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5)
만렙 회귀자입니다만-35화(34/300)
제 35화
파앗!
한달음에 목소리가 들리는 위치로 도약하며 움직였다.
즉사의 안개 지대가 워낙 가까운 위치였기에 도움을 요청한 사람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강철 강화 재능을 활용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인명을 구하는 행위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 사람이 적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는 없어서였다.
특히나 이곳은 레드 존이기에 더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크윽……. 죄송합니다.”
“일단 벗어나죠.”
바로 그를 끌어안고, 힘껏 도약하며 원래의 위치를 벗어났다.
후우우욱!
그때,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즉사의 안개가 확장을 거듭하며 그 자리를 순식간에 휘감았다.
조금이라도 내가 머뭇거렸다면, 남자가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충분한 거리를 확보한 나는 일단 남자를 내려놓고, 상태를 확인하려 했다.
그런데.
“어?”
익숙한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최 신부님?’
최지혁이라는 본명 대신, 최 신부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던 과거의 동료.
저주술과 강령술에 능한 디버퍼로 나와 궁합이 아주 잘 맞았던 분이었다.
훗날 신도림 전투에서 매드 베어에게 목숨을 잃어, 몇 날 며칠을 나로 하여금 오열하게 했던 동료이기도 했다.
“죄송합니다. 얼마나 상황이 심각한지 궁금하여 호기심에 둘러보던 차에…….”
“독침을 맞으신 듯한데.”
“그렇습니다. 다행히 독침을 날린 놈을 내쫓긴 했습니다만…….”
피가 철철 흐르는 신부님의 오른쪽 종아리는 잔뜩 부풀어 올라 있었다.
레드 존에 거점을 두고 있는 테러 조직들이 즐겨 사용하는 독침으로 마비 침이었다.
목숨에 지장을 주지는 않지만, 침에 닿은 부위가 순식간에 마비가 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아마도 각성자로 보이는 남자가 기웃거리고 있으니, 몰래 기습해서 돈이나 아티팩트 따위를 뜯어 갈 생각이었던 듯했다.
왼쪽 검지에 깊게 찢어진 상처가 있는 것을 보니, 반지 하나를 빼앗긴 것으로 보였다.
“일단 마비된 상태부터 풀도록 하죠. 이대로 아무 조치도 안 하면, 마비가 점점 하체 전체로 번질 겁니다.”
“해독약이…… 있으십니까?”
신부님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전생에 죽음으로 이별한 인연을 다시 만난 반가움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여긴 전생이 아닌, 현생이다.
나는 회귀했고, 당연한 얘기지만 지금 이 시점에 신부님은 내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
“해독약보다 더 좋은 것은 갖고 있죠.”
바로 마력을 침샘에 응축시킨 뒤, 순식간에 내용물을 치유의 침으로 바꿨다.
“훗, 민간요법입니까……?”
침을 뱉으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신부님이 웃음을 터뜨렸다.
실망했다기보다 내가 접근하는 방식이 너무 엉뚱해서 헛웃음이 터져 나온 듯했다.
이런 재능을 가진 각성자를 처음 볼 때마다 천편일률적으로 보이는 상대의 반응이기에.
나는 달리 신경 쓰지 않았다.
“구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십년감수했군요. 꼼짝없이 죽을 뻔했습니다.”
신부님이 옆에 놓인 표지판에 몸을 기댄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이 꽤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 방치되어 있었던 듯했다.
“그냥 연고를 발랐다고 생각하세요. 뭘 발랐는지 굳이 떠올리려 하지 마시고.”
“네, 그래야죠.”
나는 손바닥 전체에 도포한 침을 신부님의 종아리 환부에 골고루 발랐다.
샤아아아.
그러자 청명한 에메랄드빛이 뿜어져 나오며, 빠르게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호전 반응이다.
“아아?”
아니나 다를까, 바로 효과를 체감한 듯한 신부님의 표정이 달라졌다.
“어떻습니까?”
“살짝 저릿한 느낌인데, 빠르게 마비가 풀리는 느낌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닐 텐데요.”
“체력도 상승하고 있군요!”
“아무래도 민간요법이 효과가 있는 듯하네요.”
능청스럽게 농담을 던졌다.
어쨌든 다행이었다.
회귀한 이후, 내가 처음으로 목숨을 꼭 구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바로 최 신부님이었다.
실제로 최 신부님을 알게 되는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7년 후. 상당히 뒤의 일이다.
처음 신부님을 만났을 때, 유독 오른쪽 다리를 불편하게 저는 모습을 보여 그 이유를 물었었다.
‘이 모습에는 말 못 할 사연이 있습니다. 부끄러운 과거의 제가 남긴 유산이죠.’
숨기고 싶은 과거라고 생각해서 더는 물어보지 않았는데, 그게 오늘의 일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이게 니콜라스가 내게 입이 닳도록 말했던 회귀의 변곡점인 모양이네.’
회귀의 변곡점.
과거로 돌아온 내가 예전에 하지 않았던 행위를 함으로써, 미래가 바뀌는 것을 말한다.
니콜라스는 이 변곡점이 쌓이면 쌓일수록 자신이 아는 역사와 다른 미래가 펼쳐진다고 했다.
사소한 변곡점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굵직한 변곡점은 반드시 미래를 바꾼다는 것이다.
‘니콜라스 그놈은 너무 계산적이야. 좀 바뀌면 어때? 통째로 미래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역사가 바뀌는 것이 정말로 두렵다면, 전생과 똑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회귀한 의미가 없잖아.
“와……. 정말 감사합니다! 혹시 제게 발라 주신 타액에 해독과 치유의 효과가 함께 있는 겁니까?”
어느새 신부님은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나를 향해 직각으로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태생이 예절이 바르고 착한 사람이라 이런 행동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맞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수중에 현금이 없는데…… 이거라도 드리겠습니다.”
신부님이 오른손에서 반지 하나를 대뜸 꺼내서는 내게 쓱 내밀었다. 아티팩트였다.
썩 효율 좋은 아티팩트는 아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디버프 능력을 보조하는 반지다.
즉, 내게는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나는 태생이 버퍼나 디버퍼 같은 원거리 계열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니까.
피와 땀을 흘리는 난타전에서 고통을 느끼(?)면서 살아 있음을 실감하는 내 스타일과도 안 맞는다.
“됐습니다. 보상을 바라고 구한 게 아닙니다. 우연히 제가 그곳에 있었고, 구할 능력이 있으니 구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정 보상을 원하시면 나중에 술 한잔 사시죠. 신부님이니까 술은 드시죠?”
“좋아하지요.”
“그럼 됐습니다. 감사 인사는 맛있는 술 한잔과 안주로 대접받고 싶은데 어떠실까요?”
“그러면 제가 너무 면목이 없는데, 정말 그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목숨을 구해 주신 은인인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신부님을 다시 만났다는 사실이 훨씬 더 행복하고 기뻤다.
본인은 당연히 모르겠지만.
신부님은 전생에 니콜라스를 제외하고, 나를 진심으로 챙기고 보조해 줬던 동료 중 하나였다.
신도림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것도 나를 기습하려던 매드 베어를 저지하려다가 희생된 것이다.
그래서 평생을 두고두고 마음의 빚으로 남은 소중한 동료였다.
‘전생에 남은 마음의 빚을 갚으라고 회귀한 것일지도 모르지.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회귀 후에 사람에 대한 욕심은 크게 없었는데, 신부님만큼은 구하고 싶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인연을 만드는 것도 좋을 듯했다. 예전처럼 7년 이후에 보는 것이 아니라.
“맛있게 소맥 하나 말아 주시면 기쁜 마음으로 목숨 값을 받았다고 생각하죠.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정말 좋네요. 그렇다면 실례지만, 제게 번호를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남자 헌팅인가요?”
“하하. 명색이 신부인데, 큰일 날 소리를 하시는군요!”
나는 최 신부님이 숨기고 있는 몇 가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있다. 물론 그뿐이다.
인간관계에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로부터 10분 후.
나는 최 신부님이 탄 성북행 1호선 급행열차가 안전하게 출발하는 것을 확인한 뒤.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하려던 일을 이어 나갔다.
토지 매입 문의.
아직 할 일이 남았다.
* * *
같은 시각.
점점 멀어져 가는 신화의 뒷모습을 보며 최지혁은 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았다.
처음 마비됐을 때만 해도, 어지간한 해독제로는 쉽게 회복될 수 없는 상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괜찮다면 신화에게 가까운 모산골 성당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
마침 거기에 아는 신부가 있고, 그는 나름 해독술에 정통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화는 다른 곳에 손 벌릴 필요도 없이, 그 자리에서 쉽게 자신을 치료해 버렸다.
마비는 순식간에 풀렸고, 탈진에 준하는 상태였던 몸에는 생기가 빠르게 감돌았다.
그것은 신화가 타액으로 만들어 낸 특수한 힘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너무 요즘 소식에 둔감했나.”
이 정도의 치유력과 회복력을 가진 각성자라면 못해도 A랭크 이상은 될 것이다.
아직 D랭크도 언감생심인 최지혁의 눈에는 까마득하게 높은 세계였다.
“생명의 은인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최지혁은 이미 충분히 멀어져 보이지 않는, 저 멀리 어딘가 있을 신화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바로 그때.
하늘에 잔뜩 끼어 있던 먹구름이 걷히고, 그 틈을 비집고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하자.
“…….”
최지혁이 조심스레 창가에서 몸을 뒤로 물렸다.
* * *
저녁 8시.
약속한 만남의 시간보다 30분을 미리 나왔음에도, 이미 현장에는 나를 제외한 모두가 도착해 있었다.
‘팀 구성을 보니, 누가 봐도 나를 테스트해 볼 생각으로 짜 놓은 팀이 확실하네.’
나는 짐꾼들과 함께 일찌감치 던전 앞을 지키고 있는 일행을 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A랭크, 정훈.
A랭크, 진보미.
S-랭크, 윤태호.
S+랭크, 서예희.
길드 핵심 구성원이 전부 다 왔다. 아마 길드의 나머지 간부들은 높아야 B+랭크라서 오늘 이 자리에 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신화 씨!”
나와 가장 먼저 눈이 마주친 것은 진보미였다.
“음?”
반갑게 인사만 하면 되는데?
진보미는 열심히 양손을 흔들어 가며,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어제였던가?
톡으로 오빠라고 불러도 되냐고 묻길래, 적당히 거리를 두며 예의를 지키는 게 편하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호칭은 그대로인데, 나를 대하는 모습은 전보다 더 친근해진 모습이었다.
물론 그녀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자신을 구해 준 내게 고마운 마음이 있는 거겠지. 그 감사함 때문일 거다.
“사전에 준비할 게 있어서 약속보다 일찍 도착했는데, 신화 씨도 엄청 빨리 오셨네요?”
“원래 기다리게 하는 것보다 기다리는 것이 더 편해서요. 나름의 루틴이기도 하고.”
거짓말은 아니다.
미리 던전 앞에 도착해서 주변의 분위기를 느끼며 체내의 마력을 끌어올리는 작업.
그것은 오래전부터 내게 하나의 의식처럼 굳어진 루틴이었다.
“오늘 공략, 부담 가지실 필요 없어요. 주공은 저희에게 맡기시고, 적당히 서포트해 주세요.”
“구경하란 얘기인가요?”
“자잘한 몬스터 처리를 담당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워낙에 이동 경로가 다양한 곳이라서요.”
‘이것 봐라?’
분명 날 시험하려고 불러 놓고는 속내를 쏙 숨기고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뭐, 아무래도 좋았다.
내 능력을 살펴볼 겸해서 부른 던전에서 내가 실력 행사를 하는 것은 인지상정.
자기 어필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확실히 해 주는 게 좋겠지.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는 진보미와 정훈, 서예희, 윤태호를 번갈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대신 몸값이 오르는 것도 너희 책임인 거 알지?’
결론은 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