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84)
만렙 회귀자입니다만-84화(83/300)
제 84화
같은 시각, 중국.
상하이의 중심가에는 어디서 봐도 보이는 123층의 뾰족한 첨탑 형태의 건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오성신탑(五星神塔).
오성회의 거점으로 불리는 건물로 중국 각성자 협회인 CSA나 다른 조직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엄청난 규모였다.
인근에는 던전이 다섯 곳이나 있는데, 어찌나 규모가 큰지 오성신탑의 울타리 안에 있을 정도였다.
“…….”
오성신탑의 지하 9층에 위치한 비밀 실험실.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하게 통제되는 이곳에는 아침부터 오성회 회장인 진극명과 그의 호위무사들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오성칠검(五星七劍).
사람들은 이들 호위무사를 이렇게 불렀다.
“회장님, 부검이 끝났습니다. 사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성회 소속의 의사가 진극명에게 간단명료하게 정리한 부검 확인서를 보였다.
<사망자 : 주영생
사인 :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 독수의 역류로 인한 쇼크사>
내용을 본 진극명이 의사에게 짧게 물었다.
“자살인가? 타살인가?”
“굳이 구분해야 한다면 자살입니다. 자기 자신의 힘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해 독수가 자신을 찌르는 비수가 된 겁니다.”
바로 그때.
“…….”
진극명이 뒤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던 한 명에게 눈빛을 보냈다.
다음 순간.
쇄애애액!
“끄윽!”
어둠 속에서 나온 한 명의 무사가 의사의 목을 갈랐다.
푸슈슈슈!
사방팔방으로 피 분수가 어지러이 튀었지만, 눈 하나 깜빡이는 사람이 없었다.
“이걸, 네가 확인해라.”
“예.”
진극명의 지시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하얀 머리와 피부를 가진 남자 ‘이걸’이 나섰다.
그는 묵묵히 의사의 시체를 밟고는 싸늘한 주검이 된 주영생의 몸 여기저기에 마력을 섬세하게 불어넣었다.
침묵의 시간이 꽤 길게 이어졌지만, 모두들 마치 정지 화면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고.
이걸이 말문을 열었다.
“근육부터 시작해서 내부에 독수가 흘러가는 모든 마나 라인이 뒤틀려서 사망했습니다. 이건 자력이 아니라 타력에 의해 강제로 죽음을 당한 겁니다.”
“그 말은 강신화가 주영생의 독수를 되돌려 줄 정도로 마력 방출 능력이 강했다는 뜻이겠군.”
“마나 라인이 아예 흔적도 없이 박살이 났습니다. 이 정도가 되려면 최소 세 배, 아니 그 이상의 마력 방출 능력이 필요합니다.”
“보통 녀석이 아니군.”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최소한 마력 방출 능력만큼은 매우 우수한 것 같습니다.”
“수고했다. 역시 의사라는 놈들은 상식 밖의 부검은 제대로 해내지를 못한단 말이지. 이놈 시체는 태워라. 기록은 말소하고.”
“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칠검 전원이 의사의 시체를 수습하고, 어디론가 향했다.
더 어둡고 깊은 지하로 갔으니, 이제 의사의 모든 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이내 진극명만이 자리에 남았다.
주영생은 신화를 회유, 혹은 관심을 이쪽으로 돌릴 생각으로 자신이 직접 보낸 ‘메신저’였다.
순순히 응하지 않으면, 바보 천치를 만들어서라도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결과는 차갑게 식어 돌아온 주영생의 시체가 전부였다.
이미 이런 상황 자체가 오성회에 적의를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언젠가 대가를 확실하게 치르게 해 주지. 뭐, 서두를 필요는 없으니까. 까짓것 각성자 한 놈 처리하는 것은 일도 아니니.”
진극명이 음험한 미소를 지으며, 새파랗게 질린 채로 숨이 끊어진 주영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제법이군, 제법이야…….”
A랭크의 각성자를 단숨에 제압한 것으로도 모자라 숨통까지 끊어 버린 남자, 강신화.
그간 ‘어린놈’에게는 관심이 전혀 없던 진극명의 마음속에 코흘리개 하나가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 * *
정오 5분 전.
사당역 13번 출구 앞으로 나온 나는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환승역인 탓에 출구고 입구고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이 붐볐다.
‘늦을 뻔했네.’
한소준을 만나기 전에 필요한 ‘준비물’을 꼼꼼하게 챙기느라 시간이 제법 걸렸다.
그래도 시간을 맞춰서 다행이긴 했다.
어쨌든 주변을 둘러보다 보니.
편의점 앞에서 구부정한 자세로 빨간 모자를 푹 눌러쓰고 검은색 후드티를 입은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편하게 느껴지는 옷차림과는 다르게, 양손에는 가죽 장갑을 끼고 마스크까지 쓰고 있었다.
나는 녀석을 향해 걸었다.
올해 나이 스물셋.
회귀 이후의 나이로 따져도, 나보다 한 살 어린 녀석이다.
‘진통, 회복, 재생, 치유에 완벽하게 특화된 각성자. 하지만 전투 능력은 개판. 결벽증은 최고.’
이런저런 기억들이 떠오른다.
좋고 나쁜 기억이 혼재되어 있지만, 단점을 모두 상쇄할 만큼 녀석의 장점은 독보적이다.
나는 나인 로드 같은 인류의 운명 전체를 책임질 팀을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
내 수준을 뛰어넘는 상위 던전!
그러니까 큰돈이 될 수 있는 던전을 효율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팀원이 필요할 뿐이다.
물론 일방적인 착취가 아닌, 서로 윈윈하는 선에서 계속 접점을 찾을 테지만 말이다.
“한소준 씨? 안녕하세요. 강신화입니다. 톡으로 연락드렸던.”
나는 한소준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괜히 어깨를 터치한다거나, 가까이 얼굴을 들이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 예.”
시선을 애매하게 아래로 내려다본 한소준이 어색하게 내 인사를 받았다.
“편의점 앞은 얘기하기에 적절치 않을 듯한데.”
“카페를 미리 빌려 뒀습니다.”
‘역시.’
한소준이 한 블록 앞에 있는 카페 하나를 가리켰다.
카페를 빌렸다는 것은 단지 자리 하나를 빌렸다는 뜻이 아니다. 카페의 모든 자리를 전부 확보해 두었다는 뜻.
불특정 사람과 엮이는 것을 싫어하는 한소준의 유별난 성격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훗, 그럼 들어가시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던 녀석의 성격을 확인하며, 나는 그와 함께 카페로 향했다.
* * *
“정보는 모두 확인했습니다. 구미가 많이 당기더군요. WSA 소유의 던전이고, 게다가 팀 오사카의 아야세 유즈하도 참여하고요.”
“네, 그렇죠.”
아야세 유즈하는 하라 마리나의 가명이다. 팀 오사카 소속으로 활동할 때는 주로 이 이름을 쓴다.
“출발은 15시간 정도 뒤인데, 저는 필요로 하는 물품들이 좀 많습니다.”
“안 그래도 쇼핑을 좀 해 왔죠.”
나는 슬슬 발동을 거는 녀석의 악명에 여유롭게 대처했다.
아공간을 열어 그 안에서 하나씩 준비한 물건들을 꺼냈다.
“일단 K사의 던전 미세먼지 전용 마스크입니다. K99 등급에 자체 산소 공급 장치가 있죠.”
“……?”
한소준은 목록을 말하기도 전에 내가 하나씩 준비물을 꺼내기 시작하니 다소 놀란 표정이었다.
내가 아공간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도 아마 덤으로 붙어 있을 것이다.
“손 소독제도 있습니다. 뭐, P사가 가장 유명하긴 하죠? 던전 안의 우물에서만 구할 수 있는 차원수를 섞어서 만들었으니까요.”
“허허.”
푹 눌러쓴 모자 아래에 위치한 한소준의 눈빛이 흔들거렸다.
보통 공대 구성에 앞서 첫 미팅에서 이상한 요구를 늘어놓으면.
그것을 들은 공대장이 당황하는 모습을 즐기는 것이 녀석의 악취미였다. 왜 그런 변태 같은 취미가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프랑스에서 들어오는 E사의 생수. 넉넉하게 3박스 준비했고요. 신발은 N사 것으로 해서 매일 갈아 신을 수 있게 준비했습니다.”
아공간에서 계속 물건을 소환할 때마다, 우리 사이에 놓인 책상에 차곡차곡 준비물이 쌓여 갔다.
“해당 던전이 제가 알기로는 자외선이 심…….”
“그래서 고글도 준비해 왔죠.”
척!
“아마 국내에는 없을 텐데, 커피 맛이 진하게 나는 사탕…….”
“물론 사 뒀습니다.”
처억!
“라텍스 장갑…….”
“L사의 프리미엄 아니면 안 쓰시죠?”
처억!
“……뭐죠, 이거?”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 다 준비해 왔습니다만.”
“크큭.”
어이가 없다 못해 승천을 해 버렸는지, 처음에 당황했던 모습을 제외하고 시종일관 무표정했던 한소준이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게 바로 진정한 회귀자 사용 설명서지! 녀석의 마음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단숨에 열어 버렸다.
* * *
이후의 일은 신화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일찌감치 한소준이 수배해 놓은 훈련실에서 신화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한 사전 테스트도 마쳤다.
양화 길드의 예화 훈련실보다는 시설이 못했지만, 서로의 합을 맞추기에는 괜찮았다.
‘아마 심심할 일은 없을 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없이 던전 전역을 들쑤시며, 돌아다닐 예정이라.’
‘조금이라도 전투에서 낭비되는 동선이나 우리 사이에 꼬이는 동선이 있으면 말해요. 그 노력만큼 로열티를 추가로 보상하죠.’
‘힘들기는 할지언정, 재미없는 공략은 되지 않을 겁니다.’
신화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한소준은 신화가 남겼던 말들과 행동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신기한 사람이야.”
정말 신기했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성향을 죄다 꿰차고 있는 것처럼,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 왔다.
꼼꼼히 다 챙겨 줘서 기분은 좋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자신의 모든 것이 죄다 까발려진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게다가 신화와 훈련실에서 합을 맞춰 보며 느낀 감정은 그간 다른 각성자를 상대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극한의 치유! 무한 회복의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해 주고 싶을 정도로 내 도전 정신을 자극했어.”
실로 오랜만에 극한까지 움직이며 치유술을 구현해 주고 싶은 상대를 만났다.
신화는 자신이 생각한 것의 몇 배 이상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각성자였다.
10년을 하루도 게을리 하지 않고 해 왔던 훈련.
어지간해선 숨을 몰아쉬지 않는 한소준이 몇 년 만에 두근거리는 제 심장을 느꼈을 정도였다.
“왜 나일까?”
그래서 궁금했다.
이런 실력 있는 사람이 왜 하필이면 악명 높은 – 자기도 너무 잘 아는 악명이었다. –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가 하고.
“뭐……. 쓸데없는 생각인가.”
바스락바스락.
오독. 오도독.
한소준은 신화가 주고 간 커피 사탕을 입 안으로 밀어 넣으며, 힘껏 액셀을 밟았다.
간만에 흥미로운 일정이 생겼다.
최근 무척 ‘핫’하다는 강신화와의 던전 공략. 꽤 재밌는 한바탕 싸움이 될 듯했다.
* * *
다시 돌아온 자정.
잠시 집에 들른 정훈을 만난 신화는 그에게 그간 제작된 최상급 마력 포션 4개를 인계하고, 173억 원을 정산 받았다.
40억 원은 양화 길드에 판매한 포션 두 병의 값, 나머지 133억 원은 외부 길드 판매 2건에서 수수료를 제한 값이었다.
그리고 바로 인천공항으로 이동해 마리나를 만났다.
현장에는 일찌감치 도착한 한소준이 부산하게 손을 소독하며 장갑을 잽싸게 끼우고 있었다. 마스크는 진즉에 쓰고 있었고.
“강신화 씨! 일찍 왔네요? 저도 한소준 씨도 너무 일찍 와서 마침 얘기 나누는 중이었는데.”
“저야 늘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이 몸에 밴 사람인지라.”
“호호! 자화자찬이에요?”
“훗, 일종의 장점 어필이죠. 시간 약속을 못 지키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습니까?”
“어쨌든 함께하게 돼서 기분 좋네요. 처음으로 같이 던전을 가 보게 됐으니까?”
“전세기까지는 괜찮은데, 뭐, 배려해 주시니 기분 좋게 감사히 타겠습니다.”
“이제 출발할까요? 준비는 다 됐어요. 따라오세요.”
‘깍듯한 대접이네. 아야세 유즈하……. 저 여자, 엄청 콧대 높은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한소준은 모든 것이 신화 한 사람에게 맞춰진 듯한 극진한 대우에 놀라고 있었다.
심지어 전세기까지!
분명 착각인 듯하지만.
성큼성큼 걸어가는 신화의 뒷모습에서 왠지 모를 후광이 보이는 듯했다.
‘실력 한번 봅시다. 얼마나 잘났기에 다들 이렇게 알아서들 엎드리고 기는지.’
한소준은 양 눈썹을 씰룩였다.
자신의 마음에 차지 않는, 형편없는 모습을 보인다면 아낌없이 독설을 퍼부어 줄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