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86)
만렙 회귀자입니다만-86화(85/300)
제 86화
“다들 주변 구경 좀 하시죠.”
“신화 씨, 어디 가요?”
“인형 구해야죠. 미리 구해 놔야 공략 도중에 신경 쓸 일이 없잖아요? 여기서 둘 다 기다려요!”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신화가 지면을 박차고 향한 곳은 우측으로 보이는 풀숲 쪽이었다.
한소준은 들어오기 무섭게 양손에 소독제를 잔뜩 바르고는 그 위에 라텍스 장갑을 꼈다.
슥슥.
그리고 마른 모래바닥 위에다가 동그라미를 그렸다. 한데 끝에 가서 원이 비뚤게 그려지자, 그것을 지우고는 다시 원을 그렸다.
하지만 몇 차례에 걸쳐도 말끔하게 원이 그려지지 않자,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솨아악!
단숨에 손을 휘저어 깔끔한 모양의 원을 그려 냈다.
“후우! 이제야 좀 잘 풀리겠군.”
그제야 후련한 듯, 한소준은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
마리나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한소준이 뭔가 특이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지금 보니 확실히 별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신화 씨가 제 힐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면 좋겠네요. 힐 해 줄 가치도 없는 쓰레기를 너무 많이 만났더니.”
오물오물.
한소준이 커피 사탕을 입 안에 털어 넣고는 사라진 신화의 흔적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마리나가 물었다.
“한소준 씨에게 힐을 해 줄 가치가 있는 각성자는 어떤 사람이에요?”
한소준의 악명에 대해서는 마리나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다만 세간의 시선과 달리, 마리나는 한소준이 제법 실력이 있는 힐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지 성격이 거지같을 뿐.
“제가 어떻게 힐을 해 줘야 할지 난감하게 만드는 각성자가 가치가 있는 사람이죠. 물론 대책 없이 부잡스러운 것 말고요. 어쨌든 저를 긴장시키지 못하면, 그건 그냥 힐만 처먹는 버러지라는 얘깁니다.”
“살벌하네요.”
“힐을 무슨 상비 포션처럼 당연시 여기는 놈들이 문제죠. 이것도 엄연한 재능인데.”
“그건 맞는 말이에요.”
“제게 최고의 각성자는 저를 자극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성장하도록 자극해 줄 수 있는 사람.”
“신념이 확고하네요.”
“예. 이번에 유즈하 씨도 그렇고, 강신화 씨도 실력을 보면 알게 되겠죠. 거품인지 진짜인지.”
한소준은 같은 팀인데도 불구하고, 하는 말에 거침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름 있는 공대에 소속되었을 때도 공대장에게 독설을 밥 먹듯 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얼마 못 가서 모난 돌이 되어 잘렸지만 말이다.
바로 그때.
그롸아아!
일순간 수풀이 어지러이 뒤흔들리더니, 거구의 몬스터가 허공을 휘저으며 날아왔다.
쿠웅! 쿵! 쿵!
볼썽사납게 흙바닥을 구른 녀석은 뒤통수를 바닥에 몇 번이나 찍혔는지 피를 철철 흘렸다.
파아앗……!
이윽고 수풀에서 훌쩍 뛰어올라 50m 상공에서 정점을 찍은 신화의 모습이 보였다.
신화가 마리나에게 외쳤다.
“이 정도면 쓸 만한 녀석이죠?”
신화의 말에 마리나가 몬스터를 확인했다.
정식 명칭은 칼라킬.
이족 보행을 하는 악어 형태의 몬스터로, 외피가 튼튼하기로 유명한 녀석이었다.
기동력은 좀 떨어지지만, 근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S랭크의 몬스터였다.
마리나가 외쳤다.
“좋아요! 그 정도면!”
“알겠어요!”
콰아아아!
신화의 몸이 공간을 가르며, 빠르게 추락했다.
칼라킬에게 폭주 기관차처럼 그대로 들이받을 기세였다.
그롹!
하지만 칼라킬도 바보가 아니라서, 신화가 떨어질 타이밍에 맞춰서 몸을 옆으로 틀었다.
그러자 아슬아슬하게 내리친 신화의 일격이 옆으로 비껴 가며, 칼라킬은 목숨을 구했다.
“제법이네?”
그롸!
재빠르게 몸을 일으킨 칼라킬은 양쪽 주먹을 앞으로 내뻗으며, 신화에 대한 적의를 드러냈다.
마치 타이어들을 연결해서 만든 것처럼 두껍고 울퉁불퉁한 근육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저 정도면 열심히 드리블을 치면서, 빈틈을 노리려고 할 게 뻔하지. 재미없겠군.’
한소준이 양손 가득 힐의 기운을 만들어 내며, 신화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했다.
본인은 신나고 재밌을지 모르겠지만, 보조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최악의 행동인 ‘드리블.’
그것은 몬스터를 한 곳에 고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되면 고정형으로 들어가는 디버프, 버프를 순식간에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게 된다.
또한 힐의 타깃팅이 어려워져 보조하기가 매우 까다로워진다.
안타깝게도 그간 한소준이 보아 온 나름 잘나간다는 각성자들은 이런 드리블이 너무 심했다.
꼭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기를 쓰고 ‘있는 척’하며 현란하게 움직이는 놈들이 꽤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런 놈을 리더로 둔 공대는 위약금을 몇 배로 물어도 바로 탈퇴하곤 했다.
바로 그때.
퍼억!
“……?”
한소준은 놀라운 광경을 봤다.
바로 앞에서 칼라킬이 보란 듯이 주먹을 뻗었음에도 불구하고, 신화가 피하지 않았던 것이다.
보는 것과 동시에 칼라킬의 주먹이 신화의 얼굴에 박혔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신화가 당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롸악……!
시원하게 신화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칼라킬은 신음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
마리나가 이유를 먼저 찾았다.
칼라킬의 사타구니 사이 – 분명 녀석은 수컷이 틀림없었다. – 를 꿰뚫은 신화의 검날 때문이었다.
퍼억!
칼라킬도 한 성격 하는지라 다시 온 힘을 다해 주먹으로 신화의 얼굴을 쳤다.
쫘아악!
끄롸아아!
하지만 그 파괴력만큼 칼라킬의 사타구니 사이의 상처는 더 깊어졌고, 길게 찢어졌다.
‘미친 거 아니야?’
웬만해서는 당황하지 않는 한소준도 신화의 전투 방식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바람에 당연히 해야 할 힐까지 놓쳐 버렸다.
샤아아아.
뒤늦게 한소준의 손을 떠난 백색의 치유 구체가 신화를 정확히 감쌌다.
“칼라킬, 너희는 이래서 마음에 들어. 뒤가 없이 달려들잖아. 무식하게 말이야. 나랑 콘셉트가 너무 똑같아!”
끄와아아악!
신화의 도발에 칼라킬이 듣고 싶지도 않다는 표정을 하며 양 주먹으로 신화의 얼굴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쫘아악!
예기를 잔뜩 머금은 검날을 이용해 신화가 칼라킬의 ‘그 부분’을 완전히 잘라 냈다.
그리고 왼손의 건틀릿을 활용하여, 압축된 고농도의 마력을 일거에 상처 부위로 방출시켰다.
순식간에 마력의 절반 이상을 대거 소모한 파괴적인 일격이었다.
뻐엉!
아주 깔끔하게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왔다.
터지다가 말거나, 어설프게 터진 것이 아닌.
완벽하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 분명한 ‘깨끗한’ 소리였다.
끄어!
단숨에 급소에 누적된 대미지를 감당하지 못한 칼라킬은 무릎을 꿇었다.
순간 두 다리의 힘이 급격히 빠진 탓에 중심도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차피 모르모트에게 뇌는 필요 없잖아! 그렇지?”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는 질문을 던지며, 신화가 양손의 깍지를 끼고는 자세를 잡았다.
급소의 통증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고개를 휘젓고 있는 녀석.
신화는 수직으로 내려다본 자신의 시야에 정확히 칼라킬의 뒤통수가 들어왔을 때.
홰애액!
전력을 다해 칼라킬의 뒤통수를 내리찍었다.
쩌억!
그 파괴력을 이겨 내지 못한 칼라킬의 얼굴은 제동을 걸 틈도 없이 그대로 지면에 부딪혔다.
앞으로 얼굴이 깨지고, 뒤로는 뒤통수가 깨져 버린 칼라킬.
녀석은 그렇게 비명 한번 질러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불귀의 객이 되어 버렸다.
‘와……. 이건 정말, 상남자네. 저런 무지막지한 놈을 제자리에서 버티기로 잡아?’
한소준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의외였다.
칼라킬은 외형만 봐도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 정도로 공포스러운 녀석이었다.
하지만 신화에게 후퇴나 회피, 혹은 두려움 따위는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제자리에서 발자국 한 번 옮기지 않고, 완벽하게 칼라킬의 머리통을 터뜨려 버렸다.
“이 정도면 제법 버틸 만한 것 같은데?”
신화가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머리와 얼굴, 목뼈 위주로 마력을 불어넣어 강화를 시켰더니 무난하게 맞을 만했다.
뼈에 달리 이상이 생기지 않으니, 기껏해야 피부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전부였다.
신화가 마리나를 향해 소리쳤다.
“자, 이 정도면 어때요? 당신을 위한 인형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한 것 같은데?”
한달음에 달려온 마리나가 칼라킬의 상태를 살폈다.
과연 신화의 말대로였다.
깨진 머리야 어차피 쓸 일이 없으니 제외하고, 몸에 생긴 부상은 ‘그곳’의 손실이 전부였다.
“감사히 쓸게요.”
“사후강직이 일어나기 전에 빨리 은사를 쑤셔 넣어 두는 것이 좋을 겁니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요. 배려에 감사해요. 원형이 잘 보존된 칼라킬이면 엄청난 무기죠.”
“이 정도면 밥값은 충분히 했다고 할 수 있겠죠?”
“정말 신화 씨는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을 보여 주네요. 솔직히 놀랐어요.”
“입구에서부터 이렇게 놀라기엔 앞으로 놀랄 일들이 더욱 많을 겁니다. 기대해도 좋아요.”
“재밌겠어요.”
“그러게요. 죽지만 않는다면 공략은 원래 늘 재밌고 즐겁죠.”
신화가 웃으며 답했다.
흘깃 한소준이 있는 쪽을 살피니, 그 역시 신화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 그럼 실험용 외에 뭐 하나 챙길 것도 없는 칼라킬은 버리고 이제 전진합시다.”
신화는 앞장서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막 칼라킬의 몸뚱이에 은사 연결을 마친 마리나가 물었다.
“동쪽으로 갈 건가요?”
“아뇨, 무조건 서쪽으로 갈 겁니다. 전부 쓸어버립시다!”
“신화 씨, 잠깐만요!”
“천천히 오십쇼! 소준 씨만 바로 서포트 좀 부탁합니다.”
“예, 그렇게 하죠!”
신화의 뒤에 바로 따라붙는 한소준의 발걸음은 경쾌했다.
두려움과 공포는 하나도 모르는 한 남자!
그간 만났던 모든 각성자들을 쓰레기로 치부해 왔던 한소준의 호기심이 제대로 동했다.
* * *
던전 공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속도가 붙었다.
던전 전체 구간을 A, B, C 구역으로 나눴을 때, A구역은 난이도가 확실히 낮았다.
가끔 칼라킬 같은 S랭크 몬스터가 나오기는 하지만, 주로 모습을 보이는 것은 A, B랭크의 몬스터였다.
“따라 와, 이놈들아! 너희가 몇인데 나한테 겁을 먹는 거야. 어? 아무것도 없다니까?”
때문에 일대일로 상대하는 것도 필요 이상의 소모라고 생각한 나는 몬스터들을 일망타진할 방법을 생각해 냈다.
마리나는 내 도발이 못 미친 탓에 아깝게 무리에서 이탈한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퍼억! 빠악! 따악!
나는 치고 빠지기를 쉴 새 없이 반복하며, 계속 어그로를 끌었다.
이번 공격의 제물로 삼고자 한 녀석의 정식 명칭은 ‘토우거’였다.
트롤과 오우거의 모습을 반반씩 빼닮은 녀석으로 그에 걸맞게 이름도 반반 합쳐진 녀석이다.
‘이쯤이면 됐나?’
A랭크와 B랭크가 섞여 있는 토우거 무리가 제법 모였다. 그 수가 무려 서른에 달했다.
내가 전투 중에 일부러 상처를 내서 피를 흘린 탓인지 피 냄새를 맡고 모이는 모습이었다.
딸깍. 딸깍.
아까부터 왼손 위로 계속 만지작거리던 윌슨에 슬슬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던전에서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은 한 번에 쓸어 담는 것이다.
‘1타 30피!’
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