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58)
만렙 회귀자입니다만-58화(57/300)
제 58화
“들어 볼까요?”
“500억 원.”
호가가 다섯 배나 뛰었다.
이쯤이면 됐다.
물론 가격이야 더 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강화 포션의 지속 시간이 30분으로 짧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정도를 최대치로 봤다.
전생에도 녀석이 가장 비쌌을 때의 가격이 4억 5천만 원 선이기도 했고.
일단 이렇게 100팩을 팔고, 저쪽에서 반응이 좋으면 알아서 다음 협상가가 올라가겠지.
어차피 제작 단가도 내 입장에서는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비싸게 팔수록 이득이다.
적당히 재주 좀 부리고.
500억 원을 벌었다!
세상에서 돈 버는 게 이렇게 쉬울 줄이야! 물론 일회성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어때요? 아마 돌아가면 상부에서 바로 시말서를 쓰라고 하겠지만……. 어쨌든 협상권은 제게 위임되어 있으니까요! 이 정도면 충분히 지갑은 연 것 같지 않아요?”
“하하. 좋아요, 그렇게 하죠.”
굳이 밀당할 필요도 없이 나는 그녀의 두 번째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WSA에서 100팩의 강화 포션을 다 쓰고 나면, 협상은 다시 이뤄지게 된다.
지금도, 그때도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는 셈이다. 내가 갑(甲)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인계는 어떻게? 지금 바로 차로 움직일 수 있어요. 신화 씨 자택으로 갈까요?”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는데요.”
“그러면요?”
“여기 있죠.”
탁!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아공간이 뱉어 낸 100팩의 강화 포션 꾸러미가 입구에 살포시 놓였다.
마리나가 깜짝 놀라 물었다.
“방금 보였던 그거, 아공간이에요? 이거 구현된 각성자 시스템이에요?”
“한 번 더 보여 드려요?”
나는 다시금 손가락을 튕겨 아공간에서 스켈레톤 아처의 넓적다리뼈 하나를 보여 주고는 넣었다.
“지금까지 아공간은 존재하기는 하지만, 어디서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게요. 이렇게 잘 존재하고 있습니다.”
“신화 씨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아티팩트, 한두 개가 아니군요?”
“한두 개면 너무 부족하죠. 자, 다른 얘기는 이쯤하고. 그럼 먼저 입금부터 해 주실까요?”
능숙하게 화제를 바꾸며 대화를 이어 갔다.
거래에서 가장 방심해선 안 되는 때는 바로 거래 대금을 받기 직전이다.
마리나가 그럴 리 없겠지만, 많은 밀거래나 암거래의 사건 사고는 돈, 물건이 오갈 때 생기니까.
“잠시만요.”
“계좌는 여기입니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큼지막하게 확대한 은행의 이름과 계좌번호를 보여 주었다.
“돈이 참 쓰기 쉬워요, 그렇죠?”
이윽고 마리나가 별도의 보안용 컴퓨터를 이용해 금액을 이체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 WSA에서 사용하는 보안 계좌를 이용해 이체를 하려는 것이겠지.
어쨌든 그녀에게 이 정도의 고액을 손쉽게 집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했다는 것만으로도.
마리나의 위상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녀는 WSA에서 상당한 신임을 받고 있다.
띠링.
바로 알림음과 함께 스마트폰 앱의 입금 알림이 왔다.
[대한은행 : 예금주 강신화 님] [잔고 : 56,000,899,200원]‘크으, 이거지. 아주 좋아.’
정확히 500억 원이 들어왔다.
나중에 세금 계산을 생각하면 여기서 10%는 사라지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450억 원의 이득을 본 셈이다.
입금을 확인했으니, 이제 그녀에게 물건을 건넬 차례다.
나는 앞에 놓여 있던 강화 포션 꾸러미를 그녀 쪽으로 쓱 밀어 줬다.
“자, 유용하게 쓰시길.”
“거래 감사해요. 신화 씨, 혹시 다음 거래도 저희 WSA에 우선권을 주실 수 있나요?”
“그건 생각해 보죠. 이제 다시 또 원점에서부터 제작을 시작해야 해서.”
“알겠어요. 그럼 이걸로 공식적인 업무는 다 끝난 듯하고…….”
마리나는 집 안에 마련되어 있던 별도의 금고에 방금 챙긴 강화 포션 100팩을 보관했다.
살짝 한기가 흘러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냉장, 냉동 보관도 가능한 금고인 듯했다.
나는 이것으로 오늘의 만남을 매듭짓기로 했다.
볼일은 다 끝났으니까.
“그럼 또 연락드리죠.”
“신화 씨, 잠깐!”
떠나려는 나를 마리나가 순식간에 달려와 붙잡았다.
손을 낚아채며, 제법 농염한 눈빛을 보내는 그녀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았다.
“응?”
“이제부터 사적으로 한잔 어때요? 새벽 3시. 날 밝으려면 아직 한참 남았어요.”
추파(秋波).
전생의 그녀와 달리 내게 자꾸 그린 라이트를 보낸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와 뭔가(?)를 하고 싶다기보다 집에 얼른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오늘 설명회부터 시작해서 너무 많은 사람에게 시달렸다. 확실히 기를 많이 빨리긴 했다.
“다음에 하죠, 다음에.”
“마침 둘이 마시기에는 딱 좋은 보드카도 있는데요.”
“나중에 소주나 한잔합시다. 포차에서.”
“데이트 신청인가요?”
“아뇨, 그냥 술이나 마시자고요. 보드카는 입에 안 맞더라고요. 소주면 생각해 볼게요.”
“끙…….”
“그럼 게스트 참여 건, 준비되는 대로 연락해 줘요. 사전 조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시고.”
“쳇, 알겠어요. 신화 씨, 생각보다 엄청 철벽이네요?”
“어지간해서는 안 뚫릴 겁니다. 이런 낡은 유혹의 수법으로는 더 힘들죠. 후후.”
나는 제법 뇌쇄적이지만 스토리텔링이 확실하지 않았던 그녀의 유혹을 장난스레 지적했다.
그리고 그녀가 무어라 말을 잇기도 전에 유유히 집을 떠났다.
정말로 휴식이 간절했다.
푹 자고 싶었다.
* * *
집에 돌아오자마자 구로역 3번 출구에 위치한 K-1004 던전, 약칭 마딜로 던전의 공략 일정이 잡혔다.
시간대는 다음 날 새벽 3시였다.
그때쯤 내부 초기화가 될 것으로 양화 길드의 던전관리 팀이 계산을 끝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신화는 아무 생각 없이 종일 쥐 죽은 듯 조용히 잠만 잤다.
눈을 뜬 것은 최상급 마력 포션을 제작해야 하는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마리나와 헤어진 뒤 2월 4일 하루를 통째로 잠을 자기 위해 써 버린 것이다.
그렇게 부스스한 눈으로 침대에서 일어난 신화가 생수병에 최상급 마력 포션을 만드는 사이.
정훈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 정훈 씨.”
-던전 공략 일정은 알고 계실 것이고, 제주행 항공권도 구했습니다.
“언제죠?”
-오전 7시입니다. 던전 입장 시점으로부터 4시간 후입니다만. 괜찮을까요?
“충분해요. 지난번처럼 합만 잘 맞는다면 2시간 컷이에요.”
걱정 섞인 정훈의 말에 신화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답했다.
-티켓은 만나는 대로 전달하죠. 퍼스트 클래스입니다. 국내선이라 비싸진 않습니다만…….
“오, 그래요?”
제주도로 가는 항공편이야 길어도 1시간이지만, 양화 길드의 사소한 배려가 마음에 들었다.
사실 돈이라는 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의미가 없을 때도 있고, 정말 크게 와 닿을 때도 있는데.
이번과 같은 경우는 나름 자신을 생각해 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이런 일상 속의 소소한 행복도 나름의 웰빙 라이프지.’
신화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회장님께서 신화 씨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뭐든지 최고급으로 준비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마련한 별장도 가 보시면 아실 테지만, 시설과 주변 경관, 어느 하나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
“어딘가요?”
-회장님께서 종종 이용하시는 별장입니다. 사실 회장님과 자제분들 외에는 쓸 수 없던 곳이죠.
“아!”
그제야 기억이 난 신화가 탄성을 터뜨렸다.
정문에서부터 차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머물 수 있는 별장이 나오고.
주변 경관은 조경이 잘된 숲부터 시작해서 순하디순한 야생 초식 동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게다가 별장 내에서 방문자의 손발이 되어 모든 것을 대신할 수행원에 전속 요리사까지.
초호화 호텔의 모든 것을 1인 서비스 형태로 전부 옮겨 놓은 곳이 바로 진성태의 별장이었다.
-회장님께서 강신화 씨의 제주도 여행에 절대로 부족함이 없도록 하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감사드린다고 꼭 전해 주세요.”
역시 진성태다운 마음 씀씀이였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이내 전화를 끊고.
“이야……. 전생의 이맘때는 던전에서 몬스터들이 입구에 싸질러 놓은 똥 치우기 바빴는데…….”
신화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한동안 스마트폰을 꼭 움켜쥐고 있었다.
깊은 이질감을 느꼈다.
전생의 2020년은 그 누구도 자신을 거들떠봐 주지 않았던 흙수저의 삶이었지만.
현생의 2020년은 대기업의 회장이 직접 자신의 기분까지 맞춰 주려 노력하는 멋진 금수저의 삶으로 나아가고 있으니까.
“열심히 살아야지. 이번에도 새끼 마딜로 사체들 두둑하게 챙겨서 바로 강화 포션 좀 제작해야겠어.”
신화가 투지로 가득 찬 눈빛을 반짝였다. 그렇게 또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 * *
마딜로 던전 공략은 정확히 내가 예상한 대로 2시간 컷으로 끝났다.
새벽 3시 입장.
새벽 5시 퇴장.
전에도 그랬듯이 균등하게 전리품을 분배했고, 새끼 마딜로 사체만 내가 챙겼다.
바자트도 이제는 공략이 한 번 된 녀석이라 꽃을 드롭하지는 않았다.
대신 전보다 두둑하게 차원석을 뱉어 냈고, 그래서 최고급 차원석 3개를 분배받을 수 있었다.
2시간 만에 세금 떼고 27억 원의 돈을 쉽게 벌어들인 셈이다.
다만 이번에 얻은 차원석은 팔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계획하는 다른 제작품이나 맞춤형 강화 슈트 제작을 위해서는 녀석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렇게 배분을 마치고, 나는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갈아입을 옷이나 필요한 것들은 일찌감치 아공간에 다 넣어 뒀다.
비행기에 타고 갈 몸뚱이만 있으면 됐다.
2시간 후.
수속 시간에 맞춰 탑승한 나는 퍼스트 클래스가 주는 특유의 아늑함에 푹 빠져 누워 있었다.
오랜만이었다.
전생의 막바지에는 비행기 대신에 주로 ‘순간 이동’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제로.’
바로 나인 로드 중에 제로라는 녀석이 가진 순간 이동 능력을 이용해, 장거리 이동을 하곤 했다.
물론 지구 반대편도 준비 시간만 충분하면 바로 이동할 수 있어서 편리한 이동 수단이었지만.
문제는 거리만큼 늘어나는 두통과 울렁거림이었다.
한 번은 이동을 끝내자마자 30분 내내 토악질만 실컷 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전세기로 이동하자고 말해도, 돈을 아껴야 한다고 늘 강조했던 니콜라스는……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때문에 이런 퍼스트 클래스를 타 보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제로는 어디에 있으려나. 그나저나 니콜라스, 빨리 회귀 좀 해라. 나 슬슬 현기증 난단 말이야.’
진심으로 하늘의 어딘가를 향해 간절하게 빌었다.
나인 로드의 동료들과도 하나둘씩 엮이기 시작하니 생각할 게 많아진 느낌이랄까?
질색이다.
빨리 돈 벌어 은퇴하고 싶은 생각밖에 없는 내게, 32년을 치밀하게 세워야 하는 대계획은 무리였다.
한데 바로 그때.
“응?”
자주 맡을 수 있는 향은 아니지만, 생소하지 않은 머스크향이 바로 내 옆에서 느껴졌다.
아직 이륙하기 전이었기에 나는 안전벨트를 다시 풀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옆을 살폈다.
그 순간.
“윤별이 씨?”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 옆자리에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바로 윤별이였다.
“……네?”
“별이 씨가 왜 거기서 나와요?”
날 따라온 걸까?
그건 아니겠지.
내 물음에 답하는 윤별이의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