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48)
만렙 회귀자입니다만-48화(47/300)
제 48화
“아, 와 있던 게 아니에요. 마침 친구랑 만날 일이 있어서 새벽까지 얘기 좀 하다가 들어가는 길이었을 뿐이에요.”
“이 시간에요?”
“네! 이 시간에요. 아버지가 통금 같은 거 따로 정해 주시지 않았거든요!”
생기발랄하게 말하는 진보미.
하지만 나는 그녀의 지금 몸 상태와 말이 따로 놀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무심히 스쳐갈 일반인의 눈이면 당연히 놓쳤을 부분들이겠지만.
내 개변된 눈에는 다 보였다.
새벽녘의 한기에 꽁꽁 얼어 버린 손과 몸, 평소보다 훨씬 낮아진 것이 틀림없는 그녀의 체온이.
포근했던 아까와 달리, 그새 기온이 확 떨어진 것이다.
아마 새벽을 기점으로 기압골이나 바람의 흐름이 바뀌거나 한 것일 터다.
‘지금은 밖에서 얘기하기에 확실히 추운 온도야.’
나도 옷깃을 여미게 되는데, 나보다 훨씬 얇게 입고 온 진보미가 괜찮을 리 없었다.
그녀에게 손짓했다.
“이쪽으로 와요. 집으로 들어가죠. 온 김에 몸이나 잠깐 녹이고 가요. 그나저나 왜 온 겁니까?”
“짜잔! 이것 때문이죠.”
진보미가 제대로 굽혀지지 않는 손가락을 억지로 움직여 가며, 내게 서류철 하나를 꺼내 보였다.
‘소속 길드원 강신화 씨에 대한 새로운 안전 저택 후보군 정리!’
뭔가 거창하게 써 놨다!
물론 맥락은 충분히 이해했다.
암살 미수 사건으로 내 중화역 자택에 대해 걱정을 하는 듯했는데, 아예 괜찮은 곳을 리스트 업 해 온 모양이었다.
그녀의 관심과 배려는 분명 기분 좋은 일이다.
양화 길드와 그룹에서 그녀의 위상을 생각하면 더더욱.
다만 유망주 혹은 기대주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만 보기엔 그녀가 생각해 주는 마음 씀씀이가 깊었다.
사심이 들어간 것 같다고 할까.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 20대였을 때의 나였다면 잘 보이지 않았겠지만.
56년을 살고, 다시 새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 눈에는 다 보인다. 그녀의 배려 속에 숨겨진 호감이.
‘어린애다. 이제 스무 살인데.’
어쨌든 그녀의 수고가 고맙게 느껴지기는 했다.
직접 집을 알아보려면 꽤 귀찮을 것 같은데, 진보미가 수고를 덜어 줬다.
“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가요. 누추한 믹스 커피지만.”
“헤, 저 믹스 커피 진짜 좋아해요. 이왕이면 종이컵에 타서?”
“그 정도 센스는 발휘해 드리죠.”
나는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안내했다.
새벽녘에 젊은 청춘 남녀가 한집에 있게 되었지만……. 달리 핑크빛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이런 거에 설렐 나이가 한참 지난, 겉만 젊은 중년의 강신화이니까 말이다.
* * *
신화의 집으로 들어온 진보미는 신기한 표정으로 그의 집 구석구석을 살폈다.
신화가 적당히 커피에 곁들여서 먹을 과자와 물을 데우는 동안의 막간을 이용한 탐색이었다.
“이거 봐요. CCTV나 보안 시스템이 하나도 없잖아요! 이러면 진짜 위험해요. 화이트 존이라고 해서 범죄율 0%가 아니니까요!”
“민망하게 너무 혼내지 마시죠. 그래서 새집을 알아보고 있는 것 아닙니까?”
사실 보안 설비를 갖추지 않은 건, 어지간한 침입은 마력 감지로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기계는 만능이 아니다.
기계이기에 자체로 약점이 존재하고, 예기치 않게 빈틈이 뚫리는 일이 생긴다.
보안 신호 교란, 전력 공급 차단 같은 변수도 많다.
수준급 암살자들은 보안 시스템의 파훼에도 능수능란하다. 기계만 믿었다가는 저승길 가기에 딱 좋다.
촤륵! 촤륵! 촤악!
진보미가 파일에서 꺼낸 종이들을 내 앞에 쭉 늘어놓았다.
모두 후보군이 될 집의 내외관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었는데, 정말 꼼꼼하게 많은 사진이 담겨 있었다.
“신화 씨가 지금 사는 이 집의 분위기와 유사한 곳을 리스트로 뽑았어요. 물론 보안 등급 A 이하는 볼 가치도 없으니 전부 뺐고요.”
보안 등급의 알파벳은 곧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는 침입자의 랭크를 뜻한다.
A등급이면 A랭크 각성자, F등급이면 F랭크 각성자를 ‘일반적으로’ 탐지해 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진보미가 보여 준 파일들은 전부 S, SS의 알파벳만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음, 잠시 좀 꼼꼼하게 봐도?”
“얼마든지요!”
진보미가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기까지 무척 귀찮아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꼼꼼하게 살피는 것이 신화의 성격이기도 했다.
게다가 진보미의 고생과 수고도 있는 만큼, 내용을 대충대충 보고 싶지는 않았다.
촤륵. 촤륵. 촤륵.
신화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
확실히 지금 살고 있는 이 집과 느낌이 유사하면서 동시에 보안에 특화된 집들이었다.
물론 리스트에 있는 곳들이 전부 양화그룹 계열사인 양화건설에서 시공한 것이기는 했다.
‘차라리 그게 속 편해. 안전, 보안 시공 쪽으로는 양화건설이 확실히 브랜드 파워가 있으니까.’
양화건설에서 지은 집은 구하고 싶어도 매물이 없어서 못 구할 정도로 선호도가 높다.
그만큼 주요 고객층인 각성자의 눈높이에 맞춰 시공하기에 갖춰진 것도 많고, 단가도 센 편이었다.
‘내 실력만 믿는 것보다는 현실적인 대비도 해 두는 것이 분명 안전할 테니까.’
빨리 돈을 모으고 싶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빠르게 돈을 모은다고 한들, 일을 그르쳐 죽으면 저승길 노잣돈밖에 안 될 뿐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화이트 존이라고 해서 무조건 치안이 좋은 곳은 아니기에 늘 긴장할 필요가 있었다.
다수의 안전 가옥은 이런 걱정을 해소해 줄 수 있는 확실한 대안이 될 것이다.
“계약 전에 직접 가서 살펴보긴 하겠지만, 보미 씨의 안목이 틀릴 것 같지는 않네요. 이렇게 다섯 채로 하죠.”
“어디 보자. 그럼 다섯 채 합쳐서 세금까지 하면 200억 원 정도가 필요할 듯한데, 괜찮으시겠어요? 모자라시면 미리 저희 길드와 연장 계약을 할 수도 있어요!”
너무 자연스럽게 운을 떼서 더 수상한 노림수가 느껴졌다.
좋은 시도이기는 했다.
신화에게 씨알맹이도 먹히지 않을 수작이기는 했지만!
‘지제역 땅 매입금을 전부 제하고 나면 50억 정도 남나? 모자라네. 마력 포션은 매일 제작하면 되고, 다음 제작도 서둘러야겠다.’
150억 원 정도 모자라기는 하지만, 열흘 남짓이면 채울 수 있는 돈이기는 했다.
여차하면 계약을 미리 할 것이 아니라 최상급 마력 포션의 공급을 선계약으로 하면 된다.
자신이 유리한 입장에서 조율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 만큼,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일단 계약금만 걸죠. 중도금과 잔금은 시간차를 두되, 돈이 준비되면 바로 치르고 입주하기로.”
“가능하시겠어요?”
“돈 걱정은 안 해도 괜찮아요. 뭐,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지만?”
지금 자신이 돈을 쑥쑥 잘 벌고 있는 것은 맞지만, 시가 총액 30조 원에 달하는 양화그룹 앞에서는 새 발의 피였다.
진성태와 진보미가 유독 오너 일가의 느낌 없이 소탈하게 다수의 사람과 격 없이 지낼 뿐이다.
“그럼 진행할까요?”
“그래 주시면 좋죠. 졸지에 보미 씨가 저를 대신해서 중개 역할까지 하게 됐네요.”
“호호, 전에 제가 말했던 것 기억 안 나세요? 당분간 제가 신화 씨의 담당자라고요.”
“감사는 그 정도면 충분히 됐어요. 필요 이상으로 신경 써 줄 필요는 없습니다.”
“뭐, 그건! 생각해 볼게요. 아 참! 라이선스 테스트 관련, 일정 확정됐어요. 깜빡할 뻔했네요.”
진보미가 신화에게 내민 종이에는 오늘 오후 3시, KSA 서울 지부로 장소와 목적지가 적혀 있었다.
‘지부로 직접 불러들인다고? 뭘 얼마나 거창하게 지켜보려고 지부까지 불러?’
신화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어지간히 KSA의 관심을 받고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웬만해서는 외부인을 내부로 잘 들이지 않는데, 테스트치고는 무대가 거창했다.
보통 이런 테스트가 있으면, 외부 시설을 빌리는 형태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고생 많았어요.”
“고생은 뭘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죠! 그나저나 따뜻한 게, 몸이 노곤해지네요.”
“더 늦기 전에 들어가요.”
신화가 진보미의 손을 붙잡고,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묘한 시선과 함께, 신화에게 뭔가 아쉬운 듯한 눈빛을 보냈지만.
신화는 피식 웃고는 그녀를 자연스럽게 집 밖으로 안내했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다.
진성태 일가 전체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막내딸이기도 하고, 길드의 핵심이기도 하다.
괜한 스캔들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얼마 후.
부우우웅!
신화는 한참 동안을 가만히 있다가, 뒤늦게 출발하는 진보미의 차를 배웅했다.
진보미. 귀여운 구석도 많고 이성적으로도 매력이 정말 많은 사람이기는 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사랑…… 이라.’
사랑, 그것은.
전생에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적 있는.
말 못 할 상처가 있는 신화에게는 뜨겁지만, 동시에 멀리하고 싶은 감정이기도 했다.
* * *
그날 오후.
“KSA가 그나마 마음에 드는 점이 있다면, 서울 지부를 느낌 있게 전통 한옥식으로 잘 지었다는 것이랄까?”
나는 서울 지부의 건물 앞에 도착해 있었다.
국가와 각성자를 대표하는 건물로서 서울 지부가 갖는 상징성은 매우 컸다.
그래서인지 입구에서부터 검문검색 절차가 매우 까다로웠다.
외부인을 아무나 받았다가는 테러의 목표물이 되기에 딱 좋은 곳이기도 해서였다.
그래서일까?
정문을 지키는 요원에게 방문 사유를 얘기했지만, 전해 들은 바가 없다며 코웃음만 칠뿐이었다.
귀찮지만, 어쨌든 바로 연락이 가능한 윤별이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신호가 한 번 울리자마자 바로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강신화 씨?
“불러 놓고 입구에서 막으면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아, 죄송해요. 대외적으로는 알리지 않은 사안이라.
“…….”
-제가 바로 나갈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윤별이는 철저하게 저자세였다.
라이선스 발급.
어찌 보면 오히려 내가 아쉬워하고 기대야 할 곳이 많은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윤별이의 태도로 봐서는 오늘의 자리가 단순히 라이선스 발급용 테스트가 아님은 확실했다.
그녀가 포커페이스이거나 위장이 능했다면 적당히 강짜를 부려도 될 법한데, 그러지 않는 것이다.
내가 아는 윤별이의 성격상, 거짓말을 하거나 능청은 잘 떨지 못한다. 원리원칙주의자이기도 하고.
그래서 미리 내게 비위를 맞추는 듯했다. 중요한 손님으로 취급하고 있으니까.
“흐음.”
나는 팔짱을 낀 채 서울 지부의 돌아가는 모습을 살폈다.
여기저기서 범죄자들을 실은 특수 차량이 앞다퉈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서울 지부에서는 현상금이 걸린 각성자들을 모두 추적하고 체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전에 나와 통화했던 주천호도 KSA 서울 지부의 최우선 체포 대상 1순위다.
한데 바로 그때.
“강신화 씨?”
평범한 회사원 같은 옷차림으로 지나가고 있어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던 한 남자가 나를 불렀다.
그를 본 순간.
“……!”
나는 회귀한 이후, 처음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꼿꼿이 굳을 만큼 강한 위압감을 느꼈다.
SSS랭크의 각성자.
KSA의 총 본부장.
‘이하성이잖아?’
그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