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98)
만렙 회귀자입니다만-298화(297/300)
제 298화
“뭐야, 시간차 현신 같은 거야?”
선명하게 들린 마왕의 이름.
예전 같았으면 오금이 떨리고, 머릿속이 새하얘질 것 같았던 마왕의 이름이…….
지금은 왜 동네 똥강아지 이름처럼 하찮게 들리는 걸까?
레체로까지 박살 낸 마당에 까짓것 마왕이 현신한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그래서 정말 무심(無心)하게 하늘에서 빠르게 접근해 오는 레크나트의 모습을 살폈고.
녀석을 포장하고 있는 듯한 빛줄기가 제단에 도착하기 직전!
뻐어어억!
전력을 다해 그것을 후려쳤다.
완벽한 연산을 통해 정확히 타이밍에 맞춰 시원한 한 방을 날린 것이다.
-꺼헉!
그것으로 끝이었다.
강펀치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그것’은 제단에 닿기는커녕 저 멀리 한참을 날아가더니 그대로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뭐야, 이 XX?”
나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혹시나 해서 다시 하늘을 살폈지만 더 이상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장대비가 쏟아지던 하늘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햇빛이 쨍쨍 쏟아지는 맑은 하늘이 됐다.
신기했다.
앞으로 밝아질 미래를 암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구름 사이로 빛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흡사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볼 법한 천국으로 향하는 길이 열린 느낌이었다.
“하아……. 아차.”
제단 가장자리에 드러누우려 했던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까먹었다 싶어 다시 일어났다.
바로 주제단의 파괴.
여기에 박힌 코어를 파괴해야만 제단의 모든 기능이 완벽하게 정지된다.
지금은 여전히 가동 중이다. 단지 암흑 기를 불어넣던 레체로만이 죽었을 뿐이다.
이윽고.
파삭! 파삭! 와드드득!
온힘을 다해 제단 중심부에 박힌 자색의 코어를 움켜쥔 나는 그것을 그대로 으깨 버렸다.
시원하게 박살 나며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원석을 보니, 마음까지 후련해졌다. 정말 시원했다.
“아, 맞다. 내가 시체 능욕은 꼭 해 주겠다고 했었지.”
몸은 천근만근 무겁지만 그래도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을 수는 없지. 남아일언 중천금 아닌가?
나는 여기저기로 흩날리는 원석 가루의 오색 향연을 보며, 레체로의 시체 앞에서 바지와 속옷을 벗었다.
그리고.
쏴아아아.
죽은 녀석의 몸뚱어리 위로 소변을 시원하게 갈겼다.
고인 능욕이니 너무한 것 아니냐고?
이놈의 손에 지금까지 죽은 나스 대륙의 사람만 수십만 명은 될 거다. 그것을 생각하면 이런 복수는 오히려 소심한 수준일 뿐이다.
“후…… 시원하다. 시원해. 카아아악, 퉤!”
거기에 가래도 뱉어 줬다.
혹자가 본다면 내게 인성을 운운할지도 모르겠다.
뭐……. 전혀 상관없다.
그 ‘혹자’라는 녀석은 나처럼 레체로를 죽일 능력도 없고, 세상을 구할 힘도 없는 놈일 테니까.
난 원래부터 이런 놈이다.
매번 점잔을 빼면서 고상한 척하는 니콜라스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얘기다.
“……거긴 괜찮은 거냐, 진짜.”
쿠웅!
나는 그제야 지친 몸을 제단의 대리석 바닥에 누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내 쪽은 끝났는데.
녀석은 멀쩡한 걸까.
내가 이쪽에서의 일을 마무리했다고 해서 니콜라스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후련하면서도 뭔가 허무했다.
분명 이 모든 것은 나를 위해서 한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니콜라스를 돕기 위함이기도 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나를 계속해서 믿어 주고, 어떻게든 단서를 전달하려고 했던 녀석.
그 고통과 고난의 시간을 생각하면! 영화처럼 지금 딱 서로를 마주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쪽의 하늘은 맑은데…….”
허전한 마음에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머리 위로 보이는 태양을 손으로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
녀석이 있는 그 세계에서도 나와 같이 하늘 높은 곳에서 밝은 태양이 반짝이고 있기를.
부디 축복의 빛이 녀석에게 스며들기를 바랐다. 미치도록 니콜라스가 보고 싶은 지금이었다.
* * *
같은 시각.
“아아…….”
니콜라스는 탄식했다.
“쥐새끼 같은 놈. 이제 너를 죽여 이 지긋지긋한 추격에 종말을 고하겠다.”
에워싼 수십 명의 흑마법사들이 이글거리는 불길을 자신에게 쏟아붓기 직전이었다.
화르르륵.
거대한 원형의 화염구가 공중에서 만들어졌고, 그것은 통제를 벗어나 수직 낙하했다.
무적의 결계도 사라졌고.
심지어 더 이상 도망칠 힘도 없었다.
하다못해 천길 낭떠러지로 몸을 날려 자살이라도 하고 싶지만, 그럴 힘조차 없었다.
‘미안해, 신화야…….’
니콜라스가 뜨거운 눈물을 쏟아 냈다.
계획은 실패했다.
덩달아 과거의 어딘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신화의 모든 시간이 무의미해지려 한다.
먹먹해진 왼쪽 가슴, 심장이 칼로 후벼 판 것처럼 아프고 저렸다.
어쩔 수 없다.
패배자는 무슨 말을 해도 변명이 될 뿐이지 않은가.
니콜라스는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가까스로 닦아 내며, 다가올 운명과 마주했다.
콰아아아!
불덩어리가 떨어지고 있었다.
저것이 머리에 닿는 순간, 온몸이 으깬 감자처럼 찌그러지며 터져 죽고 말겠지.
굴욕스러운 최후라고 생각했다.
“후우.”
체념한 니콜라스가 눈을 감으려고 하던 바로 그때.
“……?”
니콜라스는 느낄 수 있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마치 모든 것이 멈춘 것처럼 더 이상 시간이 흘러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것은 눈앞에 보이는 흑마법사들이나 머리 위로 보이는 불덩어리나 자신의 몸이나!
어느 것 하나 예외가 없었다.
‘아……?’
소리 내어 말할 순 없었지만, 속으로 탄성을 터뜨릴 수는 있었다.
설마? ……설마?
다음 순간.
샤아아아아…….
세상에서 이보다 더 빛날 수 없을 만큼의 눈부신 섬광이 순식간에 대지를 휘감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섬광이 스쳐 지나가는 자리마다 존재했던 모든 것이 한 줌의 재가 되어 흩어졌다.
마치 지우개로 깔끔하게 지우는 것처럼, 흔적조차 전혀 남지 않는 완벽한 ‘삭제’였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강신화, 역시 너야. 네가 해냈어. 네가 해냈다고!’
타임라인이 통째로 바뀌면 자신이 사는 세상이 이렇게 바뀐다고 누군가에게 들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니콜라스는 이미 펼쳐지는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겼구나, 너……. 레체로를 죽였어. 시간을 비틀었어. 모든 미래를 네 손으로 바꾼 거야!’
니콜라스는 희열에 찬 미소를 지으며,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서로 닿을 수 없는 각자의 세계에서 고군분투한 수많은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대재앙을 막아 낸 이후.
모든 것이 잘못되었음을 느꼈을 때, 미련 없이 과거로 신화를 돌려보낸 선택은 적중했다.
단언할 수 있었다.
니콜라스 자신이 갔어도.
혹은 다른 나인 로드의 일원을 보냈어도 이렇게 극적인 반전을 이뤄 낼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모두 시간이 필요한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신화처럼 단기간에 스펀지처럼 모든 능력과 힘을 흡수하며,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부족했다.
‘이제는 사라져도 괜찮아. 네가 사는 세계, 그 이후의 시간이 평화 속에 안정될 수만 있다면…….’
니콜라스는 세상에서 가장 홀가분한 표정으로 양팔을 벌린 채로 두 눈을 감았다.
고오오오.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온 섬광이 방금까지 살아 숨쉬던 흑마법사들을 전부 증발시켜 버렸다.
그리고.
샤아아아.
이내 그 섬광 속으로 니콜라스도 빨려 들어갔다.
수만, 수십만의 조각이 되어 흩어지는 와중에도 니콜라스의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형체가 바람에 흩날려 사라질 때까지……. 그는 정말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여한(餘恨)이 없다.
그 말 한 마디로 그의 감정 모두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끝났어.’
마지막 생각을 끝으로.
니콜라스의 생각, 존재, 감정 등등……. 그 모든 것이 거기서 딱 멈춰 버렸다.
기억은 거기서 끝났다.
* * *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대리석 바닥에 누워 쉬다가 문득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시크릿 던전 앞이었다.
시공간을 동시에 점프한 느낌.
중간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지구로 돌아와 있었다.
“음…….”
지금까지의 모든 게 꿈이었다, 같은 경악스러운 전개는 아닌 듯해서 다행이었다.
아마도 레체로의 죽음과 동시에 지구로 귀환할 수 있게 만드는 연결 고리가 활성화된 듯했다.
조금 아쉽기는 했다.
마카디 혹은 오블란과 작별 인사라도 할 시간이 있었으면 했는데, 일이 이렇게 돌아갈 줄이야.
하지만 생각해 보니 영원히 보지 못할 사람들도 아니었다.
2025년이 되면 지구와 나스 대륙을 잇는 차원문이 열린다.
그때, 어렵지 않게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두 사람은 당연히 나를 알아볼 테니까.
물론 그때면 나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은퇴지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나스 대륙으로 넘어가서 오블란과 마카디를 잠시 만나고는 다시 돌아와 섬에 처박히겠지.
“내 인생에서 가장 스펙터클했던 5개월이었다. 앞으로 살아갈 삶이 이보다 더 다채롭진 않겠지.”
나는 웃으며 지난 시간을 복기했다. 정말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이었다.
회귀 초반에는 강해지기 위해서 미친 듯이 달리고 또 달렸고.
요 근래에는 니콜라스의 안배에 손발을 맞추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달려왔다.
“크하.”
이 한숨에 모든 기분이 묻어났다.
번아웃.
모든 것을 하얗게 불태운 느낌이었다.
“이제 마음 놓고 은퇴 준비를 해도 되겠네. 휴우.”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매번 은퇴 준비를 하면서도 다가올 미래를 너무 무책임하게 내팽개치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지금이야말로 후환(後患)을 모두 없앤 시점이었다.
다섯 사도 중 넷은 죽었고, 장동식은 이제 더 이상 사도가 아니다. 그는 나의 조력자다.
아울러 훗날 지구를 재앙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레체로는 확실하게 죽였다.
제단의 거대한 지하 불길 속에 던져 버렸기 때문이다.
지금쯤 아마 저승을 떠돌며 그간 자신이 죽였던 사람들에게 엄청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신이 있다면, 선과 악이 존재한다면, 녀석은 반드시 영원히 고통 받을 불지옥에 떨어지길 바랐다.
뭐, 나도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하면, 죽고 난 다음 기꺼이 녀석의 옆을 찾아갈 생각도 있다.
“…….”
혹시나 하는 생각에 스마트폰을 꺼내 니콜라스의 SNS에서 들어가 봤다. 혹시나 싶어서.
[오늘은 뉴요커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곳!마이클 바셋 씨의 빵집에 대해서 말해 보고자 합니다!
도대체 마이클 씨가 만드는 빵에는 어떤 비결이 숨어 있는 걸까요?]
“니콜라스 자식, 전생에는 팔자에도 없던 방송이라도 하려는 건가…… 가지가지 하네, 자식.”
나는 피식 웃었다.
정말 전생의 니콜라스와는 하나도 매치가 안 되는 녀석의 행보다. 물론 보기 싫지는 않았다.
역시.
아닌가 보다.
레체로를 죽이고 다가올 미래를 뒤집어 버리면, 니콜라스도 회귀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냥 내 망상이었던 것 같다.
“잘 지내면 됐지, 뭐. 그래. 니콜라스 녀석, 회귀하면 어쩌면 내 은퇴를 방해하는 흑막이 될지도.”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지금 이대로가 좋다.
완벽해.
내 소임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