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52)
만렙 회귀자입니다만-52화(51/300)
제 52화
“따로 만나러?”
“아뇨. 곧 강신화가 소속된 길드에서 최상급 마력 포션을 두고 설명회를 개최한다고 하더라고요.”
“마력을 100% 회복시켜 준다는 그 꿈의 포션 말이지.”
“아직 시중에는 한 병도 안 풀렸어요. 다들 헛소리라고 말이 많지만, 양화 길드쯤 되는 곳에서 농담을 진지하게 뉴스로 내겠어요?”
“비즈니스를 겸해서 왔구나.”
“네, 할아버지.”
“그나저나 못 본 사이에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랄까. 네 특유의 살기가 제법 강해졌구나.”
“역시 황 할아버지는 예리하세요! 맞아요. 지난달에 S+랭크가 됐어요. 마의 구간을 뚫었죠.”
“축하한다!”
“그나저나 황 할아버지는 왜 아무에게도 랭크를 알려 주시지 않는 거예요? 분명 각성해서 재능이 있으신데……. 각성자 라이선스 발급도 안 받으셨다면서요?”
“후후, 굳이 세상사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 지금처럼 슈트나 제작하면서 사는 게 편해.”
“긴테츠 할아버지가 그랬어요. 황 할아버지는 장담하건대, 최소 SS랭크 이상이실 거라고요!”
“뭐, 술 먹는 양만 따지면 SS랭크는 확실하겠군! 하루에 네댓 병은 기본으로 까니 말이다.”
“호호호.”
“하하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마리나, 그러면 설명회가 끝나고 난 다음에 강신화 씨를 만날 생각이냐?”
“네. 호기심이 생겼어요. ‘팀 오사카(Team Osaka)’ 차원에서 온 게 아니에요. 다른 쪽의 관심으로 온 거죠.”
팀 오사카.
그녀가 소속된 길드의 이름으로, 일본 내에서는 항상 Top 3을 유지하고 있는 굴지의 길드였다.
“팀 오사카가 아니면…… WSA 쪽이겠군.”
“뭐, 그렇다고 봐야죠?”
마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신화처럼 용병 비슷한 계약을 맺고 있어 운신의 폭이 자유로웠다.
국내 활동은 팀 오사카 소속으로 했고.
국외 활동은 세계 각성자 협회, 즉 WSA의 아시아 권역 구성원으로서 활동했다.
명함이 두 개인 셈이다.
“WSA에서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알면, KSA에서 좋게 보지는 않을 텐데?”
“원래 인재 영입에는 국경이 없는 법이잖아요. 결국은 실탄 싸움 아니겠어요? 돈 없으면 인재를 가질 자격도 없는 거죠.”
마리나가 웃으며 답했다.
한데 바로 그때.
따각. 따각. 따각.
제법 간격이 높은 돌계단을 밟으며 올라오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내가 야간 영업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만, 보통 이렇게 야심한 밤에 손님이 오진 않는데.”
“슈트가 급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일단 저는 커피 한 잔 내려서 마시고 있을게요. 괜찮죠?”
“편하게 응접실에서 쉬거라. 손님에 따로 신경 쓸 것 없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리나가 응접실 안으로 들어가고, 이내 문이 열리며 손님이 들어섰다.
“아……?”
손님의 얼굴을 확인한 황석철의 눈빛이 달라졌다.
바로 방금 전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던 화제의 대상, 신화가 눈앞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아, 강신화 씨?”
“한 번 온 게 전부인데, 제 이름을 기억하시네요. 역시 소문난 대로 기억력이 대단하시군요!”
신화가 반가운 표정으로 황석철을 향해 깍듯하게 인사를 올렸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장인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었다.
전생에 정말 많은 제작에 도전했던 신화였지만, 유독 슈트만큼은 황석철의 실력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가 쌓아 올린 제작의 금자탑은 단지 투지와 열정만으로 따라가기에는 높고 우월한 것이었다.
‘강신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아마도 자신에게 들으라고 황석철이 크게 신화의 이름을 불러 준 것 같았다.
응접실에서 커피를 내리던 마리나는 생각지도 않은 귀한 손님의 등장에 한달음에 밖으로 나갔다.
“와! 요즘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폭등하는 슈퍼 루키를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그 순간.
“하라 마리나……?”
“……제 이름을 알아요?”
그녀의 정체를 바로 알아본 신화는 자신도 모르게 엉겁결에 이름을 말해 버렸다.
하라 마리나.
나인 로드의 일원이었던 그녀가 2020년 2월 2일 지금, 대한민국에 와 있었다!
* * *
‘마리나, 네가 왜 여기서 나와?’
그녀를 보자마자 내가 든 생각은 이것뿐이었다.
전생의 기억을 기준으로 내가 마리나를 만나는 시점은 지금보다 한참 후인 7년 후다.
니콜라스의 소개로 그녀를 만났을 때, 내게 있어 마리나는 넘지 못할 거대한 산이었다.
그때 나는 막 재능을 밑바닥에서부터 연구하며 개화하기 시작한 새내기였기 때문이다.
실력도 좋고, 나이도 여섯 살이나 많았던 그녀는 나를 어린 동생처럼 취급하곤 했었다.
뭐랄까, 마치 누나가 된 것처럼 이것저것 챙겨 주곤 했다.
자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코흘리개 어린 남동생을 돌보듯이 말이다.
“아, 예전에 일본 쪽 각성자 커뮤니티에 관심이 많아서. 우연히 이름을 본 적이 있어요.”
“그래요? 그건 좀 이상하네요. 소속이 어딘지도 모르는 각성자가 태반인데 이름까지 안다는 건.”
마리나의 한국어는 유창했다.
가끔 받침이 있는 단어의 발음이 살짝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거의 원어민 수준에 가까웠다.
어쨌든 그녀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마리나는 아야세 유즈하라는 가명을 쓴다. 쉽게 말해서, 비밀이 많은 사람이다.
마리나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할 때에는 보통 개인적인 업무를 보거나 비밀스러운 임무를 수행할 때뿐이다.
때문에 본명을 안다는 건, 그녀에 대해서 깊숙한 정보까지 알고 있음을 의미하는 셈이었다.
“여기저기 기자 인맥이 좀 많아서요. 죄송합니다. 모르는 척했어야 했는데.”
“파파라치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긴 한데……. 뭐, 아는 사람 잘못이겠어요? 못 숨긴 사람이 잘못이죠.”
다행히 마리나는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듯했다.
적당히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고 할 뿐, 아예 어둠 속에 이름을 묻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니까.
너무 반가운 마음에 익숙한 그녀의 본명을 부른 실수는 그렇게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지금 슈트 제작 되죠?”
나는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여기에 온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되니까.
그러자 황 노인이 되물었다.
“지난번 그 슈트대로 만들어 드리면 됩니까?”
“네, 똑같이 제작해 주세요.”
“그나저나 강신화 씨, 전에 제게 알려 주신 세공법들 말입니다. 미세 박음질과 차원석 세공.”
“네.”
“말씀하신 대로 이후 제작에도 모두 적용했더니 고객의 반응이 전부 호평이었습니다. 실제로 성능도 향상됐고요.”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슈트 제작을 천직으로 생각하는 입장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다는 것은 매우 감격스러운 일인지라.”
“아닙니다. 부족한 조언이 도움이 돼 다행입니다.”
“강신화 씨가 괜찮으시다면 자문료 명목으로 사례를 꼭 하고 싶은데…….”
“됐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말씀드렸던 것은 아니에요.”
“그렇다면 제가 이번 슈트는 무료로 제작해 드리겠습니다.”
“괜찮다니까요.”
“보답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강신화 씨, 황 할아버지가 생각보다 고집이 센 분이에요. 아마 계속 거절하시면, 설득될 때까지 말씀하실 걸요?”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돈이 굳었다.
물론 황 노인도 돈을 벌기 위해서 슈트를 제작하는 사람이 아니기는 했다.
지난 10년간 슈트 제작의 장인으로서 활약해 왔고, 돈은 풍족하게 모았을 것이다.
결국 마음 씀씀이 문제인데.
어떻게든 감사 인사를 표하려는 황 노인의 마음이 고마웠다.
“제작에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니 편하게 쉬고 계시지요. 마침 마리나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저를요? 제가 여기 올 줄 어떻게 알고?”
“우연이 오늘의 자리를 필연으로 만든 게지요. 하하하.”
황 노인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과 함께, 공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제작소의 로비에는 나와 마리나가 서로를 마주 보며, 어색한 분위기 속에 남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저 눈빛은 진짜 부담스럽다니까.’
관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는 마리나의 시선은 무척이나 매혹적이었다.
진보미는 생기발랄 말괄량이.
윤별이는 차도녀 스타일이라면.
마리나는 뇌쇄적이고 육감적인 타입에 가까웠다.
올해로 서른이 된 그녀의 나이.
사회적인 위치나 나이를 고려하면, 여유와 노련함이 공존하는 그녀의 스타일과 모습은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었다.
“강신화 씨, 저는 내일 강신화 씨의 소속 길드가 주최하는 설명회에 참석할 예정이에요.”
“아, 최상급 마력 포션 판매 때문에 오신 모양이네요.”
우연이 겹친 만남이기는 했지만, 그녀의 말대로라면 어차피 내일 만났을 운명인 듯싶었다.
“맞아요. 공식 사유는 그거고, 개인 사유가 따로 있죠. 원래 내일 설명회 후에 따로 만남을 요청하려 했는데, 시간이 단축됐네요?”
찡긋, 윙크를 보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스모키 스타일 화장.
그리고 가죽 재킷과 가죽 스키니진으로 통일한 코디에서는 그녀만의 개성이 물씬 풍겼다.
“개인 사유, 한번 들어 보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척하면 착이라고.
목적을 바로 알 것 같았다.
그녀가 왜 한국에 왔는지도 알 것 같았고.
아마 황석철이 일본 쪽 인맥에 연락을 넣었을 것이다. 세계 각국에 넓은 인맥을 가진 사람이니까.
진성태처럼 일반인이지만, 기업의 오너로 팀 오사카 길드를 운영하고 있는 하라 긴테츠.
이렇게 세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뚜렷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게 소소한 회귀자의 특전인 것이겠지. 정보를 통해 인과관계에 대한 빠른 유추가 가능하다.
“WSA는 어때요?”
‘돌직구 시원하게 던지네.’
미사여구나 탐색전 같은 것은 일찌감치 집어치우고, 바로 본론부터 들어갔다.
마리나는 팀 오사카와 WSA, 양쪽에서 모두 활동한다.
그리고 WSA의 소유로 있는 고급, 희귀 던전에 대한 출입 라이선스도 가지고 있다.
라이선스 코드 SS.
즉, SS랭크급 이하의 모든 던전은 아무 제약 없이 공략 신청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WSA가 소유하고 있는 던전이면 내가 직접 노릴 수 있는 꽃의 선택지가 훨씬 많아져.’
괜히 세계 각성자 협회가 아닌 것이다. 각국의 각성자 협회보다 상위의 조직이라 입김도 센 편이다.
아시아권의 관리자인 마리나가 내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WSA는 생각보다 복잡한 조직이다.
초국가적인 조직이지만, 그와 동시에 내부 파벌도 심하고 가장 큰 문제는.
‘배신자가 있어.’
우리나라로 보면 흑십자단, 중국으로 보면 3대 적폐 세력처럼, 각국의 범죄 조직과 줄이 닿아 있다.
실력자의 모임인 것은 맞으나, 그만큼 내부가 진흙탕 물처럼 더러웠다.
“저에 대해 사전 조사를 하셨다면, 소속되는 걸 싫어하는 것쯤은 아실 듯한데요.”
“맞아요. 알고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소속이 있지만, 역설적으로 없죠.”
“그럼 정확하게 제게 무엇을 원하는 거죠?”
“강신화 씨, 단지 포션만 보고 당신을 찾아온 게 아니에요. 신촌역 전투, 목진우에게 주눅 들지 않았던 모습, 그리고 K-1004 던전 공략까지.”
“…….”
놀랍기는 하지만, 새삼스럽지는 않은 정보 수집 능력이다. WSA의 정보력은 상상을 초월하니까.
K-1004 던전의 경우는 공략을 마치고 나온 것을 외부 화면을 통해 확인했을 것이다.
공식 D+랭크인 내가 동료들과 함께 A+랭크급 던전을 공략하고 나왔으니, 당연히 특이점이 보였을 수밖에.
“WSA의 게스트(Guest) 자격을 드리겠어요. 부담 없이 한번 맛보기로 활동해 보는 것은 어때요?”
돈을 벌고 싶은, 빠르게 성장하고 싶은, 그러기 위해서 더 많은 던전을 탐내고 싶은.
내 마음을 확 잡아끄는 악마의 유혹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