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77)
만렙 회귀자입니다만-77화(76/300)
제 77화
2월 14일, 0시 5분.
“아니, 정말로 던전 내부가 갑자기 변했단 말이에요?”
“그럼 내가 정말로 헛소리하는 줄 알았습니까?”
“던전 브레이크가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지만, 아웃브레이크처럼 전조 현상이 전혀 없어 절대 미리 알 수가 없는데…….”
“어쨌든 E랭크 던전이 A랭크가 되는 마법을 부렸습니다! 이제 신나게 공략해야죠? 여긴 제 던전이니까 마음껏 뛰어놀아도 됩니다.”
자정이 넘어가는 순간, 두 사람과 던전에 입장한 신화는 뿌듯한 표정으로 던전 내부를 살폈다.
직접 측정할 장비는 없어도, 던전 내부에서 느껴지는 마력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으면 수준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별이는 A랭크 던전 정도는 되어야 느낄 수 있는 마력의 농도를 감지하고는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와……. 저는 뭐라 말을 이어 붙여야 할지 모르겠군요.”
최지혁은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신화의 말대로 변했고, 그것이 지금인 것으로.
어떻게, 왜, 라는 의문 부호는 붙이지 않기로 했다. 그저 신화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믿었다.
“무슨 꿈을 꾸는 것 같아요.”
윤별이가 연신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반응은 전략 통제실의 보고를 받고 치킨을 먹다가 화들짝 놀란 진성태 부녀와 다를 것이 없었다.
애초에 왜 E랭크 던전에 이런 식으로 세 명이나 들어가야 하는지 궁금했는데, 그 이유가 밝혀진 것이다.
“잠깐, 출발 전에 폐기물 처리 좀 하고 가죠.”
그때, 신화가 두 사람을 멈춰 세우고는 옆으로 보이는 허허벌판에 뭔가를 척척 내려놓았다.
아공간이 연신 뱉어 낸 것은 체액이 모두 채취되어 살점과 거죽만 남은 새끼 마딜로의 시체였다.
“이게 다 양화 길드의 던전에서 잡은 겁니까?”
최지혁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새끼 마딜로 사체의 향연에 놀라 혀를 내둘렀다.
처음에는 두세 마리 정도 버리는 건가 했는데, 그 수가 순식간에 백 마리를 넘어갔다.
“네. 아공간 아티팩트가 있다 보니 보관하기가 편해서 일단 다 챙겨 놓는 편이죠.”
신화가 웃으며 답했다.
사체를 꺼낼 때마다 죄다 체액이 빨린 마딜로만 나오니 흡사 버려진 동물 가죽을 보는 듯했다.
“A랭크 던전을 개인 소유로 가지고 있는 각성자는 흔치 않을 거예요.”
윤별이가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갔다.
그녀의 말대로 대형 길드 정도면 몰라도, 개인이 A랭크 던전을 소유한 경우는 희귀했다.
지금처럼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경우가 아니면, A랭크 던전을 얻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성사되는 A랭크 던전의 판매는 길드원 100명을 넘기는 중형 규모 이상의 길드만 가능하도록 판매법도 따로 마련돼 있었다.
신화가 답했다.
“애초에 E랭크 던전이던 곳이라 기본 베이스는 예전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리셋이 빠르고, 재료가 될 식물군의 성장도 빠르죠.”
“여러 가지로 신화 씨에게 도움이 많이 될 던전이네요.”
“그렇죠! 챙길 것이 많은 던전이라 KSA나 다른 곳에서 팔라고 해도 절대 안 팔 겁니다.”
신화의 생각은 확고했다.
마력 증진용 레시피에 필수 요소로 쓰이는 요리용 식물 아스파.
매직 볼의 수리 및 훗날 특수 강화 슈트를 제작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불완전한 차원석.
그리고 다양한 제작품에 폭넓게 쓰일 수 있는 몬스터의 시체와 체액들.
쓰임새가 많은 재료가 이 던전에 제법 집중되어 있었다.
바로 그때.
워어어!
정면으로 보이는 언덕 위에서 신장 2m는 족히 넘는 근육질의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데스 오우거 아닙니까?”
최지혁의 말대로였다.
데스 오우거.
근육 괴물이라고 불리는 몬스터로 ‘전신이 무기’라는 평가를 받는 녀석이다.
판정 랭크는 A랭크.
던전의 랭크와 똑같은 등급의 몬스터로, 근접전 계열의 각성자들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시잉. 시이잉.
이윽고 양손으로 단검을 움켜쥐며 대응 자세를 취하는 윤별이의 눈빛이 차갑게 반짝였다.
하지만 알파벳으로 무려 두 단계에 달하는 격차가 있어 쉽사리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겁을 먹은 것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A > C-’라는 상식을.
“신부님만 보조해 주세요. 별이 씬 아직은 아닙니다.”
쿠웅!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화가 지면을 박차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단지 제자리에서 도움닫기만을 했을 뿐인데, 지면이 움푹 파이며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
윤별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전신이 무기라는 수식어로 평가받아야 할 것은 데스 오우거가 아니라 신화가 아닐까 하고.
어쨌든 신화가 정면에서 달려들기 시작하자.
워어어어!
데스 오우거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힘껏 포효하며, 맞서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치킨 게임의 현장을 보는 것처럼, 양쪽 모두 물러섬이 없는 돌진이었다.
‘데스 오우거와 정면 승부를 한다고?’
KSA 요원이면 좋든 싫든 몬스터 도감을 달달 외우는 공부를 강제로 해야만 했다.
언제, 어떤 던전에 문제가 생겨 투입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 가서 매뉴얼을 찾아 공부하면 늦는다.
그래서 윤별이에게는 당연히 데스 오우거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완력, 각력 가릴 것 없이 온몸이 강철로 된 로봇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데스 오우거.
이런 녀석과 정면 승부를 벌인다는 것은 자동차나 트럭에 정면으로 맞부딪히겠다는 말과 똑같았다.
즉, 데스 오우거는 집요하게 원거리 공격으로 견제하며 서서히 말려 죽이는 것이 적절했다.
하지만 신화의 폭주에는 뒤가 없었다.
와아아악!
“와아아아!”
광폭한 맹수의 싸움을 보는 듯했다.
데스 오우거가 우악스럽게 입을 벌리며 괴성을 지르자, 신화도 지지 않고 맞섰다.
그사이.
3m 남짓 거리까지 가까워진 신화와 데스 오우거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오른발을 힘껏 찼다.
“……!”
다리와 다리의 교차.
윤별이는 자기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와득!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데스 오우거의 가공할 만한 맷집을 버텨 낼 각성자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눈을 뜨면.
윤별이는 신화의 오른쪽 다리가 오래된 시계추처럼 힘없이 덜렁덜렁 흔들거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제발.’
하지만 예상이 현실이 되는 일은 없길 바라며, 눈을 뜬 순간!
윤별이는 볼 수 있었다.
신화가 아닌 데스 오우거의 오른쪽 다리가 엿가락처럼 축 늘어져서는 흔들대는 모습을!
“야! 나도 나름 칼슘 가득 채운 뼈거든? 어디서 겁도 없이 족발을 들이대, 족발을?”
끄어어!
갑작스럽게 찾아온 극한의 고통에 데스 오우거가 비틀대는 사이.
샤아아아.
뒤늦게 신화의 질주를 따라 합류한 최지혁이 데스 오우거의 발밑에 절망의 늪을 깔았다.
“흣차!”
이어서 신화가 데스 오우거의 턱밑을 올려 차며, 두개골 전체를 뒤흔들었다.
제아무리 맷집 좋고 투지가 강한 몬스터라고 하더라도, 외력으로 신체에 강제로 유발된 상태 이상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신화가 그렇게 시간을 번 사이.
스르르륵.
절망의 늪이 활성화됐다.
최지혁의 디버프가 시전부터 실제 구현까지 지연 시간이 있음을 아는 신화의 능숙한 대처였다.
다음 순간.
푸우우욱!
장검의 형태로 변형시킨 신화의 오른팔이 망설임 없이 데스 오우거의 양미간을 그대로 꿰뚫었다.
평소 같으면 뚫리지 않았을 단단한 외피지만, 물리적 방어력이 크게 낮아진 탓에 버텨 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끄걱. 꺼걱. 꺼억…….”
이윽고 신화의 거친 손길이 데스 오우거의 머릿속을 이리저리 사납게 헤집고 나오자.
촤아악!
데스 오우거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침을 질질 쏟아 내며, 그 자리에서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하여간 겸손을 몰라요.”
신화가 데스 오우거의 피로 얼룩진 슈트의 외관을 닦아 냈다.
개변된 뼈는 강도를 순간적으로 강옥(鋼玉)에 준할 정도로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에 기껏해야 강화된 뼈 수준에 불과한 데스 오우거의 다리가 맞부딪혔으니.
처음부터 어느 쪽이 힘없이 박살이 날지는 이미 정해져 있던 결과나 다름없었다.
신화는 알고 있었다.
멍청한 데스 오우거만이 그것을 모르고, 불속에 뛰어든 불나방처럼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을 뿐이다.
‘마력 소모가 심하네. 뼈 한 번 개변했다고 순식간에 5할의 마력을 소모하다니. 이놈의 마력 부족은 고질병이구먼, 고질병.’
볼멘소리가 절로 나왔다.
전생에는 SS랭크 이후나 되어서 활용했던 재능을 미리 끌어다 쓰면서 생긴 부작용이었다.
그때도 부족한 마력이 항상 그의 발목을 잡았는데, 회귀한 현생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오히려 전보다 마력 부족을 느끼는 현상이 더 심해졌다고 할까?
신화 특유의 꾸준한 ‘오버 파워’와 공존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이기도 했다.
“아까 말했듯이 이 던전은 데스 오우거가 주 몬스터예요. 놈의 공략법은 이렇게 갑니다.”
“괜찮을까요, 신화 씨? 너무 공략법이 단순화되면…….”
최지혁은 살짝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매번 같은 레퍼토리로 상대하더라도, 용맹스러운 오우거 투사로서 자신의 힘이 최고라고 믿는 놈이라 똑같이 당할 겁니다.”
신화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내부 지형지물의 구조와 분포한 몬스터 특성을 훤하게 꿰뚫고 있는 신화에게 이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였다.
“자, 가죠. 당분간 큰 변수는 없을 테니까. 각자 거주 영역이 확실한 놈들이라 무리를 만나는 일도 없을 겁니다.”
신화가 앞장서서 언덕을 넘어, 힘껏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신속, 정확, 압도.
세 가지 키워드를 콘셉트로 한 던전 공략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 * *
우리의 공략은 거침이 없었다.
확실히 신부님이 있으니, 전보다 적은 힘으로 능히 데스 오우거를 제압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게다가 피니시가 제대로 안 된 녀석의 경우에는 전적으로 윤별이에게 뒤처리를 맡겼다.
속도감 있게 던전을 공략하려면, 몬스터 하나하나마다 할애되는 시간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니셔로서의 그녀의 실력도 점검할 겸, 일부러 내가 뒤처리를 남겨 놓는 경우도 많았다.
“저는 이번에 신화 씨와 호흡을 맞추면서 보고 들어서 배운다는 생각으로 여기에 왔어요. 그러니 전리품은 갖지 않을게요.”
“저도 그건 윤별이 씨의 의견과 같습니다! 어떤 전리품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두 사람이 사전에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너무 저자세로 전리품을 양보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다는 가져가지 않을 테니 10%라도 분배받으라고 했지만, 두 사람의 생각은 완고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그렇다면 전리품은 내가 다 갖되, 두 사람을 위해 특별하게 챙겨 줄 것은 없는지 보기로.
‘신부님은 풀잎 다람쥐의 혈액을 몰아주면 될 것 같고……. 윤별이는 보스 몬스터인 리바니스의 담석 정도면 되려나.’
괜찮은 후보군이 떠올랐다.
신부님에게는 마력 증진을.
윤별이에게는 주무기로 쓰이는 단검 두 자루의 강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수단을 말이다.
츄우? 츄츄?
바로 그때.
1m 남짓 거리에서 한가롭게 풀잎을 뜯던 다람쥐가 나를 바라보더니, 귀여운 울음소리를 냈다.
풀잎 다람쥐.
세상 그 어떤 동물보다 순진해 보이는 또랑또랑한 눈빛을 지니고 있지만.
잠시라도 목표물의 집중이 흐트러지면, 즉시 몸을 날려서 공격하기로 유명한 녀석이었다.
살점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쑤셔 박고 독액을 주입하면, 아이스크림처럼 혈관을 모조리 녹아내리게 만드는 무서운 녀석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녀석에게 무심한 듯 다른 곳을 쳐다보자.
캬아아악!
멍청하게 미끼를 문 녀석이 날쌔게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