능해.”
레체로는 확신했다.
사실 지금도 그 ‘시간여행자’는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싸워 보진 않았지만.
다만 신중하고 싶었고, 일을 그르치고 싶지 않았기에 우선순위를 보다 분명히 했다.
“미카시스.”
레체로가 통신석을 활용해 레크나트 나이츠의 단장 미카시스를 불렀다.
-예, 주군.
“필멸자들을 이피아 제단으로 보내라. 녀석들이라면 능히 시간을 끌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적이 그곳으로 올 것이라고 확신하십니까?
“놈은 수많은 제단들 중에서 내게 중추가 될 ‘부제단’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 막아 내야지.”
-알겠습니다. 신과 레크나트 나이츠는 기존의 자리를 유지하면 되겠습니까?
“주제단만 지키면 된다. 다른 곳은 다 잃어도 상관없다.”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신속하게 명령이 내려졌다.
전광석화와도 같은 신화의 빠른 공격에 네 개의 부제단을 줄줄이 잃기는 했지만.
아직도 믿는 구석은 많았다.
게다가 레체로가 다섯 사도 다음으로 그 실력을 의심치 않았던 최정예 흑마법사 열 명을 보냈다.
필멸자들.
그들을 상대로 나스 대륙의 영웅이니 패왕이니 했던 자들은 모조리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시간여행자라고 다를 것 같지는 않았다. 견고하면서도 변칙적인 필멸자들의 공격법은 레체로도 상대하기 까다로워했으니까.
“그 잘나 빠진 능력으로 어디 막아 봐라. 시간이 흘러갈수록 조급해지는 건 되레 너다.”
레체로는 흥분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제단으로 향했다.
이렇게 된 이상 ‘피의 잔치’를 좀 더 앞당겨야 할 듯했다.
제물은 충분했다.
이미 10만에 달하는 나스 대륙의 신성 제국민들이 대기 중이지 않던가?
그들의 목숨을 바치면 된다.
* * *
한편 그 시각.
“니X……. 진짜로 생지옥을 현실 세계에다가 지어 놨네.”
나는 다섯 번째 제단인 이피아 제단이 위치한 이피아 시에 도착해 있었다.
일행은 없었다.
마카디나 오블란이 힘을 보태겠다며 연락을 했지만, 나는 정중하게 사양했다.
그들이 힘이 없어서가 아니다.
내가 전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언할 수 있었다.
오블란이나 마카디도 결국은 나보다는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나보다 그들이 위험에 빠질 확률이 더 높다.
그리고 그런 일이 생기면 나는 그들을 구할지, 아니면 전략적으로 포기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쓸데없는 감정의 소모가 싫었던 것이다.
설령 잘못되더라도 나만 죽으면 그만 아닌가. 다른 이들까지 함께 지옥의 길동무가 삼고 싶진 않았다.
“원래 전생에는 이 제단이 없었지.”
약 10년 후의 기억과 대조를 하는 것인데도 차이점이 명확했다.
주제단이 완성된 이후, 레체로는 많은 제단을 지하로 옮겼던 것 같다.
우리 나인 로드가 나스 대륙으로 넘어왔을 때는 이 정도로 많은 제단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
이미 레크나트에 대한 소환 의식도 끝났고, 레체로 본인의 ‘업그레이드’도 다 끝난 이후였던 셈.
우리는 지하로 숨어 버린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채로 눈에 보이는 것만 쫓았던 것이다.
그것이 니콜라스를 포함한 우리의 패착이 된 것일 테지. 물론 이는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이피아 제단이 내려다보이는 고원 위에서 나는 천천히 보이는 전경을 눈에 담았다.
마음만 먹으면 초월 가속과 블링크로 접근하는 것은 금방이다.
하지만 상황을 좀 지켜보고 싶었다.
레체로나 레체로의 심복인 기사단장 미카시스, 그리고 최정예 레크나트 나이츠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한 놈도 안 보였다.
“부제단을 다 내 손에 넘기겠다…… 이건가? 어차피 몸통만 살아 있으면 되니까?”
코웃음을 쳤다.
물론 레체로의 입장에서 본다면 매우 합리적인 생각이다. 핵심은 바로 레체로 ‘자신’이니까.
대신 그렇게 되면 레체로의 수많은 추종자들이 내 손에 죽어 나갈 터.
하지만 레체로는 부하들의 희생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과연 레체로다웠다!
바로 그때.
위잉. 위잉. 위잉.
이피아 제단의 코어가 있는 곳에서부터 200m도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금빛 섬광이 일었다.
장거리 텔레포트가 완료되었을 때만 생기는 현상으로 ‘골든 이펙트’라는 별칭이 있다.
“누군지 알겠네.”
뚜둑. 뚜둑.
나는 바로 손을 풀었다.
그래. 무주공산인 상태로 내게 제단을 넘겨주면 섭섭하겠지.
안 그래도 지구에서는 내 앞을 가로막을 만한 각성자나 몬스터가 없어 심심하던 차였다.
특히 일라이저를 죽인 이후로는 ‘적’이라는 단어를 붙일 만한 녀석이 나타난 적이 없었다.
가이츠?
그놈도 그냥 갖고 놀기 좋았던 한 끼 식사였을 뿐이다.
비록 프라우다 길드에서는 신으로 모시는 존재였을지는 몰라도.
뭐…… 신도, 신의 아버지 앞에서는 어차피 아기 호랑이처럼 하찮은 존재 아니던가?
최상위 각성자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더 센 놈 앞에서는 그냥 센 놈도 아기에 불과하다.
“필멸자.”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제단 주변에 나타난 열 명의 흑마법사를 보며, 그들의 이름을 떠올렸다.
까다로운 놈들이다.
레체로를 열 명으로 분리해 놓으면 딱 이런 모습일 것 같은 방법으로 적을 상대한다.
이 녀석들은 전부 8클래스인데, 깨달음을 얻어 이 경지에 오른 놈들이 아니다.
죄 없는, 수많은 백성의 목숨을 제물로 바쳐서 악마와 계약해 힘을 얻어 낸 비열한 족속들이다.
‘마침 일라이저 녀석이 필멸자들에 대한 공략 방법을 적당히 잘 적어 놓았지.’
머릿속에 떠오른 공략법에 나는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일라이저 놈은 자신이 레체로의 뒤를 잇는 후계자가 될 것을 미리 대비해서 정적(政敵)인 필멸자들의 약점을 기록해 둔 듯하지만.
결론만 놓고 보자면, 오지랖이 됐다. 놈은 죽었고, 그 정보는 내 손에 있으니까. 참 잘한 짓이다.
전력으로 분쇄한다.
이것 외에 내게 다른 방법이나 해결책은 없었다.
제법 싸워 볼 만한 녀석이 나타났으니 신명나게 몸을 풀어 볼 뿐이다. 아직 예열이 덜 됐다.
* * *
쿠과과과과!
“……내 눈이 의심스럽군.”
“저기서 빠르게 접근하는 인영이 단주께서 말씀하신 저주의 근원인 모양이다.”
“저 한 놈에게 앞서 네 개의 제단이 쑥대밭이 됐다지?”
“수준 미달의 놈이 지키고 있으니 수백, 수천, 수만이 전부 무용지물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다.”
이피아 제단의 코어 일대를 지키고 선 필멸자 열 명이 전부 북쪽을 응시했다.
누가 봐도 신화가 틀림없는, 사람의 모습이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기에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북쪽 일대는 만년설이 쌓여 있는 곳이다 보니, 동선까지 대놓고 알려 주는 꼴이었다.
“데몬 헤레시스의 실드로 전환.”
“헤레시스 실드, 전환.”
필멸자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프탈린이 명령을 내리자, 필멸자들이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열 명의 흑마법사들이 마치 퍼즐을 맞추듯 저마다 실드를 만들어, 하나로 합쳤다.
모양은 제각각이었지만, 합치고 나니 정확하게 딱 들어맞는 거대한 황금빛의 장벽으로 변했다.
다음 순간.
과아아아!
필멸자들은 신화가 도착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거친 파공음을 들었다.
저 멀리서 순간 거대한 충격파를 일으키며 날아오는 것은 붉게 달아올라 있는…….
“공인가?”
윌슨이었다.
물론 윌슨의 정체를 알 리 없는 필멸자들은 빠르게 실드의 방향을 윌슨에게로 향했다.
쿠우웅!
“크윽!”
윌슨이 충돌하는 순간, 2차 폭발까지 일어나며 엄청난 충격파가 실드를 강타했다.
윌슨이 갖고 있던 마력이 폭발을 일으키면서 방어 역장을 거세게 후려친 것이다.
“크윽.”
“균형은 비틀림 없이 유지되어야 한다, 제스!”
그때.
윌슨의 충격파를 정면으로 받아 내야 했던 필멸자 한 명이 균형을 잃고 흔들렸다.
덩달아 ‘헤레시스 실드’도 그 흔들림에 맞춰 밀도를 유지하지 못한 채 늘어났다 줄어들었다를 반복했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필멸자들의 대열이 무너질 만큼, 신화가 윌슨으로 가한 공격은 매우 위력적이었다.
다들 내색은 안 했지만, 얼얼한 손끝의 고통이 느껴져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필멸자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