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72)
만렙 회귀자입니다만-72화(71/300)
제 72화
나는 예화 훈련실이 있는 양화 타워 앞에서 최 신부님을 기다리며 생각했다.
‘이 정도면 싸게 먹히는 장사이기는 하지.’
훈련실 대여 비용은 내지 않았다. 대신 명목상의 조건이 하나 붙었다.
던전 리셋이 완료되는 대로 마딜로 던전을 공략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어차피 길드의 일원으로서 던전 공략에 참여할 의무도 있고, 내게 마딜로 던전은 강화 포션 재료의 공급처로서 필수적인 곳이었다.
내 입장에서야 일석이조이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덕분에 무상으로 훈련실을 임대했다.
대여 시간도 여섯 시간이나 될 정도로 넉넉하게 얻었다. 돈으로 환산하면 12억 원어치인 셈이다.
‘확실히 간부들의 습득 속도가 빠르긴 빨라. 공략 몇 번 해 보고, 육성용 커리큘럼을 짜다니.’
서예희와 윤태호가 마딜로 던전을 공략할 때, 유독 내 움직임을 꼼꼼히 체크한다는 생각은 했다.
그래서 어떤 형태로 활용할지 궁금했는데, 내 대응법이나 공격법을 바탕으로 교육 과정을 짰다.
보스 몬스터인 바자트 공략까지는 내가 없으면 안 되겠지만, 그 전 단계까지 길드의 각성자들을 훈련할 생각인 듯했다.
즉, 내가 없더라도 마딜로 던전을 유의미하게 활용할 방법을 생각보다 일찍 찾은 것이다.
오픈 마인드로 모든 것을 초심자의 마음으로 배우고, 편견 없이 흡수하는 간부들.
이것이 먼 훗날까지 양화 길드가 롱런을 하게 되는 비결이기도 했다. 아주 큰 장점이다.
‘어쨌든 나야 뭐, 포션 재료 수급만 꾸준히 할 수 있으면 압도적으로 이익이니까.’
불만은 없었다.
내 손해는 당연히 없고, 따지자면 서로 윈윈인 셈이다.
‘2월 13일 새벽에는 마력 저장 능력 확보, 14일에는…… 부활의 꽃인가.’
휴가가 끝나기 무섭게 연속으로 이어지는 일정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때때로 놀고먹고 싶은 마음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들지만, 눈앞에서 독식할 수 있는 수많은 이득이 아른거리니 포기할 수가 없었다.
왜 전생에 니콜라스가 눈에 불을 켜고, ‘이것도 내 것, 저것도 내 것!’ 하면서 다녔는지 의아했는데.
막상 경험해 보니 딱 알겠다.
마치 로또 복권 1등 당첨이 확실히 나올 것을 알고 있는 복권방에 사람들이 드나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느낌이랄까?
내가 먼저 차지해 놓지 않으면, 누군가 그 과실을 가로채 갈 것 같아 조바심과 욕심이 났다.
바로 독식에 대한 조바심과 욕심이었다.
좋은 것은 전부 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
그것이 곧 빠른 은퇴와도 직결되는 것이기에 나는 결코 포기할 수가 없었다.
“동료분을 기다리시나 보군요.”
“네, 오늘 같이 훈련할 분이죠.”
그때, 훈련실에 미리 가서 있는 줄 알았던 정훈이 쓱 내 옆에서 나타났다.
그리고는 무심한 표정으로 따뜻한 캔커피를 내게 건네며 말을 이어 갔다.
“오늘 두 분의 훈련. 신화 씨가 괜찮다고 하면 참관하고 싶은데, 허락해 주실 수 있습니까?”
“딱히 보여 드릴 대단한 것은 없는데요.”
“겸손하시군요. 신화 씨의 근거리 전투를 좀 더 집중해서 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탱킹? 아니면 회피 쪽에 궁금한 것이 있으신 건가요?”
“둘 다라고 하는 게 맞을 듯합니다. 길드에서 제게 요구하는 포지션은 전자지만, 맷집이 살짝 부족한지라.”
이해가 가는 답변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훈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보직은 사실 서브 탱커다.
즉, 메인 탱커가 잠시 회복이나 휴식이 필요할 때 일시적으로 임무를 교대하는 식이다.
하지만 양화 길드에는 작정하고 보스 몬스터를 붙잡아 놓을 수 있는 각성자가 전무했다.
그나마 바자트를 상대할 때, 내가 회피를 곁들여 가며 녀석을 붙잡아 두기에 공략이 가능한 것이다.
아마 정훈이 내 보직을 그대로 넘겨받는다면, 간부들 전부가 몰살당하리라고 확신한다.
정훈이 말을 덧붙였다.
“신화 씨에게 배우고 싶은 부분이 많습니다. 신화 씨의 모든 움직임을 눈에 담고 싶습니다. 오늘이 가장 좋은 기회 같군요.”
“하긴 전투 중에는 아무래도 꼼꼼하게 살피기가 어렵죠.”
“그러니까요. 좀처럼 오지 않는 학습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정훈에게서는 나에 대한 확실한 인정과 더불어, 거짓 없는 진심이 느껴졌다.
무인 대 무인으로서 존경심 같은 것이랄까.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분명 경의가 담겨 있었다.
“제 움직임이 정훈 님에게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감사합니다. 제자가 된 마음가짐으로 지켜보겠습니다.”
“제자라, 좀 낯간지럽긴 하네요. 그냥 참관 정도로 하시죠.”
“거짓말은 못 하는 성격이라.”
“하하하.”
그렇게 정훈과의 얘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을 무렵.
“신화 씨! 죄송합니다!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
신부님이 도착했다.
검은 롱패딩으로 몸을 꽁꽁 싸맨 차림으로 나타난 신부님은 평소와 달리 훨씬 젊게 보였다.
서른넷의 나이를 생각해도 7, 8년은 젊어 보이는 느낌이랄까?
“아뇨, 약속 시간까지 10분 넘게 남았는데요? 오히려 일찍 오신 거죠.”
“그래도 더 일찍 와야 한다고 생각해서…… 택시가 바로 안 잡혔네요.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아 참, 이분은 양화 길드의 정훈 님. 오늘 저희 훈련을 참관하실 분입니다.”
“아! 이분이 그 유명한 각법의 선구자이자 그 호위…….”
“호위 무사! 맞아요. 진보미 씨의 보디가드죠.”
“이런 네임드를 여기서 뵐 줄이야! 반갑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정말로 영광입니다!”
신부님이 연신 고개를 숙였다.
정훈은 이런 열성적인 칭찬이 익숙하지 않은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제를 돌렸다.
“제가 두 분을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제가 죽기 전에 예화 훈련실을 올 일이 생길 줄이야…….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이게 모두 다 신화 씨 덕분이겠죠?”
“길드에서 협조해 주신 거죠. 제 덕분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항상 칭찬과 찬사의 센서가 수시로 발동되는 신부님인지라 제동을 잘 걸어 줘야 한다.
신부님 성격이면, 아마 내가 볼일을 보는 모습도 멋있다며 박수를 쳐 줄 것이다.
그 정도로 신부님은 늘 예스맨이고,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매력이 있었다.
물론, 세상 그 누구보다도 독하게 변해야 할 때는 나조차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변한다.
폭주.
그다지 자주 보고 싶지 않은 신부님의 어두운 단면이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새벽녘의 적막을 벗 삼아 예화 훈련실로 향했다.
* * *
오늘 처음 이곳에 왔으니 설정도 처음일 것이 분명한 신화.
그를 돕기 위해, 옆에 대기하던 정훈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삑. 삑삑. 삑.
신화는 능숙한 손길로 예화 훈련실의 컨트롤 센터에서 가상 전투 조건을 설정하는 모습이었다.
몇 가지 중요한 설정값이 있고 초반에는 감도 조정을 해 둬야 하는 것이 무척 많은데.
신화는 그 모든 값을 정확하게 입력한 다음, 빠르게 세팅을 마치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예화 훈련실에 와 보신 적 있습니까?”
“아, 공대에 짐꾼으로 소속되어 있을 때, 공대장님에게 어쩌다가 들었어요.”
신화가 능구렁이처럼 이유를 붙이며 술술 넘어갔다.
뭐, 이런 모습을 하나 보여 줬다고 해서 ‘회귀자 아냐?’ 그런 생각을 할 리도 없으니까.
한편 최지혁은 미리 신화가 준비해 둔 보호 장구를 착용하며, 떡 벌어진 입으로 훈련실 내부를 감상하고 있었다.
왜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값비싼 훈련실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10억 원짜리 최상급 차원석이 도대체 몇 개야……. 1000개는 넘게 박혀 있는 것 같아.”
어느 순간부터는 세는 것도 포기했을 정도였다.
“신부님, 준비되셨죠?”
“예! 준비됐습니다!”
“당연히 그러실 리 없지만, 설정값은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
“저는 훈련만 참관하는 일종의 관리 역일 뿐입니다. 다른 것은 일체 건드리지 않을 겁니다.”
“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신화가 바로 훈련실로 향했다.
쿠웅!
이내 정훈이 훈련실 외곽의 차단 장치를 가동시켰다.
이제부터는 설령 엘리베이터를 타고 누군가 내려오려고 해도, 해당 층계에서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과연…….”
정훈이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훈련실 안에 최지혁과 들어선 신화를 바라보았다.
그의 양쪽 손에는 신화의 훈련을 기록할 노트와 볼펜이 쥐어져 있었다.
A랭크 각성자가 C-랭크 각성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꼼꼼히 정리하는 진풍경이었다.
* * *
“신화 씨! 제가 무엇을 하면 되는 겁니까? 현재 훈련 레벨은요?”
“훈련 레벨은 나중에 알려 드릴게요. 가상 몬스터는 제가 상대할 테니, 신부님은 보조만 하세요!”
“보조만요?”
“네, 어떤 형태로든요. 형식이나 주변 시선에 구애받지 말고, 신부님의 페이스로!”
신화의 외침에 최지혁은 몸 전체에 힘이 바짝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긴장이었다.
쿠오오!
정면에서 마력의 역장으로 구축된 가상 몬스터가 나타났다.
구오오! 구오오!
‘강화형 트롤 킹이잖아!’
녀석의 정체를 알아본 최지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일반 트롤 킹이 B+ 랭크 수준이라면, 강화형은 A+ 랭크 수준을 상회하는 녀석이었다.
당연히 최지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상대해 본 적 없는 높은 수준의 몬스터였다.
‘어디 한번 볼까.’
신화가 우선 트롤 킹의 동선을 막아서며, 최지혁이 디버프를 전개하기 쉽도록 판을 짰다.
그리고 최대한 힘을 빼고, 트롤 킹의 공격을 막아 내는 수준으로만 공방전을 주고받았다.
바로 그때.
샤아아아.
정확히 트롤 킹의 발밑에 검붉은 색의 원이 생겼다.
‘절망의 늪.’
신화에게 익숙한 디버프 기술이자 최지혁의 밥줄로 불리는 기술이기도 했다.
‘어디, 변수를 줘 볼까?’
신화가 자신의 뒤통수만 보고 있을 최지혁에게 보이지 않을 미소를 지으며.
콰앙!
폭권 5장, 진권을 이용해, 트롤 킹을 힘껏 뒤로 밀쳐냈다.
절망의 늪이 발동은 됐지만, 아직 효과가 적용되기는 전인 상태. 신화가 일부러 균형을 깬 것이다.
타탓!
그 바람에 오히려 신화가 절망의 늪 위를 밟고 올라서게 됐다.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되면, 역으로 신화에게 방어력 50% 감소라는 큰 디버프가 걸리게 된다.
“……!”
뒤에 있던 최지혁이 구슬땀을 뻘뻘 흘리며, 모든 정신을 집중해 다시 트롤 킹에게로 절망의 늪을 맞췄다.
고도의 집중력은 물론이고, 마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난이도가 높은 작업.
하지만 신화의 신촌역 동영상을 보며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연구했던 최지혁은, 이런 동선의 변수는 진즉에 예상하고 있었다.
다이내믹한 전투를 즐기는 신화에게 고정된 전장이란 애초부터 없었기 때문이다.
신화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일부러 급격한 변수를 줬는데, 최지혁이 보조해 내는 속도가 생각 이상으로 빨랐다.
‘전생에도 그랬지. 우리는 처음부터 정말 호흡이 잘 맞았었어.’
신화가 전생에 최지혁과 있었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미래의 ‘죽음’을 알고 있는 가까운 사람을 볼 때면, 항상 조건반사처럼 떠오르는 기억이었다.
“저에 대해서 꽤 많이 연구하고 오셨군요! 그렇죠, 신부님?”
신화가 기분 좋은 목소리로 뒤에 있는 최지혁에게 외치자, 바로 생기 넘치는 답변이 들려왔다.
“신화 씨의 힘을 처음부터 동경해 왔습니다! 열심히 연구했으니,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