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67)
만렙 회귀자입니다만-67화(66/300)
제 67화
윤별이는 꿈을 꾸었다.
매번 피곤에 찌들어 잠을 청하기가 일쑤였던 터라 그 흔한 꿈 한 번 제대로 꿔 본 적이 없었다.
꾼다고 해도 대개 악몽이거나 개꿈이었기에 어떤 꿈이었는지 되새길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의 꿈은 달랐다.
꼭 영화처럼……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나 자신을 구해 주었다.
품에 꼭 안고 악당들로부터 자신을 구한 왕자님은 빗발치는 화살 속에서 묵묵히 그녀를 지켰다.
셀 수 없이 많은 화살이 왕자님의 등에 박혔지만, 왕자님은 신음 한 번 토하지 않았다.
그저 품에 그녀를 꼭 안은 채, 말을 채찍질하며 달릴 뿐이었다.
그리고 충분히 안전한 곳으로 빠져나온 다음에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한마디를 건넸다.
“괜찮아요?”
그것이 시작이었다.
마음에서부터 감정이 격하게 북받친 그녀는 왕자님을 꼭 끌어안고, 달콤한 키스를 나눴다.
마치 입술에 꿀을 잔뜩 발라놓은 것처럼, 깊어질수록 더 달짝지근하고 짜릿한 그런 키스였다.
그렇게 서로의 숨결이 거칠어지고, 둘이 하나가 되려는 그 순간.
“아.”
윤별이는 꿈에서 깼다.
좌우로 시선을 돌려 보니 꿈속의 왕자님과 똑같이 생긴 남자가 자신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신화였다.
“…….”
윤별이가 한껏 붉어진 얼굴을 양손으로 쓸어내렸다. 홍조를 띤 그녀의 얼굴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정신이 좀 들어요?”
“여긴 어디에요?”
“어디긴요. 별장이죠. 내가 제주도에 쉬러 내려온 건데, 별이 씨가 불러서 나간 것 아닙니까.”
“아, 죄송해요.”
“죄송은 무슨. 차원석도 넉넉하게 챙겼고, 일당은 두둑이 챙겼죠. 꽃도 하나 먹었고. 아무 대가 없이 도운 거 아닙니다.”
신화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진심이었다.
귀찮았던 일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녀 덕분에 가속의 꽃을 먹지 않았던가?
각성자는 평생 꽃 하나만 먹어도, 정말 성공한 삶이라고 얘기하곤 한다.
확률적인 문제로 보면, 꽃을 하나 먹었다는 것은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된 것과 같았다.
한데 신화는 강철의 꽃, 초월의 꽃, 가속의 꽃까지 세 개의 꽃을 먹었으니 이미 상식적인 확률의 범주를 벗어난 셈이었다.
회귀자만 슬기롭게 누릴 수 있는 독식이랄까? 어쨌든 기분 좋은 일이었다.
“상처가 전부 사라졌어요.”
“치료했어요. 과정을 기억하지 못하면 굳이 디테일한 설명은 생략할게요.”
“몹쓸 몸뚱이를 보인 것 같아서 부끄럽네요. 혹시 이거 제게 주시는 건가요?”
윤별이가 옆에 신화가 개어 놓은 박스 티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맞아요. 편하게 입으려고 가져온 건데, 지금은 별이 씨가 입는 게 좋겠네요.”
“감사해요.”
“본의 아니게 치료를 위해서 슈트와 속옷을 찢을 수밖에 없었던 터라. 불쾌했다면 미안해요.”
“불쾌하긴요. 정말 감사해요. 신화 씨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어?”
“왜요?”
“몸 컨디션이 예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달라진 것 같아요.”
“느껴져요?”
“네. 마력 순환이 매끄럽고 빨라요. 분명히 막히는 구간이 제법 있어서 늘 신경이 쓰였는데, 그런 느낌이 전혀 없어요.”
“제가 막힌 혈을 좀 뚫어 줬죠.”
“예?”
“겨드랑이 안, 왼쪽 가슴 아래, 배꼽 오른쪽 위, 서혜부. 여기서 마력이 심각하게 막혔을 겁니다.”
“……어떻게 알았어요?”
“제가 뚫었다니까요.”
“마나 라인에 외력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뚫어 낼 수 있나요?”
“정확히 말하자면 저만 가능할 것 같지만요. 어쨌든 손을 좀 썼습니다.”
“이게 마력 방출 능력을 활용한…….”
“자세한 설명은 업계 비밀이라.”
신화가 웃었다.
그녀에게 마나 라인을 뚫어 줬으니 고마워해라, 같은 공치사는 전혀 하고 싶지 않았다.
달리 힘을 쓴 것도 아니고, 그저 땀 몇 방울 흘린 정도가 고작이었으니까.
하지만 윤별이는 연신 감탄하고 있었다.
이하성이나 나미나도 자신에게 많은 조언을 해 줬지만, 고질적인 마나 순환의 문제는 해결해 주지 못했다.
애초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선천적인 ‘기형’을 갖고 태어난 것과 같아서 치료나 교정이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정말 감사해요. 신화 씨가 아웃브레이크도 막을 수 있게 도와주고, 치료도 해 주고, 게다가 이런 변화까지 만들어 주셨으니.”
윤별이가 몸을 일으켜서는 신화를 향해 깍듯하게 허리를 숙였다.
진심에서 우러난 고마움이었다.
특히 마나 라인에 일어난 변화는 지금 당장 격렬한 전투로 시험해 보고 싶을 만큼 극적이었다.
“정말 감사하면 예전에 했던 말이나 다시 한번 생각해 봐요.”
“무슨 말이요?”
“KSA가 과연 윤별이 씨 그릇과 생각에 맞는 곳인지 생각해 보라는 말.”
“…….”
“아 참, 배고프지 않아요?”
꼬르르륵.
신화가 화제를 돌리며 물어보기 무섭게 윤별이의 배 속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다 들리거든요. 기다려 봐요. 괜찮은 요리 하나 만들어 줄 테니. 마력 증진 식단 정도라고 해 둘까요?”
신화가 주방으로 향했다.
새끼 마딜로의 넓적다리 살을 이용한 ‘마딜로 고기 스튜’를 만들 생각이었다.
새끼 마딜로 고기에 토크라에게서 얻은 혈액을 살짝 섞어 조리하면 화학적인 반응이 발생하는데.
그것이 마력 총량을 소폭 늘려 주는 효과가 있어 꾸준하게 먹으면 제법 효과가 좋은 음식이었다.
“참, 수건이랑 다 준비해 놨으니까 씻어요. 피와 땀으로 얼룩졌던 몸에 새 옷을 입긴 그러니까.”
“앗…….”
그녀는 샤워실 앞에 신화가 일찌감치 꺼내 놓은 수건과 자신의 속옷을 보고는 얼굴을 붉혔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한 신화와 달리, 윤별이는 치부를 보인 것 같아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색하지 않고 유쾌하게 음식을 만들고 있는 신화를 보며, 그녀의 부끄러움도 빠르게 사라졌다.
나이는 분명 한 살 어리지만, 오히려 한참 오빠를 대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남자.
신화에 대한 윤별이의 호기심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
* * *
얼마 후.
“어때요?”
“맛있어요. 소고기인가요?”
“새끼 마딜로 고기예요.”
“마딜로 고기로 이런 고소한 맛을 낼 수 있어요?”
“천연 조미료를 가미하면 가능해지죠. 여기에 뭐가 들어갔는지 궁금해요?”
“업계 비밀은 묻지 않을게요.”
“잘 생각했어요. 아마 다 먹고 나면, 극히 소폭이기는 하지만 마력이 오를 겁니다.”
늦은 밤의 식사.
혼자 먹고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나지만, 누군가와 마주 보고 식사하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여전히 서로 어색하기는 하지만 유사 연인의 느낌도 나는지라, 분위기 자체는 괜찮았다.
“와! 맛있어요.”
“요리 짬밥이 삼십……. 아니, 삼 년은 넘었으니까요.”
실수로 전생의 시간까지 소급해서 말할 뻔했던 나는 재치 있게 말을 바꿨다.
“정말 맛있어요! 몬스터 고기를 제법 많이 먹어 봤는데, 누린내 없는 고기는 오늘이 처음이에요.”
“누린내 잡는 게 쉽지 않죠. 근데 일단 한번 잡으면, 맛있는 요리로 만들기가 좋아요.”
“강신화 씨는 정말 대단하네요. 전투면 전투, 치료면 치료, 요리면 요리. 못하는 게 없는.”
“칭찬은 감사히 듣죠.”
“다시 한번 감사해요. 저도 그렇고, KSA 전부가 신화 씨에게 빚을 졌어요.”
“정말 KSA에서 감사하게 생각한다면, 나름의 보상은 한번 기대해 볼게요.”
“본부장님이나 지부장님의 생각이 분명 있으실 거예요.”
“뭐, 차차 알게 되겠죠. 더 먹어요. 많이 있으니까. 스마트폰은 꺼 뒀어요. 필요하면 켜야 할 겁니다.”
“아, 정말요?”
“나미나 씨가 헛소리를 해대기에 열 받아서 껐더니.”
“그럼 저장된 이름도…….”
“원래 눈치 없는 상사가 가장 피곤한 법이잖아요. 이해해요. 그래도 쌉니다.”
윤별이가 양미간을 찌푸리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비밀 하나 없이 전부 내게 보여 줬으니 민망한 모양이었다. 정작 나는 별 신경 안 썼지만.
어쨌든 그렇게 우리의 늦은 저녁 식사는 어색함이 점차 사라져 가는 가운데, 분위기가 조금씩 무르익어 갔다.
* * *
다음 날 새벽.
여전히 밖에는 천둥 번개와 함께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신화는 거실의 소파에 누워 잠들어 있었고, 윤별이는 신화의 배려로 큰 방의 침대에서 잠을 잤다.
필요한 만큼 여기서 푹 쉬다가 가라는 신화의 말을 듣긴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지금도 충분히 민폐였으니까.
스슥. 스슥. 슥.
어둠 속에서 작은 조명만 켠 윤별이가 메모장을 찢어 만든 간이 편지지에 내용을 적어 나갔다.
신화에 대한 고마움과 찬사, 그리고 자신의 몸에 만들어 낸 변화에 대해 감사 인사를 표하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여백에다가도 글자를 욱여넣어야 했을 만큼 빼곡하게 적은 손편지였다.
“…….”
저녁 식사 내내, 신화로부터 들었던 말이 여전히 그녀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열심히 일만 하는 일꾼으로 살고 싶은지, 아니면 각성자로 자유롭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 봐요.’
‘조만간 나만의 팀을 하나 만들 겁니다. 지금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다채로움이 있을 거예요.’
‘윤별이 씨의 은신, 암살 능력 외의 실무 능력에 솔직히 관심이 많거든요.’
예전에는 별것 아닌 말로 생각했는데, 이번 아웃브레이크 건을 겪으며 생각이 많아진 그녀였다.
양화 길드의 친오빠 윤태호를 비롯한 이곳저곳의 스카우트 제안을 모두 뿌리치고 들어온 KSA.
하지만 KSA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창의성이 떨어졌고,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측면이 너무도 많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었다.
그렇게 윤별이는 편지를 남기고는 소리 없이 신화의 별장을 빠져나왔다.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본 소파에서는 여전히 신화가 곤한 잠에 푹 빠져 있었다.
같은 시각.
“음.”
윤별이가 별장을 나서자마자 신화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자고 있는 척을 했을 뿐.
애초에 그녀가 편지를 쓸 때부터 신화는 이미 잠에서 깨어 있었다.
그녀가 머물던 방에 가니, 정성 들여 쓴 편지가 놓여 있었다.
<이번에 신화 씨를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각성자에게 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요.
또한 압도적인 힘으로 몬스터를 찍어 누르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동경하게 됐어요.
정말 신선한 자극이 돼요.
신화 씨의 말처럼, 단지 국가 공무원으로서의 자잘한 명예와 일에만 집착했던 건 아닌가 싶어요.
사실 제가 원했던 각성자의 삶은 수많은 던전을 누비면서 구슬땀을 흘리는 그런 삶이었거든요.>
신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지는 편지의 내용을 마저 읽어나갔다.
확실히 생각이 많았던 듯했다.
“이번 전투에서 서로 간의 시너지는 아주 좋았어. 여기에다가 최 신부님의 디버프만 더해져도.”
충분히 위력적인 파티가 결성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솔로 플레이를 하는 것보다 한두 단계는 위의 던전을 넘볼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한 것이다.
“일단은 좀…… 쉬자. 하루 고생했으니, 하루 더 추가해서 쉬어야겠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사흘.
신화는 휴가 기간을 연장했다.
생각지도 않게 고생을 했으니, 그 보상으로 더더욱 게을러질 필요가 있을 듯했다.
2월 6일, 7일, 8일…… 9일.
그렇게 제주도에서 보내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리고 9일 저녁 무렵.
중화역의 자택으로 돌아온 신화를 반긴 것은.
“강신화 님, 안녕하십니까?”
중국의 3대 적폐 조직.
오성회에서 찾아온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