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51)
만렙 회귀자입니다만-51화(50/300)
제 51화
“느낌이 썩 좋지는 않군.”
새끼 마딜로의 사체를 이리저리 잘라 내면서 내 인상은 점점 찌푸려졌다.
아공간에 보관되어 있던 덕분에 사체가 부패하거나 심한 악취가 나지는 않았다.
다만 따로 절단 도구를 준비하지 않은 탓에 오른팔을 개변해서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새끼 마딜로의 신체 여러 부분을 절단할 때마다 특유의 물컹거리는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악취나 선혈이 낭자한 광경이야 전생에도 많이 경험해서 익숙하지만, 팔을 통해서 느껴지는 감촉은 항상 기분이 나빴다.
주르르륵.
이윽고 필요 없는 부위를 잘라 낸 나는 마딜로의 사체에서 나오는 액체들을 특수 용기에 담았다.
체액이다.
지금부터 내가 제작하려는 스티뮬러스, 그러니까 강화 포션의 제작에는 세 가지 재료가 필요하다.
첫째, 새끼 마딜로의 체액.
둘째, 스켈레톤 계열 몬스터의 뼛가루.
셋째, 독초 카트라.
두 번째 재료는 전에 스켈레톤 아처 군단을 일망타진하면서 넉넉하게 구해 놨다.
첫 번째 재료도 이번에 양화 길드의 간부들과의 공략을 통해서 확보했다.
확보한 새끼 마딜로의 사체 개수를 보면 100팩에서 110팩 정도까지는 제작할 수 있을 듯했다.
독초 카트라의 경우는 상품성이 없어서 가격이 매우 낮았고, 그런 이유로 구하기가 더 어려웠다.
다만 집에 오는 길에 들른 오픈 마켓에서 카트라를 제법 많이 팔고 있었다.
그래서 전부 다 사 가지고 왔다.
가격도 얼마 하지 않는 데다가 아공간에 넣으면 오랫동안 변질될 걱정 없이 보관할 수 있으니까.
“아직 2월 2일. 아베 연구 센터에서는 아직도 배합법을 찾지 못해서 연신 실패만 하고 있겠지.”
기억을 되짚는 내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2021년 12월, 아베 연구 센터는 스티뮬러스라는 강화 포션을 개발했음을 알리게 된다.
섭취에 따른 부작용이 전혀 없으면서 전투력을 일시적으로 1.5배에서 2.5배까지 강화해 주는 약물의 등장이었다.
발현 기전은 단순했다.
혈류 개선제처럼 마력 순환 속도를 최대로 촉진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크게 부여하는 것이다.
즉, 정신은 안정시키면서 동시에 육체는 각성시키는.
그야말로 일대 혁명을 일으키는 신제품의 등장이었다.
이 때문에 아베 연구 센터는 일약 일본의 자랑이 되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대량생산에 돌입하게 된다.
훗날 내부 기술의 유출 사고로 조합법이 알려지는 2035년까지, 거의 독점에 가까운 판매를 한다.
대항마의 타이틀을 걸고 몇몇 강화 포션이 개발되기는 했지만, 스티뮬러스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연구 센터 이름부터 마음에 안 들었는데 말이야. 어쨌든 지금 선수를 치면, 아베 연구 센터에서도 개발 계획을 백지화하겠지. 이 정도면 일석이조의 효과인가?”
극단적인 반일 감정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일본에 한 방 먹인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쪼르르르. 쪼르르.
나는 계속 체액을 뽑아냈다.
그리고 체액을 모두 쏟아 낸 새끼 마딜로의 사체는 다시 아공간에 보관했다.
체액을 제외하면 상품성이 전혀 없는 녀석이라 나중에 적당히 던전에 버릴 생각이었다.
던전 공략이 완료된 다음에 초기화되면, 안에 있던 사체나 흔적도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
홀로 하는 수작업이기에 계속 정신없이 움직여야만 했다.
스켈레톤의 뼈는 일찌감치 빻아서 뼛가루로 만들어 뒀지만, 독초 카트라는 사 온 그대로였다.
나는 절구 형태로 적절하게 변형시킨 오른손을 이용해 카트라를 열심히 으깼다.
이 세 가지 재료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아주 작은, 유사한 특성의 공통점조차 없다.
이 때문에 아베 연구 센터에서 강화 포션을 개발했을 때.
수많은 각성자가 조합에 관련된 비밀을 알아내려고 했음에도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성분 분석을 해도 독초나 뼛가루, 체액은 다른 몬스터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이라 ‘특정’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어딘가에서 가져온 공기를 들이마시고 어디 공기인지 맞춰 보라는 식이었다.
그래서 많은 유사 제품들이 등장했지만, 스티뮬러스만큼의 효과는 전혀 내지 못했다.
설령 효과를 내더라도 부작용이 극심해 판매 승인이 안 되거나, 중독성 때문에 마약으로 분류됐다.
“게다가 배합을 잘못하면 강화 포션이 아니라 저승길로 직행하는 즉사 포션이 되니까.”
이게 문제였다.
나중에 공개된 내부 정보에 따르면, 개발 도중에 센터의 연구원이 100명 넘게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포션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선 당연히 임상 실험을 거칠 수밖에 없는데, 연구원이 그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즉사와 강화가 불과 한 끗 차이.
이 미세한 배합 비율의 차이를 메우느라 아베 연구 센터의 포션 개발은 8년이 넘게 걸렸다.
나는 그 시간을 지금 단축시킬 생각이다. 이것이 바로 독식의 진가 아니겠는가?
그로부터 30분 후.
얼추 손질이 끝났다.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체액 추출도 어느덧 마지막 사체에서 얻는 것으로 종료됐다.
우선 체액과 뼛가루, 카트라의 무게를 정밀하게 계량한 뒤.
큰 냄비에 체액을 넣고, 나머지 두 재료를 배합 비율에 맞게 털어 넣었다.
이제는 계속 끓이면서 위로 뜨는 불순물만 따로 건져 내면 됐다.
이 불순물을 건지지 않으면, 포션의 지속 시간과 품질이 크게 떨어진다.
“면벽 수련을 하는 느낌이군.”
최소 30분은 계속 냄비 안의 상태를 지켜보면서 체액이 굳지 않게 저어 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단순 반복 작업이라 힘든 것은 전혀 없었지만.
연신 휘젓는 국자의 소용돌이만 보고 있자니, 세상이 빙글빙글 돌면서 어질어질한 느낌이었다.
“이참에 좀 더 짚어 볼까.”
나는 고림화학 주식과 지제역 투자에 이어, 그다음으로 관심을 가질 요소를 떠올렸다.
그러자 바로 기업 이름 하나가 내 기억 속에서 툭 튀어나왔다.
‘라이콘.’
2020년 3월 20일.
라이콘이라는 보안 시스템 개발 업체에 큰 이슈가 생긴다.
던전 내외부의 차원 에너지 변화를 분석, 내부 안정도를 95% 확률로 검증하는 프로그램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덕분에 갑작스러운 아웃브레이크를 맞이하는 불상사의 확률을 대폭 낮출 수 있게 되었다.
세계 각국의 각성자 협회에서 앞다퉈 대량 주문이 빗발치게 된 사건이었다.
“여기서 한 탕 해 볼까? CEO 스캔들, 이중 악재로 분식 회계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만 딱 먹고 빠지면 되는데.”
그 전에 매수를 한다고 가정할 때, 예상되는 기대 수익은 약 4배 정도. 절대 적지 않다.
“그것도 그렇고, 2020년은 생각보다 발생한 사건들이 많은데……. 참 묘한 시점으로 회귀했네.”
나는 수많은 기억의 파편 속에서 유의미한 사건 사고를 되짚어 보았다.
미국 각성자 협회와 유럽 각성자 협회의 대규모 전면전.
중국에서 대량생산하여 전 세계에 판매되는 하급 마력 포션에서 발생한 기생충 사건.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1위, 2위, 3위 길드 사이의 대규모 내전.
그리고 러시아 전역에서 대규모로 발생한 초대형 아웃브레이크, 약칭 러시아 대격변까지.
지나칠 수 없는 사건들이 많았다.
이 네 가지 사건으로 인해, 유능한 각성자들이 떼죽음을 당하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니콜라스가 내게 그랬지. 2020년의 이 사건들 때문에 너무 많은 인재들이 죽었고, 그래서 대재앙의 대비가 훨씬 늦어졌다고.”
니콜라스의 말이 떠올랐다.
옆에서 회귀 이후의 아쉬운 점에 대해 늘 주절거렸던 녀석이라 그의 말들이 전부 기억이 난다.
“적당히 손쓸 것은 내가 미리 손써 두는 게 낫겠다. 그래야 나중에 니콜라스가 회귀해도 대비가 훨씬 수월하겠지. 미리 일 처리 좀 해 두면 내게도 귀찮게 안 할 거고.”
왠지 그럴듯한 생각이 들었다.
사서 고생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미리 밑 작업을 좀 해 두는 것이다.
니콜라스가 써먹을 인재들을 많이 살려 놓으면?
나중에 나인 로드니 뭐니 하며 내 필요성을 설파하며 등 떠밀려 영웅 놀음을 할 가능성이 줄겠지.
내게 마음의 상처를 줬던 녀석의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탓이다.
‘강신화, 사실 너는 내가 생각한 나인 로드의 필수 멤버는 아니었어.’
‘원래는 2020년에 건져 낼 인재들이 참 많았거든. 근데 2020년에 너무 많이 죽어 버렸어.’
‘게다가 내가 하필이면 회귀를 그 뒤에 해 버렸잖아? 인마, 운 좋은 줄 알아. 앞에서 다 죽어 나가서 한 35번째 순번이었던 네가 영입된 거야.’
“망할 자식.”
이상하게 그 말이 내 기억 속에 평생 동안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을 포함해서 9명의 영웅을 선별하는 자리에 나는 35번이었다는 것이다.
앞의 9번까지 다 살아 있었더라면 절대 뽑힐 수 없었을 텐데, 죽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나를 선택했다는 것이…… 이야기의 골자였다.
“일단 확실하게 인지는 해 두자. 개입할지 말지에 대한 결정은 좀 더 꼼꼼하게 따져 본 후에 하고.”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다.
하지만 조기 은퇴를 해도 니콜라스에게 괜한 관심을 받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 안배는 필수일 듯싶었다.
내 앞 순번을 살려 놓으면, 나를 아예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딱히 필요가 없으니까.
“역시 생각을 하니까 시간이 빠르게 가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시간이 제법 많이 흘러 있었다.
나는 바로 국자를 이용해 불순물을 건져 냈고, 잘 저어 둔 액체의 상태를 확인했다.
“딱 좋아.”
전생에 워낙 많이 제작을 해 봤던 터라 완성 상태야 깔끔했다.
다만 지금 바로 쓸 수는 없었다.
약 2시간 동안 자연 냉각을 시키며, 맑은 액체만 위로 떠오르게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후에 맑은 물만을 건져 내야 비로소 강화 포션이 되는 것이다.
아직까진 실컷 먹어 봤자 효과가 하나도 없는 혼합물일 뿐이다.
“그럼 얼른 다녀오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2시간이면 황 노인에게 들러서 강화 슈트를 제작 주문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밤 10시를 앞두기는 했지만, 야간 영업을 하는 곳이라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파아아앗!
창고 지하에서 밖으로 나온 나는 힘껏 도약하며, 눈앞에 보이는 빌딩의 꼭대기로 뛰어올랐다.
도로의 교통 정체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강신화 스타일의 고속 이동이었다.
파앗! 파앗! 파앗!
한 인영이 멈추며 점을 찍을 때마다 가뿐히 건물을 하나씩 뛰어넘으며 점차 멀리 사라져 갔다.
* * *
같은 시각.
황석철은 일전에 신화와 관련해 전화를 걸었던 일본의 지인이 보낸 여성을 만나고 있었다.
황석철과는 구면으로 친족은 아니지만 서로 할아버지와 손녀처럼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
“마리나, 오랜만이구나.”
“황 할아버지, 그간 잘 지내셨죠? 건강해 보이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오호, 발음이 좋아졌구나! 그새 한국어가 늘었는데?”
“원래부터 못했던 것처럼 말씀하시면 제가 섭섭하죠! 이젠 충분히 공용어로 쓸 정도가 됐어요.”
“긴테츠에게 연락을 한 것이 널 보내 달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무슨 일로 온 거냐?”
“알고 계신 그대로예요. 강신화, 그 사람을 직접 만나 보러 왔어요.”
신화가 없는 자리에서.
두 사람은 신화를 화제로 삼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