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96)
만렙 회귀자입니다만-96화(95/300)
제 96화
이어진 보도 내용을 들어 보니, 범죄 조직의 흔한 납치 레퍼토리였다.
KSA에 체포돼 무기형을 선고받은 네 명의 간부를 풀어 주면, 대전 지부의 지부장인 한승택을 풀어 주겠다는 요구였다.
물론 KSA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본부장 이하성이 특별 회견까지 열면서, 공개적으로 그들을 비판했을 정도였다.
“KSA를 어중이떠중이가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 요원을 하나라도 건드렸을 때, 확실한 본때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범죄자와 협상은 일절 없습니다.
24시간 안에 한승택 지부장을 풀어 주지 않으면, 그날로 두 조직의 거점은 지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이하성의 반응은 강경했다.
KSA의 방침이기도 했다.
그가 말한 거점은 블랙 존이다.
대전 북부에 위치한 블랙 존으로, 흑십자단과 월광이 거점으로 쓰는 곳 중 하나였다.
그들은 게릴라전은 물론, 다양하게 함정을 구축하는 데에도 능한 자들이었다.
거점 타격은 좋지만, 내부 정보를 확실히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인명 피해가 클 공산이 컸다.
“알아서 하겠지.”
나는 오지랖 넓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KSA의 일이니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놈들을 밖으로 꾀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들어가는 것이라면.
‘전면전이 될 수 있어. 그러면 양쪽 다 엄청난 피해를 입을지도.’
파국에 이르는 미래가 보인다는 것이 문제였다. 물론 이하성이 알아서 잘 컨트롤을 할 것이다.
30분 후.
역에서 내리기 전에 윤별이, 그리고 신부님과 통화를 마쳤다.
오늘 오후에 만나 정식으로 팀 영입 건에 대해서 얘기를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이제 양화 길드와의 공식 계약 종료가 채 열흘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은 나인 로드.’
내가 꿈꾸고 있는 우리 팀의 종착점이다. 내가 없더라도 능히 미래를 대비할 팀을 짜 두는 것이다.
나인 로드는 니콜라스의 팀이니 두고, 혹시라도 내가 꼬이지 않게 만드는 팀인 셈.
좀 더 이기적으로 말하자면!
니콜라스가 내게 나인 로드에 합류하라고 하면, 나를 대신해서 던질(?) 팀이다.
여차해서 이런저런 수단에도 안 될 것 같으면, 가짜로 사망 신고를 내는 방법도 고려 중이다.
그만큼 니콜라스는 자신의 팀 계획에 대한 집착이 심해 생각을 다 각도로 잘해 둬야 한다.
“음산하네.”
플랫폼을 따라 걷는 길에서부터 벌써 악취가 물씬 풍겼다.
여기저기 지워지지 않은 핏자국들은 블랙 존의 치안이 어느 수준인지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시각 왜곡이 심하네.’
이곳의 특징은 시각 왜곡이었다.
일전에 지제역 일대 블랙 존이 ‘즉사의 안개’ 지대라는 특징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모든 블랙 존에는 그 존을 상징하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블랙 존이 된 것이다.
이곳은 일부 구역에서 눈에 보이는 것과 실제 위치가 다른 시각 왜곡이 일어나는 중이었다.
물론 자체적으로 왜곡을 보정할 수 있는 내 눈에는 해당 사항이 없었지만 말이다.
끊임없이 특유의 일렁임이 일어나는 것으로 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바로 그때.
‘음.’
나는 낡고 낡은 역사의 지붕 틈새로 살짝 삐져나온 누군가의 발끝을 볼 수 있었다.
블랙 존에서 이런 식으로 방문자의 목숨을 노리는 경우는 매우 흔한 일이다.
애초에 KSA나 경찰이 자체 관할을 포기한 곳이기에 여기서 벌어지는 일은 터치하지 않는다.
‘내게 날아오지 않는 모기까지 억지로 잡을 필요는 없지.’
나는 나름의 아량을 펼쳐 녀석의 목숨을 지켜 주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결과는 좋지 못했다.
“하아아앗!”
위에서 나를 노린 암살이었다.
나는 달리 시선을 위로 올리지도 않았다.
그저 오른팔만 가볍게 위쪽으로 뻗었고, 그것을 검의 형태로만 변형시켰다.
푸욱!
“끄억…….”
일순간 마력을 집중시켜 예기를 최대화했기 때문에 녀석은 어찌할 새도 없이 검에 그대로 꿰어 버렸다.
“살인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곳이라고는 해도 제 분수는 알아야지.”
“흐어…….”
쿠웅!
팔을 아래로 내리자, 검을 따라 주르륵 흘러내려 온 녀석의 몸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한눈에 보아도 F랭크로 짬밥만 제법 챙긴 풋내기였다.
사람을 잘못 고른 셈이다.
“음.”
다만 어깨에 차고 있던 견장에 백색 초승달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봐선 테러 조직 ‘월광’의 말단 조직원으로 보였다.
죽일 놈을 죽인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흥이 없지만, 현 상황이 씁쓸하기는 했다.
이런 식으로 삶의 외곽으로 계속해서 몰린 사람들은 레드 존, 블랙 존으로 흩어진다.
이들이 나중에 나스 대륙과 지구가 연결되면, 레체로의 열렬한 추종자가 된다.
악의 씨앗은 지금부터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셈이다. 아무도 그 위험성을 모를 뿐.
어쨌든 한 번의 해프닝을 제외하고 별일은 없었다.
나는 기억이 이끄는 대로 장동식의 아지트로 향했다.
그리고 가는 과정에서 즐비하게 널려 있는 다수의 시체를 봤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제작으로 부를 제법 쌓은 장동식을 몰래 털어먹으려다가 장동식이 제작한 함정에 걸려 죽은 작자들이기 때문이다.
죽어도 싼 놈이라서 불쌍하지도 않았다. 명복을 빌어 줄 가치도 없었고.
한데 바로 그때.
우웅! 우웅!
“……?”
갑작스런 큰 진동이 일었다.
그것은 내가 왼손에 끼고 있던 흑마법사의 반지에서 일어난 변화였다.
‘차원 에너지 공명?’
이 근처에 레체로가 보낸 또 다른 선발대가 있다!
반지가 말해 주고 있었다.
똑같은 반지를 낀 또 다른 존재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파앗!
즉시 상공으로 몸을 날렸다.
다음 순간.
“……!”
나는 여기가 평범한 도심이 아니라 온갖 죽음의 수가 난무하는 곳이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퍼엉! 퍼엉! 퍼엉!
정면에 보이는 천막 아래서 굉음과 함께, 고강도 응축 마력탄으로 보이는 것이 방출됐다.
“망할.”
쿠쿵! 쿵! 쿵!
망설일 것도 없이 바로 강철 강화를 이용해 마력탄 공격을 받아 냈다.
강화 덕분에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충격파는 마력탄이 강타한 가슴을 중심으로 고스란히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장동식의 아지트 주변은 이런 식이다.
정해진 루트로만 이동하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비명횡사를 할지 알 수 없다.
‘놓쳤어.’
그 바람에 다른 존재를 놓쳤다.
방금 전까지 격렬하게 반응하던 반지는 언제 그랬었냐는 듯, 예전의 평온함을 되찾았다.
“…….”
하나는 확실하게 검증됐다.
반지를 이용해 다른 반지의 존재를 찾아낼 수 있다.
그렇다면 나중에 반지를 낀 존재를 만났을 때.
‘놈들과 같은 아군인 것처럼 행세할 수가 있겠지. 그럴 생각으로 만들어진 아군 식별용 반지니까.’
괜찮은 전략 같았다.
물론 기를 쓰고 반지를 낀 놈들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겠지만, 대충 던진 미끼를 문 물고기 정도야 건질 법도 하니까.
* * *
10분 후.
“어이쿠, 귀하신 손님이 이렇게 누추한 이곳에는 어쩐 일로?”
장동식은 자신의 아지트를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강신화.
최근 ‘최상급 마력 포션’ 판매와 함께 이하성의 공개 사과를 통해서 일약 스타가 된 인물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장동식도 알 정도로 신화의 유명세는 상당했다.
제작 계열의 각성자로서 장동식은 신화에게 관심이 많았다.
연구하기를 무척 좋아하고, 제법 많은 데이터를 갖고 있는 장동식이지만.
최상급 마력 포션의 제작에 대해서는 정말 오리무중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제작을 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작에 필요한 시설을 의뢰하려고 왔습니다. 장인이 만든 공정이어야 신뢰가 갈 듯해서요.”
“허허, 장인이라……. 꽤 열심히 띄워 주시는군요.”
“장동식 님이 장인이 아니면 대체 누가 장인이겠습니까? 슈트는 황석철, 기계는 장동식. 이게 진리 아닙니까?”
신화의 답에 장동식이 피식 웃었다. 칭찬을 새겨듣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황석철과 비교를 해 주니 기분은 좋았다.
“어떤 기계를 원하는지 얘기부터 좀 들어 봅시다.”
장동식은 이것저것 꼬치꼬치 내용을 캐묻지는 않았다.
그것이 그의 장점이었다.
고객으로부터 필요 이상으로의 정보를 수집하려 들지도 않았고, 선을 넘지도 않았다.
딱, 고객이 말하는 부분만 새겨듣고 그에 필요한 기계를 생산하여 제공했다.
많은 이가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블랙 존에 찾아와 장동식에게 제작을 의뢰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원하는 형태는…….”
이윽고 신화가 술술 필요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달리 그림 같은 것을 그려 온 것은 아니기에 말하면서도 너무 추상적인 것이 아닐까 걱정했다.
하지만 신화의 걱정과 달리, 장동식은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신화의 이야기가 끝난 뒤, 화이트보드 위에 몇 가지의 기계 그림을 그려 가며 말했다.
“처음 여기서는 체액, 그러니까 액체들만 섞이도록 하고. 중간에 가열과 냉각을 반복하게 한 다음, 최종 냉각 이후에 위에 있는 액체만 건져 낸다, 그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손으로 직접 젓는 과정, 냉각 후에 퍼내기, 이후에 하단의 불순물은 폐기하고, 상단부의 액체만 따로 특수 용기에 보관. 전부 다 자동화 가능합니다.”
“기간은?”
“이틀? 따로 만들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제가 가진 시설 중에 비슷한 것이 있어서 말이죠.”
일이 쉽게 풀릴 모양새였다.
장동식을 따라 지하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보니, 과연 방금 말한 것과 유사한 시설이 그대로 있었다.
“일부 공정만 제가 따로 손보면 주문하신 대로의 용도로 즉시 사용 가능합니다.”
“이렇게 빠를 줄 몰랐네요. 최소한 2주에서 3주는 잡고 있었는데.”
신화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장동식이 몇 가지 부류의 임의 재료를 기계에 털어 넣고는 바로 공정을 가동했다.
얼마 후.
시연을 쭉 지켜본 신화가 내린 결론은 간단명료했다.
‘완벽해. 이대로라면 마딜로 체액, 스켈레톤 뼛가루, 카트라만 정해진 공간에 넣으면 자동으로 포션이 생산되겠어!’
크으, 하는 진심 어린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토록 원하던 강화 포션의 자동 생산 공정이 눈앞에 있었다.
진즉에 이 편한 방법을 두고, 왜 가내수공업을 했는지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얼마입니까?”
“선금 50억, 잔금 50억, 합계 100억 원입니다. 납품은 3일 후에 원하는 장소로 배달 가능하고, 그때 잔금을 치르시죠.”
“좋아요. 바로 전액 결제하죠.”
“예?”
“어차피 뭐 먹고 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신화가 웃으며 말했다.
장동식은 여기서 사랑하는 외동딸과 함께 죽기 직전까지 뼈를 묻고 사는 사람이다.
언제나 항상 이 자리에 있을 것을 알기에 딱히 따질 것 없이, 잔금까지 결제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질 수 없죠. 저도 밤샘 작업으로 진행해서 내일 자정까지 납품하도록 하겠습니다.”
“화끈하네요. 좋습니다.”
쿨 결제, 쿨 제작.
서로의 생각이 맞아떨어져 빠르게 거래가 이뤄졌다.
강화 포션 제작의 자동화.
이제 재료만 있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 없는 제품이 완성된다.
한데 바로 그때.
드르륵. 드르륵.
진보미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나절 만에 섬의 구매에 관련된 건이 해결되었나 싶어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내용은 의외였다.
-신화 씨! KSA에서 우리 길드에 이번 납치 사건에 대한 비공식적인 도움을 요청했어요! 그래서 저희는 대전 북부 블랙 존으로 이동하게 될 것 같은데, 신화 씨도 합류할 수 있나요?
“…….”
스마트폰을 들고 있던 신화는 잠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무거운 침묵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