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50)
만렙 회귀자입니다만-50화(49/300)
제 50화
같은 시각.
대련의 현장을 지켜보던 이하성의 눈빛이 반짝였다.
나미나는 아직 황준형이 어떤 공격을 당했는지 파악하지 못한 듯했지만, 이하성은 정확하게 꿰뚫어봤다.
“본부장님, 황 요원이 방금 전 공격에 내상을 입은 건가요?”
“아냐. 저 강철로 된 공 같은 것을 이용해서 보호 장비의 외곽을 친 거야. 문제는…….”
“문제는?”
“찌그러져 들어간 보호 장비의 내측이 정확하게 ‘마나 라인’을 타격했어. 마력 순환이 끊긴 거야. 역류가 일어나고 있는 거지.”
“우연이겠죠?”
“아냐, 노린 거야. 더 확실하게 유효타를 노렸으면 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부위를 노렸겠지.”
마나 라인.
신체의 혈관처럼 마력이 순환하는 길을 말한다.
마나 로드, 매직 로드, 하트 라인 등의 별칭으로도 불린다.
이하성은 매직 볼을 던진 시점부터 신화가 마나 라인을 노렸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심장에서 엄지손가락 한마디 정도 길이의 위쪽에 자리 잡고 있는 마나 라인의 시작점.
정확히 그곳이 타깃이었기 때문이다.
마나 라인이 막히면 마력의 순환이 순간적으로 끊긴다.
자동차로 따지면 연료가 공급되는 길목이 막히는 것과 같다. 제 기능을 못 하는 것이다.
“여기서 끝나겠군.”
이하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껏 신화가 처음부터 보였던 노림수를 생각하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억! 어억! 억! 억!
가감 없이 소리가 전달되는 훈련실 내부에서 황준형의 일방적인 비명만이 울려 퍼졌다.
재능을 하나도 발휘할 수 없는 황준형은 그저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있는 일반인일 뿐이었다.
신화는 아낌없이 모든 화력을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이하성은 그 모든 움직임을 눈에 담았다.
퍼억! 퍼억!
뜨겁게 달아오른 오른손의 주먹은 매섭게 황준형의 가슴팍을 후려쳤고.
빠앙! 빠앙!
왼손에서 방출된 고밀도의 마력은 마치 대포알이 발사되는 듯한 굉음을 내며, 복부를 후려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신화의 대공세는 양손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그는 화려하게 몸을 회전하며 발차기까지 날렸다.
모든 공격은 보호 장구를 착용한 곳에만 집중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준형은 점점 비틀거리고 있었다.
‘단순히 재능의 개수가 몇 개냐의 문제가 아냐. 권법이나 각법과 같은 체술까지 능숙하게 응용한다는 것이 더 놀라운 거야.’
나미나나 윤별이는 신화가 다수의 재능을 가진 각성자라는 사실에만 주목했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신화가 황준형을 상대로 펼친 공격은 단지 힘으로만 찍어 누르는 그런 공격이 아니었다.
스타일리시하면서도 정교했다.
현란하게 보이면서, 동시에 실속이 있었다. 방금 연타로 들어간 공격도 전부가 유효타였다.
아마 황준형의 입장에서는 신화의 공격 하나하나가 몸이 뒤흔드는 엄청난 충격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보호 장구가 있기에 망정이지 없었으면 그의 갈비뼈가 모조리 나가도 이상할 것 없는 공격이었다.
‘마력 방출 능력과 저 공을 활용하는 능력까지 생각하면, 단순한 근거리 각성자도 아니고.’
이하성이 신화에게 느끼는 놀라움은 그것이었다.
아무리 각성자라고 해도 둘 이상의 재능을 모두 높은 숙련도로 다루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하성도 각성한 이후.
5년에 가까운 시간을 지옥 같은 맹훈련을 하면서 겨우 자신의 재능을 끌어올렸을 정도니까.
지금도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을 오로지 훈련에만 투자하는 그였다.
한데 신화가 전투에서 보인 모든 모습은 숙련도가 매우 높았다.
그 말인즉, 자신처럼 각성 이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 훈련을 거듭하며 숙련도를 높였거나.
아니면 애초부터 타고난 재능과 감각이 뛰어나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전자든 후자든 어쨌든 대단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랭크가 D+다, 이거지?’
훈련실 입구에는 대련 전에 측정한 신화의 랭크가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바로 D+.
‘A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겠군. 측정 장치의 표시는 무의미해.’
이하성은 그렇게 생각했다.
나미나의 호들갑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어지간해서는 찾아보기 힘들 이레귤러가 등장했다. 그것도 다른 나라가 아닌, 바로 대한민국에서!
‘알려지지 않은 고수의 제자일까. 아니면 타고난 천재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특수한 방법으로 기억과 경험을 체득한 걸까.’
어지간한 각성자의 재능과 발전 과정을 꿰뚫어볼 줄 아는 이하성이지만, 이번만은 예외였다.
종잡을 수 없었다.
그의 양미간에는 골 깊은 주름이 잡혔지만, 역설적이게도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오랜만에 젊은 각성자에게 흥미가 생겼다.
* * *
삐이- 삐이- 삐이-.
경보음이 울렸다.
워낙 보호 장구의 내구도가 높았던 탓에 순수하게 내구도를 깎아내리는 과정에만 시간이 걸렸다.
“으어…….”
황준형은 일찌감치 전의를 상실한 채,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역류는 곧 풀릴 겁니다. 일시적으로 억눌린 현상이니까 전혀 걱정할 것 없어요.”
나는 눈의 초점마저 흐려진 황준형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흔들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전투는 생각대로 잘 흘러갔다.
변수 없이 너무 잘 풀린 바람에 김이 팍 샌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다.
‘자신의 장단점 파악을 게을리 하고, 오로지 재능에만 의존하는 각성자는 랭크가 아무 의미도 없지.’
내가 생각하는 불변의 진리였다.
끊임없이 스스로에 대해 연구하고, 장점을 키우고 단점을 보완하며 약간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것.
그것이 전생에 각성자로서 재능의 극의까지 도달했던 내 인생이었다.
항상 생각했고, 고민했다.
내 스스로를 이성적으로 살피면서, 극단적으로 깨부술 방법을 찾기도 했다.
그 덕분에 나인 로드의 동료들로부터 고인물이니, 만렙이니 하는 찬사를 받았던 것이다.
그렇게 공들여서 쌓은 금자탑은 회귀와 함께 사라졌지만, 현생에서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윤별이가 말했다.
“고생하셨어요.”
“끝난 겁니까? 라이선스 발급은요?”
“……처리되실 거예요.”
처참하게 널브러진 황준형을 보자, 윤별이의 얼굴이 잔뜩 어두운 낯빛이 됐다.
‘윤별이도 전생에 SSS랭크까지 올랐었지만 너무 늦었지. KSA가 재능의 성장을 발목 잡은 케이스.’
그녀에 대한 기억도 생생하다.
대재앙을 대비하는 마지막 전투에서 희생된 그녀. 아마 그때 EX랭크였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일 처리 하나는 능숙하고 탁월하게 하는 사람인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녀의 재능도 최 신부님처럼 어떻게 개안시키느냐에 따라 발전 가능성이 정말 높았다.
그림자 마녀, 암살의 여제.
윤별이를 상징했던 수식어를 생각하면, 신부님만큼이나 희소성이 높은 각성자였다.
다만 지금은 KSA의 실무에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본인의 재능 계발이 무척 더딘 상태일 터였다.
‘너무 달아올랐군.’
신부님을 시작으로 생겨난 동료에 대한 관심 덕에 그녀에게 필요 이상으로 생각이 깊어진 듯했다.
이내 생각을 털어 냈다.
빠른 은퇴도 좋고, 동료들을 활용한 급성장도 좋지만, 인연이라는 건 억지로 만든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준형 님, 괜찮으세요?”
“괜, 괜찮아요. 조금만…… 누워 있겠습니다.”
“강신화 씨, 저를 따라오세요. 바로 라이선스 발급 절차를 밟아 드릴게요.”
“그러죠. 아 참, 황준형 요원님, 멋진 대련 감사했습니다.”
“크윽…….”
나는 그렇게 쓰러진 황준형에게 다시 한번 확인 사살을 하고는 윤별이를 따라 훈련실을 떠났다.
* * *
훈련실을 나온 신화와 이하성, 나미나와의 인사는 생각보다 짧게 끝났다.
이하성은 멋진 승부를 보았다며 짧은 총평을 남겼고, 나미나는 “스카우트…….”라고 운을 떼려다 이하성의 제지로 뒷말이 막혔다.
이미 오늘의 대련을 보고 신화에 대한 판단이 확실하게 끝난 이하성이었다.
일전에 스카우트 건으로 나미나가 강하게 추진했던 것이 있으니, 이제 둘만의 대화가 필요했다.
이윽고 신화는 윤별이의 안내에 따라 철원의 K-9183 던전에 대한 라이선스 발급을 받았다.
‘흑갈고리 멧돼지, 이제 만나러 간다! 시원하게 D랭크 좀 깨부수고 올라가 보자!’
신화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공략 허가일은 2월 13일, 새벽.
그리 머지않은 날이었다.
좋은 날에 일정이 잡혔다.
윤별이는 신화를 서울 지부 밖으로 안내하며,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신화 씨.”
“네?”
“그간 셀 수 없이 많은 대련을 봤지만, 오늘처럼 황 요원님을 일방적으로 이긴 사람은 없었어요.”
“빈틈을 잘 공략한 셈이죠.”
“처음부터 놀라움의 연속이었지만, 이제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겠네요. 신화 씨는 이레귤러예요.”
“이레귤러라는 말은 참 기분 좋네요. 남과 다르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괜히 지부장님이 신화 씨에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본부장님께서도 관심이 있으신 듯하고요.”
“관심은 감사히 받죠.”
“KSA에 들어오실 생각이 아직도 없으신 건가요? 신화 씨에게 정말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전해 드릴 수 있을 텐데요.”
“네, 생각 없습니다.”
신화가 일언지하에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
다들 왜 이리 소속에 의미를 두는 걸까.
신화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직에 소속되지 않는다고 해서 협력할 수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화 길드도, KSA도, 그리고 홍연 길드도 어떻게든 자신의 품에 안으려고만 했다.
전생에 나인 로드의 기치 아래, 소속 없이 자유롭게 살았던 신화에게는 어색한 감정이었다.
“별이 씨.”
“네?”
오히려 신화가 운을 뗐다.
줄곧 말을 수동적으로 받던 신화가 거꾸로 말을 걸자, 윤별이가 눈빛을 반짝였다.
“KSA가 생각한 것과는 좀 다르지 않아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뭐랄까. 눈빛에 사명감과 소속감은 가득한데, 정작 각성자로서 즐거움은 없는 것 같아서요.”
“…….”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KSA는 당신의 꿈을 펼치기에는 생각보다 좁은 곳이에요.”
진심이었다.
윤별이의 재능은 끊임없이 던전을 공략하며 숙련도를 꾸준히 높여야 크게 개화할 재능이다.
지금처럼 실무 위주로 움직이면서 간간이 던전을 공략하는 형태로는 대기만성이라는 타이틀만 몇십 년을 유지하게 될 뿐.
“못 들은 걸로 할게요.”
“그래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어색하게 대화가 끝났다.
신화는 별생각 없이 그녀와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서울 지부의 출구를 나섰지만.
“…….”
윤별이는 한참 동안 신화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신화의 무심한 그 말이 가슴속 깊은 곳의 어딘가를 날카롭게 찌르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고요했던 호숫가에 거센 물결이 일고 있었다.
그날 저녁.
귀가하자마자 집을 나선 신화는 중화역 자택과 가까운 건물의 지하 창고 하나를 임대했다.
강화 포션 혹은 강화제로 불리는 ‘스티뮬러스’ 제작에 들어가기 위함이었다.
새끼 마딜로의 체액과 장기를 추출, 적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보니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열심히 만들어서 또 한 번 큰돈을 쓸어 담아 볼까!”
신화의 결연한 눈빛이 빛났다.
영원히 놀고먹을 화려한 은퇴를 향해,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 자신.
이제 숨겨 뒀던 두 번째 패를 꺼내 들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