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95)
만렙 회귀자입니다만-95화(94/300)
제 95화
-왜? 무슨 나쁜 일이라도 있는 거야?
샤미는 날이 바짝 선 내 반응에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때마침 천둥 번개가 또 한 번 시끄럽게 치자, 내 품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간 무척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 말도 통하지 않았을 테고, 모든 것이 생소했을 테니까.
“아냐, 괜찮아.”
샤미의 등을 톡톡 두드려 줬다.
일단 ‘선발대’의 존재에 대해서 인지할 필요가 있을 듯했다.
이놈들은 나뿐만이 아니라, 니콜라스조차 몰랐던 존재다.
나스 대륙으로 넘어가 레체로와 그 일파를 처단했을 때도 지구와 관련된 그 흔한 문서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그만큼 레체로가 비밀스럽게 일을 진행했으며, 관련자 모두를 함구(緘口)하게 만들었단 뜻이다.
‘일단 기억만 해 두자. 니콜라스가 회귀했을 때, 차근차근 알려 주면 돼.’
그렇게 생각을 일단락 지었다.
굳이 과정과 결과까지 추측하고 결론지을 필요는 없다. 이런 고민은 절대 내 몫이 아니다.
다만 샤미의 ‘저주’에 대해서 미리 손을 써 두는 것은 나쁘지 않을 듯했다.
“샤미.”
-응?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이 흐르면, 네 안에 내재된 저주의 씨앗은 재앙이 될 거야.”
-죽고 싶지 않아……! 내게 잘못이 있다면, 가족들을 따라 죽지 못했다는 것뿐이야! 흐흑!
“그런 말을 하려는 게 아냐. 앞으로 잘 연구하면, 네 안의 저주를 축복으로 바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듯해.”
체내에 저주의 기운으로 가득한 암흑 기를 상성에 해당하는 신성력으로 치환하기 위해서는.
조금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아티팩트도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신성력과 관련된 몬스터 혈액이나 장기도 필요하다.
만에 하나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져 샤미의 저주가 발동된다면, 즉시 아웃브레이크가 일어날 터.
게다가 반경 수km 내에 있는 수많은 사람과 각성자가 전부 미치광이 살인마가 되고 말 것이다.
이렇게 되면 또 실력 있는 각성자들이 죽거나 그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하겠지.
그러느니 차라리 내 곁에 두고, 샤미에 대해서는 미리 손을 써 두고 싶었다.
내심 고양이 – 사실은 나스 대륙의 공주지만 – 를 좋아하는 터라 키우고 싶기도 했고.
-나스 대륙으로 돌아가서 부모님과 오라버니의 묘에 한 번이라도 꼭 찾아가고 싶어.
“차근차근 방법을 찾아보자.”
-괜히 나 때문에…….
“자책은 됐고. 널 먼저 데려가겠다고 한 사람은 나야. 네가 데려가 달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귀찮은 일은 질색이지만. 내가 책임지고 네가 가진 저주는 꼭 풀어 줄게. 믿어 봐. 나, 생각보다 아는 게 많은 사람이거든.”
말랑말랑한 샤미의 발바닥을 어루만지며, 나는 녀석을 최대한 안심시켰다.
구르르릉. 구릉. 구르르릉.
하늘을 메운 먹구름이 만들어 내는 천둥소리가 어둡고 음침했다.
그것은 마치 흑마법사 레체로의 모습을 보는 듯, 기분 나쁜 어둠의 소리였다.
* * *
충분한 휴식의 시간이 지나고.
사흘 후, 2월 21일.
“휴! 밀린 수리도 끝났군.”
신화는 예전처럼 은빛의 광택을 반짝이는 윌슨을 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때깔이 고와졌네?
샤미가 대리석 바닥 위에서 귀엽게 왔다 갔다 하는 윌슨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서로 소통을 전혀 할 수 없는 사이지만, 윌슨과 샤미는 항상 친하게 지냈다.
신화가 곤한 잠에 빠져 있을 때도 윌슨은 심심하지 않게 샤미와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유랑(?)을 즐겼다.
“이 녀석은 불완전한 차원석으로만 수리할 수 있거든. 입맛이 원체 까다로운 녀석이라 구하기 힘든 재료를 요구하지.”
신화가 볼멘소리를 냈다.
윌슨을 전투에 활용하면 필연적으로 적을 직접 타격하거나, 마력을 폭발시키는 형태로 쓸 일이 많았다.
애초에 내구성이 좋은 녀석이긴 하지만, 타격과 폭발 때마다 손상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만 윌슨의 ‘자체 수리’를 위해서는 만들어지다 만 불완전한 차원석이 필요했다.
그것은 최상급 차원석보다도 더 구하기 힘든 것으로, 어느 던전을 특정해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윌슨, 나랑 저기서 놀자!
팅! 팅!
신화가 부지런히 스마트폰을 살피는 모습이 보이자, 샤미가 눈치껏 윌슨과 자리를 비웠다.
사당역에 있는 안전 저택은 큰 방 하나를 샤미 전용으로 쓸 ‘캣 룸’으로 만들었다.
반응이 무척 좋았다.
샤미는 캣 타워의 멀찍한 사이사이를 뛰어다니는 진기명기를 선보이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대한은행 : 예금주 강신화 님] [잔고 : 289,000,000,000원]“2,890억 원이라……. 든든하네.”
풍요로워진 잔고에 절로 흡족한 미소가 지어졌다.
최상급 마력 포션 9병을 각각 양화 길드 3병, 외부 6병으로 판매한 금액.
여기에 그저께 마리나를 통해서 추가로 납품한 강화 포션 100팩까지 합쳐 정산한 금액이었다.
고림화학, 지제역에 투자할 돈은 일찌감치 다른 계좌에 빼 둔 상태라 빠질 예정인 금액도 없었다.
“내친김에 확 추진해 봐?”
신화의 손길이 자연스럽게 진보미에게로 연결되는 번호로 향했다.
양화 그룹이 글로벌하게 움직이는 그룹인 만큼, 그쪽이 일 처리가 수월할 듯해서다.
[나도 여자랍니다~♬]2020년과 전혀 맞지 않는 한참 예전의 노래를 배경으로 한 컬러링이 뜬금없이 들렸다.
-그대 곁에~ 있을 때면~ 부드럽고 약해지는 마음~!
마치 꼭 누구 들으라고 설정해 놓은 듯한 컬러링! 신화가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는 찰나.
-신화 씨! 무슨 일이에요? 마고스 던전 공략까진 아직 시간이 좀 남았는데요?
“알고 있어요. 던전 공략과 관련된 얘기가 아니라, 개인적인 부탁을 좀 하려고요.”
-개인적인 부탁이라면……?
“남태평양 쪽에 크리비아 아일랜드라고 불리는 섬이 있어요. 혹시 알아요?”
-크로네스, 리니아, 비스테시아, 아슈토레스. 이렇게 네 섬을 말하시는 거 아니에요?
“맞아요. 무인도죠.”
-알기는 알아요. 무척 가깝게 붙어 있어서 섬에서 섬으로 넘나들기 편하다고 하더라고요.
“그 섬을 좀 사고 싶은데요.”
-네? 갑자기 섬은 왜요? 거기에는 던전도 따로 없잖아요?
“전에 마딜로 던전을 공략할 때, 한번 얘기하지 않았던가요?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섬들에 휴양지를 건설하고, 은퇴하는 게 꿈이라고.”
-얘기야 들었죠! 하지만 그냥 농담이라고 생각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진심이었어요?
“저, 그렇게 실없는 소리 하는 사람 아닙니다. 그렇게 봤다면 좀 실망인데요?”
-아앗! 그게 아니에요! 그럼 섬을 사서 휴양지를 지으면, 정말 한국을 떠날 거예요?
“네, 당연히 그래야죠. 처음부터 제 목표가 그거였는데요.”
-사람들이 강신화 씨를 점점 더 필요로 하고 있는데요? 관심도 엄청 많이 받고 있고요.
“나를 위해 살지, 남을 위해서 사는 것은 제 신조가 아니라서.”
신화가 딱 잘라 말했다.
-제가 직접 추진하기는 어렵지만, 해외전략 팀을 통해서 추진할 수 있을 듯해요.
“그럼 좀 알아봐 주세요. 중개비는 충분히 챙겨 드릴 테니. 네 섬을 먼저 알아봐 주면 됩니다.”
-알겠어요. 무인도 샀다고 바로 떠나고…… 그런 거 아니죠?
“자연인이 되려고 가는 게 아니라, 홀로 대자연을 누리는 유일한 문명인이 되려고 떠나는 겁니다. 당연히 준비 시간이 필요해요.”
신화가 자신의 확실한 ‘콘셉트’를 진보미에게 강조했다.
그래도 늘 뭔가를 이렇게 부탁하면 항상 군말 없이 들어주는 진보미가 고마웠다.
단지 길드원 관리 차원의 케어라고 하기에는 진보미가 이리저리 신경 써 주는 것이 많았다.
“고마워요, 항상.”
-뭘요. 신화 씨 일이 곧 저의 일인 걸요. 그럼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네.”
삑.
신화가 전화를 끊는 순간.
드르르륵!
바로 진동이 울렸다.
방금 막 신화에게 도착한 장문의 톡이 목록 상단에 보란 듯이 노출되어 있었다.
발신자는 한소준이었다.
“무슨 일이지?”
[안녕하세요. 강신화 님. 저, 한소준…….]미리보기로 볼 수 있는 짧은 단락에는 한소준의 무척 ‘예의 바른’ 시작 멘트가 적혀 있었다.
매번 통보식이나 초성을 잔뜩 넣는 성의 없는 말투로 질타를 받았던 그답지 않은 톡이었다.
나머지 내용을 확인했다.
[……입니다. 다음 던전 공략의 일정을 혹시 잡으셨습니까? 잡으셨다면 꼭 저를 데려가 주셨으면 하는데요.괜히 검증도 안 된 쓰레기 힐러들 데려가지 마시고, 절 꼭 데려가십시오. 전리품 분배도 절반만 받겠습니다. 아니, 3할만.]
“하하하, 왜 이렇게 저자세야?”
신화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기가 센 한소준답지 않게 무척 공손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리품까지 양보하겠다지 않는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신화는 한소준의 마음을 어떻게 얻어야 할지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기우였다.
오히려 지금은 한소준이 신화에게 매달리는 모양새였다.
‘복잡한 밀당이 내 취향은 아니지만,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지. 목마른 놈이 우물을 직접 파게 해야 더 마음이 동하지 않겠어?’
신화의 입가에 사악하고도 음험한 미소가 걸렸다.
최지혁, 윤별이, 한소준.
이렇게 세 사람만 팀에 영입해도, 앞으로 던전 공략이 한결 수월해질 듯했다.
디버퍼, 어쌔신, 힐러.
역할군은 겹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시너지에 따라 화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합이다.
그들은 니콜라스와 관계있는 사람들도 아니니, 나중에 다른 이슈로 문제가 될 이유도 없다.
“좋아. 순조로워.”
신화가 냉장고를 열어 안을 살폈다.
보통 냉장고 안은 먹고 마실 것이 가득하나, 이 저택의 냉장고에는 카타벨라의 혈액을 추출해서 담은 병만 들어가 있었다.
‘자체 숙성 기간이 꼭 필요하니까……. 식별 안경 제작은 3월 1일부터 할 수 있겠네.’
얼추 필요한 시간이 계산됐다.
3월 1일.
그날, 이 세상은 자신이 만들어 낸 특별한 세 번째 제작품을 만나게 될 것이다.
식별 안경!
신화는 이 녀석이 또 한 번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 * *
그날 저녁.
나는 지하철을 타고, 장동식을 만나기 위해 1호선 남부권에 있는 블랙 존으로 향했다.
예전이었다면 항상 하차했을 병점역도 이제는 과거의 추억으로만 두고 지나칠 수 있게 됐다.
“…….”
지하철 안은 조용했다.
내릴 사람들은 일찌감치 화이트 존, 옐로 존에서 모두 내린 탓이었다.
내가 귀찮지만 않았다면, 진즉에 두 다리로 열심히 뛰었겠지만.
오늘은 무리하고 싶지 않아 지하철을 이용하는 중이었다.
뭐, 혹시나 누가 시비라도 걸면 확실하게 손을 봐줄 수 있는 힘이 있기도 했고.
스마트폰으로 마침 방송 중인 각성자 뉴스를 켰다.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각성자 관련 뉴스를 다루기 때문에 언제 봐도 유용한 채널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뭐야, 이거?”
나는 때마침 방송되고 있는 현장 화면을 통해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KSA 대전 지부의 지부장 한승택 씨가 테러 조직에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일에 개입한 것은 테러 조직 흑십자단과 형제 세력인 월광인 것으로 알려져…….”
“지부장을 납치했다고? KSA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큰 사건이 벌어진 듯했다. 그것도 전생의 나는 경험해 본 적 없는 새로운 사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