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91)
만렙 회귀자입니다만-91화(90/300)
제 91화
얼마 후.
‘도대체 이게 무슨…….’
한소준은 신화로부터 건네받은 투명화 반지를 이용해 모습을 숨기고 안전하게 강을 건너고 있었다.
기척을 숨길 수는 없지만, 이카라이트가 그 정도까지 예민하진 않기에 한소준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신화는 머릿속에 계획이 다 있다고 하면서도 두 사람에게 그 계획을 말해 주지 않았다.
덕분에 신화의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마리나도 연신 고개만 갸웃거리는 중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도강이 끝났다.
이곳은 이카라이트가 보스의 구역이라고 인식하고 함부로 접근하지 않는 위치. 그래서 안전했다.
‘무슨 속셈이지?’
한소준이 강 너머로 보이는 신화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설마 이 상태로 자신을 버리고 도망가려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간의 악행을 벌한답시고?
하지만 그렇기에는 방금 빌려준 투명화 반지가 생각보다 값어치가 있는 것이었다.
‘뭐……. 위자료로 이 정도라면 대만족이지만.’
바로 그때.
신화가 마리나와 함께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크랏샤아아아!
강 주변으로 보이는 숲 지대에서 이카라이트 무리가 힘차게 가슴을 두드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체력과 근력 극강의 몬스터답게 전신이 마치 거대한 갑옷을 입은 듯 보였다.
아무리 날카로운 창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처럼 단단해 보였다.
“…….”
신화의 노림수가 대체 뭔지 짐작도 못 하고 있는 탓에 한소준은 자신도 모르게 손에서 땀이 났다.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던져야 할 정도로 긴장됐다. 단지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도대체 뭐가 물귀신 작전이라는 건데. 여기서 다 같이 죽자는 건 아니겠지?’
영문을 알 수 없는 한소준의 머릿속에는 물음표만 가득했다.
* * *
같은 시각.
나는 도강을 시작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모습을 드러낸 이카라이트 무리를 보고 웃었다.
수가 적지 않았다.
어림잡아도 100마리는 족히 넘어갈 정도. 이 정도라면 경험치로 따져도 풍년이었다.
던전에서는 몬스터를 자신의 힘으로 ‘직접’ 죽이지 않아도 경험치가 오른다.
정해진 일정 반경 내에서만 몬스터를 죽이면 됐는데, 나는 그런 상황을 노리고 있었다.
“마리나 씨.”
“네?”
“신속하게 기동할 수 있다고 했죠?”
“가능은 하죠! 하지만 이 칼라킬을 데리고는 무리예요.”
“너덜너덜해진 녀석인데 이참에 같이 보내 주죠.”
“도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미리 아는 것보다 닥쳐서 아는 것이 더 대응하기 좋을 겁니다.”
“이대로 가면 강 한복판에서 이카라이트에게 둘러싸여서 죽을 것이 뻔한데도요?”
“안 죽어요.”
“……그렇게 해맑게 웃으면서 말하니까 더 무섭잖아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마리나는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뭔가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내가 제법 신뢰를 쌓긴 했나 보다.
내 전략과 전술을 믿고 따라오는 느낌이었다. 물론 나는 자신이 있었다.
“이따가 제가 신호하면 딱 5초만 제 주변으로 접근하는 이카라이트를 차단해 줘요.”
“5초? 그사이에 설마 저를 던져 놓고 도망 갈 속셈은 아니죠?”
“버릴 거였으면 그레이 하귀드 군락에서 버렸겠죠. 대놓고 죽이기에 얼마나 좋은데요.”
해맑게 웃으며 경우의 수를 지껄이는 내 모습에 마리나가 기겁을 한 표정을 지었다.
농담이 좀 과했나 보다.
‘마력은 충분하고.’
완충 상태의 마력.
여차하면 심장에 저장되어 있는 보조 마력, 즉 ‘보조 배터리’를 쓸 수도 있다.
준비는 끝났다.
크라샤! 크라샤!
사람의 체취를 맡고 잔뜩 살기가 오른 이카라이트 무리가 포위망을 형성하며 접근했다.
녀석의 진형에는 빈틈이 없었다.
설령 내가 50m 도약을 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타격 범위 안에 들어가도록 진형을 짰다.
땅으로 꺼지는 것이 아니라면, 하늘로 솟는 방법은 답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꿀꺽-.
뒤에서 마리나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S+랭크의 각성자라고 한들, A랭크 몬스터 100마리 이상을 상대로는 무적일 수 없었다.
아마 그녀는 나름대로의 퇴로를 열심히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이해한다. 팀원에 대한 신뢰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자구책이니까.
바로 그때.
나는 적당히 거리를 둔 채 더 이상 접근하지 않는 적 무리를 보며 가늘게 눈을 떴다.
‘이러면 재미없지.’
한 번에 무리를 일망타진하고 경험치를 쓸어 담으려면 50m 반경 안에 녀석들이 들어와야 한다.
지금은 강 전역에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수작을 부리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신화 씨!”
마리나의 외침이 무색하게 나는 지면을 박차고 앞으로 내달렸다.
카샤!
그러자 뒤도 보지 않고 달려드는 나를 발견한 이카라이트 무리가 반응을 보였다.
처음에는 신중하게 지켜보는 듯했으나, 혈혈단신으로 인간이 접근하니 만만히 본 모양이었다.
후웅! 후우웅!
몸길이만큼이나 길쭉한 놈들의 팔이 열심히 허공을 휘저었다.
분명 엄청난 위력을 가진 손놀림임은 틀림없지만, 이에 당할 만큼 내가 허술하진 않았다.
터업! 퍼억! 터억!
나는 무리 사이를 휘젓고 다니며, 윌슨을 이용해 놈들의 약을 바짝 올렸다.
얼굴이나 배 혹은 사타구니 사이를 열심히 타격하니 일순간 확 열이 오른 모습이었다.
그르샤! 고로샤!
이윽고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로 보이는 녀석이 힘껏 오른팔을 치켜들었다.
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저 인간을 쳐 죽이고 고기를 뜯어 먹자는 그런 뜻 같았다.
‘좋았어.’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꽁꽁 언 강의 얼음은 백여 마리의 무리가 움직여도 아주 작은 균열조차 없었다.
녀석들은 안심하고 움직였고, 순식간에 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다음 순간.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 칼라킬과 함께 전투를 대기하고 있는 마리나에게로 향했다.
“도대체 다음의 노림수가 뭔데요!”
마리나가 소리쳤다.
이카라이트 무리 전체를 도발하고도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정말로 당황한 느낌이었다.
“좀 더 기다려요!”
나는 힘주어 외치고는 몰려드는 무리의 상태를 확인했다.
포위망을 좁혀 오며 들어오는 것이 과연 던전의 최종 구간을 지키는 수호자다웠다.
퍼엉! 퍼엉!
불특정 다수를 노린 마력 방출로 끊임없이 놈들을 자극했다.
그러자 무리 중에서도 제법 거리를 두던 녀석들까지 전부 도발에 이끌려 내 가까이 접근했다.
이제 나와 마리나, 칼라킬은 완벽하게 놈들에게 둘러싸인 상태가 되었다.
바로 그때.
“지금이에요!”
마리나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그녀가 칼라킬을 이카라이트 무리로 내던짐과 동시에 다수의 은사를 사방으로 펼쳤다.
‘참수의 실.’
유지 시간은 일시적이지만 사방에 보이지 않게 뻗어 나간 은사의 장벽을 만드는 기술이었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얇은 은사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기에 자칫 잘못 접근하면 그대로 목을 베일 수 있었다.
보통 몬스터들이 멋모르고 접근했다가 머리를 주로 잃기에 참수의 실이라고 불렸다.
‘됐어.’
타이밍이 좋았다.
잔뜩 당황한 눈빛으로 마리나가 대응한 탓인지 이카라이트 무리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사서 제 무덤을 파는구나, 하는 딱 그런 표정이었다.
“후우.”
한 줄기 뜨거운 숨을 토해 낸 뒤.
몸 전체의 뼈를 최대치로 강화하고, 이어서 초월 가속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렸다.
그런 다음.
양손에 마력을 있는 힘껏 모아 응축시킨 뒤, 망설임 없이 바닥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물귀신 작전의 시작이었다.
* * *
마리나는 경악했다.
바로 등 뒤에서 신화가 꽁꽁 얼어붙은 강의 표면을 내리치는 모습은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무모한 시도라고 여겨 경악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의미가 바뀌었다.
쩌억! 쩌어억!
순식간에 신화를 중심으로 표면 전체에 파동이 일면서 강 전체에 대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순간.
신화의 느닷없는 특이한 기행에 킬킬 웃던 이카라이트 무리의 표정도 극적으로 바뀌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 던전을 공략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얼음을 직접 깨부수는 공략은 처음이었다.
애초에 칼바람과 추위에 오랜 시간 꽁꽁 얼어붙은 표면인지라 구멍도 쉽게 뚫리지 않았다.
하지만 열선처럼 붉게 달아오른 신화의 양 주먹이 표면을 내리칠 때마다 변화가 생겼다.
가공할 만한 위력이었다.
제법 떨어져 서 있는 마리나도 전해지는 충격파가 마치 대규모 지진처럼 느껴질 만큼 강력했다.
쩌어억!
이윽고 강 중심부를 힘차게 가르는 대균열이 일어났다.
영원히 깨지지 않을 줄 알았던 결빙에 말도 안 되는 거대한 틈이 생긴 것이다.
“반대편으로 뛰어요!”
이어서 외치는 신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마리나는 알 수 있었다.
리얼한 ‘미끼’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신화가 일부러 계획을 자신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을.
“아, 정말……!”
마리나가 화끈거리는 얼굴을 부여잡으며 전력 질주했다.
막상 이렇게 되니, 상류를 이용해서 빙 돌아가자고 제안했던 자신의 말이 부끄럽게 여겨져서다.
신화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
그리고.
“하아아아압!”
신화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콰아아앙!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충분하게 느낄 수 있는 거대한 파장이 강 전체로 뻗어 나갔다.
순간 충격파에 휘말린 마리나가 헛발을 짚었을 정도의 강한 출렁임이었다.
사라샤! 사사라샤!
지옥이 펼쳐졌다.
균열이 일어나며 내구성을 상실한 얼음이 쩍쩍 갈라지며, 틈으로 이카라이트를 집어삼켰다.
얼어붙은 표면의 물이기 때문에 빙점에 가까운 수온은 최악의 조건이었다.
첨벙! 첨벙! 첨벙!
가뜩이나 물에는 젬병인 녀석들은 도망칠 틈도 없이 그대로 얼음물에 입수하기 시작했다.
백 마리를 훌쩍 넘긴 무리의 수는 이미 균열이 일어난 표면의 붕괴를 가속화했고.
결국.
끄루루룩! 끄룩! 꾸룩!
수영을 할 줄 모르는 녀석들이 여기저기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속절없이 죽어 갔다.
몰살 혹은 대참사.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이상할 것 없는 A랭크 몬스터 100마리의 전멸이었다.
“…….”
“…….”
유유히 얼음과 얼음 사이를 도약으로 넘어오는 신화를 보며, 마리나와 한소준은 침묵했다.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전부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던 그림이었던 걸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무모하게 느껴졌지만, 그런 한편으로 너무도 완벽하고도 깔끔한 마무리였다.
“이제 후딱 보스 잡으러 가죠. 저기 수장된 놈들은 경험치 말고는 얻을 것도 없으니까.”
신화가 아무 말도 잇지 못하는 두 사람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유유히 앞장서 나갔다.
분명 엄청난 일이 벌어졌음에도, 신화는 그저 사소한 해프닝이 있었던 것처럼 여기는 눈치였다.
자괴감.
마리나는 각성자가 된 이후, 처음으로 마주해 보는 감정이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신화의 리드대로 완벽히 진행된 던전 공략에 그녀의 지분은 높지 않았다.
“힘내시죠.”
툭툭.
신화의 뒤를 이어서 자신을 격려하는 듯한 한소준의 손길은……. 그야말로 확인 사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