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61)
만렙 회귀자입니다만-61화(60/300)
제 61화
“그래도 별이 씨가 재치를 발휘한 덕분에 시간은 확실히 벌어 둔 게 맞네요.”
“아니에요. 가능한 방법이 차원석을 터뜨리는 것밖에 없었어요.”
“일단 저놈들은 무식하게 돌파하는 방법을 선택했군요.”
나는 협곡의 길목에서 들썩거리고 있는 돌무더기를 바라보았다.
윤별이가 터뜨린 차원석이 일으킨 낙석 덕분에 길목이 잘 막혀 있기는 했지만.
쿠웅! 쿠웅!
그 너머에 있는 몬스터들이 몸을 부딪쳐 가며, 어떻게든 쌓인 낙석들을 무너뜨리려 하는 모습이었다.
파앗!
혹시나 하는 생각에 힘껏 도약으로 높이 뛰어올라 주변을 살폈다.
윤별이는 몬스터들이 샛길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놈들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샛길 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발자국조차도.
그리고 돌무더기 너머로 보이는 몬스터의 숫자는 약 서른 마리 정도.
살펴보니 강화형 토크라였다.
A랭크 몬스터로 이족보행을 하는 성인 여자 키 정도의 ‘근육질’ 토끼라고 보면 딱 맞았다.
쿠드드득. 후드드득.
“……어떻게 하죠?”
그사이 토크라의 돌진에 돌무더기가 흔들리자, 윤별이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개당 100억 원이 넘어가는 최고급 단검을 쓰고 있는데, 담력은 최하급이네. 하긴 이 시절의 윤별이는 정말 떡잎이었으니까.’
KSA는 윤별이의 제대로 된 사용법을 모르는 게 확실하다.
나미나가 성실한 일꾼으로 그녀의 재능을 조기에 발견한 것은 맞으나 각성자로서는 아닌 듯했다.
최 신부님처럼 윤별이도 쓸 만한 조언을 받으면 비약적인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토크라를 처리할 계획은 이미 내 머릿속에 있었다.
토크라는 순간적인 힘의 폭발력과 몸의 내구성이 반비례 관계에 있는 녀석이라 공략이 쉬웠다.
“내 뒤로 붙어요.”
“네?”
“등 뒤에 있어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윤별이는 정말 껌딱지처럼 내 등 뒤에 딱 붙어 섰다.
“하아, 하아, 하아.”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비에 젖은 몸 때문에 오들거리고 있는 그녀의 한기와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일단 아공간에서 매직 볼을 소환했다.
“윌슨, 네가 활약할 시간이다.”
녀석을 뭐라고 불러 줄까 고민하다가, 얼마 전부터 윌슨이라고 이름을 붙여 줬다.
예전에 본 어떤 영화에서 무인도에 떨어지게 된 주인공이 우연히 발견한 배구공에 윌슨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 이름이 떠올라 똑같이 지어 준 것이다.
윌슨도 자신의 이름이 꽤 만족 – 그래 봤자 통통 튀는 표현밖에 없지만 – 스러운 듯했고.
고오오오!
나는 왼손으로 움켜쥔 윌슨에게 가진 마력 전부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어차피 마력을 전부 소모해도, 개변된 심장을 이용해서 그만큼의 마력을 단번에 회복할 수 있다.
토크라의 숫자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은 것도 아닌 상황.
게다가 아웃브레이크 상황이면 저 녀석들은 선발대에 불과하고, 곧 본대가 올 것이다.
빨리 처리하는 것이 좋았다.
크르르! 크르르!
성난 울음소리와 함께 돌무더기들이 위에서부터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후우.”
심호흡과 함께 윌슨에게 불어넣은 마력을 최대 수치로 응축하기 시작했다.
‘좀 더, 이것만으로는 모자라.’
나는 임계점에 도달한 듯한 마력 응축의 정도를 강제로 더 높였다. 윌슨이 파르르 떨었다.
최대한 많은 물을 쏟아 넣은 물풍선이 터질 때 더 위력을 발휘하듯이, 윌슨에게도 같은 효과를 노린 것이다.
다음 순간!
꾸르르릉!
지축이 흔들리는 느낌과 함께 기어이 돌무더기를 무너뜨린 토크라들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냄새를 맡은 놈들은 앞뒤 잴 것 없이, 게걸스럽게 침을 흘리며 내달리는 모습이었다.
진형이 마음에 들었다.
다들 합심해서 돌무더기를 밀쳤는지 산개 형태가 아니라 한곳에 뭉쳐서 달리고 있었다.
하기야 이미 수적 우위를 확실하게 점하고 있는 마당에 진형이니 뭐니 하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질 리 만무했다.
“하아아압!”
기합과 함께 윌슨을 있는 힘껏 토크라 무리를 향해 내던졌다.
과아아아!
순간 공간이 찢어지는 듯한, 파공음 그 이상의 굉음이 터져 나오며 윌슨이 힘차게 날아갔다.
마치 대기권을 돌파하며 떨어지는 운석을 보듯, 거대한 불꼬리를 달고 날아가는 윌슨의 모습이 보였다.
키엑?
토크라 하나가 정면에서 날아오는 윌슨의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싶었겠지.
공처럼 비슷한 게 날아오고 있는데, 붉게 달아올라서는 심지어 꼬리까지 달고 있으니까.
몬스터도 그렇고, 각성자도 그렇고.
겁 없는 몬스터가 많이 실수하는 것은 처음 보는 것에 그다지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기의 힘을 어느 정도 믿다 보니, 일단 한번 막아 볼까, 탐색해 볼까, 하는 식으로 응전한다.
아니나 다를까.
토크라가 양팔을 앞으로 교차시키며, 특유의 완력으로 막아 낼 준비를 했다.
어지간한 보디빌더 뺨칠 정도의 두꺼운 팔 근육이 한데 교차하자, 그럴듯한 방패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퍼어어엉!
윌슨을 정면에서 받아 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대폭발이 일어났다.
토크라가 윌슨을 막은 것은 크나큰 패착이었다.
엄청난 열기와 화력, 그리고 마력 특유의 폭발력을 몸으로 직접 받아 내면서.
충격파가 사방으로 골고루 뻗어 나가게 만드는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했던 것이다.
퍼펑! 펑! 퍼펑!
다음 순간.
주변에 무리를 짓고 있던 토크라들이 폭발에 휘말려 마치 풍선처럼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사람으로 따지면 코앞에서 포탄이 터진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금강불괴의 몸이 아니면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쿠아아아!
폭발의 위력은 실로 대단해서 당연히 나와 윤별이가 있는 이쪽으로도 날아들었다.
바로 강철 강화의 재능을 썼다.
그리고 혹시라도 빈틈이 있을지 모르는 만큼, 뒤에 있던 윤별이를 양팔과 몸으로 꼭 끌어안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파편에 휘말려 윤별이가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투툭! 툭! 쿠쿵!
“…….”
제법 강한 충격이 윤별이를 감싼 내 등을 쉴 새 없이 후려쳤다.
이어서 폭발이 만들어 낸 열풍이 불어닥쳤지만, 이건 던전 밖의 추운 날씨에 비하면 따뜻하게 느껴지는 수준이었다.
“사심은 없어요.”
나는 그녀를 꼭 안은 채로 차분하게 뒷말을 붙였다.
* * *
같은 시각.
“…….”
키가 자신보다 25cm는 큰 신화를 지그시 올려다본 윤별이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뭔가 신화가 얼굴을 살짝 내리기만 해도 입술이 닿을 것 같은 가까운 거리에서 포옹을 하고 있었다.
멋있었다.
지금껏 KSA 소속 요원으로서 열심히 일하고, 던전을 누비며 지내 왔던 윤별이였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온몸을 던져 지켜 준다는 것은 결코 흔한 경험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더 놀라운 것은 신화의 뒤에서 펼쳐진 경악스러운 광경이었다.
‘다…… 죽었어.’
하늘에서 토크라의 살점들이 눈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대단히 고어(Gore)스럽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을 제외하면, 탄성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었다.
신화가 쏘아 올린 작은 공 하나가 순식간에 서른 마리의 토크라를 저승으로 보내 버렸다.
크르르륵.
하지만 아직 두 마리의 토크라가 생존해 있었다.
폭발에 휘말렸지만, 곁에 있던 다른 토크라들이 대신 막아 준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듯했다.
“약속된 대로 갑시다.”
신화가 짧게 말을 매듭짓고, 이내 강철 강화 상태를 해제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화는 바로 윤별이의 앞에서 도약하며, 일거에 토크라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빠아악!
순식간에 슈트가 터질 듯할 수준으로 단단하고 강력해진 신화의 발이 토크라의 뺨을 후려쳤다.
보통의 공격이라면 이 정도에는 끄떡없이 제자리를 지켜야 맞는 것이었지만.
와드드득!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나면서 토크라의 목이 반쯤 돌아갔다.
쇄애액!
크어!
이윽고 신화의 오른팔이 예리하게 경동맥을 그으며 지나갔다.
분명 움직임은 가볍고 경쾌했지만, 토크라의 목에 만들어진 상처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커컥! 커헉!
깊은 부분까지 베어 버린 토크라의 상처에서 피분수가 쏟아져 나왔다.
윤별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잊지 않았다.
필요해서 신화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무임승차를 할 생각은 없었다.
“하앗!”
그녀는 힘찬 기합을 내질렀다.
그리고 신속하게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힌 다음, 훌쩍 날아올라 단검으로 토크라의 목을 찔렀다.
이미 신화가 ‘라인’을 잡아 둔 터라 그곳에 힘을 실어 단검을 쑤셔 넣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끄웩…….
신화의 도움이 매우 컸지만, 어쨌든 그녀가 A랭크 몬스터를 제거하는 순간이었다.
자신보다 훨씬 강한 존재를 쉽게 제압했다는 쾌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짜릿했다.
아울러 이런 상황을 가능하게 만든 신화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이 솟아났다.
“백날 몸뚱이만 열심히 키우면 뭐 하냐. 이렇게 머리가 깨지는데, 이 멍청한 놈아!”
푸욱!
이어 다른 토크라의 어깨 위에 착지한 신화가 녀석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뒷목의 위쪽 부분에 검을 찔러 넣었다.
끄어어!
그러자 근육질의 우락부락한 몸을 한 외형이 무색하게 연한 두부처럼 검이 깊숙이 들어갔다.
경추의 중심을 가르는 절단.
단숨에 신경이 마비된 토크라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사뿐한 발걸음으로 착지한 신화는 윤별이에게 눈짓으로 토크라의 상처를 가리켰고.
“하압!”
푸우우우욱!
털썩.
윤별이는 신화의 바람대로 녀석의 목숨을 끊어 놓았다.
‘신화 씨의 움직임은 군더더기가 전혀 없어. 최단 경로로 움직이고, 최소한의 동작으로 화력을 극대화해.’
방금 전의 전투를 모두 지켜보면 윤별이의 총평이었다.
처음 경험하는 몬스터를 상대하는 대응법이 절대 아니었다.
매우 능숙했다.
마치 이런 몬스터를 상대하는 매뉴얼이 그의 머릿속에 전부 있는 것처럼, 단숨에 서른이 넘는 몬스터의 목숨을 거뒀다.
‘부산 지부에 있는 이한열 지부장님도 신화 씨에게는 안 되지 않을까?’
부산 지부 지부장.
S+랭크의 각성자, 이한열.
그 역시 신화처럼 근거리 육탄전을 즐기는 각성자였지만, 동작이 깔끔하지는 못했다.
바꿔 말하면 깔끔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위력적인 순간 화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신화의 실력은 그보다 상위였다.
A랭크급 몬스터 다수를 일거에 제압하는 것은 소위 ‘필살기’가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한열처럼 S+랭크 정도의 화력을 낼 수 있는 각성자여야 했다.
‘모르겠어, 정말.’
신화를 바라보는 윤별이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인지의 부조화라도 생기지 않도록, 차라리 신화가 보란 듯이 S+랭크 판정이라도 받았으면 싶었다.
만년 D+랭크인 각성자가 혼자서 이리 무쌍을 찍고 있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슈우욱! 슈우우욱!
찰나의 순간에 신화가 아공간을 이용해, 죽은 토크라의 사체를 모두 쓸어 담았다.
사전에 약속된 부분이라 윤별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문제 해결이 우선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더 안쪽으로 들어갑시다. 아예 내부를 쓸어버리죠.”
“기다리지 않고요?”
“멍하니 놈들이 나타나기만 기다릴 거면 왜 불렀습니까? 당연히 출장비를 두둑하게 챙겨 가야죠.”
신화가 성큼성큼 전진하기 시작하며, 말을 이어 붙였다.
“몸은 확실히 풀렸어요. 이제부터 제대로 싸워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