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81)
만렙 회귀자입니다만-81화(80/300)
제 81화
“운이 좋았어요. 셋이서 몸이나 풀려고 가 봤더니 내부가 바뀌어 있더라고요?”
“정말요?”
“그럼 제가 무슨 예지 능력자도 아니고 어떻게 A랭크 던전이 될 줄 미리 알았겠습니까?”
“우연치고는 너무 이상하지 않나요?”
“누가 봐도 너무 이상하니까 우연이라고 하는 거예요.”
“하긴 신화 씨가 뭐 시간여행자일 리도 없고 말이죠?”
순진한 진보미는 내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묻는다고 해도, 같은 대답의 도돌이표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기도 할 터였다.
그 부분은 그만 의문을 접기로 했는지, 진보미가 이번에는 다른 질문을 단졌다.
“신화 씨, 혹시 별이 언니와는 무슨 사이예요? 태호 오빠의 여동생이라서 저도 알고 있거든요.”
“아무 사이 아닙니다. 그저 호흡이나 한번 맞출 겸 최지혁 씨와 같이 가 봤던 거죠.”
“호흡…… 요?”
“네. 각성자 동료로서의 실력은 어떨까 하고 테스트할 겸해서요. 실력에 관심도 좀 있었고요.”
“흐음…….”
이내 어두워지는 진보미의 표정에서는 강한 질투심이 묻어났다.
아직 어려서인지 감정을 숨기는 것이 서툴러 보였다.
오히려 억지로 숨기려고 하는 과정에서 더 티가 난다고 할까?
제법 적막이 흘렀다.
조수석에 앉아 그녀의 옆모습을 살펴보니, 입술을 계속 샐쭉이는 것이 영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제주도 사건도 알고 있을 테고.
친오빠인 윤태호를 통해서 그녀를 따로 별장에서 치료했다는 얘기도 들었을 수 있었다.
그녀의 질투 어린 반응은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마른기침을 몇 번 하고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클래식 음악을 틀었다.
은은하게 깔리는 것이 꽤 마음에 드는 선곡이었다.
분위기가 살짝 누그러지자 진보미는 재빨리 화제를 꺼냈다.
“신화 씨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갑자기요?”
“신화 씨가 제 마력 방출 장애를 해결해 준 이후에 말이에요. 마치 제2의 전성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몸이 좋아졌어요.”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습니까?”
“그럼요!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주술 재능의 사용이 가능해졌어요. 시간으로 봐도 0.3초 차이가 나요. 표본을 늘린 평균으로도요.”
“확실히 빨라졌네요.”
“과거와 비교했을 때, 제게 일어난 변화는 신화 씨의 치료밖에 없으니까! 이건 모두 신화 씨의 공이죠. 정말 감사해요.”
“뭐, 감사에 대한 보상은 그룹을 통해 충분히 받았으니까 더 고마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도 또 말해 주고 싶어요. 이게 다 신화 씨 덕분이고, 신화 씨는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
“저도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솔직하게 말했다.
어쨌든 진보미를 구해 줌으로써 나는 정말 많은 특혜와 금전적인 이득을 챙겼다.
나비효과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그 일로 인한 파생 효과가 결코 적지 않았다.
각성자들 사이에서 내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첫 번째 계기도 진보미의 치료 덕이었고.
“신화 씨!”
“네?”
“연애 생각은 없어요? 혹시 언제 여자친구를 마지막으로 사귀었어요?”
갑자기 훅 들어오는 질문에 잠깐 흠칫하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보통 이런 질문은 남자 쪽에서 관심 있는 여자에게 주로 하는 건데. 왠지 우리는 뒤바뀐 느낌이다.
“음.”
가볍게 던진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잠시간 생각이 많아져 침음성을 냈다.
문득 전생의 기억이 떠오른 탓이었다.
“여자친구는 제게 꽤 오래된 기억이에요. 사별(死別)이라 시간이 흘러도 잊을 수가 없죠.”
“아…….”
이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구구절절한 설명은 모두 생략했지만, 분명 사랑했던 여자는 있었다. 전생, 즉 2032년 무렵의 얘기다.
니콜라스의 지식 덕분에 큰 힘을 얻은 후, 나는 많은 던전을 누비고 다니며 맹활약을 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부를 쌓게 됐고, 연인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나는 2년 동안 열애를 했던 그녀와 결혼을 약속했고, 우리의 결혼식은 크리스마스에 올릴 예정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우리의 사랑도, 각성자로서의 내 인생도 오로지 탄탄대로만이 펼쳐지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데이트를 하기로 한 장소에서 날 기다리던 그녀의 등 뒤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바로 아웃브레이크.
이것은 회귀자인 니콜라스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작은 규모의 아웃브레이크였지만.
일반인인 그녀에게 갑자기 나타난 몬스터는 최하급 랭크여도 절대 상대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결국 현장에 도착한 나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쓰러져 있는 그녀를 보게 됐다.
그 이후.
몇 개월은 정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프고 힘들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웃브레이크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결혼을 앞둔 정인까지 잃은 참담한 비극을 겪었다.
마음을 추스른 내가 결심한 것은 더 이상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모든 것을 주면, 또 평생을 함께하고 싶어질 테니까.
비겁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또 잃는 비극을 겪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후 몇 번의 썸이 있었지만 전부 중간에 흐지부지됐고, 자의로 나는 독신의 삶을 살았다.
그건 이번 삶도 마찬가지였다.
상상 이상으로 좋은 인연과 엮이고는 있지만, 사랑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늘 물음표였다.
‘윤아. 그녀를 잊을 만큼 좋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때는 다시 생각해 볼지도 모르겠지.’
이게 내 오랜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녀의 자리를 밀어낼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 그뿐이었다.
“미안해요. 신화 씨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려고 한 질문은 아니었어요.”
어쩔 줄 몰라 하는 진보미의 표정에서 짙은 당황이 느껴졌다.
그럴 것이다.
이제 스무 살인 그녀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는다는 것은 흔한 경험이 아닐 테니까.
“괜찮아요. 어쨌든 그래서 아직 누군가를 마음에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어요. 정확히는 그 사람에게 만들어 줄 마음의 방이 없는 셈이죠.”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진보미, 정말 좋은 사람이다.
솔직히 나만 이럴 뿐이지, 그녀에게 호감을 표하는 남자는 한둘이 아니었다.
남자 아이돌, 재계 총수의 자제들, 이름만 들어도 누군지 알 만한 남자 각성자들……. 일일이 나열하기도 벅찰 정도다.
바로 그때.
드르르륵. 드르륵.
시기적절하게 전화가 걸려왔다.
무거워진 분위기가 진보미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분위기의 전환을 가져온 반가운 전화였다.
발신자는 윤별이였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 * *
“그래요? 당연히 환영이죠. 제가 제안했던 얘기 아닙니까?”
“최 신부님과 함께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대외적인 부분을 별이 씨가 맡아 처리해 주면, 저는 좀 더 던전 공략에 집중할 수 있겠죠.”
‘역시……. 진행되고 있구나.’
진보미는 의도치 않게 운전석에서 신화의 통화 내용을 들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에 정훈이 말한 적이 있었다. 신화가 자신만의 팀을 꾸리려고 하는 것 같다고.
즉, 별도의 팀으로 독자 세력화를 할 것 같다고 말했던 것이다.
예화 훈련실에 최지혁이라는 각성자를 데려올 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의 통화로 확실해졌다.
윤별이에게도 팀에 대한 제안을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신화는 옆에서 진보미가 듣고 있음에도 딱히 숨기려고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좋은 일꾼을 구해서 기쁘네요. 아, 물론 정말 일만 시킨다는 건 아니고요. 하하하.”
화기애애한 대화까지.
바로 옆에 앉아 있는데도 완벽하게 소외된 제3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이내 신화의 통화가 끝나자, 진보미가 바로 물었다.
그녀의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가득했지만,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신화 씨, 계약 종료 이후에 더 이상의 길드 활동을 생각하지 않고 계신 건가요?”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별이 언니와의 통화를 들으니…… 별도의 팀을 꾸리려는?”
“맞아요.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은 거의 정리된 상태예요.”
신화가 힘주어 말했다.
이름도 어느 정도 알렸고, 돈도 제법 모았다.
물론 조만간 몇 개의 섬을 매입하는 작업에 대량의 돈을 사용할 예정이긴 했지만!
앞으로 최상급 마력 포션, 강화 포션 판매로 얻을 추가 수익이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런 한편으로는 확신도 있었다.
소속이 아니게 되어도, 양화 길드에서는 자신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는 확신 말이다.
아마 최상급 마력 포션의 독점 판매권만 꾸준히 보장해 줘도 지금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소속된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많은 배려를 받더라도 결국 소속 길드의 영향을 받게 되는 거니까.’
신화는 영향과 부담이 싫었다.
신세, 그러니까 마음의 빚을 지게 되고, 그것을 갚기 위해 또 마음을 쓰는…… 밀고 당기는 과정들이 솔직히 머리가 아팠다.
“길드에 대해서 전향적으로 생각해 주실 순 없을까요? 저희는 신화 씨가 필요하거든요.”
진보미의 말은 절제된 듯하면서도, 간절함을 담고 있었다.
다만 진보미는 신화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기 위해 강조해서 말하지는 않았다.
그런다고 해서 신화가 결심을 바꿀 성격이 아니라는 것도 이미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다만 신화의 무한한 잠재력을 알아본 입장에서, 그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최고의 패였다.
신화가 판매한 마력 포션.
신화 덕분에 완벽하고 체계적으로 정립할 수 있게 된, 마딜로 던전의 상세 공략법.
게다가 강신화라는 각성자가 소속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양화 길드가 누리는 엄청난 홍보 효과까지.
양화 길드의 입장에서 신화는 황금알이 아닌 황금 그 자체를 낳는 거위나 진배없었다.
그런 신화가 떠날 기미를 보이니, 최대한 태연한 척하면서도 절박하고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아마 진성태가 이 말을 들었다면, 맨발로 도로까지 단숨에 뛰쳐나왔을 것이다.
달리 대답이 없자, 진보미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꼭 떠나야 하나요?”
신화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양화 길드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길드와 함께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음…….”
침음성을 내는 진보미의 목소리에서는 반쯤 체념한 느낌이 묻어났다.
“그리고 아직 계약 기간도 보름 가까이 남았어요. 함께할 시간은 여전히 많아요.”
“저희는 지속적인 관계를 원해요, 신화 씨.”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든 우리의 관계는 유효할 겁니다. 제가 그렇게 냉정하진 않아요.”
“단지 그뿐인가요?”
“네, 그뿐입니다. 바라는 바가 그것이니까요. 사람이나 조직에 구속되거나 휘둘리지 않는 삶.”
신화의 말은 단호했다.
진보미는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충동적인 생각이 아니라, 신화가 처음 양화 길드와 계약을 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굳은 생각이라는 것을.
그래서 진보미는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다만 그를 놓치고 싶지 않은 길드의 입장에서 ‘세컨드 플랜’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아버지 진성태를 포함한 간부진이 머리를 싸매야 할 문제다.
* * *
진보미를 따라 도착한 첫 번째 안전 자택은 사당역 근처에 우뚝 솟아 있는 ‘양화 루비 시티’였다.
루비라는 이름에 맞게 단지 외곽에 반짝이는 붉은빛의 물결은 영롱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진보미는 최상층에 위치한 내 집을 가리키며, 힘주어 그간의 공정을 어필했다.
“SS랭크 보안 시공이 들어갔어요! 양화건설의 최고급 인력이 모두 달려들어 공정을 진행했죠!”
“솔직히 기대가 많이 돼요. 사실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 실험을 해 봐도 될까요?”
“네, 신화 씨! 어떤 실험이죠?”
“제 주먹으로 직접 상태를 점검해 봐도 됩니까?”
“신화 씨가 직접요?”
“SS랭크 위력만 낼 수 있으면 되잖아요? SS랭크 시공이니까.”
“그렇기 한데, 그걸 신화 씨가 하실 수 있어요?”
“그럼요.”
부실공사는 천하의 양화건설이라고 해도 용납 못 하지.
후웅! 후웅!
나는 힘차게 손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