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92)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92화(291/300)
제 292화
충격. 경악. 공포. 절망.
필멸자들이 신화를 상대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키워드 네 가지였다.
애초에 그들에게 ‘필멸(必滅)’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은 누구든 그들과 상대하게 되면 반드시 죽었기 때문이다.
레체로가 필멸자를 보낸다는 것은 대상을 절대 살려 둘 생각이 없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들은 무적이었다.
아니, 스스로를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로라하는 위용을 자랑했던 소드 마스터만 해도 그들의 손에 여럿이 죽어 나갔기 때문이다.
예전의 오블란과도 한 차례 교전을 치른 적이 있었고, 그에게 유의미한 부상을 입히기도 했다.
이러니 자신감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수밖에 없었고, 신화 역시 그저 우습게만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뚝. 뚝. 뚝.
“크흐으으…….”
사방에서 들리는 소름 끼치는 이 소리는 바로 몸에서 분리된 신체 부위가 흘리는 핏물 소리였다.
제스의 죽음으로 시작된 필멸자 열 명의 ‘감소’는 어느덧 한 명만 남게 되었다.
유일한 생존자는 카프리라는 이름을 가진 필멸자. 나머지는 모두 신화에게 죽음을 당했다.
시작부터 설계가 잘못됐다.
그것이 카프리의 총평이었다.
신화는 ‘단순한 격투가’가 아니었다. 그것은 신화를 얕봐도 한참은 얕본 판단이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앞선 전투에서 신화는 자신의 재능을 제한적으로 썼다.
100% 전력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적을 제압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각종 영상 장치나 보고 등으로 자신의 재능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갈 것을 고려한 안배이기도 했다.
신화는 핵심이 될 재능은 극단적으로 숨겼다.
폭권을 제대로 쓴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전까지는 주로 개변을 활용한 육체 변화 위주로 싸웠다.
대신 화려하게 싸웠다. 그 이미지가 선명하게 남아 적들이 다른 것에 정신이 팔리지 않도록.
작전은 성공이었다.
신화가 보여 주고 싶은 정보만을 수합해서 출동한 필멸자는 새로운 레퍼토리의 등장에 당황했고.
그 당황에 대한 대가로 치른 것이 안타깝게도 그들의 ‘목숨’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수업료를 치른 셈.
“참 이상하지? 너도, 나도 똑같은 사람인데 이렇게 힘의 차이가 날 수 있으니 말이야.”
“사, 사, 살려 주십시오…….”
흑마법사의 삶을 살게 된 이후 단 한 번도 입에 담아 본 적 없는 말을 카프리가 내뱉었다.
아니, 평생을 통틀어서도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는 엘리트 마법사였고, 항상 모든 분야에서 선두를 달려 왔다.
“주변을 봐 봐. 단지 너희 필멸자들만 죽은 게 아니라 지원을 온 놈들도 전부 죽었어.”
신화의 지적에 카프리가 시선을 돌리자, 과연 많은 수의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나마 필멸자들은 신화와 어느 정도 공방전을 치르기라도 하다가 죽음을 맞이했지만.
일반 단원이나 검사들은 신화가 주먹 한 번만 뻗으면 그 자리에서 터져 나갔다.
카프리는 사람을 풍선처럼 터져 죽도록 만드는 것이 이토록 쉬운 일인지 신화를 통해서 처음 알았다.
신화는 마치 기폭 장치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주변의 적들을 차례로 터뜨려 죽여 나갔다.
윌슨과 폭권이 이루어 낸 하모니였다.
그 원리를 제대로 알 리 없는 카프리는 볼 때마다 경악스럽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흐으으…….”
“쓸 만한 정보……. 아니다. 됐다. 어차피 필요한 것도 없다. 웬만한 건 다 아니까.”
“저, 저기! 레체로! 레체로 님에 대한 정보를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뭔데?”
“레체로 님이 저희가 출발하기 전에 통곡의 벽을 세워 놓으셨습니다! 죽음의 장벽 말입니다!”
“통곡의 벽?”
“예에! 바로 통곡의 벽입니다!”
“그건 좀 골치 아프게 됐군.”
신화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전생에도 한 번 본 적이 있는 통곡의 벽은 레체로가 제단 주변에 만들어 둔 벽이었다.
보랏빛의 불길이 크게 타오르고 있는 것을 보고 통곡의 벽이라고 불렀는데, 이 벽을 상대하는 일은 아주 까다로웠다.
이 벽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 했다.
불길이 닿는 즉시 뼈와 살이 녹아내리고, 연결된 모든 신체 부위가 연쇄 작용으로 타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펄펄 끓는 용광로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나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추측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전생에는 이 통곡의 벽을 우회하기 위해서 나인 로드 멤버 중 중화기를 다룰 줄 아는 번우신이 고생했다.
아예 제단 밑으로 파고 들어가는 길을 고농축 차원 에너지 굴착으로 만들었었다.
예상치 못한 우회 루트를 만들자 당황하여 도망쳤던 것이 전생의 레체로였다. 물론 분신이었지만.
어쨌든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통곡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영혼 빼고는 모조리 녹여 버린다.
‘이래서 부활의 꽃이 필요한 거지. 없으면 답도 안 나올 뻔했군.’
신화가 웃었다.
부활의 꽃이 2개 있었다.
지금 현재의 목숨을 포함해, 총 세 개의 목숨을 갖고 있는 셈.
신화는 그중 하나를 통곡의 벽과 바꿀 생각이었다. 그 정도라면 정말 남는 장사다.
‘가장 극적인 형태로 목숨을 바꿔 줘야만 레체로에게 시원하게 한 방 먹일 수 있겠지.’
나름의 생각도 끝냈다.
레체로와의 일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수 싸움이 될 터.
녀석은 지금 이 시점에 이미 나스 대륙 전역을 장악할 정도로 강해져 있는 흑마법사다.
앞서 상대한 일라이저?
레체로에 비하면 일라이저는 아기 수준이었다. 괜히 끝판왕이 아니다.
이 정도로 강한 녀석이었기에 훗날 전투에서 그를 상대하기 위해 나인 로드가 전부 달라붙었어야 했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 애써서 잡은 것이 분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전생의 레체로가 자신을 포함한 나인 로드의 ‘멍청한’ 행보를 보고 얼마나 비웃었을지 능히 짐작이 갔다.
“살려 주시는 겁니까?”
“응.”
“가, 감사합니다!”
“다음 생에.”
쇄애애액!
“끅!”
신화는 무심한 표정으로 카프리의 목을 그어 버렸다.
희망에 찬 미소를 띠고 있던 카프리의 머리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입은 여전히 웃고 있는데, 눈동자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쓸 만한 정보를 줘야 살려 줄 생각을 하든가 말든가 하지. 이미 알고 있는 거 알려 줘서 뭐하게?”
파앙!
신화가 축구공을 차듯이 카프리의 머리를 저 멀리 걷어차고는 제단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미 초토화된 주변에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목숨이 붙어 있는 교단의 일원들은 일찌감치 이곳을 버리고 도망쳤다.
신화의 위력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근처에 있다가 죽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반영이기도 했다.
콰직! 콰지직! 콰악!
힘차게 가동되고 있는 제단 중심의 코어 기관을 신화가 완력으로 박살 냈다.
거대한 증기기관과도 같은 구조물이었지만, 신화의 괴력(怪力)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다 모았네.”
이윽고 흑암의 목걸이에는 오색 빛깔의 원석이 모두 채워졌다.
레체로에게로 향하는 확실한 하이패스가 마련된 셈이다.
“레크나트 나이츠, 미카시스, 레체로.”
신화가 남은 장애물(?)의 목록을 떠올렸다. 주제단에 이들 전부가 모여 있을 것이다.
“부활의 꽃 하나는 통곡의 벽과 바꾸면 되고……. 나머지 하나는 전략적으로 잘 써먹어야겠군.”
가장 중요한 계산도 끝냈다.
세 개의 목숨을 어떻게 분배하고 필요에 따라 교환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바로 그때.
쿠웅! 쿠우웅!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제단에서 대폭발이 일어나며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마카디와 저항군도 최선을 다해 주고 있으니, 나도 장단을 맞춰 줘야겠지.”
바로 저항군이 다른 제단을 공격하고 있는 현장이었다. 기습 작전이 성공한 모양이었다.
“후우.”
신화가 마지막 심호흡을 했다.
이제 흑암의 목걸이를 발동시켜 레체로가 있는 주제단으로 이동하고 나면.
자신의 운명은 완벽하게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된다.
죽거나 혹은 살거나.
그 외의 결론을 생각할 수 없는 전장 한가운데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것도 적진 한가운데.
“니콜라스…… 간다. 이제.”
신화가 하늘 높은 곳 어딘가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듣고 싶어도 그 어떤 목소리도 들을 수 없는…… 외로운 속삭임이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 대미(大尾)를 장식할 때다.
* * *
그 시각.
“끄아아아!”
“으아아아!”
“더 빨리 집어넣어!”
“버둥거리는 놈들은 바로 목을 쳐서 밀어 버려라!”
“레체로 님을 위한 중대한 의식을 거행하고 있으니 더 빨리 제물들을 봉헌해야 한다!”
레체로가 있는 주제단, 레체로 제단에서는 대규모 학살이 자행되고 있었다.
제단 중앙에 위치한 구덩이 깊숙한 곳에서 타오르고 있는 푸른 불길을 향해.
끌려온 포로들이 무차별적으로 던져지고 있었다.
푸른 불길은 일반적인 불길보다도 더 뜨거운 화염으로, 사람들은 이를 ‘악마의 불길’이라고 불렀다.
맞는 말이었다.
자신의 악명 높은 이름을 딴 제단답게 레체로는 두 눈을 감은 채로 기도를 올리며.
마왕 레크나트의 현신을 위한 재물 바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제단 아래쪽에 위치한 구덩이와 통로를 통해, 1초당 수십 명의 목숨이 내던져지고 있었지만.
레체로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화르르르륵!
제단 주변을 두껍게 둘러싼 원형의 불길은 구름에 닿을 듯한 위치까지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선명한 불길이었다.
통곡의 벽.
이 벽은 아무도 들어올 수 없고, 또한 아무도 나갈 수 없었다.
유일하게 레체로 자신만이 통과하기 전에 벽을 잠깐 없애고 지나갈 수 있을 뿐이다.
“웬 놈이냐?”
“…….”
통곡의 벽 너머로 침입자를 감지한 레크나트 나이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군, 그 어떤 공격도 주군에게 닿지 않도록 제가 지킬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알았다.”
든든한 미카시스의 말에 레체로는 통곡의 벽 너머에 대한 일은 신경을 끄고 의식에 집중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
주제단의 의식을 마무리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기껏해 봐야 30분 남짓이었다.
앞서 파견한 필멸자가 터무니없이 빨리 격파된 것이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간은 벌었다.
‘시간여행자’가 자신에게 닿기 위해선 레크나트 나이츠를 넘어서고, 미카시스를 넘어서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오호라, 단장 미카시스와 10명의 최정예 기사들. 일찌감치 반가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구나?”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다. 네놈의 뒤를 봐라. ……그것보다 나스 대륙어를 참 잘하는군.”
“응. 수십 년을 사용한 언어라서 그래. 너희만큼은 썼을걸?”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하는 신화의 대답에 레체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녀석은 과연 ‘시간여행자’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렸다.
수십 년을 나스 대륙어를 사용한 경험이 있으려면, 미래에서 온 누군가여야 이야기가 맞겠지.
바로 그때.
“레체로! 거기 있지? 통곡의 벽 너머에서 내 목소리 듣고 있지? 그렇지?”
신화가 배에 힘을 잔뜩 주고서는 레체로가 있을 법한 지점을 향해 힘껏 소리쳤다.
통곡의 벽은 개변된 눈을 통해서도 속을 꿰뚫어 볼 수 없는 절대 사각(死角)을 지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