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60)
만렙 회귀자입니다만-60화(59/300)
제 60화
“음악 좀 바꿔 들을까?”
클래식도 계속 듣다 보니 생각보다 빨리 질린 탓에 나는 꺼 뒀던 스마트폰을 켰다.
2020년은 2020년에 맞는 감성이 있기 마련.
2052년에는 완전 옛날 사람 취급을 받았던 노래지만, 회귀한 지금은 최신곡이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한 걸 그룹 위주의 노래로 편성해서 들을 생각이었다.
초고가 스피커도 있겠다, 보는 눈도 없겠다, 맘 편히 듣기에 이곳보다 좋은 곳은 없으니까.
한데 스마트폰을 켠 순간.
뚜우우- 뚜우우-
거칠게 진동이 울렸다.
화면에 표시된 이름은 다름 아닌 윤별이였다.
“뭐지?”
받을까 말까 고민이 됐다.
아까 제주행 비행기에서 본 것도 그렇고, 혹시나 여기서도 KSA 영입에 대한 영업을 하려는 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거면 확실하게 거절 의사를 밝히는 게 낫겠어.”
적당히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확실하게 철벽을 치기 위해서다.
그리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별이 씨.”
-신화 씨, 부탁이 있어요.
“안 들어간다니까요. 다른 곳은 몰라도 KSA는 생각 없어요. 진심이에요. 소모적인 이런 얘기는 이제 그만하기로 하죠.”
나는 속사포처럼 말을 계속 쏟아 냈다. 꽤 괜찮았다. 빠르면서도 정확한 의미 전달이 된 듯했다.
-도와주세요, 신화 씨. 상황이 많이 급박해요!
“예?”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내가 예상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빗소리도 거칠게 들렸다.
-던전, 던전이 지금 아웃브레이크가 일어나기 직전이에요! 4단계! 겨우 어떻게 내부를 틀어막기는 했는데, 30분이면 수많은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올 거예요!
“하.”
그 순간.
나는 마치 운명처럼 지금 이 순간이 내 휴가에 고하는 이별 선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쩐지 너무 편하게, 너무 여유롭게 하루가 흘러간다고 했다.
가만히 있는데도 사건 사고가 알아서 나를 찾아오는 듯한 느낌.
유쾌하진 않지만, 불쾌해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신화 씨. 신화 씨?
윤별이의 목소리는 무척 간절해 보였다. 그녀가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얼추 상황은 파악이 됐다.
이미 내게 연락을 하기 전에 가까운 곳에서 요청 가능한 KSA 요원을 수배했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도 없었을 테고, 그래서 결국 내게 연락을 했을 것이다.
제주도라는 지역적인 특성 때문에 생긴 최악의 상황이었다.
제주도는 원래부터 던전의 수가 적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토박이 길드도 거의 없었다.
대부분 바다 건너 부산 또는 목포, 혹은 아예 서울로 상경한 길드가 태반이었다.
애초에 제주도 자체가 던전, 몬스터, 아웃브레이크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청정 지역으로 불렸다.
괜히 섬 전체가 100% 화이트 존으로 분류된 것이 아니다. 그만큼 치안과 생활환경도 좋았다.
한데 이렇듯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위치, 위치부터 어서 말해 봐요.”
나는 바로 옷을 챙겨 입었다.
원치 않았던 일이 생겼지만, 마냥 무시하기에는 문제가 컸다.
이 상태에서 아웃브레이크가 일어나고, 몬스터의 질주가 시작되면 제주도 사람들은 모조리 죽는다.
딱히 영웅이 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죄 없는 사람들의 죽음을 수수방관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죄송해요. 신화 씨밖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어요. 신화 씨라면 충분히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 있을 듯해서…….
“별이 씨, 알았으니까 침착하게 위치부터 말해요. 내가 가야 하잖아요?”
그 와중에 나에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을 표출하고 있는 윤별이에게 확실히 주의를 환기시켰다.
내가 급하게 밖으로 나오자, 기사님이 바로 운전대를 잡았다.
왜 갑자기 나왔는지 이유는 묻지 않았다.
“어디로 모시면 됩니까?”
그저 내게 목적지만 물을 뿐이었다.
나는 스피커폰으로 전환한 상태에서 그녀가 위치를 말해 주길 기다렸다.
-제주시, 덕지 2길 20. 여기예요.
목적지가 정해졌다.
부우웅!
기사님의 질주가 시작됐다.
* * *
“돌아가서 쉬셔도 됩니다. 일이 마무리되면 제가 직접 연락드릴게요.”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걱정 말고 돌아가세요. 아 참, 혹시 길드에서 연락이 온다면 아무 일도 없다고 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강신화 님,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목적지를 2km 정도 남기고 신화는 차에서 내렸다.
악천후가 계속된 탓에 길이 워낙 미끄러운 데다가, 포장 안 된 도로를 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개변된 다리를 이용해 고속 질주를 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신화의 판단이었다.
신화는 방향을 돌리는 수행 기사의 차를 볼 틈도 없이, 윤별이가 말한 장소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 시기에 한 번 제주도에서 던전 사고가 터졌다는 말이야? 그걸 언론에는 숨기고?’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KSA도 완전무결한 조직은 아니어서 큼지막한 사건 사고를 덮은 경우도 꽤 많았다.
그리고 회귀했다고 해서 평생 동안 세계 전역에서 터진 일들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는 법이다.
특히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비공개 사고를 알 방법은 신이 아닌 이상에야 당연히 없었고.
사실 여기로 오는 내내, 신화는 진지하게 이 일에 자신이 나서야 하나 고민했다.
이런 일은 전적으로 KSA의 소관이기도 하고, 던전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무시할 수 없었다.
첫째는 윤별이가 너무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해서였다.
신화 외에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일반 각성자들이 제법 있기는 했지만.
그녀는 그들 전부 어중이떠중이나 다름없다며 일고해 볼 가치도 없다고 했다.
그럴 거면 자신이 직접 처리하는 게 낫다는 말까지 할 정도니, 수준을 알 만했다.
둘째는 윤별이가 말해 준 이 던전의 정보가 신화에게는 결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 되었다는 점이다.
‘가속의 꽃.’
바로 가속 재능을 개화할 수 있게 해 주는 가속의 꽃이 있는 것이 확실시되는 던전이었다.
윤별이가 톡으로 전송했던 던전 내부, 보스 몬스터를 촬영한 사진이 신화의 옛 기억과 일치했다.
‘엑셀러. 이 녀석이 가속의 꽃을 가진 보스 몬스터였지. 니콜라스가 몬스터 도감에 기록은 남겨 뒀지만, 찾지는 못했던 녀석!’
기억이 선명했다.
니콜라스가 언젠가 요긴하게 쓸 일이 있을 것이라며, 보스 몬스터와 보유한 꽃에 대해 정리한 책을 본 적이 있었다.
물론 첫 공략 한정으로 얻을 수 있는 꽃이라서 대부분 이미 임자를 만난 것들이기는 했다.
어쨌든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볼 때마다, 혹은 할 일이 없어 심심할 때마다 침대에 누워 틈틈이 봐 뒀던 기억이 큰 도움이 됐다.
그중에 가속의 꽃은 주인은 알지만, 던전의 위치를 특정하지 못한 케이스에 속했다.
한데 이번에 마치 기연처럼 그 위치를 알게 된 것이다.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었다.
가속의 꽃이 있다면.
마력이 확실하게 뒷받침이 되어 준다는 가정하에 이동 속도, 공격 속도를 대폭 늘릴 수 있다.
즉, 최대 화력의 기술과 연계할 때 그것을 훨씬 더 상회하는 위력을 내는 것이 가능했다.
폭권 같은 순간 화력 극대화 공격이나 개변된 신체를 이용한 난타전을 즐기는 신화에게.
가속의 꽃은 그야말로 달리는 말에 날개를 달아 주는 격이나 다름없었다.
‘일본의 나카이 카즈야가 가속 능력자였는데, 그럼 그놈이 꽃을 먹었었나 보네.’
어쨌든 이제 주인이 바뀔 기회가 생겼다.
빗줄기를 가르며 달리는 신화의 몸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다.
반신욕에 이어서 원 없이 수영을 즐기며 몸을 풀었던 것이 역설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
“하, 쉬러 와서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이렇게 바빠질 팔자인가?”
신화가 투덜거리며 더욱 속력을 높였다.
멀리서 하나의 점처럼 보였던 윤별이의 모습이 빠르게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 * *
“괜찮아요?”
나는 던전 앞에서 초라한 몰골로 비를 홀딱 맞고 있는 윤별이에게 물었다.
일단 시간은 세이프.
마침 내가 머물고 있던 별장이 현장과 멀지 않았던 덕에 25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죄송해요, 신화 씨.”
“던전 몬스터 정보는 아까 통화하면서 들은 것으로 어느 정도 브리핑은 됐어요. 자세한 건 들어가서 보죠.”
나는 바로 오른쪽 팔을 검의 형태로 개변시켰다.
기동전에서 가장 쓰임새가 좋은 것은 역시 검이니까.
“우리 둘이…… 괜찮을까요?”
윤별이는 잔뜩 주눅이 든 표정이었다.
그녀는 C-랭크의 각성자다.
아까 그녀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유추해 보면, 내부 몬스터의 수준은 평균 A+랭크다.
이따금씩 대장 격으로 나타나는 녀석들이 S-나 S 수준이고.
보스 몬스터인 ‘엑셀러’는 SS-랭크다.
윤별이가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했다. 압도적인 힘의 격차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윤별이는 전형적인 어쌔신 타입으로, 절대 은신과 신속 암살에는 능하지만.
역설적으로 다수의 적과 난타전을 벌여야 하는 공방전에는 매우 취약했다.
“다른 방법이나 대안 있어요?”
“아뇨.”
“그럼 들어가는 거죠. 대신 이거 하나는 확실히 하죠.”
“말씀해 주세요.”
“아웃브레이크가 예고된, 혹은 발생한 던전에 대한 긴급사태수습법에 따르면.”
“던전 내부나 몬스터를 사냥해서 얻은 모든 전리품은 국가가 아닌 수습한 각성자의 소유가 된다.”
“맞아요. 알고 있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보증을 받아야겠어요.”
“미리 서울 지부 지부장님의 허가를 받아 뒀어요.”
방수 비닐을 씌운 채로 내민 윤별이의 태블릿 PC에는 과연 나미나가 직접 서명한 뒤 KSA의 직인을 찍어 보낸 보증서가 있었다.
국가 기관에서 발급하는 보증서니 나중에 딴소리를 할 가능성은 없었다.
“자, 그럼 어떻게 협업을 할지에 대해 얘기해 줄게요.”
“시간이 촉박해요.”
“1분이면 됩니다. 별이 씨가 뭘 하면 되는지만 알면 되니까.”
신화의 반응은 차분했다.
그리고 곧 유창하게.
몬스터의 주 특성과 함께 윤별이가 보조할 부분에 대해서만 족집게처럼 짚어 주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전부 강화형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요. 강화형 아즈라, 강화형 토크라. 순수 완력이 극대화된 녀석들이죠.”
“몬스터 이름은…… 어떻게?”
정확한 몬스터의 지칭은 윤별이도 알지 못했다. 애초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던전이었다.
하지만 사진을 한 번 본 것만으로도 신화는 술술 몬스터의 공식 학명을 읊어 냈다.
그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없었기에 신화는 무시하고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완력을 얻는 대신 역설적으로 목 위쪽에 대한 방어 능력을 상당히 상실했어요.”
“근육 문제인가요?”
“맞아요. 덩치도 크고 근육질인 남자가 팔 뒤쪽에 손이 잘 안 닿는 것과 비슷한 이치죠.”
“그럼 제가 보조할 부분은.”
“내가 놈들의 목을 적당한 수준으로 찢거나 쑤셔 놓을 겁니다. 그러면 별이 씨가 마무리해요.”
“아……. 알겠어요.”
전투에 대해서 견적도 내지 못한 자신과 달리, 신화의 머릿속엔 이미 생각이 다 있는 듯했다.
윤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서울 지부 제7팀 던전관리 팀장이라는 생각은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녀에게 지금 믿을 것은 오직 신화뿐이었고, 메인 오더도 그의 몫이었다.
그리고.
“괜히 영웅이 될 생각 같은 거, 절대 하지 마요. 목숨은 하나니까 내가 시키는 것만 해요.”
신화가 능숙하게 윤별이를 리드했다.
“자, 들어가죠.”
아웃브레이크를 막기 위한 신화의 던전 진입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