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97)
만렙 회귀자입니다만-97화(96/300)
제 97화
“잠시.”
“예, 괜찮습니다.”
신화는 장동식에게 양해를 구하고, 지하실 한옆의 독립된 공간으로 나와 전화를 이어 갔다.
“보미 씨, KSA의 일에 양화 길드가 왜 참여하는 겁니까?”
-오해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려요.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에요!
“아니, 그건 아는데……. 블랙 존에 들어가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간부 전원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양미간을 잔뜩 찌푸리는 신화에게서는 불쾌감과 걱정이 동시에 묻어났다.
자신에게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해서 기분이 상한 것은 아니었다.
진보미를 위시한 간부진이 블랙 존에 들어가는 결정을 너무 쉽게 내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치 안전벨트를 하지 않고 놀이기구를 타겠다는, 그런 느낌이랄까? 걱정이 앞섰다.
-북대전 블랙 존은 우리 길드에 내부 지도가 있어요. 아시다시피 그 블랙 존은 특징이 뚜렷한 곳이잖아요?
신화가 기억을 더듬었다.
약칭 ‘북대전 블랙 존’은 황사가 심한 날처럼 1년 내내 모래 먼지가 가득한 곳이다.
위성사진이니 뭐니 하는 사진들이 ‘특수 방해 현상’에 의해 전혀 찍히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일단 권역 내에 들어가면 전파 방해가 심해서 무전이든 뭐든 연락이 어려웠다.
전령(傳令) 같은 구시대적인 방법을 써야만 소식을 전달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블랙 존 내에서 적에게 각개격파를 당하더라도, 실시간으로 알 방법은 육성 말고 없었다.
신화가 재차 물었다.
“정의감 때문에 참여했을 리는 없을 것 같고, 뭔가 다른 제안이 있었던 겁니까?”
-맞아요. 일단은 단거리 전파 방해는 받지 않을 수 있는 특수 장치도 저희가 가지고 있고, KSA의 제안도 나름 매력적이어서요.
“들어 보죠.”
신화가 숨을 죽였다.
진보미의 얘기대로 신화가 원치 않으면, 이 일은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참여를 결정한 간부진과 길드원들의 미래였다.
블랙 존 지도를 갖고 있다고 해도, 기껏해야 몇 년 전 내부를 탐사한 내용으로 그린 것일 터.
월광과 흑십자단은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수시로 다양한 방어 시설과 구조물의 위치를 바꾼다.
과거에는 안전지대였던 곳이 지금은 얼마든지 죽음의 무덤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북대전 블랙 존에는 월광의 마스터인 박형산과 흑십자단의 4인자 정만춘이 있다고 해요.
“박형산, 정만춘…….”
-아시다시피 박형산은 현상금 1000억 원, 정만춘은 500억 원이 걸린 거물이죠.
역시 돈의 유혹인가 싶었다.
유명한 각성자 범죄자들은 거의 전부라고 해도 될 정도로 KSA가 현상금을 걸어 두긴 했다.
당장에 흑십자단의 마스터인 주천호만 해도, 그의 목에 걸린 현상금이 2000억 원에 달했다.
진보미가 말을 이어 갔다.
-현상금뿐만 아니라 해당 존에 있는 모든 두 조직의 구성원에게서 얻는 전리품에 대해 KSA가 전부 소유권을 양도하겠다고 했어요. 국가 귀속이 아니고요.
“전부 말입니까?”
-네, 전부요. 악당들에게 허가하는 합법적인 탈취인 거죠. 확실한 정의 구현이랄까.
‘KSA에서 미끼를 정말 크게 던졌잖아?’
순간, 신화의 관심도 동했다.
귀찮게 꼬이는 일이야 질색이지만, 보상이 확실하면 얘기가 180도 달라진다.
신화의 기억에 따르면, 박형산은 S랭크 아티팩트인 공간 이동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다.
100m 정도의 단거리를 별도의 마력 사용 없이 단숨에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다.
각성자들은 보통 그것을 ‘블링크 아티팩트’라고 지칭했다.
게다가 정만춘의 경우, 실드 스톤이라는 것이 있었다.
마력을 투자하는 만큼 방어 역장을 활용한 방패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아티팩트였다.
마력에 비례해서 방패의 내구성이 높아지므로 랭크가 높을수록 활용 가치가 무궁무진했다.
상당한 금액의 현상금.
그리고 쉽게 얻기 힘든 희귀한 아티팩트에 대한 소유권 인정.
대놓고 ‘물욕’을 자극하는 KSA의 제안이 참으로 절묘해 보였다.
‘게다가 북대전 블랙 존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던전도 하나 있고.’
기억 하나가 더 떠올랐다.
전생의 기록으로는 2026년 1월에 발견하게 되는 곳으로, 더미 던전(Dummy Dungeon)이라는 곳이 있다.
더미 던전이란 영구히 존재하는 기존의 던전과 달리, 한 번 공략하면 사라지는 일회성 던전이다.
때문에 각성자들은 ‘깜짝 던전’이라고도 불렀는데, 내부에 특별한 보상이 있는 것이 주된 특징이었다.
‘거점의 제7 블랙 타워의 버려진 지하 창고에 입구 차원문이 있었지. 지금은 분명히 있을 거야.’
신화의 눈빛이 반짝였다.
여기서는 ‘극상급 차원석’도 얻을 수 있다. 최상급 차원석의 다음 단계인 차원석이다.
개당 가치만 무려 100억 원을 훌쩍 넘기는 매력적인 이 녀석도 최소 20개 이상을 얻을 수 있다.
‘은퇴 자금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는군. 이 망할 물욕 센서…….’
신화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귀찮은 일은 늘 질색이지만, 역설적으로 귀찮은 일이라서 큰 벌이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일언지하에 거절하기에는 KSA가 양보한 파이가 너무나도 달콤해 보였다.
“좋아요. 저도 가죠. 대신 저는 따로 움직이겠습니다.”
-신화 씨, 혼자서요? 지도 없이는 내부 진입부터 위험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그건 진보미 시점에서의 걱정이고, 신화에게는 내부 정보가 세세하게 다 있었다.
전생의 2033년, KSA의 범죄와의 전쟁의 대미를 장식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얻을 것이 무척 많아 당시 니콜라스를 위시한 나인 로드 전원이 참여했었다.
참여 과정에서 내부 지도를 숙지할 기회가 있었는데, 니콜라스는 진입 전에 동료들에게 한 가지 숙제를 냈다.
‘지도 전부 다 외워. 아주 작은 구조물의 위치까지 다 외우지 않으면, 절대 안 보낸다!’
‘특히 여기! 저격 포인트야. 까먹고 움직였다가는 머리에 구멍 뚫리고 죽기 딱 좋은 포인트지.’
니콜라스의 엄포.
덕분에 신화는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져 가면서 내부 지도를 달달 외우게 됐다.
당시에도 꽤 유용했던 암기였는데, 어쩌다 보니 현생에서도 다른 형태로 또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괜찮아요.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KSA 차원의 강제가 아니라면 별도 행동으로 하겠어요.”
-정말 괜찮겠어요?
“안 괜찮겠으면 안 간다고 했을 겁니다.”
신화가 딱 잘라 말했다.
그러자 진보미도 더 이상 신화의 합류를 권하지는 않았다.
매번 그랬듯이, 신화에게는 계획이 다 있을 테니까. 진보미는 신화를 믿었다.
-알겠어요. 그럼 KSA에 신화 씨는 별도로 진입한다고 말해 놓을게요.
“가는 길에 지도로 몇 가지 포인트를 짚어서 보낼 테니까. 꼭 참고해요. 무시하지 말고.”
-알겠어요.
“목적도 분명 중요하지만,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는 겁니다.”
통화가 끝났다.
신화는 기억을 되짚어, 간부들과 길드원이 위험해질 수 있는 포인트를 짚어 줄 생각이었다.
조심이야 알아서들 할 테니, 그 포인트만 주의하면 큰 피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 * *
몇 분 후.
장동식에게 100억 원의 제작금 결제를 마친 신화는 중화역의 지하 창고로 수령 주소를 적었다.
처음부터 이런 부분을 고려해서 구한 창고인 만큼, 내부에서 시설을 재조립하기에는 문제가 없을 듯했다.
그렇게 계산을 마치고, 일정을 확답 받은 뒤에 그의 아지트를 나서려던 그때.
“아저씨이이이!”
지하실 어딘가에서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던 다섯 살배기의 여자아이가 신화에게 달려왔다.
장동식의 딸, 장소희였다.
“안녕?”
“아저씨이!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에요? 아니면 막 사람 죽이는 나쁜 아저씨예요?”
해맑게 웃으며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말하는 장소희의 말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피를 묻히지 않는 순수.
그것은 이미 전생의 오래전에 끝나 버린, 다시 찾을 수 없는 순진함이었다.
“나쁜 아저씨야.”
“헤……! 무서워! 아빠, 무서워!”
신화의 무심한 대답에 화들짝 놀란 장소희가 도도도, 발소리를 내며 아빠 장동식에게로 도망갔다.
“하하, 죄송합니다. 워낙에 아지트 주변에 날파리들이 많이 꼬이다 보니. 아시다시피 목적이 뻔한 놈들이잖습니까?”
“그렇죠.”
신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가 크고 작은 위험에도 블랙 존을 떠나지 않는지는 신화도 알지 못했다.
돈이야 잔고가 차고 넘치게 모았을 것이 분명한데, 그는 죽기 전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아마도 떠날 수 없는 어떤 이유가 있는 거겠지. 사별한 부인과의 사연이라든가.’
신화가 어렴풋이 넘겨짚고는 장동식의 아지트를 나섰다.
장동식은 철저한 황금만능주의인 사람이다.
아마 흑십자단의 주천호가 와서 의뢰해도, 그는 돈만 주면 열심히 만들어 줄 것이다.
즉, 미래의 동료나 동업자로 삼기에 적합한 인물은 아니다.
휘이이이.
밖으로 나오자, 블랙 존 특유의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신화를 반겼다.
여기서 북대전의 블랙 존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 몸도 풀 겸 신화는 직접 이동하기로 했다.
그리고.
파앗……!
쏜살같이 신화의 인영이 바람을 가르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흑십자단, 그리고 월광.
전생에도 악연이었던 그들과의 접점이 생각보다 일찍, 깊게 생겨난 순간이었다.
* * *
‘정보 전달은 이쯤이면 됐고.’
나는 북대전 블랙 존으로 이동하는 동안, 계속 진보미에게 보낸 내용을 다시금 확인했다.
주의 사항은 전부 전달했다.
확인하니 양화 길드에서 선택한 루트는 북동쪽 루트로 가장 안전한 길목이기는 했다.
그곳은 비교적 시야 확보가 쉬운 곳이기에 저격 포인트만 조심하면, 이유도 모르고 비명횡사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군.’
반면에 내가 있는 이곳은 서쪽 루트로 가장 위험한 곳이었다.
애초에 외부에 공개된 블랙 존 지도에서도 ‘확인 미상 구역’으로 적힌 곳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블랙 존에 들어서지 않았음에도 벌써 여기저기에 부패한 시체들이 한가득했다.
‘여기가 대한민국의 땅덩어리라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네.’
실로 그러했다.
내가 살고 있는 화이트 존은 말할 것도 없고.
예전에 짐꾼 시절에 살았던 레드 존도 이 정도로 세기말의 풍경은 아니었다.
치안이 개판이기는 했어도 사람 사는 느낌은 있었고, 최소한의 생기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여기부터는 생지옥을 보는 느낌이었다.
주인을 잃고 제멋대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시체와 백골의 흔적이 그 대표적인 증거였다.
<←↑ 안전 구역>
안전 구역이라고 대놓고 지칭하는 표지판이 나를 반겼다.
“큭.”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지 못한 곳에서 안전 구역 운운이라니.
당연한 얘기지만, 블랙 존에 있는 이정표와 표지판은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심지어 국토교통부의 공인 표시가 그려져 있는 정식 표지판이라도 말이다.
세상이 버린 이 세계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내가 내뱉은 말밖에는 없다.
‘들어가 볼까.’
딱 스무 걸음만 걸어가면.
전파도 제대로 터지지 않고, 쉴 새 없이 부는 모래바람에 시계도 엉망인 신세계가 열린다.
아까 장동식과 만났던 블랙 존보다 100배는 더 암울하기 짝이 없는 죽음의 땅.
그곳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