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49)
만렙 회귀자입니다만-49화(48/300)
제 49화
이하성은 알려진 것보다 베일에 싸인 것이 많은 사람이다.
KSA의 얼굴마담 역할도 본부장인 그보다는 서울 지부 지부장인 나미나가 주로 맡는다.
그녀가 매스컴과의 접촉을 좋아하는 데다가 기자들과의 친분도 제법 두텁기 때문이다.
즉, 전생의 나도 이하성과는 생각보다 접점이 많지 않았다.
그가 던전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사망하고, 새 본부장이 취임하는 2040년까지.
그를 만난 것은 딱 한 번이 전부였다.
그 한 번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 말을 거는 사람이 누군지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실례지만 누구…… 신가요?”
모르는 체를 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초면인데 아는 척을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분명하니까.
“본부장 이하성입니다. 오늘 라이선스 테스트 건으로 방문하신다고 들었는데, 맞으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여러 가지로 귀찮게 만들어 드려서 죄송합니다. 이래서 가끔 KSA가 꼴통 소리를 듣죠. 하하.”
사람 좋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이는 이하성에게서는 옆집 아저씨의 포근한 느낌마저 들었다.
올해 서른아홉 살일 테지만, 얼굴은 그보다 좀 더 늙어 보였다.
“아닙니다. 국가 소유의 던전을 공략하는데, 당연한 검증 절차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고요.”
바로 그때.
찌릿.
그와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머리에서 갑자기 두통이 시작되는 것을 느꼈다.
‘탐색 재능이 있었군.’
상대는 SSS랭크 각성자. 이런 재능이 있는 게 이상할 것은 전혀 없었다.
내가 아무 대비를 하지 않았더라면, 당했는지도 모르고 내 재능과 마력 보유량을 이하성에게 고스란히 읽혔을 것이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내게는 시도 때도 없이 경험해 본 적 많은 ‘정신계 능력’이었고.
당연히 파훼법도 알고 있었다.
이론과 달리 실천이 좀 어렵기는 하지만, 방법은 간단하다.
탐색 재능의 스캔은 반드시 대상의 머리나 접촉부에서 시작되는 만큼, 뇌와 그 언저리에 마력으로 두꺼운 벽을 쌓아 두면 된다.
물론 자유자재로 마력을 원하는 위치에 보내거나 머물게 할 수 없는 일반 각성자들에게는 실현 불가능한 이론일 뿐이다.
“날이 참 춥죠?”
방금 전의 스캔 시도가 빠른 내 대응에 무위로 돌아갔음에도, 이하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옷깃을 여미며 자연스럽게 날씨 얘기를 건네는 모습이었다.
‘하긴, 본부장이 괜히 본부장이 아니지.’
서로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찰나의 순간에 서로의 노림수가 오갔다.
알려는 자와 받아치려는 자.
결론은 무승부가 됐다.
“강신화 씨! 이쪽…… 아? 본부장님, 안녕하십니까?”
이윽고 현장에 도착한 윤별이가 나를 부르려다가 이하성을 알아보고는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별이 씨, 요즘 정말 고생이 많아요. 수고해요. 강신화 씨,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이하성이 내게 다시 인사를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저 손은 보통 손이 아니다.
나는 바로 모든 마력을 악수할 오른손에 집중한 뒤, 또 한 번의 방어벽을 세웠다.
이윽고 맞잡은 손을 따라, 역시 미세하게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나에 대한 정보가 뭐가 그리도 궁금한지! 참 지극 정성인 듯싶다.
“저도 반가웠습니다.”
해맑게 웃으며 화답하는 나.
잠깐 사이에 오간, 보이지 않는 공격과 수비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별이 씨를 따라가면 되나요?”
나는 바로 윤별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빨리 라이선스 건을 해결하고, 랭크를 끌어올릴 ‘마력 저장 재능’을 흡수하러 갈 시간이다.
* * *
신화가 윤별이의 자세한 안내를 받아 특설 훈련실로 들어가 대련용 장비를 착용하는 동안.
반투명 벽을 통해, 훈련실 밖에서 조용히 그를 지켜보는 두 사람이 있었다.
이하성과 나미나였다.
안에서는 훈련실과 똑같은 벽으로 보이지만, 밖에서는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였다.
“본부장님, 아까 입구에서 만나셨다면서요?”
“그랬지.”
“어떠셨어요?”
“노련하더군.”
“스캔…… 실패하셨어요?”
“대응법을 알고 있었어.”
덤덤하게 말하는 이하성의 모습과 달리, 나미나는 한껏 놀란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하성의 탐색 재능은 제대로 막지 못하면, 태어났을 때의 기억마저도 모조리 읽힐 정도로 상대의 모든 정보를 빨아들이는 강력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재능의 무서운 점은 정보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장점과 단점까지도 자체 분석을 할 수 있기에.
이하성의 입장에서 정보 파악이 끝난 대상을 상대할 때, 집요하게 약점을 노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머리나 접촉 지점에 마력의 벽을 미리 쌓아 두지 않으면 순식간에 당하고 말 텐데요.”
“그러게 말이야. 시도하는 순간에 이미 대응이 끝나 있더군. 강신화 씨가 지명수배자나 범죄자는 아니니까 무리하진 않았지.”
“역시 보통 각성자가 아니에요. 그렇죠?”
“사실 오늘 직접 만나 보기 전까지는 네가 왜 그리 호들갑을 떠는지 의아했는데 말이야.”
“호들갑은 좀……. 그것보다 격조 높은 단어 없어요? 서울 지부의 리더가 호들갑이니 뭐니 하면 너무 없어 보이잖아요!”
“어쨌든 강신화, 확실히 숨기고 있는 것이 많아. 짐꾼은 아무래도 위장이었던 것 같다.”
“그렇죠? 조용히 재능을 숨기고 지내다가 때가 되니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영입 시도도 좋지만.”
“네.”
“지나치게 자극하는 일은 삼가도록 해. 욕심 이전에 우리 대한민국의 소중한 각성자 중 한 명이니까.”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그럼, 어디 좀 지켜볼까?”
이하성과 나미나가 불을 모두 끈 어두운 방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제 곧 신화에 대한 테스트가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신화 씨, 혹시 테스트의 전 과정을 촬영해도 괜찮을까요?”
윤별이는 내게 상대와의 대련 과정에 대한 촬영 허가를 요청했다.
내가 피식 웃기만 하고 아무 말이 없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차피 저쪽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아니었습니까? 처음부터 이미 알고 있었는데요.”
“네?”
그녀는 능청스럽게 모르는 척을 하지만, 내 눈이 얼마나 남들과 다른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나는 대련할 상대에게 잠시 양해를 구한 뒤, 성큼성큼 벽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부에서 팔짱을 낀 채 나를 뚫어져라 살펴보고 있는 이하성과 나미나를 가리켰다.
“여기 두 분, 잘 보이네요. 다시 뵙네요. 본부장, 지부장님.”
내가 정확하게 시선을 마주치고 인사를 건네자, 안에 있던 나미나가 놀라서는 벌떡 일어섰다.
이하성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는 있었지만,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상식이 이래서 무섭다.
인간의 눈으로는 절대 투과해서 볼 수 없을 벽이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개변된 눈은 달라.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지.’
“…….”
윤별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인정할 수도 없고,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일 테니까.
두 사람이 지켜봤다고 해서 불쾌한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다.
애초에 날 여기에 부른 목적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록이 남는 촬영은 됐고. 두 분이 현장을 지켜보고 계시니 그걸로 대체하죠. 어떻습니까?”
그러자 안에서 이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미나는 여전히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럼 이제 시작하죠. 라이선스 발급, 꼭 받고 싶네요.”
손목을 이리저리 가볍게 털어 내며, 천천히 특설 훈련장의 중앙으로 향했다.
2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그어진 반대편 라인에는 오늘의 대련자가 서 있었다.
‘황준형.’
오늘의 내 상대다.
내게 사전 정보로서 공개된 것은 없지만, 옛 기억에 그에 대한 정보가 남아 있었다.
A-랭크 각성자이며, 전형적인 거리 재기 원딜러 타입의 각성자.
집요하게 거리를 벌리며, 상대를 원거리에서 괴롭히는 가장 짜증 나는 포지션의 각성자다.
‘잘 도망치느냐, 잘 따라붙느냐의 싸움인데. 동선에 변주를 줘야겠군. 그간 판을 짜는 전투로 재미를 봤을 테니 말이야.’
저런 각성자의 특징은 계속 위치를 조정하기에 늘 자신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다는 것이다.
즉, 단순하게 그의 움직임을 쫓기만 해서는 답이 안 나온다.
접근할 만하면 집중 견제를 당하고, 밀려나게 될 뿐이다.
“아시다시피 테스트용 보호 장비 내구도가 10% 미만으로 떨어지면 경보가 울리고 바로 종료예요. 이해하셨죠?”
“네. 이해했습니다.”
“황준형 요원님은 해당 던전을 홀로 공략한 경력이 있으신 분이에요. 좋은 상대가 되실 거예요.”
“그러게 말입니다. D랭크 각성자가 A랭크 각성자를 직접 상대할 기회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나는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저들도 알고, 나도 알고 있다.
강신화라는 인물을 상징하는 D라는 알파벳이 지금 이 자리에서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나는 보여 주려 하고 있고, 그들은 확인하려 하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위장에 숨겨진 진정한 알파벳이 무엇인지!
“준비.”
“후우.”
심호흡 한 번에 모든 준비는 끝났다. 순식간에 달아오른 내 몸은 언제든 폭발적으로 뛰어나갈 준비를 마쳤다.
‘북서쪽이군.’
나는 아주 미세하게 균형이 어긋난 황준형의 뒷다리를 보고, 이동 방향을 간파했다.
A랭크면 무슨 소용일까.
눈빛과 허세로 상대를 속여도, 몸이 속일 수 없다면 그 각성자는 영원히 하수일 뿐이다.
그리고.
“시작!”
윤별이의 외침과 함께.
파앗!
나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두 다리에 무게중심을 힘껏 실은 뒤, 북서쪽으로 몸을 띄웠다.
도약과 동시에 나와 황준형이 코앞에서 얼굴이 맞닿았다.
적당한 거리 정도가 아니었다.
고개를 살짝 숙이기만 해도, 바로 입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지근거리였다!
“빨리 끝냅시다.”
감히!
D랭크의 각성자가 A랭크의 각성자에게 간단명료한 사형 선고를 내리는 순간이었다.
* * *
영겁과도 같은 지옥 속 1분.
황준형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것이 무엇인지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신화에게 간파 당했다.
가속 능력을 이용한 거리 벌리기와 본능적인 움직임을 통한 최적의 위치 선정은.
황준형이 굳이 노력하지 않더라도, 각성과 동시에 선천적으로 타고난 탁월한 재능이었다.
제아무리 상대가 최근에 이슈를 몰고 다니는 유망주라고 한들, 결국 ‘D’라는 알파벳을 극복할 수는 없다고 봤다.
솔직히 자존심도 상했다.
S라는 알파벳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자신에게, D랭크의 상대를 붙여 준 것이 어이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그 자존심은 전투를 시작하자마자 신화의 거센 맹공에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졌다.
단 하나의 레퍼토리도 신화에게 통하지 않았다.
시작과 동시에 신화와 바로 눈이 마주쳤고, 대응할 겨를도 없이 연타 공격을 열 차례나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준형은 최대한 침착성을 유지했고, 주특기인 마법으로 역공을 시도했다.
마력의 절반을 대거 끌어다 쓰는 위력의 일격으로 화끈하게 맞대응할 생각이었다.
이렇게 된 판국에 조기에 승부수를 던져 자존심 상하는 대련을 서둘러 끝내겠다는 의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쉬이이익!
퍼어억!
“커헉!”
찰나의 순간.
신화의 손끝에서 잠깐 번쩍였다가 매섭게 날아온 매직 볼에 가슴 한가운데를 강타 당했다.
정확하게는 마력 순환의 시작점이자 출력의 근원인 심장 윗부분을 정밀하게 타격한 일격이었다.
“우우욱!”
뜻하지 않은 대형 사고.
마력 역류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