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00)
만렙 회귀자입니다만-300화(299/300)
제 300화
“재고할 생각은 없으신 거죠?”
“응. 쉬고 싶어. 내 역량, 그 이상으로 너무 많은 일을 했어.”
“얼마나 쉬시려고요?”
“글쎄, 마음 같아선 영원히 쉬고 싶은 마음도 있다.”
“전부터 은퇴 얘기를 한두 번 했던 것이 아니라서 딱히 새삼스럽진 않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프네.”
“하하, 원래 만남 끝에는 꼭 이별이 있는 법이잖아요. 또한 이별 끝에는 만남이 있죠.”
팀 미스틱 동료들과는 시원한 캔맥주를 곁들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계속 아쉬움을 토로하면서 미련을 보이는 신부님, 한소준과 달리.
윤별이는 별말 없이 내가 말을 할 때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이미 내 마음을 알고 있기에.
선택을 존중하기에.
괜히 말을 덧붙여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배려로 보이기도 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달려올 수 있으니까 아예 헤어진다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소준이, 너도 시무룩한 표정 그만 짓고.”
“……알았다.”
“알겠어요, 형. 죄송해요. 형의 결정을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야 하는데,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아니야. 다만 오래전부터 내가 고민했던 끝에 내린 결정임을 이해해 주길 바라.”
“물론입니다! 그래야죠!”
“새로운 리더는 별이 누나가 하는 걸로 하죠. 실무와 의견 조율에 능하니까.”
“이의 없음.”
“저는 당연히 젬병이고, 냉정하게 말해서 지혁이 형도 리더 할 짬은 아니에요. 그렇죠?”
“야, 그렇게 내 뼈를 때리면 어떻게 하냐…….”
“하하하, 너무 입이 바른 소리를 했나요? 클클클.”
농담을 주고받는 신부님과 한소준의 모습을 보니, 다들 크게 상심하거나 걱정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그럴 것이다.
내가 없어도 충분히 셋이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과 인맥을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최근 세 사람은 각종 길드와 단체에서 러브 콜이 쏟아질 정도로 주가가 높아지고 있었다.
앞으로 흘러가는 상황이야 지켜봐야 알겠지만…….
나는 단언컨대 세 사람이 전생의 ‘나인 로드’처럼 눈부신 성장을 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애초에 그렇게 되라고 내가 밑밥을 열심히 깔고, 무대를 만들어 준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나중에 섬의 시설이 어느 정도 완공되면 손님 접대용 섬으로 초대할 테니까. 그때 근사하게 식사 한번 하죠.”
“헤헤, 좋습니다!”
“오케이. 기대하지!”
밝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앞으로 두 사람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생각하면, 어쩌면 나중에는 그들을 부를 시간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당장에 내일부터 한소준과 신부님은 KSA와 함께 던전 공략에 참여할 예정이기도 하다.
“단톡방은 안 나갈 테니까 거기서 종종 안부 전하고 합시다. 심심하지 않게.”
“그렇게 하자.”
“좋아요, 형님.”
“근데 왜 별이 누나는 아까부터 말이 없어요?”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는 윤별이의 모습에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말을 아끼는 것 같아서 궁금했다.
“그냥. 웃자니 슬프고, 그렇다고 울자니 궁상맞은 것 같아서.”
“훗, 누나다운 고민이네요.”
나는 피식 웃었다.
정말 윤별이 같은 생각이다.
“피곤한데 나 먼저 일어날게.”
“……응?”
윤별이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소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수가 적기는 해도 늘 이런 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챙기던 것이 윤별이다.
하지만 오늘은 마치 다른 사람처럼, 이 자리를 무척 불편해하는 모습이었다.
그 속마음이 짐작이 가지 않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답지 않았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무실 문을 열고 그녀가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고.
나는 한소준과 신부님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바로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작별 인사 자체는 끝난 만큼.
신부님, 한소준과 남은 얘기는 나중에 톡이든 다른 수단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테니.
한편.
누가 암살자 계열의 각성자 아니랄까 봐, 계단을 빠른 속도로 내려가 홀연히 사라진 윤별이.
“누나, 누나!”
그 뒤를 가까스로 따라잡은 나는 윤별이의 손을 잡았다.
“…….”
내 손에 이끌려 고개를 홱 돌린 윤별이의 얼굴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벌써 얼굴이 팬더…… 꼴이 되어 있었다.
“큭.”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이 나왔다. 물론 윤별이의 감정을 가볍거나 하찮게 여겨서는 아니다.
어쩌면 그녀가 내게는 조금 더 특별한 사람이 되었기에 이런 모습이 ‘귀엽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보내기 싫어.”
“왜요?”
“볼 수 없잖아.”
“톡도 있고, 아니면 영상통화도 있고. 뭐가 문제예요?”
“그건 네가 아니라 네 목소리나 네 화면일 뿐이잖아. 강신화, 너 자체가 아니니까.”
“그럼 가지 말까요?”
“그런 말이 아냐. 휴우……. 질질 짜는 모습 보여 주기 싫어서 나온 건데, 이렇게 따라오면 못 볼꼴까지 다 보여 주게 되잖아.”
“그게 어때서요?”
“싫어. 궁상맞은 모습 보여 주는 거.”
“에이, 엄청 귀여운데. 억지로 눈물 참으려고 입술 깨무는 모습, 정말 귀여워요.”
“…….”
“영원히 헤어지는 것 아니잖아. 너무 상심하듯이 말하지 마요. 아예 인연을 끊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순간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지그시 나를 올려다보는 윤별이의 모습이 내 두 눈에 새겨졌다.
귀엽고, 예쁘다.
슬픔의 눈물에서 왜 이런 역설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예뻤다.
내게 윤별이는 정말 소중한 인연이었다.
회귀한 이후로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가야 했던 내 곁에서 기꺼이 내 손과 발이 되어 주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더 많이 스트레스를 받고, 또 많이 골머리를 앓아야만 했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 마음속에 그녀가 자리를 잡았다. 분명 그런 지는 꽤 됐다.
하지만 사별한 전 여자친구에 대한 트라우마와 무겁고 막중한 미래의 무게에 짓눌려.
그녀에 대한 감정을 애써 외면하고 무시하려 했다. 그녀의 감정을 알면서도 밀쳐냈다.
그렇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물론 그녀에 대한 감정과는 별개로 내게는 안식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윤별이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완전 방전 상태나 다름없는 내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그 시간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혼자이고 싶었다.
감정의 문제가 아닌, 지쳐 버린 내 심신을 달래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것은 전생부터 회귀한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쉬지 못하고 달려온 나에게 꼭 주고 싶은 ‘보상’이었다.
“누나.”
“……응?”
“좋아해요.”
“어……?”
윤별이가 무어라 말을 잇기도 전에 그녀의 입술 위로 내 입술을 진하게 포개어 버렸다.
더 이상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가 좋다.
회귀한 이후의 삶에서 누군가와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면, 그 사람은 꼭 윤별이였으면 했다.
그동안 내 마음을 많이 속였고, 덩달아 윤별이도 힘들게 했다.
본의 아니게 그녀를 기약 없이 태양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만들어 버린 셈이었다. 다 내 잘못이다.
가볍게 맞추려 했던 입술은 어느새 뜨겁게 서로의 마음을 탐하는 달콤한 숨결이 됐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서로 꼭 끌어안은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의 감정에 충실했다.
행복했다.
마음 깊숙한 곳에 함께하고 있는 사람과 이렇게 진한 애정을 나눌 수 있어서.
쪼옥.
“아…….”
이윽고 짧고 강렬했던 키스가 끝나자, 윤별이는 홍조를 띤 얼굴로 내 턱 선을 쓸어내렸다.
그녀의 애정이 듬뿍 담긴 부드러운 손길이 그 어느 때보다도 따뜻하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누나, 부탁할 게 있어요.”
“응. 말해 줘.”
“12월 31일. 새해를 앞둔 그날부터 우리 마음으로, 그리고 몸으로 함께하기로 해요. 그때까지만 내가 쉴 수 있도록 조금만 기다려 줄 수 있어요?”
“……응. 그럴 수 있어. 그렇게 할 거야! 신화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말이야.”
“혹시라도 더 빨리 마음의 안식을 찾는다면 주저 없이 누나를 내 곁으로 부를게요. 약속해요.”
윤별이와 꽉 맞잡은 손으로 힘껏 손도장을 찍었다.
지친 마음을 달랠 시간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래야 사랑에도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듯했다.
“기다릴게.”
“길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게요. 그리고 항상 누나를 생각할게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당신은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에요. 부족한 나를 기다려 주고 좋아해 줘서 고마워요.”
그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우리는 다시 서로를 꼭 끌어안았고, 방금보다 더 진하게 서로의 입술을 탐하며 체온을 교환했다.
행복했다.
그리고 좋았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랄 정도로.
그렇게 정리의 시간이 끝났다.
사흘 후.
모든 준비를 마친 나는 홀연히 남태평양으로 떠났다.
양화 그룹의 배려로 타게 된 전세기 안에서 혼자만의 고독을 즐기면서 말이다.
회귀 직후로 앵무새처럼 그렇게 부르짖었던 은퇴!
뜬구름 잡는 얘기 같았던 목표는 이제 현실이 되었다.
씨X, 진짜 은퇴다.
속세의 삶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이제 놀고, 먹고, 싸고, 자면서 나만의 시간을 즐길 것이다. 적어도 올해는 확실히 말이다!
이후 윤별이와 함께해도 나는 이 섬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섬에서 나와 함께하게 될 것이다.
“은퇴다……! 은퇴라고!”
만감이 교차하는 포효!
전세기 안에서 나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하며, 진심으로 은퇴의 행복을 만끽했다.
* * *
약 3개월 후.
10월의 첫날.
저녁을 앞둔 붉은 노을을 즐기고자 별장에서 바닷가로 나온 신화는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을 따라 맨발로 걸었다.
지켜보는 사람도.
방해하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 무인도의 산책은 그 자체로도 영화와 같은 진풍경을 연출해 냈다.
백사장을 따라 걷는 동안.
“예쁘네.”
신화는 윤별이가 최근에 찍었다는 사진 몇 장을 보면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사람이 내 여자친구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잘 나온 사진이었다.
아니, 원래 예쁘니까 사진도 당연히 잘 나온 거겠지.
다음 주가 되면, 그녀가 여기로 올 예정이었다.
얼마만큼의 기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꽤 오랜 시간을 그와 함께 있게 될 터였다.
해 주고 싶은 음식도 많았고, 쌓고 싶은 추억도 많았다.
신화의 마음은 벌써부터 설레는 중이었다.
그때.
“……응?”
저 멀리.
백사장의 끝자락에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누군가가 보였다.
이곳은 공사 인부도 신화의 사유 지역임을 알기에 함부로 찾아오지 않는 곳이었다.
누구이기에 마치 자신의 섬인 것처럼 저토록 당당하게 걸어오는 것일까?
이내 노을의 역광에 가려진 ‘누군가’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을 때!
신화는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니콜라스?”
니콜라스였다.
일주일 전부터 SNS 활동이 없어서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했는데.
안 좋은 일이 생겨서가 아니라 자신을 찾아오기 위해서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왜?
굳이 이 섬까지 찾아올 만큼 니콜라스와 자신 사이에 시간을 다투는 일은 전혀 없었다.
애초에 니콜라스는 자신이 여기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리 만무했다.
서로를 어색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져 갔다.
신화는 ‘네가 왜 여기서 나오냐?’ 하는 딱 그런 표정이었고.
니콜라스는 뚱한 얼굴로 신화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할 말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그 순간.
신화가 무어라 입을 열기 전에 니콜라스가 한 손을 뻗더니 먼저 말문을 열었다.
꿀꺽-.
괜히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상황인데, 신화는 절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신화의 시선이 파르르 흔들리고 있는 니콜라스의 입술로 향했다.
그리고.
“신화야, 내가 왔다.”
“……!”
들을 수 있었다.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애틋했고, 그래서 더 보고 싶었던 녀석!
니콜라스 헤이건.
회귀한 그 녀석을 드디어 만나는 순간이었다.
<완결>
*공*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