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59)
만렙 회귀자입니다만-59화(58/300)
제 59화
“무슨 일 있어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그게…….”
“아, 미안해요.”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난색을 표하는 윤별이의 반응에 뭔가 이유가 있는 듯했다.
그래서 더 물어보지도, 윤별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녀를 괜히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
“쉬어요. 실례가 많았습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혹시 제주도에 무슨 일이 있나?
돌이켜 생각을 해 보니…… 사실 나는 이 시절의 제주도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전생의 2월 초는 거의 던전에서 살다시피 보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즉, 제주도에 아무 일도 없었다기보다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각성자 뉴스와 커뮤니티를 둘러봤다. 하지만 별다른 이슈는 없었다.
얼마 후, 비행기가 이륙했다.
안정 고도에 접어들자 안전벨트를 풀어도 된다는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고, 나는 여유롭게 기내에서 제공된 음료를 마셨다.
딸깍. 딸깍.
한편 윤별이는 표정이 좋지 않은 와중에도 뭔가를 계속 살피는 모습이었다.
‘던전 감지 장치잖아? 저건 코어 에너지 수치 탐지용인데?’
어지간한 각성자는 잘 모르는 장치지만, 나는 대충 외형만 봐도 어떤 장치인지 알 수 있다.
회귀자의 장점이란 이것이다.
아는 것이 많아 슬기롭게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다는 것.
‘아웃브레이크인가?’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게다가 윤별이는 스키니진과 스트라이프 셔츠 안에 강화 슈트를 입고 있었다.
아예 대놓고 슈트를 입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숨겨야 할 그만한 이유가 있을 듯싶었다.
‘됐다. 오지랖 그만 부리자.’
좌석에 다시 몸을 편히 누였다.
일이 있어도 KSA의 일이지, 내 일은 아니니까.
그리고 휴가를 가고 있는 마당에 굳이 일거리가 될 수 있는 작은 연줄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후아…….”
짧은 비행이지만, 막간의 단잠을 즐기기에는 충분한 시간.
나는 준비해 온 안대를 차고는 바로 잠을 청했다.
아침부터 던전에서 극한까지 힘을 쓰고 온 터라 몸이 무거웠다.
* * *
쏴아아! 쏴아아아!
우르르, 쾅쾅! 콰콰쾅!
“뭐야, 이거.”
착륙과 함께 눈을 떴을 때.
나를 반긴 것은 제주공항의 산뜻한 풍경이 아니라 미칠 듯이 쏟아지고 있는 장대비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적당한 수준을 넘어선 강풍이 불어오고 있었고, 천둥 번개가 끊이질 않았다.
악천후였다.
“머피의 법칙도 아니고…….”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물론 미리 날씨를 체크하지 않은 탓이기는 하지만, 화창하던 서울 날씨와 이렇게 다를 줄이야.
이래서는 제주도의 풍경을 구경하기는커녕 비바람만 실컷 경험할 판이었다.
“실례할게요.”
윤별이는 문이 열리자마자 황급하게 연결 통로를 따라서 밖으로 향했다.
혹시나 해서 뒤를 쭉 살폈는데, 동행은 아무도 없었다.
이어서 나도 사람들을 따라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강신화’라는 팻말을 든 기사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주도에 머무는 내내, 내 발이 되어 줄 기사님이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강신화 님. 회장님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가 40년 경력을 걸고, 최대한 안전하고 친절하게 모시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날이 이래서 바로 별장으로 가야 할 듯해요. 별장으로 가 주세요.”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너무 그렇게 허리 굽혀 말씀하지 않으셔도 돼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반말도 괜찮습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지금부터 제게는 강신화 님이 회장님과 같은 손님이시니까요.”
“하하, 그럼 편하실 대로.”
내 성격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적당한 존대는 괜찮은데, 극존대는 늘 부담스러웠다.
나인 로드라는 인류 최고의 영웅이 됐을 때도 나는 사람들과 격의 없이 지냈다.
대중교통도 필요하면 이용했고, 길거리의 맛집이나 포차도 언제든 마음 편히 들락거렸다.
친근한 이미지를 즐겼고, 그래서 극단적인 거리감이 느껴지는 존대는 항상 부담이 됐다.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기사님을 따라 별장까지 타고 갈 리무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도합 3박 4일.
제주도에서의 꿀맛 같은 나만의 휴식이 드디어 시작됐다!
* * *
“아, 진심으로 너무 좋다…….”
무릉도원, 지상낙원이 있다면.
바로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이 별장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장미향이 물씬 풍기는 대형 욕조 안에 몸을 담근 채, 반신욕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별장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반긴 것은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좋은 소고기 스테이크 요리와.
정말 나의 손과 발이 되어 주는 전담 수행원의 밀착 수행이었다.
내가 볼일 보고 뒤처리까지 부탁하면 그것도 들어줄 기세였다.
그리고 화장실은 황금으로 시작해서 황금으로 끝나는 초호화 인테리어의 연속이었고.
숲의 전경이 훤히 눈에 들어오는 장소에 깔린 유리는 통유리로, 차원석 미세 세공이 된 강화유리였다.
만져 보고 측정하니, 이 정도면 SS랭크의 몬스터가 와도 1시간은 족히 견뎌 낼 내구성이었다.
“이 별장, 도대체 가격이 얼마야? 나중에 남태평양에 ‘신화 랜드’를 만들고 나면, 이거랑 똑같이 베낀 별장 하나 짓고 싶네.”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웅장함과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보안 면에서도 으뜸이었다.
시야에는 보이지 않지만, 숲 외곽에는 계속 순찰을 도는 보안 요원들도 있었다.
쪼르르르.
나는 위스키용 온 더 락 잔에 넉넉한 얼음과 약간의 보드카를 채운 뒤, 그것을 쭉 들이켰다.
“크……. 이거거든.”
웬만해선 보드카는 입에 잘 안 대는 나이지만, 자리가 자리이다 보니 품격 있게 한 잔 마시게 됐다.
당연한 얘기지만, 꿀맛이었다.
투둑. 투둑. 투두둑.
창밖에 들리는 빗소리는 그야말로 하늘이 연주하는 음악이었고.
구르르릉. 그르릉.
중간중간 추임새처럼 들어가는 천둥소리는 음악에 웅장함을 더해 주었다.
아울러 개당 1억 원을 훌쩍 넘기는 아방가르드한 장식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은 화룡점정이었다.
“역시 이게 내 체질이야. 이제야 확실해지네. 나는 노는 게 체질이야, 노는 게……. 크허.”
전신을 휘감은 기분 좋은 온수의 아늑함에 나는 몇 번이고 꾸벅 졸았다가 눈을 뜨기를 반복했다.
아무 생각 없이 있는다는 건 그 자체로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은퇴하기 전에도 수시로 좀 이렇게 쉬어 줘야겠어. 진즉 이랬어야 했는데,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살았네.”
스마트폰도 일찌감치 꺼 둔 채 던져 놓은 덕분에 세상과 확실히 단절된 느낌이라서 더욱 좋았다.
영웅, 혹은 세계의 구원자.
나는 이런 것에는 전혀 관심 없었다.
더럽게 힘들고, 고되고, 빡세다.
돌이켜보면 딱히 남는 것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전생의 나는 젊었을 때 유흥 하나 즐기지 못하고, 그저 힘만 열심히 키우다가 어느덧 중년이 되어 버렸다.
이번 삶에서도 그때처럼 젊음을 쉽게 잃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곧 부모님 결혼기념일이네.”
2월 15일.
돌아가신 부모님이 항상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날이라고 내게 말하셨던 날이다.
이날에 결혼을 하셨고, 허니문 베이비로 생긴 아들이 나였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안개꽃 꼭 사서 가지고 갈게요.”
부모님의 납골당은 내가 기억하는 자리에 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계속.
“지금보다 10년만 더 앞으로 회귀했어도 두 분을 꼭 구했을 텐데……. 죄송해요. 못난 아들이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어요.”
순간 울적해진 마음에 나는 욕조 안으로 머리까지 깊숙이 담갔다.
가슴 한구석에 묻은 부모님을 다시 끄집어내고 싶지는 않았다.
‘신화야, 우리가 곁에 없더라도 꼭 밝게 살아야 한다. 오늘 일을 자책하지 말고, 굳건하게 강한 마음으로 살아. 알았지?’
‘이 아비가 항상 네 뒤에서 수호신이 되어 지켜 주마. 그러니 절대 슬퍼하지 마라.’
이것이 내가 대격변으로 발생한 아웃브레이크에서 부모님과 생이별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이었다. 즉 부모님의 유언인 셈이다.
그래서 부모님의 장례식에서도, 화장터에서도 손톱에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꽉 움켜쥐면서 눈물을 참았다.
그런데 지금 눈물을 흘리면, 철딱서니 없는 철부지 아들이 되겠지. 그건 죽어도 싫다.
“푸하! 괜찮아, 괜찮아!”
나는 욕조를 빠져나와 바로 옆에 있는 풀장으로 향했다.
아무 생각 없이.
힘껏 물살만 가르고 싶었다.
* * *
그로부터 한 시간 후.
“하아, 제발, 제발…….”
타탓! 타타탓! 탓!
윤별이가 창백해진 얼굴로 전력을 다해 뛰고, 또 뛰고 있었다.
10분이 넘는 긴 시간을 제대로 쉴 틈도 없이, 출구만 보고 달린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윤별이는 반쯤 패닉 상태였다.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는 신화가 얼추 짐작한 대로 아웃브레이크에 대한 건이 맞았다.
다만 던전 위험 단계는 1단계.
즉, 실제 아웃브레이크라고 불리는 4단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그녀가 파견된 이유는 하나.
윤별이만큼 은신과 신속 탐색에 특화된 각성자가 없어서였다.
보스 몬스터가 있는 깊숙한 곳까지 탐색해야 하는데, 기동력이 좋지 못한 요원들로는 무리였던 것이다.
한편 같은 시각, 제주 지부의 모든 요원들은 공개되지 않은 아웃브레이크 방지에 투입되어 있었다.
제주도 도민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비공식적으로 일을 은밀하게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적절한 분업.
사실 예상대로라면 아무 문제도 없어야 정상이었다.
한데 문제가 생겼다.
그녀가 ‘DS 감지 장치’로 코어 에너지를 측정하던 중, 갑자기 수치가 폭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갑자기 1단계에서 4단계로 훌쩍 뛰어넘은 장치는 경보를 울렸고, 아웃브레이크의 임박을 알렸다.
중간의 2, 3단계를 뛰어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대로 몬스터들이 전부 밖으로 나오면 정말 끝장이야!”
챠캉. 차캉.
윤별이는 챙겨 온 가방에서 황급히 정제되지 않은 차원석 뭉치를 꺼냈다.
일종의 불량 차원석 같은 것이었는데, 기폭 장치를 이용하면 폭탄의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타타타탓!
다리가 거의 안 보일 정도로 빠르게 질주하는 윤별이의 움직임이 무색하게.
크웨웨웨! 퀘에에에!
몬스터들은 폭주하기 시작하며, 점차 거리를 계속 좁히는 모습이었다.
콰콰쾅! 쾅! 콰쾅!
그래도 효과가 있었다.
윤별이가 폭발시킨 차원석이 던전 내부에 위치한 협곡을 뒤흔들며 대규모 낙석을 발생시켰다.
일단 큰길은 막혔다.
하지만 몬스터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 다시 나온다면, 샛길로 돌아 나올 방법은 여전히 있었다.
길어야 30분.
그 이상은 지체시킬 수 없다.
파앗!
이내 차원문 밖으로 나온 윤별이가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장대비 속에서도 그녀는 꿋꿋하게 가장 가까운 곳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제주 지부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모두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 던전의 아웃브레이크 위험 단계가 1단계였기에 다들 3단계 이상의 다른 던전을 우선해서 공략에 들어갔던 것이다.
“30분, 30분, 30분…….”
패닉에 가까운 상태.
지금 서울에 있는 나미나나 이하성에게 전화를 해 봤자, 이곳을 30분 만에 날아올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없었다.
즉각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아, 정말 그 방법밖에 없는 걸까……?”
윤별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바로 생각나는 한 사람.
그 사람만 있으면 어떻게든 지금의 위급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신화 씨.’
오늘 같은 비행기를 타고 제주공항에서 함께 내린 각성자, 바로 신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